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대구 광덕사 스님이 오셔서 자기 절에서도 큰스님을 모셔서 법회를 하시겠다고 하셨고, 대구 미타사 법장 스님도 특별히 참석하였다. 법장 스님은 이미 1997년부터 관정 큰스님에게 귀의하고 정토선을 5년이나 보급한 상수제자로, 될 수 있으면 자주 큰스님을 뵙기 위해 우리 법회에도 참석하신 것이다. 우리는 큰스님 법회가 있은 뒤 따로 법장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가졌다. 관정 큰스님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가 없었는데 법장 스님에게 의문 나는 점을 많이 물어볼 수 있어 좋았다.
막연한 호기심과 행사를 하겠다는 바람으로 초청을 하였으나 짧은 기간에 반복해서 법회를 듣는 동안 나에게는 앞으로 수행과 포교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관정 큰스님에게 우담바라 꽃을 보여드렸다. 꽃을 직접 보시고는 ’이것은 우담바라다‘라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우담바라 꽃 피운 1주년 기념이라는 휘호까지 내려주셨다.
우담바라 꽃이 핀 1주년 기념
염불 . 억불하면 반드시 성불한다.
백운사 주지 마나
떠돌이 중 석관정 드림
당시 관정 큰스님은 환경이 그렇게 좋지 않은 나의 방에서 사흘을 보내셨다. 지금도 내 방에는 큰스님 휘호가 늘 걸려 있어 나의 수행지침이 되고 있다. 당시로서는 우담바라를 인정해주신 것이 그렇게 고마웠지만 ’부처님을 새기고 부처님을 놓치지 않으면 반드시 성불한다(念佛億佛 必定成佛)‘는 두 마디 한 구절은 나의 수행과 포교의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신 것이라는 것이 날이 갈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그 뒤로 나는 아미타불 전도사가 되었다.
3) 색다른 극락세계 염불법
그때쯤 「화두 놓고 염불하세」가 한국 불교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인광 대사님의 염불에 대한 법문을 읽어볼수록 정곡을 찌르는 정법이다. 그렇다 앞으로 한국 불교는 선방 가지고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장좌불아하고 하루 한 끼 먹고 깨달음을 얻겠는가? 옛날 영웅호걸들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안 된다. 옛날과는 차원이 다른 시대가 왔으니 이에 걸 맞는 불교 수행법이 도입 되어야 한다. 이 길 만이 불교가 살아남는 길이다.
앞으로 한국 불교의 활로는 염불에서 찾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염불의 대중화는 이미 신라 원효 스님 때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것이다. 특히 일반 사람들에게 선이란 너무 거리가 먼 수행법이 아닌가? 이웃나라를 보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이나 대만이나 어느 나라를 보아도 정토신앙이 다 자리 잡고 있는데 한국은 선만 고집하여 불교는 추상적인 말에 빠져 생활불교에서 멀어지고 있다.
염불이란 입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정토신앙은 타력신앙과 자력신앙이 다 합쳐져 있다. 자력이 안 되는 중생은 타력으로 극락에 가고, 나머지는 자력으로 무념으로 가면된다. 선이란 뛰어난 지도자가 없으면 지도도 어렵고 증명도 어렵지만 염불이란 이런 위험이 없고, 오히려 염불을 하면 업이 없어지고 생활이 편안해지는 안심법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아미타불을 널리 신봉하도록 펴는 일이 중요하다. 기독교에서 ”나는 빛이요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아미타불의 이름인 그지없는 빛(無量光), 가없는 목숨(無量壽)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앉으나 서나 염불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염불할 것인가?
빨리 할 것인가? 느리게 할 것인가?
한 번씩 할 것인가? 두 번씩 할 것인가? 4번씩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정토선 염불이다. 이 염불법은 극락에서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대단한 것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꼭 맞는 염불법을 주신 것이다. 우선 이 염불을 하면 편해지고, 하다보면 이근원통으로 가는 길이니 염불하여 극락에 갈 수 있고, 더 열심히 하여 자성염불하고 일심과 무심에 이르면 깨달음을 얻는 길이기도 한 극락세계의 염불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하고 보배같은 염불이지만 누구나 다 같이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남편, 아들 함께 서로 쳐다보며 30분만 해보면 그것이 너무 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운 학문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학문보다 더 논리적이다. 이런 보배같은 수행법을 관정 큰스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았으면 누가 해주었겠는가? 바로 이점 때문에 지금도 나는 관정 큰스님을 모시고 시흘간 법회를 했던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관정 큰스님이 오셨을 때 직접 하신 정토선 염불을 녹음하여 놓았다가 실제로 신도들과 함께 염불을 해 보았다. 대원정사에 다니는 거사님들을 비롯하여 정토염불을 하는 신도들이 모여서 시작했는데 1년쯤 지나니 남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 없는 의아심 때문이었다.
”색다르다, 처음에 모두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특히 지금까지 염불을 해온 신도들은 이 ’색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염불만 고집하고, 심지어는 ’사이비가 아닌가?‘라고 의심까지 하니 일심염불이 될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토선도 어느 정도 확고한 기초교육이 필요하고, 깊은 믿음을 가지고 시작해야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바로 이러한 체계적인 수양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거제 오송암과 대구 광덕사에서 추진했던 것인데 법장 스님과 나도 함께 참석하였다. 좋은 조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정토선을 펴보자는 큰 포부를 가지고 진행했지만 조직 문제에서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되어 성공하지 못했다. 너무 조직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고 순순하게 모여 형제처럼 공부 했더라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 나는 학위과정 공부에 집중하느라 10년 동안 정토선 보급을 떠나 있었다. 요즈음에야 마음먹은 찰라 이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큰스님께서는 이미 원적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관세음보살이 보내신 스승이 있었는데 10년간 나갔다 오니 스승께서 떠나신 것이다. 이제는 더 미룰 시간이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이 멀리까지 오셔 전해주신 정토선 염불을 통해 극락을 갈 수 있고, 또 그 좋은 법을 대중에게 펴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관정 큰스님이 원적하셨지만 관세음보살처럼 늘 함께 하시며 정토선 수행하는 나를 보고 계심을 믿는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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