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영어로 도배된 SRF 레슨과 홀로 외로이
밤낮으로 씨름하면서 신과 구루께 보채며
강한 기도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 한국에 먼저 간 SRF 선배가 있으면 짱!
하고 좀 나타나서 이 둔한 머리 좀 깨게 해주라고.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신께서 들어 주시겠지?
그렇게 기도가 약 두 달이 지나서 어느 날
‘성북구 교차로 신문’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광고란에 누군가 ‘자아실현동지회(SRF)’라는
광고를 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즉시 광고인을 만났는데 명상을 하는 분은
아니고 UFO 연구가 였다. 그런데 그분이 SRF
선배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그 광고인을 통해서 귀중한
선배분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께 감사함을.
다음의 이야기는 신께서 주신 그 전화번호로
만나게 된 SRF 선배분과의 이야기 이다.
-------------------------------
아파트 문을 밀고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그분이 일어나서 반갑게 나를 맞았다.
단아한 중키에 귀밑까지 내려오는 약간
긴듯한 머리, 미남형, 지적인 느낌, 중년을 더
넘어선 나이 같았다.
내게 악수를 청했던 것 같다. 악수를 하려
가까이 접근하여 손을 잡았다.
그런데...
아니, 그분을 뵙는 순간부터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 눈을 마주보는 순간부터 나의 심장이 갑자기
몇 배로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기쁨으로 전율하기 시작했다.
손은 잡았는데 급격히 진동하는 심장 때문에
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 자주 가슴을 쓸어 주어야 했다.
‘이럴 수 가! 엄청난 포스의 자기력이다!’
그분은 모든 레슨과 크리야 요가를
4단계까지 다 받았다고 했다. 크리야를
아직 받지 못했던 나에겐 전설 같이 보였다.
카톨릭 신자였었는데 새벽기도를 5년
이상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저하게 했었다고 한다.
그런 축복으로 예수님과 구루지께서
제자가 되는 축복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50살에 회원으로 SRF 등록했었는데
지금 60살 이라고 했다
(10년간 얼마나 철저히 수행을 하셨는지
지금도 나는 그분보다 젊지만 그분을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여러 대담 후, 내게 가부좌를 하는 것을 보여 줬다.
60의 나이에 가부좌를 왼발 오른발 자유자재로 하였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5분도 못 버텼다네.
이를 악물고 계속했지 그러자 급기야
허벅지 전체가 퉁퉁 부어오르고,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 알통이 주먹만 하게
생겨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되었던 적도 있었다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고 구루지께 기도하고 하니
서서히 풀리면서 이제는 명상동안 내내 가부좌를 한다네.”
아... 20대의 나는 정말 감동 먹었다.
나는 가부좌를 하면 고작 10초를 못 넘기고 아파서
자지러질 때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50이 넘은 나이에 굳어있는 발을
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인내였겠는가.
함께 요고다도 하고, 여러 가지 귀중한
말씀을 나누는 중에도 부풀어 오른 심장의
진동은 계속 되었다.
잠깐 명상을 같이 하기위해 거실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두개의 의자에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석양을 낀 한강은 너무 아름답게 흘렀다.
부러웠다.
명상자세로 한강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눈을 감자 한강의 아름다움도 사라졌다.
고요한 울림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 몸이 갑자기 그분 쪽으로 기울면서
의자를 벗어나 딸려 가는 것이 아닌가!
‘어...어...’하는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러나 내 몸은 그대로 의자에
곧게 앉아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자
또 몸이 그분에게로 딸려가는 것이었다.
그 딸려가는 느낌은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너무 강력 했다.
‘와...엄청난 자력이다! 구루께서 늘 말씀하시던
영적인 자력이구나! 와. 대단하시다.’
내 몸을 가만히 두자 끌려가는 느낌
속에서도 편안함이 찾아왔다.
명상이 깨어나면서 고요히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전의 대화 중에 도를 딱기위해
산에 가야겠다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너는 참 의지가 강 하구나.
그런데 우리 레슨을 다 받고, 크리야도
다 받고 산에 가거라.
그래야 올바른 진보가 이루어 질 것 같구나.”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 했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산행을 택했었다.
그래서 내면의 나 자신이라는 적들과
싸우기보다는 척박한 외부의 환경과 싸우느라
시간과 노력을 많이 소모했다.
텐트 싸들고 다니며 오지를 개척하고
토굴만 짓다보니 어느새 20대 젊은이가 중년이
되어 버렸으니 언제 나 자신과는 싸워야 하는지...
참. 어리석은 중생이여!)
---------------------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제나 가슴 속에 푯대로서 존경하는 그분은
아직 잘 계실까?
아니면 육신의 옷을 갈아입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그분의 목소리가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항상 내가 기억해야함을 일깨우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이번 생이 마지막 생이 되겠지?
그것이 이생의 나의 목표다.
다음 생에는 천계에서 나고 싶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의 영적 자기력을
내가 쉽게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몸의 파장과 정신의 성향이
비슷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분이 의식수준이 높았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분은 카톨릭 신자였으며 나 또한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과거
생부터 이어왔던 동일한 그런 성향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인도에서, 불교 승원에서
수승한 여러 분들과 가까이서 명상도 많이 해봤지만
그런 강력한 자력은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인도의 스와미들 중에 고수라고
알려진 몇분들 바로 옆에서
명상을 했을 때는 몸의 모든 세포를
사랑의 파장으로 채우는 더 정묘한 단계의
사랑의 파장은 느낄 수 있었다.
=========================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隨乎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績)
수작후인정(受作後人程)
“(폭풍 치는) 눈 오는 들판을 걸을 지라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이 흔적은
뒤에 오는 이에게는 길이 되느니라.” - 서산대사.
(그분을 생각하면 항상 이 선시가 생각이 났다....언제나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 그게 영적자력이군요.저도 완전 끌려 들어가려고 한 적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