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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갈리시아(Galicia) 사람들 속에서...
이 인야의 첫 번째 '산티아고 가는 길'은 2001년 8월 15일 그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걸로 끝이 났다. 걸어서 스페인 자체 내의 '아라곤' '프랑스' 두 코스를 합한 약 두 달이 걸린 천 킬로미터의 대장정이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평생 처음 해보는 '방랑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은 그 길을 걸으면서의 감동에 비해 너무 싱겁거나 허무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적지 않았는데, 때마침 산티아고가 속해 있던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한 바닷가 마을이 고향인, 이 인야 자신이 바르셀로나에 살 때(1990년대) 알았던 친구 마놀로(Manolo)의 가족이, 여름 휴가 차 와있다는 연락이 닿아,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친구 집으로 가서 1주일 여를 그들과 함께 보내게 되는데......
a, 산티아고, 그리고 나막신
마침내 그날은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Santiago)'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아침부터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지난 밤엔 쓸데없이 맑아 별까지 보이더니,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기대감에 젖어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세상이 확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허긴,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극적이거나 뭔가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어느 정도 미리 마음 정리를 한 뒤, 뭔가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무덤덤한 자세로 걸어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시에 들어오는데,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내가 도착하는 날 비가 내린다지?' 하는 약간의 불만과 누군가에게 원망 어린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런 쪽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자!' 하면서 인야는 배낭에서 판초 우의를 꺼내 뒤집어쓰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종일 계속되었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젖어 산티아고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이 숙소는 엄청 컸고 침대가 조금 낡긴 했지만 공간도 넓고 1층 침대도 많았다. 그래서 인야도 처음으로 1층 침대를 잡았는데, 짐 넣는 곳도 있고 화장실 샤워실도 널찍한 등의 시설도 썩 괜찮았다.
아무튼 그날은 인야에게도 뭔가 특별한 날이었기에, 점심은 현지 자원봉사자가 추천한 식당에 가서 정식으로 비싸게 잘 먹었다. 누군가와 함께 했다면 좋았겠지만, 자기 혼자라도 뭔가 이 길을 끝낸 축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당을 나오기 조금 전 실수로, 비노(Vino. 와인) 잔을 깨트려 하얀 식탁보가 와인색으로 물들어... 인야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오더니, 오히려 그를 안심시키면서 치워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미안했는지 모른다.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 갈리시아에 휴가 차 와 있는 라울(Raul)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는 며칠 전 인야가 '사리아(Sarria)'를 통과하던 날, 거기까지 차를 몰고 그를 찾으러 갔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야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거기 두어 군데의 알베르게를 들러 인야의 이름을 물어보다가 다시 돌아갔다며,
"인야, 지금 당신을 데리러 내가 산티아고로 갈까?" 하고 묻기에,
"라울, 성의는 고맙지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뭔가 생각을 정리한 다음 내일 내가 다시 전화를 걸 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가 고마웠지만, 어쩐지... 적어도 그날 밤만은 산티아고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비는 개었고, 하늘은 조금씩 제 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구나 비가 내린 뒤끝이라, 숙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도시는 깨끗해 보였다.
그렇지만 인야는 시내에도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옛날 바르셀로나에 살 때 여행 차 두어 차례 여기 '산티아고'를 지났기 때문에 도심 관광에 큰 관심도 없었고, 나가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 근처 슈퍼에서 간단하게 요구르트와 막달레나, 우유를 사다 마신 걸로 저녁을 때웠을 뿐이다.
'그런데 이 첫 번째 까미노를 걸은 뒤 출간했던 책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과 그 몇 년 뒤에 개작한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부분은, 약간 '각색'이 된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이 거짓은 아니지만, 이 '산티아고 가는 길' 대장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마지막을 장식해야만 한다는 출판사들의 강력한 요구에 인야가 부응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출판사 측에서는 뭔가 교육적이고 희망적인 결론을 요구했지만, 실제적으로나 인야 개인적으로는 그와는 정반대였던 '허무함'과 염세적인 표현 투성이의 원고를 제출한 상태여서, 책을 내는 사이 쌍방의 갈등이 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결국은 몇 차례의 원고 교정을 거쳐야만 했는데, 더구나 마지막 결론 부분은 그 당시(2001년)의 기억도 아닌, 그로부터 10년쯤 전인, 인야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1992) 유럽 여행 중 처음으로 '피니스떼레'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을 옮겨놓은 것으로, '짜깁기'일 수 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이 많이들 느긋했다.
오늘은 어딘가 가기는 하겠지만,
'바로 라울한테 갈까?' 하기도 했지만, 그러기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시내에 나가 '나막신'이 있나 찾아보고, 우체국에 가서 써놓았던 엽서들도 부친 다음에나,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가족 상황에 따라 행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일단 용변을 보고, 샤워도 한 뒤 오늘은 긴 바지로 갈아입었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장갑, 비닐봉지, 필름통 등은 버렸다.
알베르게에서 나온 뒤 인야는 무조건 '나막신'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아갔다.
도심에 있는 시장에 닿으니, 가게마다 막 문을 열고 있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 그리고 싱싱한 갈리시아의 생선들......
오랜만에 인야는 자두와 복숭아를 섞어 1kg을 샀고, 시장 한복판에 있는 수도로 가서 그것들을 씻었다. 그런 뒤 그 옆 벤치에 앉아 과일 맛을 보는데, 너무 맛있었다. 더구나 자두는 정말 혼자 먹기 아까울 정도로 달고 향기도 좋았다.
그리고 그 옆 상가의 신발 가게를 찾아가니, 축제라고 문이 닫혀있었다.
'에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이 휴일이야!' 하고 있는데, 그 가게 앞 옷가게 부인이 왜 그러냐고 물어, 나막신을 사러 왔다고 하자,
"여기보다는, 오늘 도심에 벼룩시장이 서니, 거기로 가 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하고 가르쳐주었다.
인야는 시내버스를 타면서까지 그 벼룩시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장은 컸고, 옷, 신발, 잡화 등은 차고 넘쳐 보였지만, 나막신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참내! 그깟 나막신 하나 사러 내가 이게 무슨 짓이람? 이 무거운 배낭까지 매고서......' 짜증도 났지만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시장 입구로 나오는데, 과일장수에게 물으니,
"아, 그 신(Madreñas)을 사려면... '노이아(Noia)'에 가보세요. 거기에 가면 그 신을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종류도 다양하게 취급하는 전문점 같은 곳이 있을 겁니다." 하고 가르쳐주었다.
노이아에 가기 위해선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거기서 200m 정도 거리에 터미널이 있다기에 바로 버스터미널로 갔다.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11시 버스가 있어서, 얼떨결에 버스표를 사면서 바로 버스에 오르니 버스가 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야는 정신없이 산티아고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야는,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뒤 뭔가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산답시고, 정작 산티아고에 도착한 자신의 마음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엉겁결에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이아(Noia)'에 도착했고, 시장을 찾긴 찾았는데, 한 나무로 만드는 신발 가게에서는, 이제 그런 건 찾는 사람도 없어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나막신 하나 사려고 이리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없다 하니......'
짜증나기도 했고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허탈하기도 한 여러 감정이 뒤범벅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예, 라울네로 갈까?' 하면서, 일단 노이아에서 바로 라울네가 있는 '뽄떼베드라(Pontevedra)'에 가는 차편이 있나 보니, 하루에 딱 한 번 아침에 있었는데, 이미 떠난 지 한참 지난 뒤였다.
그래서 낙담한 채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다시 산티아고에 나간 뒤 거기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제일 좋다는 것이었다.
라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인야, 어떻게 할 거야? 아니, 여기로 오는 게 어때? 기왕에 우리 식구들도 다 여기에 와 있으니......" 하는데,
"식구들 끼리만 있는데, 내가 가도 될까?" 하고 그제야 물으니,
"안 될 게 뭐가 있어? 그리고 당연히 와야 하지 않아? 인야 당신이 '까미노'를 다 마친 상황에, 우리까지 고향에 와 있는데, 여기도 안 와보고 그냥 돌아간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내가 산티아고로 당신을 데리러 갈까?" 해서야,
"그럼, 갈 게... 근데, 여기는 '노이아'야." 하자,
"노이아? 무슨 일로 거기에 가 있다는 거야? 일정이 바뀐 거야?" 하더니, "그럼, 내가 노이아로 갈까?" 하기에,
이미 인야는 슬그머니 객기가 발동하고 있던 참이라,
"내가 바다도 좀 보고 싶고 해서 그러니, 여기서 걸어서 그 쪽으로 가다가 힘들면... 아마 오후 쯤에, 너에게 전화를 다시 할 게." 했더니,
"그러면, 바다를 타고 죽 걸어와. 나도 오후가 되면 그 쪽으로 출발을 할 테니까." 하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전화를 끊으면서, 인야는 이제는 뭔가 든든한 마음으로 걸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녁 무렵에는 라울이 자신을 데리러 올 테니까.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람? 그 놈의 '나막신' 찾으러 팔자에도 없던 여기 갈리시아 해안길을 걷게 생겼네......' 하면서도,
'인생이 맘먹은 대로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고 또 재미가 있겠어?' 하기도 했다.
이미 인야는 이 주변의 지도를 보면서, 여기 '노이아' 항구가 만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반도 쪽 해안 길을 따라 걸어갈 생각을 해둔 상태였다.
인야는 사람 통행이 뜸한 길 모퉁이로 가서 바지를 반바지로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무작정 이 반도에서 제일 큰 도시로 보이던 '리베이라(Riveira)'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 바닥이 딱딱하여 발에 쉬 피로가 올 걱정도 되었는데, 어느새 날은 개어 하늘에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도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걷는다고 늘 해안선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작은 언덕이나 산을 넘으면서 바닷가에 새로 지어진 집들에 가려 해안선이 보이지 않는 구간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사이로 보이던 바다는 호수 같았고, 그 뒤로 보이는 바다 건너편 해안엔 하얀 집들(붉은 기와지붕)의 덩어리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뽀르또 도 손(Porto do Son)'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방벽이 쌓여져 있고, 백사장엔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거나 일광욕을 하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몇몇 젊은이들이 파도타기를 즐기는 낙원 같은 모습이었다.
인야는 언덕길을 걸으면서 그런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발바닥이 서서히 아파오는 것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스팔트 길을 걸은 결과였다.
'나도 참 웃기는 사람이다. 사실 오늘, 내가 이렇게 걸을 줄은 아침까지, 아니 '노이아'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몰랐었다. 그런데 '나막신' 사는 걸 실패한 뒤, 마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일정의 하루처럼... 그렇게 걷고 있는 내가 너무 신기한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어쨌거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끝마치고 나서, 대서양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것이다. 전혀 계획에 없던......'
어느새 6시가 다 되고 있었다.
이제는 다리가 너무 아파, 마침 그늘이 있어 짐을 내리고 잠깐 앉았는데, 길 건너편에 버스 한 대가 섰고,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인야는 그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얼른 다시 신발 끈을 묶고는... 서둘러 그 쪽으로 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리베이라(Riveira)'에 도착하자마자 라울에게 전화를 거니, 그가 바로 데리러 온다고 했다.
너무나 피곤했던 인야는, 거기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한 벤치에 앉아 약간 졸기까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약 한 시간쯤 뒤에 차 크락션 소리가 나서 보니, 라울이 차 안에서 인야를 발견했던 모양이었는데 차 안엔 그의 처 '라우라(Laura)'가 타고 있었다.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 그동안 자신의 까미노에서의 얘기들을 하는 사이에... 그의 고향 집이 있는 '빌라노바 데 아로우사(Vilanova de Arousa)' 시에 도착했다.
라울네 여름 집은 '산 로께(San Roque)'라는 마을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육중해 보이는 현대식의 단독 주택으로 집 뒤편엔 풀장도 딸려 있는 상당히 큰 집이었다.
1층의 방 한 칸을 주어 인야는 짐을 풀었는데, 샤워를 하면서 보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새카맣게 탄 건 그렇다 쳐도, 두 달 동안 걸으면서 잘 먹지도 못해선지, 비쩍 곯아 부쩍 늙어 보이는 추레한 모습이기까지 했다.
8시 반 넘어서야 외출했던 라울의 부모님이 돌아왔는데, 인야가 올 것을 계산하고 미리 식사 준비를 해놓고 나갔던 듯... 금방 식탁이 차려졌다.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랬듯, 이 집의 식탁은 풍성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식사가 늘 그렇듯, 그날도 아버지 마놀로는 인야 옆에서 비노(와인)를 따라주는 역할이었는데, 까미노를 끝낸 뒤의 편안한 식사 자리이기도 했지만 그 기분에 취해 있던 인야가 비노를 마시기만 하면 마놀로가 잔을 채워줘서... 인야는 그 분위기에 젖어 얼마나 비노를 마셨는지 모른다.
b, 마놀로 가족과의 일주일
그 다음 날 하루는 무조건 쉬었다.
그저 마놀로 가족과 어울려, 그들이 자주 다닌다는 부근의 한 생선시장에 갔다 돌아와, 집 담장 철재 기둥의 녹을 조금 벗겨주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녹을 다 벗겨내야 새롭게 페인트칠을 한다는데, 어차피 이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인야로서는 그런 일이라도 해주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한 사흘은 걸릴 것 같았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뒤, 오후엔 아버지 마놀로네 친가와 처갓집 부모님을 방문했다.
양가 집의 부모님들은 동양인 친구의 방문에 다소 놀라면서도, 아주 친절하게 맞아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여기서 잠깐, 인야와 마놀로 가족의 인연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인야가 바르셀로나의 한 구역인 '깐 까라예우(Can Caralleu)'라는 산동네에 살던 1990년대, 그곳엔 한 집안의 아들과 아버지를 친구로 둔 두 가족이 있었다. 바로 아랫집의 '호아낀(Joaquin)'씨 가족과, 같은 동네에 살던 '마놀로(Manolo)' 가족이 그랬다.
호아낀씨는 인야에게 스페인 비노 맛을 들이게 해준 은인이었고, 그의 아들 호아낀은 훗날 인야가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가게끔 길을 열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반면 마놀로 가족은 같은 동네에 살긴 했지만 처음엔 그저 얼굴만 아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오죽했으면 인야는 속으로,
'아들은 저렇게 상양하고 착한데, 왜 아버지란 사람이 저따위야?' 할 정도로 마놀로가 무뚝뚝하고 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인야가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 한국으로 부쳐야 할 이삿짐을 바르셀로나 항구까지 실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마놀로가 건축업을 하고 있어서 커다란 트럭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그 일을 도와주었다. 그걸 계기로 그나마 조금 가까워졌는데, 처음의 그 무뚝뚝했던 마놀로가 알고 보니 의외로 다정다감하면서도 속정이 깊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정들자 이별이었던 셈이다. 갈리시아 사람들을 사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인야가 마놀로 가족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만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놀로와 까르멘의 고향인 이 빌라노바 데 아로우사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위에는 '산 미겔(San Miguel)', 아래는 '산 로께(San Roque)'라 불리는 마을로 갈라져 있는데, 아랫마을 산 로께 토박이인 마놀로는 윗마을 산 미겔에 사는 까르멘과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연애결혼하여 아들 라울을 낳았고, 그 뒤에 돈 벌러 바르셀로나로 과감하게 이민을 떠났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사업이 번창했고, 더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을 맞아 한몫을 잡아 탄탄대로에 들어선 대표적인 예라고도 했다. 고향인 이 근방에 건축 사무소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상당한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는 부자라는 것이었다.
인야가 바르셀로나에서 이들 가족을 처음 알았을 때는, 큰아들 라울이 대학생이면서 그 아래로 여동생과 막내까지 3남매를 둔 가족이었다.
아무튼 마놀로 부부는 고향에 근사한 집을 지어놓고, 매년 여름 온 가족이 고향에 와서 한 달 정도 휴가를 지내다 돌아가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이번은 무슨 인연인지, 인야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끝낸 게 그들의 여름 휴가와 겹치는 우연으로, 엉겁결에 인야도 그들과 여기 갈리시아에서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야가 여기 마놀로 집에 온 이후로는 주로 아버지 마놀로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 바르셀로나에서 알았을 때는 아들 라울이 중심이었는데, 마놀로와는 나이 차이가 다섯 살밖에 나지 않으니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마놀로의 생일 날이었다.
원래는 뜻 깊은 50회 생일이라 모든 식구들을 모아 한 커다란 식당에서 식사를 할 계획이었지만, 마놀로의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바람에, 잔치를 벌일 수 없어서 그냥 자기네 식구들만 빌라노바 아로우사의 한 식당에 모여 조촐하게 식사를 했다.
인야는 그 식당에서 갈리시아 지방의 여러 가지 술을 맛보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오늘의 주인공인 마놀로가 바로 옆에 앉아서 자꾸만 술을 따라주고, 또 너무나 잘 대해줘서 자꾸만 마셔댔다.
그런 뒤 마놀로 부부가 누이동생 병문안을 가는 길에 인야도 따라서 뽄떼베드라에 갔다.
면회가 세 사람으로 한정되어 그들은 교대로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처음 보는 마놀로의 여동생은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도 인야에게 어찌나 친절하고 호감을 갖고 대하는지, 인야가 어리벙벙해지기도 했다.
"내가 아프지 않다면, 인야, 당신을 우리 집에 초대했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지. '아델라(Adela)'였는데, 그녀의 남편이 '꾸꼬(Cuco)'인 것도...' 하다간, '그런데, 그들 가족과 내가 그 몇 년 뒤부터, 그토록 친한 사이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었지.' 하면서 이 인야는, '지금 일흔이 다 된 나인데, 엊그저께도 꾸꼬의 문자가 왔는데, 왜 올 여름엔 안 오느냐는 바람을 보일 정도로 우리는 가깝지......' 하면서 핸드폰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데, 낮에 하도 잘 먹어서 별 생각이 없는데도 까르멘은 어느새 풍성한 저녁을 준비해 놓고 그들을 불렀다.
저녁 메뉴엔 '비에이라(Vieira: 우리의 가리비)' 조개도 있었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을 끝마친 인야에게 맛을 보이기 위한 까르멘의 배려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며칠 전에 아는 어부에게 특별히 주문해 두었는데, 오늘 가져온 것이라고도 했다.
인야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사실 가리비 조개껍질은 산티아고 가는 길의 심볼로도 사용하는 것으로, 90년대 한국에서 놀러 왔던 친구 P와 유럽 여행을 하다가 여기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에 들렀을 때 그 조개 맛을 보고 싶었지만 어찌나 비싼지 입맛만 다시고 지나쳤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그 조개 맛을 본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썩 맛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스웠던 건, 그렇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까르멘의 사촌이라는 뚱뚱한, 빵집을 한다는 여자가 커다란 케이크와 수북하게 여러 종류의 디저트용 빵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먹을 게 풍년인데, 그런 빵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빵이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다 크림이거나 초콜릿 등을 덮은 것들이어서,
'이런 음식들을 먹으니, 어떻게 살이 안 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물론, '이 집에 못 먹고 죽은 귀신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내심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까르멘도 인야를 보더니, 눈짓을 하며 어깨를 으쓱 올리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인야는 참지 못하고 결국은 킥킥대며 웃고 말았다.
먹을 걸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먹을 건 자꾸 생기고......
좌우간 이 집엔 먹을 것이 넘쳐난다.
이렇게 이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인야는 마치 어디 편한 곳으로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놀로는 인야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 동양인은 바르셀로나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바로 며칠 전에 까미노를 끝내고 산티아고에 도착한 사람이야!" 하고 약간은 자랑스럽게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를 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정말이야? 동양 사람이, 나도 못한 까미노를 끝마쳤다고?" 하고 놀라면서도 반겨주는 건 물론 약간의 존경심까지 갖는 듯 호의를 베풀어 주는 자세로 돌변하다 보니,
가는 데마다 생각지도 않았던 환대를 받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마놀로의 차를 타고 가다, 여기 갈리시아의 아련한 풍경이 있는 길을 보면서 갑자기 인야는 걷는 그리움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아, 이제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그 떠도는 생활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오늘은 비가 내렸고, 라울 부부는 일 때문에 바빠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요즘 며칠, 까르멘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인야는 그들의 집에서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