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그가 지구를 떠났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던 중 천문학자들이 발견했다는 고향 클립톤을 찾아 간다며 홀연 사라져 버린 것이다.
S학교의 C교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뒤꽁무니에 머문 시선 하나를 느낀다. 거기에는 업무와 상관없는 주식거래를 반나절 째 하고 있는 팀장이 앉아 있었다. 그 순간 그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왜 궁금하게 여겼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짐을 싸고 회사를 나왔다. 그는 청소년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기자로 있으면서 청소년 기자단과 가끔 만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바라는 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드디어 대안학교의 길잡이 교사로 변신했다. 아이들과 사회학습자원을 연결하는 네트워커, 긴 여행의 가이드, 영상작업자, 친절한 인생의 상담자, 학교의 재원을 확보하는 펀드레이저, 맞춤법에서 띄어쓰기까지를 일일이 가르치는 글쓰기 지도자, 캠프의 기획 진행자, 행정담당자 등등... 그야말로 그가 하는 일은 그때부터 경계가 없어졌다. 더 나아가 부모마저 포기해버린 아이의 엄마노릇은 그의 능력이 더 이상의 한계가 없음을 알려준다. 학교가 자기 몸에 맞지 않아 기존 학교를 그만 둔 아이들 하나하나의 특성과 바람에 맞추며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학교가 되어버린 작은 학교의 길잡이교사들 대부분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C교사처럼 변신하기를 반복하며 울트라 슈퍼 능력을 발휘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자기는 사람냄새가 그리웠다던 H학교의 B교사도, 청소년들과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삶을 찐하게 나누고 싶어 청소년단체 활동을 접고 길잡이교사가 된 G학교의 Y교사도, 잘나가는 극단의 배우로 활동하던 N학교 T교사도 모두 대단한 변신장이다. 이들은 출신배경이 너무 제각각이어서인지 잘 변신한다는 것 외에 공통된 특징이 의외로 없지만 대부분의 큰 조직, 그러한 의미에서의 제도권 학교의 교사들 대부분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획일화된 잣대에 아이의 수준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위기는 있다. 가끔 “대안학교교사가 되길 잘 한 거 같아요. 주위에 경조사가 없고, 연애하거나 결혼할 생각도 없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겠다거나 두어 달에 한 번쯤 가족여행을 꿈꾸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하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G학교의 P교사가 꿈에 나타나고 나면, 그들은 어김없이 가슴을 앓곤 한다.
Y학교의 C교사는 대학시절 선배를 따라 당시 검정고시 위주의 야학을 하고 있던 지금의 학교에서 교사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때는 IMF로 국가의 기반자체가 흔들리던 1999년이었고, 전국에 탈학교청소년이 한해에만 8만 명에 이르고 있을 때였다. 십대 청소년에서 만학의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검정고시 중심으로 야학을 운영하던 어느 날 그녀와 동료들은 “지금 이 모습으로 있어야 하나”란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검정고시조차도 배우기 힘들었던 시대는 지나고, 거리에는 검정고시반 모집이라는 학원들의 전단지가 전봇대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지역에 야학이 있어 배움의 한을 조금이라도 빨리 풀 수 있었던 어르신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와 동료들에게는 왕따, 학교부적응 등 학교가 몸에 맞지 않아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십대들의 삶이 더 싸하게 다가왔다.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하여 저녁 10시에 하교하는 통제된 스케줄이 학교를 그만두자마자 해제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스케줄을 세워본 적 없는 적 십대들은 더 이상 갈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이들에게는 학교를 다니면서 체득해버린 타율적 규율로부터 몸을 깨워 자기주도적 학습의 방식을 익히기까지 배움터뿐 아니라 놀이터와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돌봄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거듭하며 드디어 청소년 야학으로 탈바꿈한 이 공간에서 그녀를 포함한 교사들은 지역 곳곳을 훑으면서 배움과 돌봄이 필요한 학교 밖 아이들을 찾아내고 초대하며 생활전반을 함께 나누는 길잡이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은 점점 신났다. 하지만 길잡이 교사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행정에, 수업에, 기획에, 펀드레이징에 해야 일들은 산더미로 쌓여가는 데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헤매며 지쳐갔다. 거기에 더해 교육의 상이 다른 동료들과 나빠진 팀워크는 그녀를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갔다. 어느 날 자신의 뒤꽁무니에서 시선을 느끼는 순간, 회사를 그만두고 대안학교 교사가 된 S학교의 C교사와는 달리, 선배 따라 왔다가 대안학교의 길잡이교사가 된 그녀는 자신의 삶과 행복에 대해 그제야 회의(懷疑)하게 되고 처음으로 학교와 아이들로부터 마음이 떠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천문학자들이 발견했다는 고향 클립톤을 찾아 지구를 떠났던 슈퍼맨이 돌아왔다. 수정조각에 새겨진 아버지(말론브란도)의 음성을 스승으로 삼으며 슈퍼맨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지구인들 곁으로 돌아왔다. 방황하던 그녀 곁으로 별이 내려와 “너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라고 변하는 사람이란 걸 생각해”, 그러니 “너는 항상 그 자리에 서서 너의 것을 주려고만 말고 스스로 변하고 성장하겠다는 욕심을 가져라”며 충고했다. 별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인생의 멘토로 삼을 만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지혜를 나눠가지게 되자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동료들과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더 크고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과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안학교 길잡이교사를 생각할 때면 무너져 내리는 지구 심층에서 지표를 떠받치고 시간을 거슬러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살려놓는 슈퍼맨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도대체 이 보석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이 정확히 어느 별에서 왔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클립토나이트처럼 가끔 그들의 울트라 슈퍼한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고민’이나 ‘교사의 성장이 오롯이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문화 속에서의 외로움’으로부터 짐작할 수는 있다. 그들의 고향별에서는 타인과 더불어 열심히 사는 게 기쁨이었고, 그로인해 먹고사는 문제가 위태로워져 본 적은 없을 것이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축복하고 격려하는 멘토로서의 삶을 꾸리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돌아온 슈퍼맨의 아들이 클립토나이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인류로 자라나듯, 이들이 돌보는 아이들은 서로를 돌볼 줄 알고, 협력하는 방법을 알고,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이 열심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삶이 먹고사는 문제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되는 시대의 시민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것 역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첫댓글 힘나는 글
글자 빽빽해. 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