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낭만적 사랑, 혹은 긍정적 희망등을 상징합니다. 근래에는 성소수자들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기호로도 사용됩니다. 어느 쪽이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서양인들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인데 특히 '무지개 다리를 건너다'는 곧 이상향(천국)으로 간다는 말의 관용어로 여길 정도로 서양에서는 무지개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bridge)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서양의 신화 속에서 무지개의 끝에는 언제나 보물상자나 요정 같은 인간의 소망을 이뤄주는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무지개의 여신인 이리스가 올림포스의 뜻(신탁)을 인간에게 꿈을 통해 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서양 사람들이 무지개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더욱 확실히 드러납니다.
--------------------------------------
반면에 고대 근동의 관점에서 무지개는 전쟁과 살육의 상징이었습니다. 무지개가 전쟁의 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활)와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무지개는 고대 근동의 사람들에게는 불길하고 공포스러운 개념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재미있게도 아시아권에서도 유사한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중국의 시경, 일본의 만엽집 같은 고대 동아시아의 중요한 시가들에서도 무지개는 불길함, 두려움, 금단의 사랑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시어로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지개는 대체적으로 기이한 일이나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시초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같은 기호인데 동서양의 이해가 전혀 상반된 차이가 난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무지개에 대한 성경의 설명은 더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근동을 포함한 오리엔트적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전쟁을 상징하기 때문) 무지개(히, 케쉐트)가 노아의 홍수 사건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이로 말미암는 평화를 상징하는 기호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의 세계관이 고대 근동의 신화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무척 많습니다. 성경의 매우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전쟁, 천재지변, 죽음, 공포, 왕의 권력과 같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들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원리로 대체하려는 모습들이 바로 이런 신화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작업을 통해 나타납니다.
--------------------------------------
이런 관점에서 무지개를 볼 때 '아 하나님이 저렇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통해 우리에게 좋은 약속을 주셨구나' 하는 식의 이해보다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사람들을 붙들고 있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해방과 평화의 개념으로 바꾸셨다는 이해가 보다 성경적인 관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칼과 창을 녹여 쟁기와 보습으로 바꾸는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과연 오늘의 교회들은 세상의 사람들을 붙들고 있는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혐오와 배척과 같은 [부정적 요소]들을 공존, 배려, 호의, 친절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로 바꾸고 있을까요? 슬프게도 부정적인 것을 하나님 나라의 좋은 것으로 바꾸기는 커녕 세상의 악한 것들을 교회 내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무지개 깃발을 보며 그들을 향해 온갖 혐오스러운 언행들을 쏟아 놓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보며 [무지개(공포)]를 [무지개(평화)]로 바꿔 하늘에 걸어 영원한 약속으로 걸어 두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
첫댓글 인애의 글 감사합니다. 나를 공격하지도 않는 적을 억지로 만들어내어 전쟁을 외치는 자들을 봅니다. 나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반성합니다.
전쟁과 다툼과 미움과 증오를 멈추고 화해하게 하는 교회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들이 올해는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