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의 음본세-9
복합과 전문의 사이
정 두 환 (문화유목집단동행 예술감독)
재한유엔기념공원(UN Memorial Cemetery In Korea)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로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곳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이곳은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세계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을 영원히 추모하는 자리이다. 또한 이어지는 글에서 유엔총회의 결의문 제 977(X) 호가 채택되어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재한 국제연합 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를 위한 유엔과 대한민국간의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였다는 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이후 일대에는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 대연수목전시관, 유엔조각공원, 유엔평화기념과,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 각각 전문적 영역에서 추모과 전시, 교육, 역사, 문화예술공연 등 다양한 전문적인 공간들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유엔기념공원이 조성된지 72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 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이유가 발생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에 다양한 공간들이 시기를 달리하고 들어선 지역을 2028년에 세계평화문화공원이라는 이름의 시민친화형 도시공원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월드엑스포 유치활동 과정에서 장소의 재정비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다”고 이야기하였다. 재정비를 통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더욱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에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모두가 찬성하며 환영한다. 더욱 발전적인 것과 우려되는 점을 필자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유엔공원 일대를 세계평화문화공원으로의 변화를 위하여 각자 공간이 지니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면서도 이름을 큰 틀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였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유엔기념공원을 축으로 역사관(부산박물관), 화합관(부산문화회관), 자유관(일제강제동원역사관), 평화관(유엔평화기념관), 기억의 숲(대연수목전시관, 유엔조각공원) 등 각각의 네이밍(naming)을 새롭게하여 전체를 자유의 광장으로 이야기 하면 어떻겠는가?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자유를 위하여 세계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었고, 자유를 지키는 길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며, 자유의 몸부림을 억압한 것이 강제 동원이라는 힘의 논리를 내세웠으니, 유엔기념공원 일대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각 공간의 이름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박물관을 역사관으로 하는 이유는 부산의 역사와 존재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찾자는 것이며, 부산문화회관이 화합관인 이유는 예술은 정치와 이념을 넘어서는 인류의 유산이다. 이를 실현하고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각 분야의 전문 예술가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며 관객과 화합하고 나아가 세계와 화합하는 현장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자유관으로 하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자유를 힘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개인의 자유, 민족의 자유, 시대의 자유, 역사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간 것을 추념하는 곳이기에 자유를 향한 외침의 장소로 이야기한다. 평화관인 유엔평화기념관은 자유를 앗아간 전쟁을 맞아 평화를 찾고자 목숨을 걸었던 세계인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이들에게 평화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행동의 현장이요 평화를 위한 목숨의 현장인 곳이다. 기억의 숲으로 크게 이어가길 원하는 의미에서 대연수목전시관과 유엔조각공원을 이름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이야기한 <7,000그루의 떡갈나무와 현무암> 프로젝트를 하였던 마음이다. 변화하지 않는 현무암과 성장해 가는 떡갈나무를 통해 변화와 변해서는 않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마음 말이다.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을 발전 변화시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이곳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주변 일대와 작게는 남구와 부산시며 나아가서는 대한민국과 세계를 향한 외침이자 선언이다.
둘째, 각 공간의 전문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기념, 전시, 교육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중심을 두고 각각의 공간은 특징을 찾겠지만, 각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이념, 존재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구팀이 가동되어야 하며, 또한 이 연구팀들이 따로 또 같이 서로의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유기적으로 화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세계 유일한 공원의 상징성을 필두로 자유와 평화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하게 펼쳐 놓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복합’이라는 단어다. 특히 공연장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 ‘복합’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보면 무엇을 해도 부족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시대는 이미 전문 공연장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복합문화공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부산에도 순수공연예술 전문 공연장인 국제아트센터가 2025년이면 완공된다. 그러니 순수예술공연은 국제아트센터에서 부산문화회관은 복합문화공연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인구 300만이 넘는 도시에 순수예술공연장이 과연 몇 개 필요할까? 관련분야 대학도 폐과가 되는 실정이니 한 두개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부산의 문화 수준은 영원히 문화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순수예술은 단순하게 예술 분야만으로 해석되면 안된다. 사람의 인성과 사회성 그리고 범죄 예방 효과와 사회 친화력까지 다양하게 점검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닮고 싶어하는 나라들을 보라 하나같이 문화예술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와 행정이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다양성이 좋을 수도 있다. 기회를 다양하게 주는 듯하며, 성과물을 펼치기도 좋으니 말이다. 이 다양성을 위한 ‘복합’이라는 단어가 정치와 행정에서는 매우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변화해가는 것을 변하지 않거나, 조금 더 느리게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다.
셋째, 하나뿐인 ‘세계평화문화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조성공원 주변 개인의 재산권과 관련된 일이기에 매우 조심스럽지만, 세계평화문화공원이 세계를 향해 더욱 크게 펼쳐지거나 확대되기 위해서는 일부 규제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주변 지역의 규제를 해제하기 시작하면 끝내는 공원 일대가 거대한 아파트 빌딩 숲에 갇히는 형국이 된다. 이제 부산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구 절벽의 시대에도 끝없이 펼쳐지는 아파트 숲이 도시를 가로세로로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유와 평화는 개개인의 자유와 평화를 기반으로 한다. 즉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부 상업적 논리에 사람들이 휩쓸린다면 이것을 계도하는 것 또한 행적기관의 역할이기도 한 것이다.
“복합과 전문의 사이”에는 수많은 명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복합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이 모여 다양한 복합적인 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복합이라 명명하고 2% 부족한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시대 발전이 최우선을 차지하던 시대의 산물인 복합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는 발상을 이제는 지워야 한다. 다양성이란 전문화된 것들이 다양하게 모여있는 것이며, 예술과 문화를 소수층들의 전유물이 아닌 다수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기 하기보다는 기회의 다양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이 기회의 다양성은 문화예술 산업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시민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다. 선택은 시민 각자의 몫이며, 이를 더욱 체계적으로 준비해주는 것은 전문가와 전문집단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부산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길. 이 길은 부산을 더욱 부산답게 만드는 것이며, 이러한 일은 부산의 역사성과 정체성에서 발견하여야 한다. 부산의 발전은 몇 단계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도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지켜야 할 것을 지켜가면서 점진적인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부산시는 그려야 할 것이다. 부산을 더 이상 ‘문화불모지’로 만들지 말고 ‘문화노다지’로 그려야 한다. 부산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문화노다지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부산의 자연적 환경과 지리적 조건, 사회기반 구성이나 인구분포 등 다양한 측면이 보면 볼수록 부산은 매력적인 도시다. 우리 부산의 아름다움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복합적인 도시가 아닌, 전문적인 요소들이 다양하게 펼쳐진 도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