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럽 대륙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5개국의 6월 구매관리지수(PMI)가 5년 만에 처을으로 위축된 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에 육박했다. 이에따라 유럽 경제가 성장은 둔회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다임스(FT) 등 외신이 보도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인상)의 합성어다. 다음달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던 유럽 중앙은행도 고물가와 저성장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유로존(PMI)는 5월 51.1에서 이달 49.5로 떨어졌다. 이는 2003년 7월 이후 5년만에 처음으로 기준점인 50을 밑돈 것이다. PMI는 경기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경제지표. 지수가 50을 넘어서면 경기 확장, 밑돌면 경기 위축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만큼 유로존의 경기 침체 염려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신들은 "고유가로 촉발된 물가 급등 현상이 유럽 경제를 강타했다"고 분석했다. 유로존 최대 경재국인 독일의 PMI는 53.7로 3개월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독일 민간 경제연구소인 이포(Ifo)가 발표한 기업신뢰지수도 지난달 103.5에서 이달 101.3으로 하락했다. 이는 2005년 12월 이래 최저치다.
한스 베르너 진 이포경제연구소 소장은 "유가 급등이 독일 경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유럽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프랑스의 6월 PMI는 49.2로 지난 5년 이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다수 전문가들이 유로존 경제가 올 3분기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보도했다. 닉 매슈스 바클레이스개피털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PMI와 독일 기업신뢰지수는 유로존의 경기 둔화 양상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 16년 이래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 이는 ECB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수준. 유로존은 고유가 영향으로 향후 몇 달 내 물가 상승률이 4%대 마저 돌파할 것으로 전망돼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유로존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염려가 커지면서 다음달 3일 금리 결정 회의를 앞둔 ECB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총재는 그동안 물가와 임금 상승 압력이 거세지자 다음달 금리를 0.2%포인트 올려 긴축정책에 나설 것을 시사해 왔다.
하지만 이번 지표 발표로 물가뿐아니라 유럽 경기 위축에 대한 염려마저 고조되면서 ECB가 섣불리 금리 인상에 나서기 어렵게 됐다. 물가를 잡기 위해 단행한 금리 인상이 가뜩이나 위축된 유럽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경기 침체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의 자크 카일루 이코노미스트는 "7월에 ECB가 금리를 올린다면 유로존 성장에 예기치 못한 위험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FT도 ECB가 금리를 올려 긴축정책을 편다면 PMI는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ECB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자 유로존의 투자심리가 냉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