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력이 고졸이다. 고졸
학력도 내게는 과분한 측면이 있다. 일정 부분 행운이 결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면(面)이었던 우리 고장에 고등학교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고등학교 교복도 입어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졸 학력을 가진 누님에 비해 바로 아래 동생인 나는 고졸 학력을 갖게 되었으니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고졸 학력에는 여러가지 중층의 사연들이 결부되어 있다. 60년대 '가난'이 보편적이었던 시대에 청소년 시기를
지낸 사람들에게는 두루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우선은 눈물겨웠던 가난이 결부된다.
(물론 가난이 대졸 학력을 갖지 못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가난 속에서도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 친구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학(苦學)으로
대학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는다.)
다음으로 내 고졸 학력에는, 나는 비록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동생들은 대학에
가기를 바란 비원(悲願) 같은 것도 어려있다. 여러 동생들 중 일부는 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거기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또 내 고졸 학력에는, 나는 대학을 가지 못한 대신 내 자식들은 꼭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어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비록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들 못지 않게, 어느
모로는 그 이상으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잘하며 세상을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자는 의지다. 참된 국민, 의로운 사람이고자 하는 의지가 내 고졸
학력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응축되어 있다.
월남까지 갔다오고 군대를 마친 이후 늦게라도 대학 진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었고, 동생들은 자라나고 있었다. 끝내 대학 공부를 포기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고졸 학력만으로도 내 나름껏 멋진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런저런 사연으로 대학 공부를 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등불 같은 사람이 되자!'
비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등불 같은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 대학 공부를 한 사람들과 격심한 경쟁을 치른 끝에 '하늘의 별 따기'라고 일컫는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오늘까지 한국
문단에서 소설가로 한 몫을 하고 있다.
비록 정식 교수는 아니지만, 고졸 학력을 가지고도 대학 강단에 서서 교수님 소리를 들으며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대졸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인 문학단체의 수장 노릇도 오래 했고, 지역에서 사회공동선을 키워 내는 이런저런
일들에 앞장서거나 구심점 노릇을 하거나 버팀목 같은 구실을 했다.
내 주변에는 대졸 학력 소지자들이 많다. 나는 그들에게서 선생님
소리를 듣고 선배 대접을 받는다. 그들과 어울리고 무슨 일을 함께 함에 있어서 내 고졸 학력이 장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대학을 나왔더라면 정식 교수도 되고 생활이 훨씬 나으리라는 생각이야 종종 하지만, 내 고졸 학력에 대해 열등감이나 비애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고졸 학력에 대한 일종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며 살아왔다. 내가 가지지 못한 상아탑에 대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늘 존중의 눈으로 보는 마음 한편으로,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품성과 인격과 지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자존심을 잘 유지하고 있다.
<2>
국회의원이며 한나라당 대변인인 전여옥이라는
여성이 최근 고졸 학력을 지닌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하여 "다음 대통령은 대학 다닌 경험 있는 분이 적절"하다는 말을 했다. 그 발언이 큰 논란을
빚자 전 대변인은 한술 더 떠 "발언의 본질은 학력 지상주의가 아니라 학력 콤플렉스이며, '고졸 대통령'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학력 콤플렉스에
사로잡혔음의 반증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일찍부터 전여옥씨의 경망함을 잘 알고 있었다. 전여옥씨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 대변인이 일정 수준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거나 남다른 자질을 지니고 일정 기간의 정치 수업을 쌓은 끝에 국회의원이
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었다. 상식 이하의 험한 소리로 걸핏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고 능멸하는 궤변성 글을 조선일보 지면과 웹상에 많이
쓴 공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한나라당의 대변인까지 하는 현상에서 우리나라 정치판의 천박성을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여옥씨는 엘리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엘리트주의를 인정한 적도 있다. 전여옥씨의 방만하고 허다한 독설들에서
오만함의 기류를 읽어 내고 그 오만함을 엘리트 의식과 연결짓는 시각들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전여옥씨의 엘리트 의식은 진정한
엘리트 의식이 아니라고 본다. 전여옥씨의 럭비공 같은 분별 없는 독설들 속에 어려 있는 오만함은 가짜 엘리트 의식, 일종의 콤플렉스에서 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엘리트는 사회 책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개인 우월감에 젖어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우월감 자체가 어떤
콤플렉스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전 대변인은 자신이 엘리트라는 매우 독선적인 우월감에 빠져 말을 함부로 하는데, 그것은 그대로 인격의 부족함을
노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엘리트란 한마디로 사회 책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엘리트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엘리트 부류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갖가지 사회 덕목들을 자신의
삶으로 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엘리트의 기본적인 자세다.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으되 그것이 어떤
콤플렉스의 작용이면서 동시에 가짜일 수밖에 없는 전여옥씨의 폐쇄적 엘리트주의는 그간의 수많은 독설과 망발들을 거쳐 이번에는 '차기 대통령
대졸자론'으로 더욱 극명하게 노정되었다.
전 대변인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대졸 학력을 가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능멸하며 큰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네티즌들의 엄청난 분노를 가리켜 '학력 콤플렉스'라는 말로
또 한번 럭비공의 습성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전여옥씨의 말은 상당히 기상천외한 것이어서 일정 부분 희극적인 요소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전여옥씨의 일방적이고도 비좁은 시야를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전 대변인은 이번의 논란에 가세한 모든
네티즌들이 고졸 학력자들인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들이 한결같이 학력 콤플렉스에 빠져서 학력 콤플렉스를 표현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전여옥씨의 '학력 콤플렉스 운운' 발언은 그렇게 밖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전 대변인이 "우리 국민은 오늘날
60%가 대졸 학력자"라고 한 발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40%밖에 안 되는 대졸 이하 학력자들이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나라당의
홈페이지 접속이 다운될 정도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전 대변인은 자기 말의 기본적인 모순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되는
대로 말을 내뱉고 있다. 너무도 유치하고 경박하다. 사리분별력이 없는 전여옥씨에게 분노를 넘어서 참으로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대졸 학력과 관련하여 고졸 학력밖에 가지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우월감을 갖는
것이야 탓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우월감을 그런 식으로 천박하게 드러내는 것은 절대로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 더구나 그런 천박한
우월감을 엘리트 의식인 양 착각하는 것은 너무도 큰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전 대변인이 진정으로 엘리트주의를 추구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우리 인간 삶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진정한
엘리트는 학력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학력보다 능력과 인격과 인간적인 품성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그런 폐쇄적 사고방식으로는 우리의 바른 미래를 열어 갈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전여옥씨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
첫댓글 크게 공감하는 글이라 토론방에서 옮겨왔구요 흐르는 노래는 "이세상 어딘가에"란 곡을 붙여 보았습니다
어찌 이지경까지 되었는지 같은 여성으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전여옥씨가 부디 뒤돌아보는 시간 갖기를 바랍니다.
이세상 어디인가에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음악이란게 이상하지요 듣는 순간은 과거로 끌고가는 괴력을 지녔지요 구룡포 경대 수련관에서 기타치며 밤을 새우던 일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