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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원주택의아름다움 원문보기 글쓴이: 울타리
묵은 동네 돌담에 문화재 등록의 햇살을 비추다
- 옛 '돌담길' 10개소 문화재로 등록 예고
고가(古家), 감나무,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의 명소로 되살아나게 된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 兪弘濬)에서는 2006년 4월 18일자로 영 호남 지역 10개 마을의 '돌담길'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였다.
등록예고된 10개 마을의 '돌담'은 장인이 아닌 마을 주민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 세대를 이어 만들어지고 또 덧붙혀져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비록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손쉬운 재료로 아무렇게나 쌓은 듯 하지만 자연미가 매우 빼어나 전통미를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고향의 푸근함과 아늑함까지 선사하고 있다.
기능면에서도 담장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을 나누는 듯 하면서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는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옛 사람들의 정서가 담긴 예스러운 '돌담길'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시급히 보존할 필요성이 있어 문화재로 등록예고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등록 예고된 마을들은 경남 3, 경북 2, 전남 2, 전북 2, 대구 1개 등 전국 10개 마을이다.
이들 마을의 담장은 대부분 자연석을 사용한 서민적인 돌담이나 토석담으로, 짧게는 700m에서 길게는 10㎞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도 다양하다.
또한 마을의 형성과 관련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과 고목들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 내 또는 인근에 지정문화재들도 산재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등록예고된 마을들의 돌담 중 경남 『고성 학동마을』의 담장은 마을 뒤의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층으로 쌓은 돌담으로 매우 독특하며,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이미지를 잘 연출하고 있다.
또한 경북의 군위 『부계 한밤마을』은 곡선형의 매우 예스러운 돌담길이 잘 남아 있어 시간을 거슬러 걸어 봄 직하다.
더불어 경북 『성주 한개마을』의 경우 경사지에 한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이들과 어우러진 토석담은 낮게 혹은 높게 쌓아 올려져 시각적으로 연속 또는 차단시키는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전남『강진 병영마을』의 경우 2m 정도로 높은 담장과 직선형의 마을 안길은 계획된 마을임을 짐작케 한다.
이는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었던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로부터 습득한 것으로 전해오는 담쌓기 방식인,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이곳에서는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은 다른 지역과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의 각 마을들 또한 오랜 역사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들이 잘 남아 있으며 이들과 어우러진 '돌담길'은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크다.
지금까지의 문화재등록은 개별 건축물 위주의 점단위에 그친데 반해 이번 돌담길의 문화재등록은 등록범위를 면단위로 확장하는 의미와 함께 주민과 문화재청이 뜻을 같이 하여 문화재를 '활용하면서 보존하고 보존하면서 활용하는' 획기적인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향후계획》
앞으로 문화재청은 도서지역을 비롯하여 중부권 등 각 지역의 '돌담길' 가운데 보존이 잘 된 곳을 조사하여 등록을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벽돌이나 블록 등으로 변형된 담은 돌담으로 복원하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 안길은 마사토 등 마을 경관에 적합한 재료로 조성한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주변 관광자원들과 연계,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의 이번 '돌담길' 문화재 추진으로 삶의 패턴이 현대화되면서 어쩌면 우리 대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돌담길'이 이젠 우리 아들, 딸에게도 놀이와 추억의 공간으로 보존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 등록예고 '돌담길'
(1) 고성 학동(鶴洞) 마을
1. 소 재 지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2. 마을연혁
ㅇ 학동마을은 하일면 소재지로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고려 현종 9년이다. 학동마을이 속한 하일운면(河一運面)에는 고연(古延), 학동(鶴洞), 도동(道洞) 등의 명칭이 등장한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고연, 학동, 임포, 도동을 병합하면서 학동과 임포의 이름을 따서 학림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ㅇ 한편 구전(口傳)에 의하면, 이 마을의 입향조인 전주최씨(全州 崔氏)가 하늘에서 학(鶴)이 내려와 마을에 앉아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어 날이 밝자 그 곳을 찾아 가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이 곳이 명당이라고 생각하여 '학동'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ㅇ 학동마을은 서기 1670년경에 전주최씨의 선조가 맨 먼저 입촌(入村)하여 지금까지 약 320여 년간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였다.
3. 마을현황
ㅇ 마을의 지세는 마을 뒤 수태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산이 있으며, 마을 앞은 좌이산이 솟아 있어 이른바 "좌청룡우백호"의 지세에 학이 양 날개로 마을을 품에 안은 듯한 현상을 하고 있다. 마을 옆으로 학림천이 흐르고 있다.
ㅇ 현재 마을 주민은 50가구(108명)이 살고 있으나, 약 50년 전에는 140여명이 거주한 적도 있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성씨는 전주 최씨(崔氏), 김해 김씨(金氏), 청송 심씨(沈氏), 진양 강씨(姜氏), 화산 천씨(千氏), 의성 김씨(金氏), 밀양 박씨(朴氏), 전주 이씨(李氏)등 16여 성씨가 살고 있다.
ㅇ 이 마을은 본래 기와집이 많았던 마을인데, 초가지붕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다.
4. 담장특징
ㅇ 수태산 줄기에서 구한 퇴적암 판석(납작돌, 두께 2∼5cm)과 퇴적암 풍화토양인 황토를 결합하여 담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다.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같은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전체 경관으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5. 문화재 현황(2건)
ㅇ 고성학림최영덕고가 : 문화재자료 제178호
ㅇ 육영재 : 문화재자료 제208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연화산도립공원(옥천사), 상족암군립공원(공룡발자국) 등
(2) 거창 황산마을
1. 소 재 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2. 마을연혁
ㅇ 황산마을은 1501년(연산군 7년)에 요수(樂水) 신권(愼權, 생몰년 미상)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후, 거창(居昌) 신씨(愼氏)의 집성촌(集姓村)으로 번창해 왔다. 특히 18세기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愼守 )가 입향(入鄕)한 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수령이 600년에 달하고 나무 높이가 15m이상이며 그 가지둘레가 50여m가 넘는 지정 보호수가 있어 인상적이다.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安亭座)나무라고 부른다.
3. 마을현황
ㅇ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여, 마을 동측에는 호음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남동향으로 건축되어 있다. 마을 북쪽에 문화재로 지정된 거창신씨고가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어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마을이었다.
ㅇ 현재 마을에는 59세대(136명)가 거주하고 있는 부농촌(富農村)인데, 이전에는 호음천을 사이에 두고 동촌(東村)에는 소작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ㅇ 거창신씨고가(일명 「猿鶴古家」, 경남민속자료 제17호)는 거창 신씨(居昌愼氏) 집성촌인 황산 마을 북쪽에 위치한다. 이 집은 1927년에 건립한 부농주택으로 서민적인 전통한옥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당시 이 지역의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ㅇ 이밖에 마을에서 가까운 명승지 수승대에 구연서원 관수루(경남유형문화재 제422호)와 요수정(경남유형문화재 제423호)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시대 주택양식(지방 반가)을 보여 준다. 마을의 공간구조는 마을 동측의 진입로와 골목을 중심으로 몇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반적으로 전통마을의 공간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의 동측에는 호음천(虎音川)이 흐르고 있으며, 이 천을 경계로 서쪽 지역의 큰땀과 동쪽의 동촌(東村)으로 구분하고 있다.
ㅇ 마을의 주택은 일부 주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량되어 지붕에 시멘트기와나 슬레이트를 덮었으며, 블록조 건물도 눈에 띈다. 토담에 연해 철제대문을 시설한 집도 있다. 대부분의 주택들은 전형적인 한옥의 형태의 남부지방 농가 외관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일부 주택들은 최근에 보수되었거나 보수 중이다.
ㅇ 황산마을은 전체적으로 전통마을의 공간구조를 잘 지니고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거창신씨고가 및 시한당을 중심으로 특징적인 공간구성과 경관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재 황산마을은 거창의 대표적 민속마을로 특히 큰땀의 고가는 민박가옥으로 지정되어 있다.
4. 담장특징
ㅇ 마을에는 전통 토담길이 이어져 있으며, 토담 안쪽의 한옥들은 서로 어우러져 마을 곳곳에서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마을 내 토담은 전반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시 마을 안길을 확장하면서 기존의 담들을 헐고 물려 쌓은 곳이 여러 곳에 있었다. 이때 새로 쌓은 토담은 이전 토담의 형식과 구조에 따라 축조했으나 세부적인 기법 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이전의 토담은 돌을 반듯하게 쌓았으나 새로 쌓은 토담은 돌의 한쪽을 기울인 엇쌓기를 하였으며, 담 위에도 시멘트기와 등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구(新舊) 토담의 재료와 형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 경관상 부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
ㅇ 대부분 담장의 특징 높이 1.8m내외, 폭(두께) 30cm정도이며, 대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황토)을 사춤하지 않고 담 하부의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근년에 쌓은 담은 하부에도 진흙을 사춤하는 찰쌓기 수법으로 쌓았다. 담 위에는 암키와를 2-3장 겹쳐 쌓은 다음 그 위에 숫키와를 덮었으며, 암키와 안쪽에는 삼각형 와편(瓦片)을 착고로 사용했다. 담의 마루 등은 착고 위에 암키와 3장을 엎어 놓고 맨 위에 숫키와를 엎어 마무리했다. 근년에 수리한 담일수록 기와의 겹침 수를 줄이고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다.
5. 문화재 현황(3건)
ㅇ 거창구연서원관수루 : 시도유형문화재 제422호
ㅇ 거창요수정 : 시도유형문화재 제423호
ㅇ 거창대정리신씨고가 : 시도민속자료 제17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덕유산국립공원, 거열산성군립공원, 황석산성 등
(3) 산청 단계마을
1. 소 재 지 :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2. 마을연혁
ㅇ 예로부터 단계가 있는 신등면을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꼽았으며, 그 '산청쌀'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세도가와 부농(富農)이 많으며 규모가 큰 가옥들을 건립되었다. 단계마을은 1983년 '한옥형 소도읍가꾸기 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전체경관도 한옥에 맞게 정비하였다. 이에 따라 단계초등학교의 교문은 삼문(三門)형식의 대문이며 동사무소 정문도 한옥으로 되어 있다.
3. 마을현황
ㅇ 과거에 물이 밀려와 수해를 자주 입었는데, 그 원인을 마을의 형세가 배(舟) 모양이나 돛대와 삿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인근의 고목나무에 돛대와 삿대를 걸쳐두니 폐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 곳은 부농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규모가 큰 한옥들이 많다. 대표되는 가옥으로는 단계 박씨고가(1630년 건립)가 있고,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인 권씨고가는 마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ㅇ 마을에는 281세대(694명)가 살고 있으며, 마을 내 전통가옥들은 조선후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의 농촌지역의 가옥으로 규모가 매우 크고 권위적이다.
4. 담장특징
ㅇ 단계마을의 토담은 높이 2m, 폭 40cm 정도로 높이가 높은 편이다. 담 하부에서 위로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큰 돌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 위에는 하부에 사용한 돌보다 작은 돌을 사용하여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으며, 담 안팎으로는 돌 표면이 그대로 노출되도록 했다. 토담 상부에는 판석을 담의 길이 방향으로 걸치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렸다. 즉 담 상부에 사용하는 기와가 아래로 처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판석을 담 안팎으로 3치 정도 내밀어 쌓고 그 위에 한식기와를 덮은 것이다.
5. 문화재 현황(4건)
ㅇ 단계리석조여래좌상 :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ㅇ 단계선생일기 : 시도유형문화재 제207호
ㅇ 동계선생문집책판 : 시도유형문화재 제233호
ㅇ 단계박씨고가 : 시도민속자료 제4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지리산국립공원, 내원사, 덕천서원 등
(4) 군위 부계 한밤마을
1. 소 재 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2. 마을연혁
ㅇ 이 마을은 처음에 신천강씨가 살았는데, 신라시대(950년경)에 홍란이 이 마을에 이주하여 부계홍씨 일족이 번창하였으며, 고려 때까지 마을 이름을 일야 혹은 대야로 불리었으나, 고려 멸망시기에 홍로에 의하여 대율로 개칭되었으며, 속명으로 한밤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3. 마을 현황
ㅇ 이 마을은 팔공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사방으로 경치가 아주 수려한 편이지만 마을 전체의 집들이 북향으로 배치되었고, 각 집으로 연결되는 마을 안길이 잘 남아 있다. 다만 각 집의 대문에는 몇 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으로 되어 있어서 마을 안길로는 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가운데 대율리 대청(경북유형문화재 제262호)을 중심으로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위치에 국보 제109호인 제2석굴암 불상이 있다. 그 밖에도 상매댁 등 지정문화재 가옥이 있어 마을 가옥 상당수가 전통한옥으로 되어 있으며 과거 초가지붕이었던 집들은 1970년대에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다.
4. 담장특징
ㅇ 마을담장은 대부분 돌담으로 경오(1930)년 대홍수로 인하여 떠내려 온 돌들을 이용하여 담장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돌담의 축조는 전문적 기술에 의해 축조된 것이 아니라 막돌허튼층쌓기로 하부가 넓고 상부가 다소 좁은 형태이며 아랫부분의 넓은 곳은 1m가 넘는 경우도 있다. 돌담의 곡선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부분적으로 새마을 사업 등에 의해 개수된 곳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5. 문화재 현황(3건)
ㅇ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 시도유형문화재 제104호
ㅇ 군위대율리대청 : 시도유형문화재 제262호
ㅇ 군위상매댁 : 문화재자료 제357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팔공산도립공원, 군위삼존불상, 동화사 등
(5) 성주 한개마을
1. 소 재 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 마을연혁
ㅇ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대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入鄕)하여 개척하였으며, 현재는 이정현(李廷賢)의 후손들이 집성하여 생활하고 있는 성산이씨 집성마을이다.
ㅇ 이 마을은 한때 120여 호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66호가 남아있는데, 17세기부터 한 마을에서 대과 9인, 소과 24인 등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 등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교리댁 등 많은 고택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3. 마을 현황
ㅇ 한개마을은 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영취산(해발 332m)을 주산으로 하여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청룡등과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백호 등의 중앙에 형성된 낮은 구릉에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는 경사지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었고 마을의 서남쪽으로 백천과 이천이 함수하여 동으로 흐르고 그 남쪽에 안산이 배치되고 있어서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인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ㅇ 한개마을의 기옥은 대부분 전통한옥들이며, 원래 초가지붕이던 것을 슬레이트로 개량한 집이 일부 있다.
4. 담장특징
ㅇ 마을의 담장은 대부분 토석담장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극히 부분적으로 돌담장이 있다. 부분적으로 담장이 개보수된 것들도 있으나 담장의 형태, 규모 및 골목길 동선은 남부 지역의 특색에 맞게 전통가옥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보존되어 있다.
ㅇ 마을의 가옥이 대체적으로 경사가 있는 곳에 지어져 있는 관계로 산지와 접한 외곽담과 주택동 쪽의 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되어 있다. 내곽담은 주거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거나 연속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별히 외부공간으로 확대된 부엌의 기능을 수용하는 역할을 하는 장독대 담도 일부 있다.
5. 문화재 현황(9건)
ㅇ 대산동교리댁 : 시도민속자료 제43호
ㅇ 대산동북비고택 : 시도민속자료 제44호
ㅇ 대산동한주종택 : 시도민속자료 제45호
ㅇ 대산동월곡댁 : 시도민속자료 제46호
ㅇ 성주대산리진사댁 : 시도민속자료 제124호
ㅇ 성주대산리도동댁 : 시도민속자료 제132호
ㅇ 대산리하회댁 : 문화재자료 제326호
ㅇ 극와고택 : 문화재자료 제354호
ㅇ 성주첨경재 : 문화재자료 제461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성주세종대왕자태실, 독용산성, 회연서원 등
(6) 무주 지전마을
1. 소 재 지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
2. 마을연혁
ㅇ 이 마을이 속해있는 리(里)는 길산리(吉山里)인데, 이 지명은 1914년 행정개편 때 붙여진 이름이다. 지전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옆으로 흐르는 남대천가의 320년 된 느티나무를 통해서 이 마을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몇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약 320년 정도 되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을 보호하는 숲정이 당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제방 아래에 나무가 있음은 남대천이 마을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방을 쌓은 뒤에 현재의 위치에 나무가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마을현황
ㅇ 이 마을은 뒷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우측에 위치하고 있어 풍광이 수려하다. 이 계곡에서 마을 쪽으로 남대천이 있으며 하천가에 마을 숲이 형성되어 수 백년된 느티나무가 여러 주 식재되어 있어 관광지로서도 우수하다. 또한 마을 내에 감나무를 집집마다 식재하여 담과 어우러진 경관을 보이도 있다.
ㅇ 36세대(78명)가 살고 있으며 성씨 가운데는 장(張)씨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ㅇ 마을의 가옥은 새마을 사업시 신(개)축한 1970년대의 건축물이 대부분으로 전형적인 산골 마을로 가옥의 형태나 구조는 개량 기와집 형태가 많다.
ㅇ 마을의 공간구조는 전면의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뒤에 흐르고 있는 남대천의 경계까지 5개의 군락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을은 전통적인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다.
4. 담장특징
ㅇ 마을 담장 전체의 80%가 돌담으로 되어 있어 산골 마을의 전형적인 담장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담장의 높이가 적당하여 접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주는 편이며, 양측으로 연속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담장내부에 식재가 되어있어 경관 면에서 우수하다.
ㅇ 담장 양식은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으로 같은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1.6m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하였으며 담장이 양쪽으로 형성되어 시각적으로도 좋은 지역이다.
ㅇ 마을 담장은 주로 담장의 기능과 건물의 외벽과 담장의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담장의 기초 부분은 지반에 콘크리트 기초를 하고 담장을 축조한 경우와 지반을 정지하고 담장을 바로 축조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마을의 담장은 돌로 쌓았다는 통일감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주요 담장은 돌로 축조하였다.
ㅇ 담장의 몸체는 돌과 흙을 혼용하여 평석 쌓기를 하고 있으며 지붕은 기와잇기나 노출상태 등으로 되어 있으며 그릇 조각으로 지붕을 한 경우도 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적으로 1.2m를 전후하고 있으며 주택에 비하여 규모가 약간 높은 편이다. 담장의 폭은 50cm 전후이다.
5. 문화재 현황(없음)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 무주구천동, 백련사 등
(7) 익산 함라마을
1. 소 재 지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2. 마을연혁
ㅇ 함라면은 원래는 함열군의 치소(治所)인 읍내였으므로 군내면(郡內面) 또는 현내면(縣內面)이라 하였으며, '함라'는 함열의 별호(別號)이고 함열군의 치소가 지금의 함라면 함열리에 있었기에 여기에서 면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함라'라는 명칭은 이곳의 주산(主山)인 함라산에서 취한 것이다. 1914년 일제시대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부근에 함께 있던 몇 개 마을(갈마동· 행동·천남리·천북리·수동·안정리·교동)을 병합하여 함열리라 부르게 되었다.
3. 마을현황
ㅇ 마을의 경관은 주산(主山)인 함라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로 인근에 향교가 위치하고 있고 아사(衙舍) 위 소재지의 위쪽마을을 의미하는 수동마을이 중심 고을로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함라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을 측면으로 흘러내려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의 마을로 생각되나 지금은 하천(河川)을 복개하였다.
ㅇ 마을 뒤로 함라산이 주산으로 되어있고, 그 옆으로 와우산이 있어 마을 전체를 싸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데 원래는 이곳이 호남 3제(堤)였던 황등제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 마을은 농경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으로 일찍부터 조성되었다. 와우산이라는 명칭은 소가 누워있다는 형세에서 따온 것으로 부를 가져온다는 형세이며, 일제시대에는 이곳 마을에 식수가 부족하여 부잣집에서는 하인들이 오리 남짓 되는 곳으로부터 물을 길어왔는데 저녁때가 되면 그 모습이 볼만하였다고 전해진다.
ㅇ 마을은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을 중심으로 천남과 천북으로 구분되었으나, 지금은 개천을 복개하여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주민들은 천남과 천북의 개념으로 마을을 인식하고 있다.
ㅇ 현재 함열리는 262세대 674명이 살고 있는데 담장과 관련된 교동, 수동, 안정, 천남에는 178세대, 534명이 거주하고 있다.
ㅇ 마을의 가옥은 1970년대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다만 이런 가옥과 아울러 지정문화재로 되어있는 규모가 큰 와가(瓦家)가 4채가 있다. 문화재 자료인 조해영 가옥, 함열향교 대성전, 지방민속자료인 김안균 가옥, 익산시 향토유적인 이배원 가옥이 그것이다. 이들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 이 지방을 풍미하던 부호의 집으로서 한말과 일제시대 양식을 보여주는 민가들이다. 조해영 가옥은 일제시대 일본식이 접합된 형태이며, 김안균 가옥은 담장의 규모가 340m로 토석담장 외에 붉은 벽돌 담장, 행랑채 등이 갖추어진 규모가 큰 가옥이다.
ㅇ 마을의 주택은 대부분 개량되어 한옥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며 대부분의 주택들은 정형적인 농가 주택이다. 전체적으로 마을은 전통적인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건축은 문화재로 지정된 민가를 중심으로 이 지역 대부호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담장도 그에 못지 않은 형태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양옥에 비하여 한옥의 수가 많다.
4. 담장특징
ㅇ 대체적으로 토석담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막돌담장이 2군데 정도 있다. 담장의 양식은 거의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으로 같은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1.6m 정도이며 담장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하였다. 일부 전돌을 막돌 대신 쓴 담장도 보인다.
ㅇ 담장의 형태는 기초를 두고 흙과 석재를 혼합하여 쌓은 토석혼용 담장을 비롯하여 돌로만 쌓은 담장, 흙으로만 축조한 순수한 토석 담장 등이 있다. 높이는 1.3m에서 2.2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전반적으로 농가의 담장이라는 점과 주택의 규모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5. 문화재 현황(3건)
ㅇ 함열향교대성전 : 문화재자료 제85호
ㅇ 조해영가옥 : 문화재자료 제121호
ㅇ 김안균가옥 : 시도민속자료 제23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익산미륵사지, 왕궁리5층석탑, 함벽정, 익산귀금속단지 등
(8) 강진 병영마을
1. 소 재 지 : 전남 강진군 병영면 박동리 외 3개리
2. 마을연혁
ㅇ 옛 병마절도사의 영(營)이란 명칭에서 유래한 병영면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크고 작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는 천연의 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섰으며 이에 빠른 상업의 발달로 유명해졌다. 1599년 당시 도원수 권율의 계청에 의해 병마절도사의 본부를 장흥으로 옮겼다가 다시 강진현의 옛 병영으로 돌아왔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공략으로 병영성은 폐영되었으나 1931년 행정개편으로 고군면(古郡面)을 병마절도사의 영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병영면(兵營面)으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마을 현황
ㅇ 강진은 예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다. 이 가운데 병영면은 주위의 수인산, 성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 등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옛 병영성터가 이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ㅇ 병영면은 현재 박동리, 성남리, 성동리, 지로리 등 4개의 리(里)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주민은 총 328세대(1,181명)로 규모가 큰 지역이다.
4. 담장특징
ㅇ 담장 축조 방식은 전체적으로 죽담구조인데, 죽담구조란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것으로 흙이 일종의 접착 몰탈 역할을 한다. 돌은 화강석으로 크기는 하단부 돌은 비교적 크나 중단 이후로는 어른 주먹정도의 비교적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ㅇ 이 마을의 담장은 다른 마을의 죽담구조와 쌓기 모습에 차이가 있어 주목이 된다. 즉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이다. 이곳에서는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고 하는데, 이는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병영에 소속되어 여러 잡역을 하며 생활하였는데, 그 때 이들 일행으로부터 습득한 기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담장 상부에는 거의 대부분이 지붕처리(기와)가 되어 있다. 높이는 2m정도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은데 그 원인은 병영 내에서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집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높게 쌓았다고 하고 있다.
5. 문화재 현황(4건)
ㅇ 전라병영성지 : 사적 제397호
ㅇ 병영면의비자나무 : 천연기념물 제39호
ㅇ 강진병영면의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제385호
ㅇ 병영성홍교 : 시도유형문화재 제129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월출산국립공원, 영랑생가, 정다산유적, 백련사 등
(9)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1.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2. 마을연혁
ㅇ 창평은 원래 나주에 속하였으며 1474년에 현을 폐하여 광주에 예속하였다. 1908년 담양군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 12개 법정리와 27개 운영리를 두고 있다. 창평면 삼천리 삼지천(三支川) 마을은 151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어 전통 고가가 많으며 동편에 월봉산과 남쪽에 국수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 삼지천이 흐르고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삼지(내)천이라 불렀다.
3. 마을현황
ㅇ 삼지천 마을은 들판 가운데 있으며 옛부터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창평 유지들의 요람이었다. 동편에 월봉산과 남쪽에 국수봉이 있으며 마을 앞으로 삼지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마을 앞 방죽은 마르지 않아 5리 이상 주민들이 식수를 구하러 왔다고 하며 아울러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아주 유리했다.
ㅇ 현재 177가구(496명)가 거주하고 있다.
4. 담장특징
ㅇ 담장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돌과 흙을 사용한 죽담구조다.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주로 사용하였고, 크기는 개략 직경 10~30cm정도이다. 축조 형태는 돌을 한켜 쌓고 흙을 채운 다음 다시 돌을 쌓아 외관상 줄눈이 생긴 담장도 있고 또한 줄눈 없이 막쌓기 형태로 된 곳도 많다. 대체로 담장 하단부에는 큰 돌이 가지런히 놓였고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이 활용되었다. 삼지천 마을에는 고재선 가옥 등 여러 채의 전통한옥이 있는데 이들 가옥의 담장들은 한옥에 걸맞게 견고하고 높게 축조 되어 있고 또한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여러 채의 전통한옥과 함께 구성된 전통담장이 마을 안길구성에 큰 몫을 하고 있으며 지붕개량된 목조가옥도 상당수가 전통담장(죽담구조)으로 구축되어 있다. 또한 'S'자로 자연스럽게 굽어진 마을 안길은 운치가 있다.
5. 문화재 현황(1건)
ㅇ 담양고재선가옥 : 시도민속자료 제5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담양호, 소쇄원, 송강정, 금성산성 등
(10) 대구 옻골마을
1.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2. 마을연혁
ㅇ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대구의병장으로서 선무2등 공신으로 녹훈된 태동공(台洞公) 최계(崔誡)의 아들인 대암(臺巖) 최동집(崔東集)이 광해군 8년(1616)에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로 약 400여 년간 경주최씨(광정공파)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
ㅇ 이 마을의 중심 건물인 경주최씨 광정공파종택의 건물들 중 정침은 숙종 20년(1694)에, 가묘(家廟)인 보본당(報本堂)은 영조 18년(1742)에 건립되었고,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을 향사하기 위한 별묘는 고종 33년(1896)에 중건되었다.
3. 마을현황
ㅇ 현재 경주최씨가 20가구이고, 그 외의 성씨가 10가구로서 거주인구는 총 67명 정도인데, 대구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마을이 아니면서도 시골냄새를 물씬 풍길 정도로 옛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전통마을의 모습을 보기위하여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한옥마을이다.
ㅇ 마을 뒤의 주산은 해발 390m의 옥고개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왼편에 황사골, 오른편으로는 새가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터는 비교적 좁은 편이며, 그 터에 가옥이 상당수 들어서 있다.
ㅇ 옻골은 상징적으로 '숲안'과 '숲밖'의 두 공간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숲안'이란 동계와 서계의 합류지점 밖에 조성되어 있었던 숲을 경계로 그 안을 지칭한다.
ㅇ 주거지 주변에 충분한 농토가 없으며 마을 입구에서 방촌역 사이에 넓게 펼쳐지는 농토를 중심으로 마을의 서쪽, 현재의 대구공항 터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ㅇ 현재 이 마을의 지정문화재로는 둔산동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 사당(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를 중심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4. 담장특징
ㅇ 흙과 돌이 섞인 담장으로 높이는 약 2m가 되지 않으며 다른 전통마을의 담장과는 달리 직선으로 되어 있으나, T자형의 구획이 잘 되어 있어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문화재 현황(2건)
ㅇ 옻골경주최씨백불암파종가소장전적(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
ㅇ 둔산동경주최씨종가및보본당사당(시도민속자료 제1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팔공산도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