‘백수 선배’ 스님이 주는 ‘백수 경전’, 백수답게! / 토진 스님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천지
하라는 일은 없지만 할 일은 많다
‘
비구’란 걸사(乞士), 즉 걸인이란 뜻이다.
고타마 시타르타는 세속적인 승리와 성공의 길을 버리고, 비우고 출가해 비구가 되었다.
자본주의 논리로 볼 때 그는 인생의 포기자요, 낙오자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달려가며 헐떡이다가
‘나’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중생들에게 붓다는 ‘휴심’(마음을 쉼)의 평화와 기쁨을 보여주었다.
붓다는 온전히 쉬었다. 그래서 온전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쉼은 고통이다.
경제악화로 인해 쉼을 강요받는 100만 청년실업자들에게도 쉼은 고통이다.
‘부처님이 오신 날’(2일)을 앞두고 그 청년실업자들에게
‘선배 백수’로서 독특한 백수론을 설파하는 서울 조계사 부주지 토진(49) 스님을 찾았다.
자존심 내려놓고 돕고 허드렛일 하다보면 어느새 ‘윤활유’
토진 스님은 지난 2004년부터 서울의 중심 사찰들인 불광동 수국사 주지와
조계사 부주지로 불교계의 ‘중앙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전까지 10년 동안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백수였다.
일체의 행정직을 맡지도 않았다. 몇 철의 선방 안거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는 10년의 기한을 정해 놓고, 백수로 살겠다고 공언하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출가해 곡성 태안사에서 노스님(은사의 은사)인
당대의 선지식 청화스님(1924~2003)을 시봉하던 그는 전통강원과 동국대 선학과 등
출가자로서 정규코스를 모두 마쳤다. 대학에 다니며 부조리한 세상과
고요한 산사의 극적인 대비를 보며 그는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독재권력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과 달리 절은 너무나 고요했고, 세상에 무관심해보였다.
그는 그런 고뇌 속에서 실천불교승가회 활동을 했지만
출가자로서 중생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투신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산중에서 수행만 해야 하는 것인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도 정리되기 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청화스님이 서울 강남에 설립한 한 포교원을 맡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그에게 요행은 없었다. 법회를 열었지만
단 한 명의 신도도 나타나지 않아 허공에 대고 혼자 법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쉬움을 누구에게 얘기할 만큼 오지랖이 넓지도 못했던 그는
돈이 없어서 한 달 내 밥도 없이 콩나물만 끓여먹고 산 적도 있었다.
그는 안달복달하는 쪽보다는 그런 삶을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는 가운데 무작정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백수 10년’을 정해 놓고 살았다. 어떤 직책도 맡지 않고 백수로 살다 보니
수입도 없고, 세상의 대우도 있을 리 만무했다.
내성적이면서도 자존심이 강했기에 남 앞에 나서는 일이 줄면서 혼자서 고립되어가는 것 같았다.
노숙자나 다름없이 한강가에서 날을 지샌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존심만 내세우며 고립되어가는 것은 백수의 삶을 선택한 목적과 어긋났기에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 누구인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바쁜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백수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노인을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 운전하지 못하는 이를 위해 운전해줄 사람,
아이를 돌봐줄 사람, 위로해줄 사람, 얘기를 들어줄 사람….
바쁜 현대인들은 백수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었다.
문중에서 제사나 행사가 있으면 하루 이틀 전에 가서 도왔고,
끝나도 휑하니 오지 않고 뒷정리를 도맡았다.
도반들이 도시에서 모일 때는 자기가 바쁜 도반들 대신 먼저 가서 방도 잡고,
식당도 잡아두었다. 그때부터 그는 도반들 사이에서나,
어디서나 윤활유가 되고, 활기의 원천이 되었다.
견디고 또 견디고, 비우고 또 비우고…큰 그릇은 서서히
백수로서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덜 대우받고, 남의 필요에 응하면서 살다 보니
오히려 선방에서 수행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비워지고 편해졌다.
그리고 무료함과 타인의 평가 등에 초연하면서 어려움을 감내하는 힘도 강해졌다.
많이 쓰고 싶고 대우받고 싶은 욕망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임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백수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견디는 힘과 버리는 힘을 든다.
누군가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하거나 신경질을 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도 백수로서 해야 할 수행의 과정이 많이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는 청년실업자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구직에 매달려 ‘구직자’라는 직업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진짜 백수’가 되라고 권유한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직장을 구하는데
혼자만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 불안해져 성급해지기 쉽지만,
지금 자존심 상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보다 자기 삶을 신중히 선택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과를 믿는 불자답게 원인 없는 결과 없고,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일을 갖지 못했다면 분명 거기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실력이 없거나 준비를 제대로 하지않은 탓일수도 있지만,
그 일이 자신의 적성이 맞지않을 수 있으며, 애초 자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오랫동안 백수로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못한다면 아직도 자기 점검이 안 된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섣불리 뭔가를 채우려고 안달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특징이나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매달리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의외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토진 스님이 백수를 하면서 가장 주의할 것으로 첫손에 꼽는 것은 ‘타락’이다.
음주나 흡연 등 무엇이든 절제하지 못하고 탐닉해 몸을 상해버리면
자신에게 주어질 기회가 와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때 등산과 운동을 가장 많이 하고,
도서관과 미술관을 가장 많이 다니며 감수성을 길렀다”면서
“주위를 돌아보면 종교기관과 구청 등의 무료 강좌와 도서관, 전시회 등
돈이 없이도 자신을 성장시킬 곳이 많으니 직장 다니는 친구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운동을 많이 하고, 더 책을 많이 보고, 더 삶에서 활력을 지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앞으로 직장을 갖게 되면 결코 누릴 수 없는 무한한 기회들을 이 기회에 누려서
저주받은 기간이 아니라 축복의 기회로 삼고,
자기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토진 스님은 “큰 그릇은 서서히 만들어지는 법(대기만성)”이라고 했다.
2009. 4. 29.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