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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5.
8시에 출발한 오늘은, 미륵사지 건너편 익산교회와 환영슈퍼 사이 골목을 통해
미륵초등학교를 지나는 시작이다.
지나는 석교마을, 주황마을들은 정지용의 황토내음이 피어오를 듯한 향수를 불러온다.
원불교 사회복지시설인 삼정원을 지나며
한겨울을 날 김치담그기를 하는 바쁜 일손들과 따뜻한 아침인사를 나눈다.
삼정원은 원불교의 이념인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들자는
좌산 종법사님의 유시를 받들어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복지대상자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 주기위해
자주적 ,자립적, 자활력을 갖게 하여
더불어 사는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원불교 이념실현의 장이다 .
미륵산장 앞 솔밭길과 논두렁길을 건너면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연동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이 그 옛날 서동이 태어난 설화속의 마을이다.
그러나 이 마을은 삼국유사 무왕조의 그 유명한 설화의 현장인데도
전혀 그런 표정이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서동의 어머니에게 서동을 잉태하게 했다는 용이 나왔었다는
용새암(마룡지)은 7, 8년 전부터 논으로 메꾸어져 있다는 허망함을 들었다.
큰길을 건너 현대주유소 앞에 오니 검은구름이 몰려오며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미처 비옷을 준비치 못했는데
감사하게도 김장 뒷정리를 하는 아주머니들께서 사이즈 넉넉한 김장비닐을 주셔
배낭위로 씌워주시는 친절함을 주신다.
이때 이진식 강동암 선생님께서
비옷준비 안되었으면 우산이나 비옷사다 주시겠다고 전화를 또 주신다.
그 골목 몇 걸음을 나오니, 아네스님이혹시나 내가 비맞을까 염려하여
어느 비닐 하우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비닐 하우스에서 김장하시는 어르신들이
비 피하고 가라며 부득부득 비닐 하우스에 우리들을 델고 들어가셔
지금 막 담는 배추김치를 찢어, 그 위에 볶은 깨를 뿌려
삶은 수육과 함께 먹고 길 떠나라며 따뜻한 인정을 베푸신다.
비를 맞으며 내리 구기교 덕기교 창평교 옥용교 화평교를 지나 신평리를 지나니 1시이다.
가는 길엔 식당이 없어 마을로 내려갔다 돌아오기엔 갈길이 멀고
두어시간 전에 김장도 얻어먹었기에....
이틀째 배낭안에 눌려있던 식빵과 아네스님 가져오신 마지막 사과를 먹었다.
우리가 작은 수로를 따라가는 둑길은 천지가 붉은 갈대밭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느림보 달팽이를 따르는 순례길이란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자신의 집인 우주를 지고 이고
인생의 의미도 영적인 가치도 더불어 찾으며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해 걷는 11월 말경. 현재 순례길의 상황은
하루 30km 가까운 거리를 하루에 가야하고 해가 일찍 저물기에 느리게 걸을 순 없다.
머지않아 이 길이 정비되며, 중간마다에 머무를 숙소가 생겨 선택케 될 것이다.
갈대수풀 사이를 걸어갈 제, 저 새가 나를 꼭 인도해 주는 길잡이 같아 참으로 신기하다.
얼만큼을 날아가 앉아 있다가는, 내가 가까이 가면 다시 날아가곤 한다.
더러는 푸석푸석한 흙 길을, 또는 붉은 갈색 띄는 갈대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길 위의 여행을 한다.
걸으며, 내 마음집중과 단순함으로
내면에 사랑이 솟아나며 내 여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가장 중요한 것들은, 근사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눈을 맞추고 어루만지는 순간...
지극히 세심하고 애정어린 태도로 함께 있던 순간들이다.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자애로움이, 내 삶에 넘치는 이런 순간들이
마음과 함께하는 길을 위한 디딤돌이겠지....
걷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의 길을 더듬어가는 작업이리라.
내가 살기위해 선택한 지금의 길이 참된 길인가?
나에게 자애심이 충만하기를.....
내가 정신적으로 평안하기를.....
내가 육체적으로 건강하기를....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억새 밭길을 헤치고 나오니 익산천이 만경강과 합쳐지는데
강둑의 폭은 넓은데도 강폭은 갈수록 좁아지며 끝없이 펼쳐진 만경평야가 나온다.
강둑에 늘어선 가로수로 심은 산사나무엔 빨간 열매 가득한 아름다운 가을풍경 연출이다.
산사나무의 열매가 붉게 익어가면 가을이 한층 무르익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올망졸망 서로 아름다움을 자랑이라도 하듯
새싹 올라오는 싱그러운 보리밭을 배경으로 매달린
고운 빛깔위에 내린 가을비로 말끔한 산사의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한없이 이어지는 갈대 숲길을 걸으며 자루해질 즈음
아네스님이 꺼내 부르는 고운 성가는 우리들의 영혼에 고요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해가 뉘엿해지는 가을 들판은, 타작 후의 밀레의 만종을 기억나게 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추수한 논 위에, 내 그림자가 비추이기 시작할 시간인 5시 즈음에
드디어,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초남이 성지에 도착한다.
초남이 성지는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류항검의 생가 터가 자리한 곳이다.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된 윤지충과 함께 호남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초대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 유항검이다.
또 그의 아들 류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 이들 동정 부부는
1797년 혼배 후 1801년 치명할 때까지 4년간 이곳에서 동정 생활을 했다.
윤지충과 이종 사촌간, 권상연과는 외종 사촌간이 되는 류항검은
전주 초남리에서 높은 덕망과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많은 재산과 후덕한 인품으로 인근의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대부분 양반의 길이 그러하듯이 그는 과거 급제를 목표로 학업에 정진했다.
그러던 류항검은 어머니 권씨를 통해
권철신과 사촌인 윤지충을 통해, 천주교 교리를 접할 수 있었다.
천주교 교리의 오묘한 진리를 받아들인 그는 마침내 권일신을 대부로 하고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1786년 봄, 조선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이자 가성직 제도를 설정한 이승훈에 의해
권일신, 홍낙민, 최창현, 이존창 등과 함께 신부로 임명된다.
그러던 중 1787년 그는 가성직 제도의 부당성을 깨닫고
이승훈에게 그 시정을 요청하는 한편
북경에 밀사를 보내어 오류를 범한 가성직 제도에 대해 정죄했다.
또한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류항검의 초청으로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주 신부는 그의 집에 머물며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하는 등 교리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이 때 그의 아들 류중철은 첫영성체를 하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의 회오리는 이곳 초남리에 거세게 불어 닥쳤다.
'사학의 괴수'로 낙인 찍힌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됐다.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했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대역 부도의 죄를 적용해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자르는 능지처참 형을 언도받는다.
그리하여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참수되는데 이 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그리고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 며느리 이순이,
둘째 아들 유문석, 동생 유관검 등
그의 모든 일가 친척들이 처형되고 나이 어린 세 자녀는 유배되는 등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동시에 그들의 가산은 적몰되고 초남리의 집에는 ‘파가저택’이라는 연못이 만들어졌다.
그들의 순교로 전주 남문 밖은 다시 한 번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게 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일꾼들과 신자들이 거두어
백사발에 각각 이름을 적어놓고 김제군 제남리에 가매장했는데
지금은 전주 치명자산 성지에 모셔져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 루갈다의 옥중편지 -
어머니 문안 아뢰옵니다.
소녀가 시댁에 들어오는 날, 우리 내외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동안을 형매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감이 몇번 있어 거의 열 번이나 무너질 뻔 하였사오나,
공경하올 성혈공로로 악마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
이런 말씀을 아뢰옵는 것은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 함이오니
이 글월을 받으실 때 소녀의 얼굴을 대하심같이 받으옵소서.
신유 9월 27일
이순이 루갈다는 이씨 왕족이다.
주문모 신부님이 조선에 와서 처음 미사를 드리는데, 그 때 루갈다는 13살이다.
루갈다가 너무 어려서 성체를 모실 수 없다고 하자,
3일 동안 단식을 하며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문모 신부님이 루갈다와 면담을 했는데 성모님처럼 동정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왕족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동정생활을 반대했으나
루갈다의 동정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알게 되었기에
호남의 류항검 집에 머무르며
또한 동정부부로 살겠다는 류중철 요한의 입장을 알게 되어 짝을 맺어주었다.
이순이 루갈다 순교자가 요즈음에 태어났다면
수녀원에 들어갈 결심을 한 상태에서 그 당시 결혼풍습에 따라 혼인을 한 것이다.
수도자들의 3대 계명이 청빈, 순결, 복종이니,
비록 그 시대상황이 허락지를 않아 수도자의 길을 걷지 못하지만,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계명과 자신을 봉헌했다.
류중철 요한은 부친의 체포 직후, 체포되어 전주 감영의 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동정 부인 이순이와 동생 문철을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은 노비가 되었다.
그 중에서 중철과 문철 형제는 전주 감영에서 옥사하였고,
이순이 또한 전주 숲정이로 끌려 나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이순이 루갈다는
세 어린 자식이 귀양간 생각을 하면서 불안과 슬픔에 잠겨 있는
시어머니를 격려하고 권고하였다.
시어머니가 다시 천주님께 대한 신뢰를 갖도록, 용기를 되살려 주었고,
그의 마음을 이 세상에서 떼어 내,
이제 문이 열리려 하는 천국으로 돌리게 할 줄을 알았다.
망나니가 관례대로 그들이 옷을 벗기려 하자,
루갈다는 매우 정숙하고 품위있는 몇 마디 말로 그를 물리치고 나서
스스로 웃옷을 벗고 손을 묶지 못하게 한 채
맨 먼저 조용히 자신의 머리를 칼날 아래 놓았다.
(샤를르 달레, "한국 천주교회사" 상, 554면).
훗날 다블뤼 주교가 순교자 전기에서 표현한 것처럼,
루갈다의 마지막 증언과 순교 모습은
"모든 조선의 순교자 중에서 우뚝 솟아난 하나의 아름다운 진주" 이다.
은퇴하신 김환철 스테파노, 노신부님의 노고와 따뜻함에 감사를 드린다.
스테파노 신부님은 순례문화 연구원의 이진식 강동암 선생님의 오전 방문으로,
우리들이 5시쯤 도착할 신자들이란 메시지를 받고
그날따라 몸이 불편해 병원가신 수녀님,
앞동네 신자댁 김장한다고 품앗이나간 마리아 자매님을 대신해
류중철 순교자 생가터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점심 먹을 데가 딱히 없어 식빵으로 떼웠다는 말씀에 라면을 보내주신다더니
조금 있다가는 김장하고 돌아오신 마리아 자매님과 함께
차를 가지고 시내나가 우거지 해장국을 주신다.
그리곤 아침 7시 30분에 우리를 위해 경당에서 미사를 주신다 한다.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며 맡은바 주어진 직분을 사시고
은퇴 후 10년 동안 초남이 성지에 들어와 순교자의 삶을 살고 계신다.
따뜻함, 정다움, 배려, 여유, 친근감, 사랑이 넘치는 신부님의 노년이 아름답다.
첫댓글 알 수 없는 설레임을 느낍니다..동행하고픈 마음이 지나친 욕심인가요? ....주말에 가실때 저 좀 데리고 가세요
참 좋아 보이는 길이고, 그 길을 걷는 두 분 순례자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억새가 억수로 흐드러진 만경강둑길을 다리가 불편하신 분을 안내하며 걸었던 기억이 새롭고, 40일 전국도보순례단 유님폼인 빨간 베레모를 지난 3월 도보순례 때에 김환철신부님께 선물로 드렸는데 그 모자를 쓰고 나오신 모습이 더욱 자애로워 보입니다.
느림의 길이라 달팽이가 상징의 표시로 그려진 것이군요^^*^^ 천천히 자신을 곰씹으면서 명상의 길이 되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보아미님은 이 길을 걸은 후 더욱 성숙된 삶을 살아내실 것 같군요^^*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운 보아미언니의 모습과 성가를 부르며 걷는 신실한 아녜스언니의 모습에 감동의 물결이 느껴집니다~~*^^* 언니의 순례길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난 가을날 아름다운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녜스님을 그림과 글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니, 이렇게 멋진 여인이었구나 새삼 놀랍기만 합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초행길을 거닐며, 또 돌아와서 다시 그림과 글로 정리하며 돌아보는 순례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네요. 뭉클뭉클 감동 한아름 안고 나갑니다. 언젠가 저 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하면서요... ^^
순례 후기를 읽고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도록 도와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항상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새로운 용기가 나는군요. 4월이 기다려집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 초창기 얼마나 어려운 삶이었을까, 하는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과 사진입니다. 이렇게 보고 다시 걷게 되면 정말 더욱 값진 순례길이 될 것 같습니다.
성가를 부르며 걸어가는 아네스님의 모습과 보아미님의 글에서 참으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 느껴집니다.
두 분 덕분에 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감사합니다..
참 아름다워라 순간 순간 연결되는 아름다운 순례길....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일차설명듣고 들어와서보니 더욱 실감나고 멋진일입니다. 살면서 맘은 수만번 걸어서 누릴수 있겠다 생각은 하지만 현실은 행동으로 옮기기가 싶지않은일들을 여유롭게 행함은 정말 정말 멋진 일인것같습니다...
갈대숲 안개숲 외가리떼 거기에 두분 언니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정말로감사히 감상 합니다~
아름답다는 말 외의 다른 표현이 필요할까요 순례길을 걷는 두분의 모습에서 거룩함이 보입니다.
비를맞아가며 날씨도 쌀쌀했을거고, 베낭무게도 만만찮을거고, 모든게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4월이 기다려집니다. 꼭 참석하고픈 순례길입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총 풍성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