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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覺林菩薩의 讚歎
(1) 就事相現法
爾時에 覺林菩薩이 承佛威力하사 遍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譬如工畵師가 分布諸彩色하고
虛妄取異相이나 大種無差別이니
大種中無色이며 色中無大種이로대
亦不離大種하고 而有色可得이로다
그때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치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채색을 칠해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 그리지마는
대종(大種)은 차별이 없으며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
각림보살(覺林菩薩)의 찬탄(讚歎): 각림(覺林)보살의 찬탄
*
취사상현법(就事相現法): 사상(事相)에 나아가서 법을 나타내다
*
이시(爾時)에
각림보살(覺林菩薩)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변관시방(遍觀十方)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비여공화사(譬如工畵師)가 : 비유하자마면 화가가, 공화가는 화가다.
분포제채색(分布諸彩色)하고 : 온갖 물감을 펼쳐서
허망취이상(虛妄取異相)이나: 허망하게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한다. 화가는 물감을 가지고 백지에 막 그려놓지만
대종무차별(大種無差別)이니: 그 땅은 차별이 없다. 대종은 물질을 이루고 있는 큰 요소인데 지수화풍을 말한다. 거기엔 차별이 없다.
그림은 차별이 있는데 대종에는 차별이 없다. 예를 들어 산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별별 차별이 있는데 그 땅은 차별이 없다.
*
대종중무색(大種中無色)이며 :물질의 큰 요소인 대종에는 색수상행식도 없고, 화가가 그려놓은 여러 가지 그림 모습도 없다.
색중무대종(色中無大種)이로대: 그 그림 가운데 또한 지수화풍도 없고
역불리대종(亦不離大種)하고 : 또한 지수화풍을 떠나지도 않고
이유색가득(而有色可得)이로다: 떠나서 색 가히 얻을 것이 없다.
그러니까 그것은 화합된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2) 就心現法
心中無彩畵하고 彩畵中無心이로대
然不離於心하고 有彩畵可得이로다
彼心恒不住하야 無量難思議라
示現一切色호대 各各不相知로다
譬如工畵師가 不能知自心호대
而由心故畵인달하야 諸法性如是로다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도 없나니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온갖 빛깔 나타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나니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니라
*
취심현법(就心現法): 마음에 나아가서 법을 나타내다
*
심중무채화(心中無彩畵)하고 :마음 가운데는 그림이 없고
채화중무심(彩畵中無心)이로대: 그림 가운데 또한 마음이 없다. 그러나
연불리어심(然不離於心)하고 : 마음을 떠나고
유채화가득(有彩畵可得)이로다: 채화를 가히 얻을 수 없다.
마음에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에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림을 보면 그림과 마음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그림이 포착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과 그림이 두 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인식한 범주안에 그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 역시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 마음 범주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
나와 현상과의 관계는 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세상이라고 하는 현상이 아무리 거꾸로 돌아가고 험하게 돌아가도 이미 내 마음 안에 포착되어 있고, 마음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다면, 그 세상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
세상에 무수한 분야가 있어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전혀 모른다. 예를 들어서 내일은 코리안 시리즈가 시작되는 날이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거 뭔 소리요?’ 라고 할 것이지만, 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려온 사람이라면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하고 내일이 오기만을 벼르고 있을 것이다.
‘일체유심조’ 라는 말이 기가 막힌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아무리 같은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어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책임도 없다. 관심있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거기에 울고 웃는 책임이 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코리안시리즈 우승팀이 어딘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 결과에 울고 웃을 일도 없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체유심조의 본래 뜻은 내가 다 만들었다고 하는 뜻이지만, 쉽게 말한다면 내 마음에 포착된 일이므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내 마음 관리를 잘 해야 된다. 코리안시리즈에서 어느 팀을 응원했든지 간에 승패가 갈릴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관심을 두었다면 그에 따라서 내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든 자식이고 내 새끼지만 그 결과에 얼마나 마음을 얼마나 빼앗기느냐 빼앗기지 않느냐 하는 것도 또한 내게 달려있다.그런 이치를 불교에서는 소상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너무 맞는 이야기들이고 공부를 할 수록 탄복할 만한 사실들이다.
*
피심항부주(彼心恒不住)하야 : 저 마음은 항상 머물지 아니해서
무량난사의(無量難思議)라: 한량없는 불가사의다.
시현일체색(示現一切色)호대 : 일체 색을 시현하지만
각각불상지(各各不相知)로다 :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 색과 색이 서로 알지 못한다.
지(地)는 수(水)를 알지 못하고 수는 화(火)를 알지 못하고 화는 풍(風)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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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공화사(譬如工畵師)가 : 비유하자면 화가가
불능지자심(不能知自心)호대: 능히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이유심고화(而由心故畵)인달하야 : 마음을 말미암은 고로 그림을 그린다.
자기 마음은 모르지만 자기 마음이 그림을 그린다. 마음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기 주인공은 모른다고 하는 사실도 또한 탄복할 일이다.
제법성여시(諸法性如是)로다 : 모든 법의 성품도 또한 이와 같더라.
봄이 와서 잎이 피고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만 그 당체는 모른다.
모르면서 또 그렇게 엮어가고 그렇게 흘러간다.
(3) 譬喩와 法合
心如工畵師하야 能畵諸世間하나니
五蘊悉從生이라 無法而不造로다
如心佛亦爾하며 如佛衆生然하니
應知佛與心이 體性皆無盡이로다
若人知心行이 普造諸世間하면
是人則見佛하야 了佛眞實性이로다
心不住於身하며 身亦不住心호대
而能作佛事하니 自在未曾有로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인댄
應觀法界性에 一切唯心造니라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네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도 마음에 있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알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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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譬喩)와 법합(法合):비유와 법을 합하여 관찰하다
*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하야: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하나니 :모든 세상을 다 그리나니, 지금까지 설명한 그대로다.
오온실종생(五蘊悉從生)이라 : 색수상행식은 전부 마음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로다: 법마다 다 짓지 아니한 것이 없다. 내가 다 지은 것이다.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오온실종생 무법이부조 라고 하는 이 구절은 유명한 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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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심불역이(如心佛亦爾)하며: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여불중생연(如佛衆生然)하니: 부처와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다.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생을 깨우치자니 여러 용어를 짓고 이리저리 가닥을 쳐서 이해를 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학인 때는 ‘이치는 하나라고 하면서 여러 가설은 왜 만들어서 사람 골치아프게 하느냐’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또 그런 가설이라도 일단 설정해 놓고 중생들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와 철학에도 가설이 필요하고 과학에도 가설이 필요하다.
응지불여심(應知佛與心)이 : 응당히 알라 부처와 마음이
체성개무진(體性皆無盡)이로다: 그 체성은 다함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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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인지심행(若人知心行)이 :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행함이, 행은 의지작용이다.
보조제세간(普造諸世間)하면: 널리 모든 세간을 지은 줄을 알 것 같으면
시인즉견불(是人則見佛)하야 : 이 사람은 곧 부처를 보아서
요불진실성(了佛眞實性)이로다: 부처의 진실한 성품을 알도다.
어떤 사람이 마음의 의지가 능히 모든 세간을 짓는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이 사람은 곧 부처의 진실한 성품을 안다. 중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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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주어신(心不住於身)하며: 마음은 몸에도 머물지 않고
신역부주심(身亦不住心)호대: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아니하되
이능작불사(而能作佛事)하니: 능히 불사를 짓느니
자재미증유(自在未曾有)로다: 일찍이 있지 않던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다.
자유자재해서 몸과 마음이 서로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또한 서로 다르게 불사를 지어간다. 신기한 일이다.
*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인댄:삼세일체불을 알고자 할진댄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에 :응당히 이 법계 성품을 관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니라 :일체가 다 마음으로 지은 바더라.
내가 야마궁중게찬품이 좋다고 하는 이유들이 이 게송들 속에 다 나왔다.
한 게송만 가지고도 하루종일 천착하고 싶은 내용들이다.
10, 智林菩薩의 讚歎
(1) 執着
爾時에 智林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所取不可取며 所見不可見이며
所聞不可聞이니 一心不思議로다
그때 지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집착할 것도 집착할 수 없고
볼 것도 볼 수 없고
들을 것도 들을 수 없어
한 마음이라 헤아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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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림보살(智林菩薩)의 찬탄(讚歎): 지림(智林)보살의 찬탄
*
집착(執着):집착에 대하여 말하다
*
이시(爾時)에
지림보살(智林菩薩)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시방(普觀十方)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소취불가취(所取不可取)며 : 취할 바 대상들이 책, 책상, 절, 온갖 소유품 그런 것이 가히 취할 수가 없고
소견불가견(所見不可見)이며: 보는 것을 가히 볼 수가 없다. 나도 대상도 늘 변화무상하여서 그대로 있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문불가문(所聞不可聞)이니: 듣는 바도 가히 듣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 강의가 참 그럴듯하다’ 하지만 또 어느날 ‘그 강의 별 것아니다.’라고 영 달라져 있다. 달라져 있어야 또 옳다.
일심부사의(一心不思議)로다: 한마음이 불가사의한 존재다. 대상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고 전부가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취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이 전부 마음의 장난이기 때문이다.
(2) 不可執着
有量及無量을 二俱不可取니
若有人欲取인댄 畢竟無所得이로다
不應說而說이 是爲自欺誑이니
已事不成就요 不令衆歡喜로다
분량 있거나 분량 없거나
둘을 다 집착할 수 없는 것
어떤 이가 집착하려 하여도
끝까지 얻지 못하리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
자기 일을 성취 못하니
다른 이를 기쁘게 할 수 없으니
*
불가집착(不可執着): 집착할 수 없음을 해석하다
*
유량급무량(有量及無量)을 : 한량있는 것이거나 한량이 없는 것을
이구불가취(二俱不可取)니: 둘 다 가히 취할 수 없음이니
약유인욕취(若有人欲取)인댄 : 만약 어떤 사람이 취하고자 한다면
필경무소득(畢竟無所得)이로다: 필경에 얻을 바가 없다. 그야말로 손에 잔모래를 한 주먹 쥐고 걸어가면 몇 걸음 안가서 모래가 다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바닷가에서 더러 해 본 일일 것이다. 모래는 손에 꽉 쥐면 쥘 수록 더 잘 빠져나간다.
세상에서 내가 취할 것 볼 것 들을 것 한량이 있는 것 한량이 없는 것 모두가 필경에는 얻을 바가 없다.
*
불응설이설(不應說而說)이: 응당히 설하지 못할 것을 설하는 것이
시위자기광(是爲自欺誑)이니: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이사불성취(已事不成就)요: 이미 지나간 일들은 성취하지 못함이여
불령중환희(不令衆歡喜)로다: 대중으로 하여금 환희케도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취할 것, 볼 것, 들을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런 것들이 대상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자신에게 돌아와서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는 것까지도 모두 쓸어버리며 부정해 버린다.
절에서 마당 쓸 때는 뒷걸음질 하면서 쓴다는 이야기를 내가 자주 했다. 쓸고 있는 그 발자취마저 쓸어버리라고 하는 불교의 이치다.
마당을 쓸면서까지도 그 이치를 우리는 반복해서 공부한다. 불가집착(不可執着)이라고 하는 제목이 그런 뜻이다.
(3) 不可見
有欲讚如來의 無邊妙色身인댄
盡於無數劫이라도 無能盡稱述이로다
譬如隨意珠가 能現一切色호대
無色而現色인달하야 諸佛亦如是로다
又如淨虛空이 非色不可見이라
雖現一切色이나 無能見空者인달하야
諸佛亦如是하사 普現無量色이나
非心所行處라 一切莫能覩로다
여래의 그지없이 묘한 색신(色身)
찬탄하려는 이가 있어
무수(無數) 겁(劫)이 끝나도록 하여도
모두 다 말할 수 없으리
마치 여의주가
온갖 빛을 나타내지만
빛 없는 데서 빛을 내는 것
부처님들도 그러하니라
또 마치 청정한 허공은
빛이 아니어서 볼 수 없으며
비록 온갖 빛을 나타내더라도
허공을 볼 이는 없나니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빛 나타내지만
마음으로 미칠 수 없으매
온갖 것을 볼 수 없네
*
불가견(不可見):볼 수 없음을 해석하다
*
유욕찬여래(有欲讚如來)의 : 만약 어떤 이가
무변묘색신(無邊妙色身)인댄: 여래의 무변묘색신을 찬탄하고자 할진댄
진어무수겁(盡於無數劫)이라도 : 무수겁을 다할 때까지 한다 하더라도
무능진칭술(無能盡稱述)이로다: 능히 다 이야기 하지 못한다.
*
비여수의주(譬如隨意珠)가: 마치 여의주가, 여의주나 수의주나 같다.
능현일체색(能現一切色)호대:능히 일체 색을 나타내지만
무색이현색(無色而現色)인달하야: 여의주에는 아무 색이 없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색을 전부 받아들여 가지고 자기 색으로 삼아서 색을 나타낸다.
제불역여시(諸佛亦如是)로다: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다. 부처님의 무변요색신을 아무리 오랜세월 찬탄한다 하더라도 찬탄할 수가 없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여의주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어디 여의주로써 비교가 되겠는가? 묘한 비유다.
*
우여정허공(又如淨虛空)이: 맑은 허공이
비색불가견(非色不可見)이라: 색이 없으면 볼 수가 없다. 허공에 태양이 넘어가면서 비추든지 뜨면서 비추든지 아니면 구름이 끼어서 비추든지 해야 그 색을 본다. 하늘이 푸른 것도 땅의 푸른 색을 받아서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허공에는 색이 없다. 허공이 무슨 색을 띄고 있더라도 전부 이 지구에 있는 구름의 작용이나 수증기 작용이나 바람 작용이나 호수의 작용이나 푸른 나무의 작용이나 눈의 작용이나 햇빛의 작용을 통해서 하늘의 색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엔 햇빛이 작용이 제일 많다. 비유하자면 맑은 허공이 다른 색이 없으면 볼 수가 없어서
수현일체색(雖現一切色)이나: 비록 일체 색을 나타내긴 내지만
무능견공자(無能見空者)인달하야: 능히 그 허공을 보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색을 봤지 허공을 본 것은 아니다. 허공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기 멀리까지 툭 트였는데 푸른 하늘이라면 그 푸른색도 땅의 색을 반사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
제불역여시(諸佛亦如是)하사 :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보현무량색(普現無量色)이나: 널리 한량없는 색을 나타내지만
비심소행처(非心所行處)라: 마음이 행할 곳이 아니다.
일체막능도(一切莫能覩)로다: 일체 능히 볼 수가 없다.
부처의 경계도 텅 빈 허공과 같이 한량없는 색을 나타내지만 사실은 거기에 우리 마음이 쫓아갈 바가 아니다.
허공은 진짜 아무것도 없다. 저 색은 전부 다른 것을 반사해서 빌려서 나타낸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모든 사람, 모든 위치에서 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허공은 색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다,
(4) 不可聽
雖聞如來聲이나 音聲非如來며
亦不離於聲하고 能知正等覺이로다
菩提無來去라 離一切分別이어니
云何於是中에 自言能得見이리오
諸佛無有法이시니 佛於何有說가
但隨其自心하야 謂說如是法이로다
비록 여래의 음성을 듣지만
음성은 여래가 아니며
또 음성을 떠나서
정등각(正等覺)을 아는 것도 아니니
보리(菩提)는 오고 감이 없어
온갖 분별을 떠난 것인데
어떻게 이런 가운데서
능히 본다고 말하겠는가
모든 부처님 법 있는 것 아닌데
부처님 어찌 말씀이 있겠는가
다만 자기의 마음을 따라
이런 법을 말한다 하네
*
불가청(不可聽):들을 수 없음을 해석하다
*
수문여래성(雖聞如來聲)이나: 비록 여래의 소리를 들으나
음성비여래(音聲非如來)며: 음성은 여래가 아니다.
역불리어성(亦不離於聲)하고 : 또한 소리를 떠나서
능지정등각(能知正等覺)이로다: 능히 정등각을 아는 것이 아니다.
‘소리를 떠나지 않고 능히 정등각을 안다.’ 이렇게 해석해도 좋다.
금강경에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고 했다. 금강경에서는 ‘만약 몸으로써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하면 그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결코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철저히 부정을 했지만 여기는 그 부정을 바탕으로 다시 긍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래의 음성 속에 또한 여래가 있다.
*
보리무래거(菩提無來去)라 : 깨달음은 거래가 없음이라
이일체분별(離一切分別)이어니: 일체 분별을 떠났거니
운하어시중(云何於是中)에 : 어찌 그 가운데서
자언능득견(自言能得見)이리오: 스스로 능히 얻어 보았다고 말하겠는가.
*
제불무유법(諸佛無有法)이시니: 모든 부처님은 법이 없으니
불어하유설(佛於何有說)가 : 부처님은 어디에 설이 있겠는가. 법이 없는데 무슨 설법이 있겠는가. 이런 구절을 근거로 부처님은 ‘나는 평생 49년을 설했지만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는 명문이 탄생한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법이 없으니 부처님이 어디에서 설함이 있겠는가? 한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단수기자심(但隨其自心)하야: 다만 사람들이 그 자신의 그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자기 마음 따라서 말하기를 ‘팔만대장경이다, 화엄경이다, 법화경이다, 금강경이다’ 하는 것이다.
위설여시법(謂說如是法)이로다 :이와같은 법을 말했다라고 한다. 위(謂)자는 그런 말이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 따라서 이와 같은 법을 설했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 또 자기 고집까지 넣어서 이렇게 훨씬 발전된 대승경전이 있는데도 ‘아함부 경전이라야만 부처님의 경전이다. 이게 진짜 부처님 말씀이다.’ 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아함부 경전 같은 것은 소승경전이다. 사실 대승에서는 소승을 취급도 안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방불교에 와서는 교리상으로 대승경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남방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아함부경전 뿐이었으니까 그것만이 진짜라고 또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을 주장하든지 자기 성격 따라서 자기감정 따라서 주장은 하되 그런 줄이나 알고 주장해야 한다.
사실은 한구절이라도 넘어가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주옥같은 야마궁중게찬품이다.
그러나 또 남은 내용들이 많으니까 오늘은 여기 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꽃씨를 모으며
법회전, 문수선원이 있는 언덕길에서 큰스님을 기다리는 동안 금계국 꽃씨를 받는 스님을 보았다. 함께 큰스님을 기다리던 보살님은 벌써 몇 분째 비구니스님들이 꽃씨를 받아가시는 걸 보았다고 했다.
*
법회가 끝나고 다시 인사오신 비구니 스님들에게 큰스님은
“어떻게 부산사는데 이제사 왔어?” 하셨다.
“스님 모시고 왔어?도반이라?”
“예 선원에서 만났습니다.”
“지는 혼자 오래 하고 여기는 나중에 오라고 하고” 가사를 벗으시며 큰스님께서 말씀하시자 스님들이 웃으셨다. 회장스님이 얼른
“저는 처음부터 권했는데 이 스님이 너무 바빠서 오늘 처음 왔습니다.”
라고 통도사 연수원 스님을 가리키셨다.
“이 스님이 호텔 사장이라서?” 하고 큰스님이 웃으셨다.
“부끄럽습니다. 주경야독하겠습니다.”
“뭐든지 기우는 데로 무거운 쪽으로 하면 돼.”
하셨다.
*
“큰스님 건강하시죠? 저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살 많이 빠졌습니다. 날카로와졌습니다.”
불교방송의 젊은 피디가 와서 인사올리며 말했다.
“뭐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나?”
“담에 찾아뵙고 차한잔 하겠습니다.”
“하하하 살이 많이 빠졌네. 모든 중생이 아무 탈없이 편안하게 살면 좋은데. 특별히 자기가 욕심을 안부려야 돼. 자기도 보조를 해야 환경도 그렇게 돼. 환경만 그렇게 되기 바라면 그건 무리고.”
큰스님께서 “자기도 좀 욕심을 안 부릴 생각을 하고 환경도 좀 따라주고 이렇게 하면 좋지.“ 하셨다.
*
큰스님을 배웅하고 나서, 늘 얻어 타는 회장스님의 차안에 오늘 처음 오신 통도사 연수원 스님도 함께 타셨다. 통도사 연수원에서 올해 김장김치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시는데 인기가 좋다는 말씀을 하시자 회장스님이 날씨가 추워져서 ‘지금 고랭지 배추는 없다’고 하시고, 통도사 스님은 ‘우리는 고랭지 배추를 확보했다’고 느긋하게 대답하셨다.
회장스님은 배추도 배추지만 부속으로 들어가는 양념이 더 믿을만해야 한다고 스님의 절인 포항 천곡사의 김장은 너무 아까와서 판매를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제대로 만들면 재료비 자체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데에 두 분이 동의를 하셨다.
된장과 고추장을 구입할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통도사 연수원에서는 직접 와서 장을 만들고 발효시킨 다음 가져가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하시면서 명함을 주셨다.
노포 터미널에 가까워 질 무렵 통도사 스님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피리를 꺼내어 부셨다.
익숙하신 곡은 아니고 틈틈이 연습하시는 곡인 모양이었다.
꺼지지 않는 빛
당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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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에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에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고맙습니다 _()()()_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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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마음의 의지가 능히 모든 世間을 짓는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이 사람은 곧 부처의 眞實한 性品을 아는 것이다.
혜명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마지막 글은 항상 즐겨 읽는 코너인데... 딴짓하다가 오늘에서야 봅니다. 좋아하는 일(짓)만 하고 살다간 폐인이 되기 딱! 입니다. 이제 그만하고 본업에 충실해야지...^^ 손자들 속옷 산다고 해외직구. 구매대행 싸이트에 들어갔다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세상가는 줄 모르고...
心如工畵師하야 能畵諸世間하나니
五蘊悉從生이라 無法而不造로다.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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