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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면 펼쳐지는 끝없는 정원과 몇 채의 건물을 보곤 ‘이렇게 넓은 집도 있구나’라며 마냥 부러웠던 감정이, 몇 시간 후 집을 나설 즈음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많이 담긴 집도 있구나’라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신상호&한윤숙 부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가꿔온 전원 속의 집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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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예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홍대 미대 신상호 교수. 도예과 교수로 20여 년을 재직하다 미대 대학원장, 미대 학장을 역임하고, 작년 말 안식년을 맞아 개인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약도에 표기된 신상호 교수의 집 이름은 ‘부곡도방’. ‘장흥 부곡리에 있는 도방’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부곡리’ 또한 순 우리말로 ‘가마골’, 그러니까 조선시대 때 도자기 굽던 터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니 터에 서린 장인의 기운이 그를 이끌기라도 한 걸까. 서울에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부곡도방은 그 예스럽고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웅장하고 이국적인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신상호·한윤숙 부부가 이 땅을 구입한 것은 30년 전의 일이다. 돈도, 명예도 지금 같지 않던 신혼 초, 그들이 장흥으로 온 것은 자연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서울과 가까운 곳을 찾아서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가족의 역사가 숨쉬는 장흥 집은 이들 부부에겐 ‘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자 ‘일터’이자 노후까지 함께할 ‘영원한 안식처’다.
1_벽돌문 바깥의 햇살이 쏟아지는 이곳은 반쯤 흙에 묻혀 있던 바깥 공간이었다. 2년 전, 흙을 퍼내고 온실처럼 유리 천장을 만들어 또 다른 갤러리로 증축한 것. 신상호 교수 뒤쪽으로는 타일을 연상시키는 ‘Fired Painting’ 기법의 도자기 작품 ‘Field’(왼쪽)와 말을 연상시키는 조형물 ‘Dream of Africa’ 시리즈(오른쪽)가 전시되어 있다.
2_가족들이 생활하는 안채의 전경. 정원의 모든 꽃과 풀은 부인 한윤숙 씨가 직접 위치까지 지정해서 심은 것. 정면에 보이는 1층 창 안쪽이 거실이다. 3_갤러리에서 바라본 안채의 모습. 왼쪽에 얼핏 보이는 건물이 좌식으로 꾸며진 게스트 하우스다. 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도자기 조형물은 신상호 교수의 작품으로, 샤머니즘에 심취했을 때 만든 ‘토템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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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안채를 짓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부인 한윤숙 여사다. 홍대 도예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활자기 디자이너로 활동중인 그녀는 집 설계부터 작게는 가구와 그릇 디자인까지 일일이 관여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부실 배치. 일반적으로 거실을 넓게 쓰고 주방은 해 안 드는 구석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는 거실과 주방을 동등하게 분배하고, 집에서 볕이 제일 잘 드는 남동향에 주방을 배치한 것. 가족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문이나 창문 크기도 다 달리했다. 장흥은 서울보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집을 남서향으로 앉혀 온종일 햇살이 들어오도록 했고, 다른 주택보다 벽을 두껍게 쌓고 천장을 낮춰 따뜻한 공기가 집 전체에 오래 머물도록 했다. 집주인의 세심한 설계 덕분에 겨울에도 아침저녁으로만 보일러를 틀 정도로 따뜻한 주택이 된 셈이다.
거실 안쪽에서 정원 쪽을 바라본 모습. 이 집 거실에는 소파도 TV도 없다. 대신 커다란 두 개의 테이블 사이에 좌식 차상을 놓아 차분하면서도 편한 분위기를 냈다. 또 벽을 가득 메운 신상호 교수의 아프리카 소장품과 드문드문 장식된 그의 작품이 눈을 심심치 않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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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를 하면서 딸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원 한가운데에 집이라 하기엔 너무 좁고 간이 화장실이라 하기엔 너무 예쁜,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그것의 정체는 어린 시절, 딸들을 위해 지은 오두막이었다. 들 부부는 “우리집은 원시시대”라고 말한다. 필요하면 재료를 찾아보고 직접 다 만들어 써왔기 때문. 오두막만 해도 그렇고,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을 보고선 기왓장을 깨뜨려 공기를 만들어 쓸 정도였다. 장아찌도 직접 담가 먹고 야채도 키워 먹는다. 필요하면 만들어 쓰고, 그러다 보면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고, 그게 발전하면 결국 예술이 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다 잊어버려 아쉽다고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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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서 나와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유리 장식의 모던한 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의 1층은 신상호 교수의 작품들을 전시한 개인 갤러리로, 2층은 그의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정원에 있는 작품도 그렇고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도예’와는 꽤 다르게 느껴진다. 예술가는 작업에 임하기 전까지 생각하는 과정이 더 긴 법인데 이 집은 혼자 거닐며 생각하기에 딱 좋다. 집 앞뒤로 가로막는 것도 없고, 공기 좋고, 무슨 짓을 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이곳은 ‘감옥’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임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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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을 세워 해가 질 무렵까지 따스한 햇살이 드는 갤러리 1층 입구. 저 멀리 보이는 작품은 신상호 교수의 ‘Dream of Africa’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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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갤러리 2층은 ‘크레이아크 김해 박물관’ 프로젝트 팀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신상호 교수는 ‘Fired Painitng’으로 외벽을 감싸게 될 이 건물에 거는 기대가 크다. ‘Fired Painting’은 벽에 붙이지 않고 걸 수도 있는데, 외벽을 따라 작품을 걸어뒀다가 지겨우면 위치를 바꿔 걸어 옷을 갈아입힐 수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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