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서울에 올라와서 정착하면서 살게된 곳은 부모님이 시골서 올라오시기 쉽게 하기위해서
고속터미날에서 가까운 잠원동에서 살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기몇년전부터 냉담상태인지라 저에게는 아주 어려운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비용이 적게드는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으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서울역에 아침출근시각이 8시인데 출근버스는 집근처서 7시경이 출발했었지요
저는 냉담을 풀기위해서 몇달동안 신부님과의 새벽평일미사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일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지요
신부님이 주신 아침 점심 저녁기도도 받치기도 하였지요
다행인지 그무렵 견진교리가 준비되어서
김남수주교님이 계실때에 견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그때 갑짝스럽게 대부를 반장이 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견진대부와는 소식이 끊어져있습니다
우연히 알게된 컴퓨터통신 모임인 하늘나라를 통하여
망원동에 있는 마리아니스트라는 수도공동체를 만나게되고
제가 다시 서울로 이사가게되고 그곳 성당에서 레지오를 할때에 부평에 있는 같은 수도원에서 피정을 드리게되고
성모신심세미나는 본당에서 하게되는데 그 수도원 수사님이 오셔서 해주신 큰 감명을 맛보았지요
그 모임을 통해서 청년성서모임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때 봉사자는 대학교2학년이고 나이는 21세이고 저는 38세였지요
성서모임을 6개월하고나면 2박3일의 피정을 해야만 그 과정이 끝나게되는데
아마도 봉사자가 나이든 제가 피정에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느낀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를 피정신청하면서 피정지도신부님께 여러차례 잘 돌봐주시라고 부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피정의 장소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원이였고 그 위치는 정릉언덕길위에 있었지요
정능정수장에서 버스를 내려서 언덕길을 올라가면
승용차가 지나가면서 빵빵거립니다 봉사자 수녀님 그리고 신부님이 탄 차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아는척합니다
피정중 휴식시간에 신부님이 따로불러서 여러가지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수도원에서 지도수녀님도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가을 10월인지라 수녀원안에 있는 나무는 단풍이 들고 바닥은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피정이후에도 몇차례 혜화동에 있는 사제관에 몇번 찾아뵙게되고
친하게 되었지요
해서 결국은 여의도를 주심으로하는 직장인 모임반을 따로 구성하고 몇달동안 그들만의 피정을 위해서
프로그램도 짜고 직접 묵상나눔도 해보기도 하고 피정에 참여해서 그룹원과 나눔도 했었지요
아침6시에 일어나고 10시무렵에 취침하는 피정참가자에 비해 30분일찍일어나 준비하고
뒷정리다하고 30분늦게 취침하는 아주 빠듯한 일정을 보냈지요
끝나는 집에 들어오면 완전 녹초가 되었던것이지요
나중에 십년이 지나고 과거 자료를 정리해보면 그때에 쌓은 힘으로 내가 지금
신앙생활하고있구나 하는 그런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몇명서 수사님이 경당에서 커다란 십자가를 바닥에 눕히고
주변에 불붙은 초를 몇게 준비해두고 그 주위에 앉아 기도를 드립니다
신부님은 마포어느 골목안에 있는 수도원에 피정을 오셔서 끝내고 가기전에
저희를 그곳에 불러모으십니다 그곳에서 단 몇명이 주고받고하면서 미사를 드립니다
신부님이 저희와 같이 미사를 드리고싶다고 하셨습니다
큰길가까지 버스를 타고가서 골목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 만난 신부님과 재회
큰 감격이었습니다 광주교구신부님이 서울까지 올라오신것이고요
그리고 한강성당에서 갑짜기 신부님께서 연락을 하십니다
그곳에서 안중근의사 기념미사를 한다고해서 갔지요 미사에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이 참여하셨고
저희와 같은 평신도은 몇안되었지요 미사이후에 이동해서 홍대근처의 성닫으로가고 그곳에 있는 어느식당에 모여
같이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나고요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한국통신해직자문제로 촛불시위로 전국신부님들이 다 명동성당에 모일떄에도
연락이 와서 신부님을 뵈러 명동성당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납니다
모든일이 있을때마다 본당일은 누구에게 맡겨주고 성우로 올라오시면 저희를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부님이되신 예수회수사님, 마리아니스트수사님 성바오로수녀회 수녀님 성바오로회신부님
영원한도움의 성모회 수녀님 그리고 그당시 청년성서모임의 지도신부님과 보좌신부님을 비롯해서
강남권에 있는 보좌신부님들의 큰도움을 받은것을 그리워합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