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코너에 올리셔서 많이 안보신 듯 해서 이쪽으로 옮겨 보았습니다
좋은 작품 올려주신 권경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돈까스 톤짱*
권경자
‘어, 돈까스 가게가 새로 생겼네. 주인이 바뀌었는가봐.’
한동안 밀면집, 그리고는 돈까스집이었는데 간판이 ‘돈까스 톤짱’으로 바뀌었다. 새 주인이 온 모양이다. 밖에서 보이는 가게 분위기가 색다르다. 간판부터 일본어 ‘히라가나’로 되어있고 유머러스한 돼지그림도 그려져 있다. 그림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밀면과 돈까스, 다 좋아한다. 새로워진 그곳에 호기심이 생겨 일요일에 목욕을 다녀오면서 영업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들렀다. 쉬는 날은 아니었다. 입구에 씌어진 ‘어서 오세요’와 ‘이랐샤이마세’. 그리고 ‘경력 16년 일본인 요리사의 집입니다’란 안내 문구를 읽고서야 순수 일식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근래 일식당이 많이 생겼지만 대개는 한국인이 주인이거나 잠시 일본에서 연수를 하고 개업하는 정도인데 순수 일본인 요리사가 이런 골목에 가게를 열었다니 이채로웠다.
안으로 들어섰다. 열댓 평 남짓한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몄고 장식품도 모두 일본제품이었다. 늦은 오후, 아직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좀 어중간한 시간이라서 그런지 손님이라곤 구석 식탁에서 식사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뿐이었다. 주인남자는 40대쯤 되어 보이고 일본인으로 보였다. 여자도 일본인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부부 같다. 일부러 일본어로 몇 시까지 와야 저녁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요리사와 부인은 동시에 놀라는 눈빛으로 8시 반까지라고 했다. 대로변도 아닌 이런 골목, 더구나 한때 돈가스집을 하다가 망한 자리인데 장사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저녁 시간, 예정보다 일찍 남편과 식당으로 갔다. 놀랍게도 한가했던 홀이 꽉 찼고 부인이 혼자서 분주하게 서빙하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는 한국인이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했다. 나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카마타 소재 오오모리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자기는 카마타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살았고 카마타에 자주 갔다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녀는 조리실에다 대고 ‘돈까스 후타쯔 오네가이시마~스’(돈까스 두 개 부탁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잠시 일본에 여행을 온 착각에 빠졌다.
오래간만에 옛 시절이 생각났다. 10분쯤 기다려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기둥 벽에 일본 조리사 면허증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본적: 가고시마현, 발행처: 가나가와현 지사>, 요코하마는 가나가와현에 있으니 거기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는가 보다. 벽에 붙은 메뉴를 유심히 살폈다. 가게 내부가 한글 메뉴판만 빼고는 완전 일본스타일이다. 경영전략일까? 몸에 배인 습관대로 차린 것일까? 음식 종류와 가격, 그 밑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돈까스 톤짱의 모~든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합니다. 육질 좋은 국내산 생고기만 사용하여 정성 듬~뿍 담아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집의 노하우인 게다. 개업한 지 두 달도 안 되었다는데 시작부터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점포도 작고 목이 좋지 않아도 주어진 여건에서 성실히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우리 문화 속에서 ‘정성껏, 제대로’ 해보겠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30년을 살았기에 알게 모르게 일본문화에 젖어 있다. 요리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느긋이 기다렸다. 손님들이 재촉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런 분이 두 명밖에 없었다고 태연하게 웃었다. 미리 전화하고 오는 분도 있고 다들 잘 기다려준다고 했다.
놀라운 점은 식당의 분위기였다. 손님이 모두 한국 사람들 같은데 말소리가 조용조용하고 젓가락질 소리조차 안 들린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왁자지껄한 한국 식당의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혼자 웃었다. 이 식당은 완전 일본식의 문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이 도시의 뒷골목에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이 성숙되었다는 증거일까.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이 너그러워진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돈가스는 일본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흔한 된장국물(미소시루)이 아니고 맑은 국물(오수이모노)이어서 더 반가웠다. 보통 일식집이나 돈가스집에서는 거의 된장국물이 나오지만 오수이모노는 만들기가 어렵다. 다랑어(가쯔오부시)로 국물맛을 우려내고 어묵이나 향이 좋은 참나물 잎, 팽이버섯 등을 고명으로 얹었다. 오래 잊고 살아온 일본 음식 맛에 취했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는 동안 그간의 한국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본에서 돌아와 산부인과전공의 4년차로 B대학 의대에 편입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교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권 선생 정서는 확실히 일본 정서다. 그것이 갖고 있는 장점을 한국 사람에게 심어주는 것도 훌륭한 일이야.”
그때 나는 용기를 얻었다. 그 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정서 차이로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심지어 무시를 당해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죽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근래에 그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은 여전히 말씀하셨다.
“권 선생, 고국에 와서 한국 분들에게 다방면에서 많은 걸 심어줬을 거야.”
정말 내 정서나 사고방식 혹은 행동이 다른 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긴 미쳤을까? 개원의로 살아오기 27년, 처음에는 난관도 겪었지만 이제는 환자분들이 내가 운영하는 방식대로 따라주면서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내 설명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신다. 고맙고, 즐겁고, 행복하며 또한 감사하다. ‘돈까스 톤짱’ 집이 내게 준 잔잔한 감동은 작은 공간 속에 일본문화를 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내가 노력해온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골목길 작은 일식집이 오래오래 정성스런 맛을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가까운 이웃으로 발전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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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톤짱: 상호명. 톤짱은 돼지의 애칭
첫댓글 두 이웃나라가 유럽국가와 달라, 그 동안 30년간 각각 살아오신 역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문학적 감성으로 산부인과 개원의로 성공하신 권원장님의 일상이 엿보인 작품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찬경이사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잔잔하고 편안해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일본의 문화에서
서로 배려하고
참아주는 게 좋습니다
고맙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부분에서
저도 늘 감사하며 살리라
다짐을 하게 되네요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그릇 이
잠시 떠올랐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한국에 돌아 오셨을때 회식자리에서
격려 해주신 교수님의 역할이 크시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집니다.
지금도 아닌 몇십년전에 일본을 긍정적인 시야로 보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