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쓰는 편지
나는 다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지요?
그중에 하나는 숫자를 기억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것도 알지요?
그렇게 늙지도 않은 나이부터 114 전화번호는 물어도 돌아 서면 잊고,
당신이 두세 가지 심부름을 시키면 하나쯤은 빼 놓고 오는 일이 다반사여서
메모를 해 가는데 메모지도 놓고 가고,
우리 집 비밀 번호도 혼자 문을 열 때면 몸이 기억하여 척척 눌러 지는데
일가친척이 와서 물어보면 머리로 기억해 내야 하니까 까맣게 잊어버려서
문도 못 열 때도 있었지요.
그래서 최대한으로 쉽게쉽게쉽게 기억하고 또 모든 것을 머리보다
몸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익 숙!
익어서 숙성된 몸이 표현하는 당신을 향한 최고의 행위 예술은
어려울 때 손을 잡아 주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당연히 나오는 것 일진데 뇌가 부끄럽다고 시켜서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아 이렇게 내 유일한
‘장끼’이자 ‘까투리’로 편지를 씁니다.ㅋㅎㅎ
방금도 생각했어요.
‘올해가 결혼 몇 주년이더라?’
손가락을 꼽아보려 해도 복잡해지는 숫자 기억과 방법 때문에 이렇게 씁니다.
-1978~2020년 5월5일 결혼기념일-
몸이 기억하는 생일상은 조촐하게 차려도 돈에 개념이 없어
고수익자가 못되어서 미안 합니다.
몸이 기억하는 미역국 된장국은 오래 전부터 끓였어도
고 수익자의 혜택으로 사는 쇠고기 미역국은 지난 경륜이 짧아
몸이 잘 기억하지 못해서 익숙하지 못합니다.
늘 하던 것, 해온 것만 기억해서 조금 덜떨어진 시대사람 같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받아주는 덕분에 유지 되었지만
해마다 반복하는 것이 때론 너무 미안 무안합니다.
이 편지도 식상할까 걱정스럽고.
지금, 코로나19시대를 슬기롭게 넘기고 두 자녀와 며느리를
잘 만들어내며 이겨온 당신수고!
나의 잘못들을 거미처럼 달려들어 둘둘 말아 꽁꽁 묶어 감춰놓고
먹어치운 덕분에 이런 가정과 이런 내가 되었으니
‘거미아내의 사랑’을 몸으로 기억해 두고 싶습니다.
나 혼자 있을 때나 타인과 함께 있을 때라도 언제나 열 수 있는 몸의 기억으로.
“띡 똑 딱 독 똑 띠~”
당신의 행복한 마음을 여는 몸이 기억하는 비밀 번호는‘사랑’입니다.
-우리 집 비밀번호만 기억하는 남자-
거미 아내의 수고에 감사하며 지은 노래를 들려 줄께요^^
은초롱 실을 뽑아 집을 지어서 먹잇감 걸려들면 얼른 달려와
꽁꽁 묶고 둘둘 말아 옮겨 놓고서 거미 아내 내 아내가 집수리 하네
내 지은죄 누가 알까 꽁꽁 묶어서 감춰놓고 숨겨놓고 먹어 치우니
나는 요 쌓인 죄가 하나도 없네
내 지은죄 누가 알까 꽁꽁 묶어서 감춰놓고 숨겨놓고 먹어 치우니
나는 요 사람들이 엄지척이래
누가 알까 먹어치운 내 죄 때문에 거미는 날마다 실을 뽑았소.
날마다~ 실을 뽑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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