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휴가 -제10편 (두브리브니크 2)-
8월 22일
오늘은 하루 종일 호텔에서 휴식하기로 하고 충분히 잠을 자고 8시에 호텔 부페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이곳은 고급호텔이라 아침 일찍이라도 식사에는 정장 차림이다
우리도 정장 차림으로 아침 식사를 여유있게 먹으며 식도락을 즐겼다
럭셔리한 호텔이라 푸짐한 먹거리와 품격있는 써비스에 만족감을 느끼며
배불리 먹고나니 9시가 다 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주위를 산책해 보니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가 따스한 헷살에
어우려져 느껴지는 상쾌함이란 행복감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두브로브니크지역은 5개의 도시 지역이 있다 구도시가 있는 필레지역(Pile)과
항만지역인 쿠르즈(Cruz)지역과 호텔과 해수욕장 자역인 바빈쿡(Babin kuk)자역과
신개발지역인 라피드(Lapad)지역과 신공항이 있는 신도시인 플로체(Ploce)지역으로
나누어 져 있는데
우리 호텔(Hotel Valama)은 바빈쿡지역에 넓은 면적을 가진 최고급 호텔로써 4성급과
5성급이 동시에 있으며 프라이빗 해안에서 하루를 편안하게 휴식하며 보낼 수 있도록
부대시설이 풍부하였다
해변 가까운 쪽이 5성급이며 앞쪽이 4성급으로 우리가 투숙한 호텔이지만
5성급과 똑 같으며 단지 비치가 가깝다는 이유로 5성급이라고 한다
산책 후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비치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러 가기 위하여 호텔방으로
돌아 와서 뉴스를 보니 "22일 오후 5시까지 대남방송을 중단 하지 않으면 무차별
보복하겼다"는 김정은의 최후동첩을 CNN뉴스에서 접하고 정말 놀라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안보 태세가 완벽한 우리정부의 대처 방안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우린 우리 계획대로 비치로 향했다
비치로 향하는 길에는 호텔 소유의 레스토랑과 크럽들이 산재해 있었고
바닷 가쪽으로 2-3분을 걸어가니 5성급 호텔 "말라말 두브리브니크 프래지턴트"
호텔이 나타난다
이 호텔과 비치가 이어져 있었다
프라이빗 비취임으로 이 호텔 투숙객만 이용 가능한 시설이다
우린 이곳 비치에 자리잡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 비치도 자갈이다 모래가 귀한 나라인 만큼 화강암으로 된 해안에서 이만한 자갈
비치도 찾아보기 힘든 해안이다
우린 오전 내내 해수욕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였으며 피곤하면 오수를 즐기기도 하였다
해수욕장은 정말 청정 해역이다
비치 옆에서 보이는 바다가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할 수 가 없었다
2시간 이상 바다에서 놀든 손자들이 배가 고프다고 달려오니 점심 때가 된것 같았다
우린 비치와 바로 연결된 호텔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시켜먹었다
오이 피클과 샌드위치 스파게티등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나른해지는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오후 시내관광을 나서기로
하였다
우린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가지고 호텔 앞에서 버스를 타고 피레(Pile)광장에서
내려 올드시티로 들어섰다
이 문은 1472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Paskoje Milicevic)가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http://kr.blog.yahoo.com/lee1004gg)
우린 플라카 대로를 따라 약도대로 하나씩 구경하기로 했다
어제 보았든 16각의 분수대를 지나면 바로 구시가지의 메인 도로가 나오는데
풀라카 대로(Placa -Stradum)라고 한다
7세기경에는 항구의 물자를 수송하기위한 도로였으나 도시가 크지면서 상점들과
사람들이 모이면서 도시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항상 이벤트가 행해지고 있었으며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앵무새와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메인 스트리트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로 붑비고 있었다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관광객들로 인하여 반질 반질하게 빛나고 있는 거리의
초입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는데 이 안쪽에는 1391년부터 운영해 오는 약국
(pharmacy Ijekarna)가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는 이 나라에서 먾이 생산되는 허브 종류를 가지고 향신료 또는 화장품을
만들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객들에게 선물용으로 많이 팔고 있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들이 1234년 부터 구도시 밖에서 살다가
1317년에 성내에 수도원을 짓고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안뜰과
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 이 박물관에는 성 로브레와 성블라디슬라브등 성인들의 뼈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건물 출입구에 1498년에 만든 조각품인 십자가에 못 박힌 에수 시신을 안고
무릅을 꾾고 기도하는 마리아의 슬픈 모습을 묘사한 조각 "피에타"가 지진에도
파손되지않고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메인도로인 플라차(Placa Stradum) 거리를 걸어 시계탑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면 여러 가지 상품을 파는 중세풍의 건물들이 양 옆에 있어서 마치 중세도시를
걸어가는 것 만 같았다
시계 탑 앞에 가면 루차광장(Tig Luza)이 나오는데 앞쪽은 시계탑과 동쪽 출입구인
플로체(Vrata PLoce)문 그리고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고 오른쪽에는 성 볼라이세
성당과 올란도 석상이 있고 왼쪽에는 스폰자 궁전등이 있어 이 성내의 중심 광장으로
시즌 때에는 매일 이곳에서 유명한 거리 공연이 계속된다고 한다
종탑(City Bell Tower)
15세기 경에 35M 높이로 만들어진 이 종탑은 적의 감시 뿐 아니라 2명의 종치기가
매시 종을 치는 모습이 청동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태양을 형상화한 둥근시계와 금칠을
한 원구가 태양을 따라 움직이면서 시간을 알려준다고 한다
현재 달려 있는 종은 모조품이며 원본은 스픈지 궁전의 중앙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종탑은 1444년에 만들어 졌으나 1928년 다시 엣모습을 복원하여 건축한
것이라고 하며 맨위의 종은 15세기 당시의 것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시계탑 왼쪽으로 나가면 동문인 폴로체문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The Small Fountain of Onofrio)분수가 보인다
이 분수는 입구의 대분수와 함께 루자광장 주위의 시장 상인과 기독교인들에게만
물을 공급 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분수 맡은편에는 사각 기둥이 서있는데 이 석상이 바로 1417년에 세워진 오를란도
기둥(Orlando Column)이다. "롤랑경"이라고도 하는데 칼대제의 12기사단(Paladins)를
이끌든 칼 대재 조카 "브리타뉴 올란도"경으로 충성스런 기사도 정신으로 헌신한 그의
생애를 기념하여 자유의 상징으로 유럽 여러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동상의 오른쪽 팔 꿈치길이 (51.2센치)가 두브로브니크의 길이 단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석상 뒤에 있는 성 불라이세성당(Chuerch of Blise)은 1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4성인 중의 한사람인 성 불라시우스(Blasius)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1667년
대지진과 1706년 일어난 화재로 많이 훼손된 성당을 1714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한
성당으로 정면 상부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불라이세가 한손에 이성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특이하며 각 모서리에는 수호천사들의 조각상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성 불라이세는 278년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나 의사이자 성직자 였으며 베네치아
군함이 처들어오는 것을 미리 알려주어 도시를 안전하게 지킬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316년에 쇠빗으로 고통을 받으며 순교 하였다고 한다
이 성인을 위하여 순교일인 2월3일에 매년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이 성당 맞은편에는 두브르브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스폰자 궁전이
보인다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
1516년에 착공 1522년에 건축가 페스코에 밀리체비크(Paskoie Milicevic)가 완공한
목조 건물로 건축된 이 궁전은 1층은 6개의 기둥이 있는 화랑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2층의 창문은 고딕양식,3층의 창문을 바티컨식으로 여러가지 혼합된
건축양식으로 만들어 져 1667년 대 지진 때에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14세기는 한쪽부속건물에는 조폐국이 들어셨으며 현관과 조각장식품들은 안드리치크
(Andrijic)형제가 만든것이라고 한다
이 스폰자 궁전은 당시 무역항으로 크게 번창한 시기임으로 무역상을 위한 관세
조페 은행 등 재정적인 업무를 주로 하였으며 지금은 전시관이나 추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매년 7월중순부터 8월중순 한달간 열리는 60년의 전통을
가진 여름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한다
스폰자 궁전을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면 윈족은 크네쥐브 궁전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이 나온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nik Cathedral)
1713년 이태리 건축가 안드레아 불파리니와 파올로 안드레오티가 지진으로 페허가
된 이곳에 대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1981년 이성당을 재건축하려고 지하를 파보니
7세기에 지어진 고대흔적을 발견하고 이 성당은 처음 7세기경 비잔틴 양식의 성당과
두번째가 17세기 지워진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과 1986년 세워진 현재의 성당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돔 모양의 가운데 지붕이 높이 솟아 있어 주위가 아름다우며 이곳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으로 된 작은 보석상자에는 그의 유골과 발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외부는 수호성인들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고 고풍스럽고 고급스런회색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는 밝고 로마네스코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장식으로
벽화를 만들었으며
중앙제단에는 1550년 티탄(Titan)의 3폭 짜리 "성모마리아 승모승천"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옆의 보조제단은 보라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성당을 "성모 승천 교회"라고도 한다
12세기 십자군 원정에서 영국 "리차드" 사자왕이 풍랑을 만나 두브로니크의 앞에
있는 섬 로크룸(Lokrum)에 포류하여 살아 남았는데 신에 감사한 마음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성당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또 이 성당에는 물에 빠진자들의 수호성인인 프라하의 "성 죤 네포무크 "의 초상화
석상도 만들어져 있다고 하며 123개의 금으로 된 보석은 물론 라파엘로의 마돈나를
포함하여 은으로 만든 유물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린 대 성당을 구경하고 그 옆을 지나 오니 오전에만 장이 서는 군돌리치 광장이
나타난다 우리네 전통시장과 같은 곳으로 이곳에서 나는 과일 채소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식자재과 향료등을 팔고 있어 이곳 주민들의 삶과 향을 맛볼 수 있었다
이 광장 중앙에는 이반 군돌리치의 동상이 높이 서 있었다
이반 군돌리치(Ivan Gundulic1589-1638)는 르네상스시대의 크로아티아 시인이자
교목으로써 1626년 20편으로 된 서사시"오스만"을 발표하고나서 두브로니크를
"남 슬라브의 아테네"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으며 '투르크 슬탄
오스만 2세"의 생애를 그린 희곡으로 당대 토로가토 타소의 "해방된 애루살렘"에서
흰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하며 그의 높은 예술 문학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50쿠나
짜리 크로아티아 지페의 표면도안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니 이곳에서 제일 높은 곳에 지어진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이 나타난다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Church of Ignatius)
1725년 이태리의 건축가 이그나키오 프조(Ignazio Pozzo)가 건축한 성당으로
아름다운 바로크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 벽화는
성 이그나티우스가 천당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모사하여
그린 그림으로 이그나키오 푸조의 그림이다
내부장식은 화려한 제단과 벽화로 그려져 있었고
예수회 기사단을 만든 "그나티우스 로올라"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벽화로 장식 되어
있으며
보기 드물게 성당 입구에는 기도하는 마리아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실존하는
마리아 상을 연출하였으며 대체적으로 화려한 성당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교회 박 광장의 오른편에는 예수회 대학이 있는데 이 대학에서는 옛부터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계속 두브로브니크의 여행은 최종회까지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