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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Teamwork이 깨지면?
영화 '오블리비언'을 보면서
"또 컴퓨터 중앙본부의 인간 지배 이야기야?" 했다.
'셀리' 라는 중앙 컴퓨터의 지시를 받으면서 톰 크루즈와
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한 'Teamwork'을 이루면서 명령을
실행하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부부로써 남자는 밖에서 드론을 고치는 일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네트워크로 남자를 도와준다.
영화에서 종종 셀리가 "오늘 Teamwork이 좋나요?" 라고 묻는다.
여자 요원은 항상 "네 물론이죠" "우리 Teamwork은 항상 좋아요"
라고 대답을 한다.
알고보니 그 'Teamwork'이 깨지는 날이
두 요원이 죽는 날이었다.
우리 현실에서는 '부부팀웍'이나 '가정팀웍'이 깨지면
'범죄자'가 키워지게 된다. 그리고 범죄가 범죄를 부른다.
'Teamwork'이 깨져서 그들이 죽는다고 일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생긴 다른 팀웍이 또 있다. 아주 많다.
그러면 창조주신께서 '팀웍'을 만들어 주신 것도 그럴까?
그렇다.
성경법에 어긋난 자들의 가정과 부부팀웍은 깨질
위험으로 치닫게 되는데, 완전 깨지기도 하고,
깨질려다 붙게도 되고, 깨졌다가 다시 붙기도 하고
별의별 상황들이 펼쳐진다. 이혼, 별거, 재혼.
이 팀웍이 일을 잘못해서 죽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팀웍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인생들 자체가 괴로워서 그렇지 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영화에서는 셀리가 있는 본부에 그 부부 두사람하고
똑같이 생긴 개체들이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영화처럼
똑 같지가 않고 무한하도록 다양한대?
우리 인간들이 볼 때나 전부 다르다고 보지
신께서 보실 때는 그냥 하나의 아담과 하와일 뿐이다.
거기서 파생된 인류다.
얼굴과 성격, 성품들이 섞어서 무한하도록 나온다.
■남자의 기도빨
창조주 신의 뜻에 의하여 깨질 뻔한 '팀웍'이
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가정이 그랬다.
우리는 남편이 조목조목 기도를 해서 내가 먼 곳에
있었어도 그쪽으로 끌려가서 결혼을 하게 된 케이스다.
나는 큰오빠와의 사이가 소닭보기 저리가라하게
안 좋은 사이로 큰오빠와 헤어지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나는 남자와의 관계가 속이 울렁증 있을 정도로
안 좋았는데 교회에서 만난 이 남자는 옆에
붙어있어도 속이 괜찮아서 결혼해 버렸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결혼해 버렸다.
생각해보면 큰 모험을 한 케이스다.
이상한 남자를 만났으면 내인생 개쪽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나는 기도하지 않았는데
니가 기도해서 끌려와 결혼했다고, 이 남자는
내 스타일에 해당되는 것이 1도 없다고,
내 파랑새는 다른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 때 내 주변에는 '불륜'이라는 것이 계속
다가왔는데, 떼내느라고 힘들 정도였다.
그러다 이혼까지 결심했는데...주께서 네 아들을
죽일 것이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남편에게 주셨다. 나한테 전하라는 메시지.
나는 신께 엄청 대들었다.
내가 잘못했으면 나를 죽이면 되지
왜 내 아들을 죽이냐고!
결국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혼하고 재혼하냐 하며
목숨걸고 이혼하지 않았다. 파랑새를 끊었다.
그리고 가슴이 크게 뻥 뚫어져버리는 경험을 했다.
남편하고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남편은 계속 기도를 했다.
나의 밖으로 나간 사랑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리고 정말 사랑의 화살표가 싸악 돌아서 남편에게로 향했다.
그 전에도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물질적으로 너무
힘들게 살다보니 이혼할 결심까지 하게 됐다.
지금은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이혼 어쩌구는 농담삼아 던진다.
둘이 마음의 상처가 1도 되지 않게 던지고 산다.
■가정·직장 '팀웍' 깨는 자
나는 어지간히 자아가 세고 자존심이 세고
'썩어도 준치' 라는 존심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면서
(물론 내 뒤에 빽으로 하나님아버지가 계시다는 자신감으로
버틴 것이다),
회사에서도 일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월급만 축낸다고 생각하면
구조조정 아닌 구조조정을 하게 만들었고, 회사 상사에게도 아부를
절대로 떨지 않는다는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내 뜻이 맞다고 생각하면 상사든 말든 굽히지 않고 대들었고,
"여기 아니면 갈데가 없냐?" 해가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뒷감당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라도 그 가정이나 직장이나
단체의 '팀웍'에 도움이 안 되는 행위를 하면 그 곳에서 짤리게도
하신다.
남을 함부로 쫓아내려고 하면 자기가 쫓겨나가고,
팀웍에 무관심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도
쫓겨 나가고, 남이 보지 않는다고 허튼짓을 많이 해도
쫓겨 나가고, 속과 겉이 너무 달라도 쫓겨나가고
회사는 망하게 되기도 한다.
■주께서 세운 '상전'
아무리 주께서 '회사 상전' '나라 상전' 들에게 범사에 순종하고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셔도, 그 '회사 상전' '나라 상전' 주께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루시퍼사탄이 세웠다고 믿으면 말짱 헛거다.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세상은 사탄이 다스린다고
가르쳐서 그렇다.
기독교인 상전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불신자 상전은 루시퍼사탄이
세웠다고 생각해도 말짱 헛거다. 아무 효력이 없다. 전혀 말씀대로
살기가 힘들다. 오히려 불신자 상전에게 대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짜피 그 사람 사탄이 세운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망하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께도 당당하게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내가(네가) 망한다.
개 상전이나 소 상전이나 전부 몽땅 오직 주께서 세우신다.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관리하신다.
참 뒤져보면 별 볼일 없는 여자였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자존감이
그리 센지…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교만하고 막무가내로 철부지나
개념상실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타인에게도 그런 평가를
받으면서 살고는 있었다.
■불신자 상전과 남편
신문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불신자'가 돈이 많아 신문사를 차리면서
사업을 하고, 나는 그 사람 밑에 직원으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왜 나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고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이면서 지옥에 가야 하는 사람인데 사장으로 있지?"
"나는 겨우 그 밑에 직원으로 있는데 왜 그래야만 하지?
"나는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사탄이 불신자를 축복해서 그런 것인가?"
"사탄이 하는 사업은 망해도 괜찮아, 나야 다른 곳에 가면 되지"
"하나님께서 다른 곳으로 또 보내주실거야"
“사탄이 하는 사업이 망하지도 않네?”
하는 의문 속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인 내가 하나님께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냐?
사업의 축복을 받았냐? 하면 아니다. 내가 일이 많아서 편집
아이들을 데리고 사업을 해볼까? 생각하면 그 후로 일거리가
줄어들고 돈이 없어지고 해서 "사업을 하지 말라나?" 하고
그만둔 적이 세 번 있고 나서 마음에서 접었다.
나 같은 사람은 사업가의 인격과 자질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산이시다. 사탄이 훼방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음이 충만한 사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앙생활
하는데 남편이 방해가 된다면 단호히 헤어져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강조를 해왔고,
낯가림이 심해서인지는 몰라도 교인이든 이웃이든 친해지기
어려웠고, 먼저 말을 거는 행위는 거의 없었고, 친하지 않으면
쌀쌀맞고, 친하면 무지 친하고, 내 스타일에 못 미치는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기분 나빠하고 싫어한다.
■사람이 팀웍을 깨면
그럴지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고 성실했던 것에
후한 점수를 받았는지 회사는 지금까지 상근해 달라는 요청에 의해서
불려 다니게 됐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편집부장이 됐고, 편집부국장이 됐고,
내 생각과 상관없이 전국부 국장겸 인사담당 이사가 됐고,
편집이사가 됐고, 편집국장 대행이 됐고,
성가대 지휘를 하게 됐고, 내 생각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잘 컸고, 2024년 현재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신문사에 다니고 있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악보 편집 편곡도 하고 있다.
https://cafe.daum.net/kwon0082/TP7f/9
그렇다고 기독교인으로서 불신자들을 정죄하는 것이나
이간질 하거나 험담하거나 쓸데없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뎃글을 달거나 악플을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럴지라도 어지간히도 나는 기독교적인 여자였다.
그렇게 교육 되어져 온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신앙의 철' 이라는 것이 들고 보니,
가정에서도 남편을 나의 의자보다 높은 곳에 놓고,
남편을 사랑하면서, 남편의 뜻을 잘 따르면서, 남편을 노엽게
하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면서, 자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노여움을 타지 않게 하면서, 가족이 행복하도록 유도하고,
가정이 천국 같도록 유도하면서 살아야 하며.
사회에서도 남들 사는 대로, 남들보다 더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참 좋은 사람이라고 더 칭찬받는 상태로, 불신자 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서, 아부 아닌 칭찬을 하면서,
고마워 하면서, 나를 회사에서 써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팀웍'을 잘 맞춰서 잘 사는 것이
주께서 원하시는 삶이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든, 가정이든, 사회든, 직장이든, 종교든, 단체든,
나라든 사람들이 '팀웍' 을 깨면 신께서도 그 '팀웍'을
깨뜨리시는 것을 깨달았다.
'팀웍'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
■시댁·친정 도구
'부부 팀웍'을 깨기 위해 '시어머니' 라는 도구와 '시댁 식구' 라는
도구가 등장을 하는데 왜 그런 상황이 올까? '친정도구'도 있다.
'핏줄' 이라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서 그런가?
부부가 깨지는 이유 중 1등이 '시어머니' 도구다.
정말 친정엄마 같이 사랑을 하면 괜찮을까?
이런 것이 영의세계의 말로 표현하면 '사탄'이 일어나
시어머니가 죄를 짓도록 사건을 만들고, 말을 만들고,
화를 충동질 하고, 부부를 이간질 시키고, 결과적으로는
부부가 혼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유하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시기 위해 사탄이 일어나 다윗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라고 충동질 한 것처럼.
그 일로 부부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고, 더 멀어지기도 하고,
싸우고, 폭력을 휘두르고, 그 것을 잘 참는다고 속으로 삭였다가
어느 순간 질병으로 와버릴 수가 있고, 못 참고 이혼해 버리는
상황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 죽을 수도 있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부부의 마음에 이물질로 끼는 것이다.
부부의 마음을 꺼칠꺼칠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시어머니가 부부 사이에 등장해서 부부 팀웍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를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뒤져보면 있을라나
모르겠지만 한국의 풍습으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효부상'을 받는 사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속 마음이 정말 어땠는지는
우리는 잘 모른다.
속 끓이지 않을 정도로 어거지라도 잘 참고 효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을 받는 것 같긴 한데.
(십계명 5:16)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조주신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아멘.
■딸에게 받은 교육
'고부간의 갈등' 이라는 단어가 부부팀웍을 갈라 놓는
지름길이다.
나도 곧 시어머니가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2020년 8월 추가글을 쓰는 현재 나도 시엄마가 됐다.
아들이 2018년 12월에 결혼했다.
나도 딸 집에 그냥 함부로 못가는 것이 서운했지만
매번 딸한테 교육을 단단히 받고 있다.
▲자녀 신혼집에 마음대로 가지 말 것.
▲가려면 꼭 자녀에게 전화하고 허락받고 갈 것.
▲이것 저것 해준다고 마음대로 하지 말 것.
▲이것 저것 준다고, 뭐 먹으러 오라고 하지 말 것.
▲자녀가 부부싸움한다고 끼어들지 말 것.
▲자녀가 부부싸움한다고 상대배우자 미워하지 말 것.
▲딸과 며느리 차별두지 말 것.
▲명절이나 엄마 아빠 생신날이나 인사차라도
한달에 한번 오는거 힘들면 오지말라 하지 말 것.
등등. 버릇 나쁘게 들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 교육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남편과 사이가 좋아서 자녀에게 놀아달라고
기대지 않고 있다.
나는 무슨 기념일을 지켜왔던 사람이 아니라
애들이 번거로운 일이 겹치면 오지말라고 한다.
딸에게는 시댁일부터 챙기라고 하고,
혼자돼 자녀 키우느라 고생하신 시엄마부터
챙기라고 하고,
아들에게는 아들 없이 딸만 둘인 처가집부터
챙기라고 하고 있다. 거짓말 보태서 매주
등산도 가고, 밥도 먹고, 시골도 가고
하는 것 같다.
서로 배우자와 다툰 이야기 같은 것을 해도
이상하게 사위도 나를 닮은 것 같고,
며느리도 나를 닮은 것 같아, 나를 보는 듯해서
뭐라 하지 않고 이해를 해주고 웃고 넘긴다.
우리집은 제사를 지내는 것도 없고,
명절이라고 해서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며느리가 집에 와서 손에 물 묻힐 일이 없다.
한달에 한번 정도 모여도 나가서 먹는다.
어쩌다 집에서 먹을 때면 설거지도 우리가 하지만
가끔 시켜도 아들시킨다.
며느리는 옆에서 보조정도 한다.
나는 좀 개방적이지만 남편이 보수적이라
보통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찾는다.
시엄마 시아버지가 설거지나 무언가
집안 일을 할 때 "어머님 제가 할께요"
"아버님 제가할께요" 정도…
그런 것도 나는 스트레스 받아서
"며느리로서 머 어쩌구 그런말 자꾸하면
집에서 절대로 음식 안 해먹고 무조건
나가서 먹을 것이며, 물도 종이컵으로
먹어서 설거지 할 일 없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는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건 아니지만
시 자 들어가는 시댁을 스트레스 받아했다.
제사 때나 명절이면 양장점을 했던 형님은
명절 전날까지 나가서 일을 하고,
나는 친하지도 않고 무섭게 생겼고 무서웠던
시엄마랑 명절 음식을 하는 것이 너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장이 굳어서 아플 정도로.
하루 전날 가서 음식 만들고 그날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머지 음식 만들고
차리고 제사대신 예배를 드리고 먹고.
그 정도지만, 그 전날밤 잠자리 떴다고
밤을 꼬박샜기 때문에 장이 굳어버린다.
내가 그때 다짐을 한 것이 "내가 시엄마만 되봐라
명절 음식같은 것은 절대로 안할 것이다" 했고
지금 그대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오히려 사위 며느리가 심심하다고 다같이 모여서
무언가라도 해먹어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내가 워낙 음식하는거며 살림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갸네들보다 내가 더 똥손이다.
■'시아버지'와 '고부간'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살림이든 무슨 일이든
아무 것도 안 해보고 결혼한 사람이라 그런지
살림에 있어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살림도 남편이 거의 해준다.
남편 수입보다 내 수입이 더 많아서 그런건지.
그런 것 같긴하다. 내가 상근도 하면서 프리로도
일을 하는데, 내가 일을 한다고 하면 살림이며
커피 타다주며, 물 떠다주며, 먹을 것 갖다주며,
외조를 잘한다.
하지만 일 없이 쉬는 날은 자기한테 무언가
내조를 해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럴지라도 내가 남편에게 해주는 것은
남편이 나에게 해주는 것보다 훨씬 못 미친다.
나는 결혼전에는 비리비리 했었는데 결혼 후
이상하게 내가 원치 않았는데도 사회로 나가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계속 하게 됐고,
프리로 일하다 상근하다, 상근하면서 프리도
겸하여 일하고 그랬다. 프리복이 항상 있었다.
내가 해보니 집에서 애기 키우고 살림 하는 것보다
돈 버는 것이 훨씬 좋았고 쉽다고 생각한다.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이 시어머니가
자기 남편에 대한 만족도가 현저하게 떨어질 때이다.
시어머니의 남자는 시아버지인 것이다.
그 시어머니가 자기 남편에게서, 남편으로나 남자로서의
만족감이 없으면 자기 아들에게서 그 만족감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남편이 못해준 것 아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만해지는데, 그 충만함의 수치가 높을수록
'고부간의 갈등' 치수도 높아진다.
하지만 자기 남편에게서 만족도가 충만하게 채워진
여자는 아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없어진다.
내가 현재 그렇다.
남편이 워낙 외조 200%라고 할 만큼 잘해주고,
오직 아내를 바라보고 아내를 위해주는 치수가
너무 높다보니 아들이 현저하게 못 미친다.
아들은 그래도 나가면 여친이 만족도 100%에 가까울 만큼의
치수라고 칭찬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센스 있다고 하고
주변까지 살펴서 일을 처리한다고 칭찬을 받고 산다고 하지만
집에서 아빠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빠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빠랑 비교당하고 산다.
아들이 아무리 장성했어도 해주는 것이 시답지 않다.
그래서 계속 남편을 부르게 된다.
아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없다.
■며느리의 직급
여러 시댁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관인 집도 많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전통과 사고방식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게 …
내 아들이 결혼전 엄마를 신경쓰게 했던 애도 아니고,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 귀찮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며느리라는 존재가 아들 밥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돌봐주고 걷어준다는데 세상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시집살이라는 것을 미치도록
시켜서 이혼시키고 패가망신 당하는 집도 많고,
손주 델구 가서 키우느라고 그 난리인지 모르겠다.
물론 손주? 고물고물하고 너무 너무 예쁘다.
그런데 지 부모들이 키우면서 잠깐 보는것 하고
이혼시키고 전적으로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99.9%가 시댁 아니면 친정 사건연루로 인해
이혼당하는 것을 본다. 정신들좀 차리자!.
그냥좀 시댁살림살이나 전통을 가르쳐야 한다고
몸살을 앓게 하지 말고 그냥 둘이만 살게 냅두자.
며느리의 직급이 높아져야 하는데 옛날 양반시대의
직급으로 그냥 있는 것 같다.
옛날 몸종들이 주인집 자녀들을 부를 때 도련님,
아가씨, 서방님 등등으로 부르지 않았나 싶다.
그 호칭을 며느리가 시댁 집안 식구를 부를 때
아직도 쓰는 것을 보니 며느리 직급이 몸종 정도로
멈췄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며느리를 종년부리듯이 부리나보다.
내 집에서는 아가씨인 내 딸도 시집가면 종년이
되는 건데 말이다.
그렇지만 친정이 경제적으로 월등한 며느리는
그나마 대우를 받긴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시댁에 합당한 꼬장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러면 시댁의 미친 시집살이에서도 벗어날
확률이 있거나 시집살이가 멈칫하기도 한다.
며느리가 돈이 많거나 며느리네 친정집이 돈이
많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냥 가만히
각자 살길대로 살고 있으면 그 복도 오려니만
입으로 털고 몸으로 털어가지고 개털되는 것도
본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의 법칙에 해당되서 그렇다.
'이혼'이라는 방법도 있다.
옛날의 종년은 주인집에게 꼬장부리면
맞아죽기밖에 더하지 않았을텐데 그나마
며느리가 종년보다는 낫긴 하다.
양성평등을 외치는 2020년 시대!
전체적으로 며느리 직급부터 높여주자!!
■결혼 … 떠나라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멘.
구약성경을 보면 교회를 만드신 것 보다 부부관계가 먼저 형성이 됐다.
그리고 가정이 형성되고 사회가 형성되고 이제 신약에 들어서서
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자꾸 교회가 먼저라고 교인들을 교회에서만 살게 끌어들이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치게 해서 가정에서는 잠만 자던지 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제 깨닫고 보니 성서시대의 교회도 지금의 종교생활을 위한
교회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구제사업 공동체였다.
거기에 신을 섬김의 옵션이 있었다. 이스라엘법 안에서.
오죽했으면 예수님도 자기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도
첫 기적을 베푸신 곳이 '가나 혼인잔치 집' 이었다.
부부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고 결혼잔치 집의 즐거움이
중요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결혼하고 1년은 둘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터치를 안 한다고 한다. 둘이 알아가는 시기가 필요하다.
서로 기선제압하려고도 하지 말고 자기 이기심을 내세우지
말고 한 발 물러서라.
남녀가 '결혼' 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부모의 품을 떠나"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몸만 떨어져라가 아니라
마음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부모가 빨리 아들과 딸을 며느리와 사위에게 보내버려야 한다.
자기 품에 품고 있을 때가 문제다.
자녀도 빨리 부모로부터 마음이 떠나 부부 서로에게
붙어있어야 한다. 그것도 강한 '자석' 같이.
'몸'과 '마음'이 떨어져서 어디 갔다가도
부부에게 다시 달라붙어야 한다.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퇴근을 하면 집에 가서
남편이 보고 싶고, 아내가 보고 싶어야 한다.
회사가 계속 좋거나, 직원들 하고 술먹고 밥먹고 노래방가고
놀다가는 것이 계속 좋을 때는 문제가 생긴다.
놀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놀고는 어느 시간이 되면
집에 가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가야 한다.
남편이 있는 집, 아내가 있는 집. 자녀가 있는 집.
자기 '집에' '꿀단지'를 놓고 사는 것이 좋다.
빨리 집에 가서 그 달달한 꿀이 먹고 싶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한 몸' 이라는 것은 몸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하나로 합치라는 것이다.
그러면 몸은 자동으로 하나가 된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이 하나가 된 '마음'에 무엇인가가 잘 못 끼면 금이 갈 수
있는 '점'이 생기는 것이다.
부부가 몸만 합쳐서 성관계를 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 문제다.
부부가 '마음'이 하나이면 몸도 하나가 되지만,
마음이 둘이면 몸도 둘로 나눠진다.
그 한 몸(부부 한 마음)에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끼면 균이
투입되듯이 마음이 갈라지게 되는 요소가 생기는 것이다.
모래 같은 것 하나가 끼었다.
그것을 없애면서 가야 하는데 없애지 않으면
그 위에 또 쌓이고 또 쌓이고 하다 큰 돌덩어리가 된다.
그러면 그 '한 몸(부부 한 마음)'이 병이 드는 것이다.
한 몸(부부 한 마음)이 병이 들면 둘로 나누어진다.
둘로 나누어진 몸 중에 하나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부부팀웍 > 삶의 모든 것
결혼한 부부는
남편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하면 안 된다.
아내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남편 보다 친정부모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
아내 보다 친 부모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남편 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
아내 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남편 보다 아내 보다 취미생활을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남편 보다 아내 보다 일을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남편 보다 아내 보다 친구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
이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마음'이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것이 내 것 같지만 잘 못하면 내 것이
되지를 않는다.
이 마음을 잘 못쓰면 창조주신께 혼날 일이 벌어진다.
그러면 창조주신께서 마음을 헝클어 놓으신다.
이 때는 내 마음이 내것이 안 된다. 마음대로 못한다.
내 마음이 남편보다 아내보다 부모에게 가도 안 되고
자녀에게 가도 안 되고, 친구나 취미나 일에 가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무엇을 해도 내 마음과 좋음은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나 누구든 '부부사이'에 자꾸 다른 것이
끼어들어오게 허락하면 둘 사이가 갈라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이삼십 평생을 기다렸다가 심혈을 기울여서 얻은
남편과 아내인데 다른 것으로 인하여 깨어지지 않게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것이다.
부부사이 초심이라는 것을 지켜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을 기울여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를 추억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야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다.
이것이 '부부팀웍' 만이겠냐마는 그럴지라도 남편과 아내가
하나로 똘똘 뭉쳐서 그 어떤 것이 슬그머니 둘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물 샐틈 없이 살펴야 한다.
그 어떤 그림자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아주 그럴듯하게 '효도' 라는 명목으로 '부모'가 들어오기
제일 쉽다.
특히 홀로 된 어머니라면 아들의 입장에서는 더 애틋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남자는 이성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자기 어머니에게 못하는 것만 보게 된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데" 하면서.
그리고 자기가 그 어머니 모시는 줄 알게 된다.
똥 기저귀 자기가 갈아주는 줄 안다.
목욕 자기가 시키는 줄 안다.
자기가 밥 먹여드리는 줄 안다.
그리고 결국은 아내가 못됐다고 이혼도 한다.
그리고 자기는 효자인줄 안다.
남녀는 자기 짝으로 말미암아 앤돌핀을 얻는 것이지
자녀가 부모로 인해, 부모가 자녀로 인해 앤돌핀을 얻는
것은 잠깐이다.
차라리 이성 친구를 만들게 상황을 엮어주는 것이 낫다.
나같은 경우는 자녀들하고 한달에 한번 모이지만 거의가
한끼 거나하게 먹고 헤어지는 것이 다 인것 같다.
물론 손주들하고 있는 좋음이 있어서 그렇지 자녀들하고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재미가 넘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즐거움도 가족간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차라리 정말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부부가 같이 놀수 있는.
서로 집에 왕래하면서 놀 수 있고, 밥도 먹고 하면서
노는 시간을 갖는 상황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녀들에게 나랑 놀아달라는 생각이 없다.
잠깐 부모가 서운해 할지라도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면,
누군가 그 방법으로 평정을 찾았다고 한다면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자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부모는 내 몸의 반쪽이 아니지만 아내나 남편은 내 몸의 반쪽이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내 몸이 반 토막이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반쪽을 귀하게 내 목숨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널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다시 새로 반쪽 끼워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까짓 거 부모를 선택하고 배우자를 버리고 다시 얻지 머?
내 반쪽 잘 챙겨서 죽을 때까지 잘 살았다고 해서
창조주께 가면 무슨 상을 받을까? 가봐야 알겠다.
조금만 지혜로우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데
극단적인 언행으로 나의 반 토막을 잃는 수가 있다.
■ 이혼
그런데 이혼하는 가정도 있다.
누가 잘못했는지 몰라도 서로 안 맞는다고
못 살겠다고 이혼하는 가정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주께 허락이 안 떨어져서 이혼을 못했는데,
허락이 떨어진건지 이혼하는 가정도 무수히 많이 있다.
이혼하고 나서 누군 잘 되고 누군 못 되기도 한다.
거의 못 되게 된 자가 잘 못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혼할 때도 서로 합의해서 이혼하는 것은 그나마
갈라질 수 있지만, 한쪽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을 때 죽는 경우를 두번 보았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지휘를 하던 전도사가 성가대원 여집사하고 바람이
났는데, 전도사 와이프가 용서한다면서 돌아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렸다.
그 전도사는 다른 교회 학생부 전도사로 옮겼는데,
학생부 수련회를 바다로 갔다가 오는날 짐 다 싸놓고
바다에서 수영을 한번 더하고 오겠다고 혼자 나갔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죽었다고 했다. 우연일 수도 있다.
어느 권사는 남편이 계속 바람을 피다가 타국에 나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5년만 있다가 오겠다고 했는데
(바람피던 여자랑 같이 나갔다)
돌아올 5년 그 때에 화장실에서 죽었다.
돌아올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우연일 수도 있다.
어떤 목사는 여집사랑 바람이라는 것이 났는데
주께서 그 목사에게 "너를 죽인다"고 말씀하셔서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 경우도 있다.
우연일 수도 있다. 그냥 그랬다.
부부가 보면 둘만 살땐 그래도 100%는 아니더라도
사이가 좋고 서로 싸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것도 누가 초장에 기를 잡을 것이냐는 잘못된
마인드를 갖게 될 경우는 다른데 그러다 이혼한다.
서로 한 걸음 물러서서 서로를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아닌 기싸움을 할 경우는 그것도 불법이기
때문에 이혼하기 쉽고, 소닭보듯이 살 수 있다.
상대 치약 내가 짜주고, 상대 양치컵에 물따라주고,
상대 커피 내가 타주고, 상대 물 내가 따라주고,
상대 신발 신발장에 넣어주고, 상대가 청소기 돌리면
난 걸래질하고, 상대가 설거지 하면 난 쓰레기 버리고
등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별거다.
이런거에 행복하다.
어짜피 내 커피 내가 타 먹고, 니 커피 니가 타먹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도 서로 반대로 하면 내가 상대에게
존중 받고 사랑 받는 것 같다.
이혼하는 큰 이유 중 시댁사람들과 엮일 때이다.
이혼하는 큰 이유 중 친정사람들과 엮일 때이다.
이혼하는 큰 이유 중 역지사지법에 어긋날 때이다.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시어머니로서, 시누이로서,
따지기 전에 "너 같으면 그렇게 하겠냐? 법"이다.
"니 딸이라도 그렇게 하겠냐?"
"니 아들이라도 그렇게 하겠냐?"
"니 친정엄마라도 그렇게 하겠냐?"
"니 부모라도 그렇게 하겠냐?"
"니 삶이라도 그렇게 하라고 하겠냐?"
"상대가 너에게 그렇게 해도 좋으냐?"
정말 시모랑 며느리랑 같이 지내야 한다면
역지사지법에 돌입하게 된다.
■시대를 읽자
그리고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대원군 시대도 아니고, 옛날에야 여자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할 시대였기 때문에 남자에게
연명하기 위해 그 고달픈 시집살이를 견딘거지만,
지금은 여자가 직업이 없는 시대가 아니다.
여자들이 남자 보다 수입이 더 많을 수 있는 시대다.
양성평등을 외치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여자가 이혼하면
'이혼녀' 딱지 붙는 약점을 이용해 가풍 어쩌고 하면서
말도 안되는 '시집살이'를 시켜먹으면 안 된다.
옛날에야 사위=백년손님, 며느리=무수리 일지 몰라도
요즘은 '사위=백년손님' 이면 '며느리=친한손님'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며느리를 함부로 굴릴 때 더 이혼하는 것을 본다.
'시집'의 '시'자는 싫다의 '시'로 읽자.
좋은 시집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 싫어의
'시'자가 해당된다.
나는 과거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혼한 사람들하고 말을 섞지 않았다.
무언가 그 사람들은 이상한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과거에 이혼할뻔 했었다. 내가 이혼하자고 했다.
이혼한 사람들을 정죄해서 그런가 나한테도 이혼이 올뻔했다.
다행히 이혼하지는 않게 됐다(신의 개입으로 인해).
2020년 가을쯤 유튜브에서
'사연'을 읽어주는 것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참 오래도 참는다. 나 같으면 벌써 이혼했겠네!"
하면서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보려고 하는 대상을 보면서
욕까지 나왔다. 물론 그 이혼시키게 하는 대상에게도 욕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참 이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들이 100% 있구나.
이혼한 사람들이 다 이상해서 이혼한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이혼'이라는 탈출구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도 다시 돌아갈 '친정'이라는 곳이 있어야 고생을 덜하게 된다.
하지만 그 친정이 없어도 이혼전 생활과 비교하면
독고다이로 고생하는 것이 훨 낫다고 고백하는 것도 알게 됐다.
요즘 장애인 편견을 없애려고 사회적으로 운동을 하듯,
이혼한 사람들의 편견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다.
옛날이야 여자들이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시대에 먹고 살기 위해
'귀머거리 3년, 눈먼 3년, 벙어리 3년(장애1등급짜리)' 이라고
읊어댔지만, 지금은 여자도 배울 수 있고 직장도 가질 수 있고
사장도 되고 의사도 되고 연예인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에 아직도 1등급장애인이 되라고 읊어대면
안 되겠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이혼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혼하란다고 이혼할 것이 아니기에-
이혼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리는
'시월드(장애 1등급 제조공장)' 라는 단체가
빨리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도 현재 '시댁'이고 '시엄마' 입장이지만
난 왜그렇게 '며느리들 편'인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니 통계가 나온다.
자기 발등 자기가 찍고, 자식 발등도 찍는 시엄마도
많고, 욕심이 과해 망하는 시엄마도 많고,
자기는 투자한 거 없이 돈!돈!돈! 달라고 해서
망하는 시엄마도 많고 그렇더라.
그 시엄마 인격이 못 될수록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냐?"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못된 것이 들어와 집안을 망친다"
를 많이 써먹는 것을 알게 됐다.
인격이 좋은 집일 수록 저런 말들을
안 한다는 것을 알게 돼 나도 저런 말을
써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전부 심은대로 거두고, 욕심이 과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을 본다.
'사필귀정' '인과응보'도 있다.
처음에는 시비(是非) 곡직(曲直)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는 뜻.
지은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좋은 보답을 받게 된다는 뜻.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복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복과 불행이
있다는 뜻도 있다.
이 말이 불교 말 같지만 성경에도 있다.
조상들의 죄값이 나에게로 물려오고, 내 값과 합쳐져서
내 자녀들이 태어나고 사건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 후손들에게 물려가는데 그 후손은 남이 아닌
곧 나다.
■남자가 슬기로우면
여자가 가정에서 지혜로워야 한다면 남자는 슬기로워야 한다.
부모 편에 섰다가 아내 편에 섰다가를 슬기롭게 잘해도 되지만
부모 마음을 나에게서 떠나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더 낫다.
부부사이에 '의리' 라는 명목으로 '친구' 가 들어올 수 있다.
'재미' 라는 명목으로 '취미'가 들어올 수 있다.
제대로 막아라.
남편이든 아내든 다른 것이 나를 대체함으로 서로
서운함이 생기면 안 된다.
그러면 "부부만 사랑하고 부모나 자녀나 친구나 일이나
취미나 그런 것들은 다 버려버리고 절에서 도 닦는 것처럼
살라는 말이냐?"
아니다.
부모에게 마음이 갈 때 부부가 같이 가라.
친구에게 마음이 갈 때 부부가 같이 가라.
취미로 마음이 갈 때 부부가 같이 가라.
몸은 같이 못 갈지라도 마음만은 같이 가라.
흩어지지 말아라.
그 부부 사랑이 넘침으로 인하여 좋은 사랑이
주변으로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좋은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하게 되고,
좋은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게 되고,
좋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결혼한 아들이 엄마인 나보다 며느리를
더 사랑하는 것이 '정답'이다.
기분 나빠 하지 말라. 서운해 하지 말라.
모래알이 끼게 된다.
결혼한 딸이 엄마인 나보다 사위를 더 사랑하는 것이
'정답'이다. 기분 나빠 하지 말라. 서운해 하지 말라.
모래알이 끼게 된다.
가정이 시끄러워진다.
창조주께서 정해주신 '정답'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창조주께서 정하신 ‘정답’을 기분 나빠 하고 서운해
하니 사단이 일어난다.
이것은 루시퍼사탄이 훼방하러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 혼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주께서 보내신
마귀가 온다.
■'부부'보다 신을 더 사랑?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창조주를 사랑할 때 가족보다
더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하고, 남편보다 아내보다 가족보다
돈보다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창조주신은 욕심쟁이인가?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창조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창조주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께서 주시는 만큼 창조주를 사랑하면 되는데,
내가 창조주를 일방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교회에서 배운 것을,
내가 믿음이 있는 것처럼 사랑이 있는 것처럼 껍쩍대다가는
부모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게
되는 수도 있다.
부부팀웍, 가족팀웍이 깨지는 수가 있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부부의 마음에 이물질로 끼는 것이다.
부부의 마음을 꺼칠꺼칠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정상적으로 창조주께 창조주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부모도 더 사랑하게 되고 남편도 더 사랑하게 되고,
아내도 더 사랑하게 되고, 자녀도 더 사랑하게 되고,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다 못해 이웃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내가 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도 창조주 보다 다른 그 무엇을 사랑하면 안 된다?"
창조주는 나중 문제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내가 사랑한다고 내가 믿는다고 껍쩍 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개나 소나 이 땅에 태어나면 육의세계인 이 세상
(죄의 법)에 무조건 자동으로 속해지게 되어 있다.
나는 그냥 내가 태어난 곳에서 내 형편이 주어진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종교인으로 부름 받으면 가서 잘 살면 되는 것이고,
불신자로 남아있으면 그냥 그대로 잘 살면 되는 것이다.
불신자는 불쌍하고 종교인은 안 불쌍 하고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냥 창조주신의 뜻이었을 뿐이다.
내가 살다가 나중에 창조주를 알게 될 때 그때부터 창조주를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뱃속부터 태교를 받았을지라도 내가
살다가 나중에 창조주를 진심으로 알게 될 때 그 때부터
창조주를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신은 가만 계시는데 내가 껍쩍 대고 나서서 신을
찾고 알고 믿고 찬양 부르고 울고불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면 오히려 내가 시끄러워진다.
그러니 나는 이 땅의 법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 법에도 창조주신께서 개입하신다.
그 법을 무시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기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잘나서 창조주신께 나간 줄 알고
믿음이 충만한 척, 사랑이 충만한 척, 은혜가 충만한 척, 성령이
충만한 척, 창조주신을 많이 사랑하는 척하면 안 된다.
불법으로 계산된다.
■성경종교
성경 자체를 무슨 종교 자체라고 생각해서 문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무슨 종교를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인줄 아는 것이 문제다.
성경은 종교를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인데.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에서도 금송아지를 없애고
혼나는 사건으로 마무리 된다.
'사도바울'도 신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몰려들었다.
사도바울 형상이 만들어질뻔 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소리지르면서 옷을 찢으면서
뜯어 말렸다. 자기는 신이 아니라고.
그래서 종교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세도 종교대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누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아질 때 잘못하면 그 대상이 '형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라는 것이 신을 대할 때 허공에다 대하지
못하고 자꾸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것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라는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신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 속에 있는 것이나 어디 있는 것이든 형상을
만들어내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말이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70
그리고 그 형상들이 서로 틀리다고,
그 형상들을 서로 지키기 위해,
싸우고 죽이고 죽기까지 한다.
신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겐 '여호와' '야훼' 등
이름으로 알려주셨고, 다른 나라들에는 또 그 나라
특성의 이름으로 알려주셨고,
이스라엘에 사람으로 태어나(제물되어 죽기 위해)
'예수'라는 이름으로 알려주셨다.
그냥 이때 저때 다른 이름으로 알려주신 것 뿐인데
그 이름만이 진짜라고 목숨을 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창조주 신은 오직 한 분이지만
이름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의로운 고난?
창조주신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몸을 불살라
열심히 했는데, 몸이 시끄럽거나, 마음이 시끄럽거나,
가정이 시끄럽거나, 부부가 시끄럽거나,
자녀가 시끄럽거나, 일도 안되거나, 이혼하거나,
가정이 깨지거나 하면 그 종교생활 잘못했다는 것이다.
창조주신과 상관없이 니 맘대로 했다는 것이다.
무슨 '의로운 고난' '영광스러운 고난' 절대로 아니다.
성경에서 어긋났다고 창조주신께 혼나는 것이다.
루시퍼사탄이 방해해서 그렇다고 알게 교육시켜서
기독교 가정들이 시끄럽게 살고들 있다.
그 넘의 루시퍼사탄은 왜 그렇게 쓸데없이 이유없이
방해하는 일들이 많은지.
창조주신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다면서, 공평하시다면서,
편벽되이 행하시지 않으신다면서, 정직하시다면서,
판단과 재판을 정확하게 하신다면서, 의인과 악인을
정확하게 구별하시고 심판하신다면서,
왜 아무 잘못도 없는 기독교인 가정이나 교회나 목회자에게
사탄이 쓸데없이 이유 없이 괜히 예배도 방해하고 시험 들게 하고
교회도 떠나게 하고, 넘어뜨리고, 누구는 목회도 잘 되게 하고,
누구는 목회도 안 되게 하고, 누구는 교회가 부흥되고 누구는
교회가 망하고 하면서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지 않는 것을
보고만 계시는지 모르겠다.
창조주신께서 창조주신을 사랑하도록 해주실 때는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주신다. 창조주신께서 창조주신을
섬기도록 하시고 봉사하도록 명령하시면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주신다.
하지만 창조주신을 사랑하라고 했다고 교회에서 교육받아서
시스템에 의해서 할 때는(본인은 자원해서 한다고 하지만)
남편도 들고 일어나고 자녀도 들고 일어나고 환경이 들쑤셔진다.
가정에 충실해야 할 교인들에게 가정보다 교회에서 살게
억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문제다.
평생을 교회에서 생활하라고 묶어두신 것이라고 알고있는
목회자들과, 사회에서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교인들과 삶이
다른 것인데, 일반 교인들을 목회자들 같이 교회에서
살라고 볶아대니 교인들의 가정이 시끄럽다.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교인을 가정으로 자꾸 보내서 부부가 화목하도록 유도하고
좋은 가정을 꾸리도록 유도해주면, 부부가 신이나서 교회를
좋은 마음으로 올텐데, 교회에다 묶어두려고 하니 집에 남아
있는 배우자가 아우성이다. 그런 교회 안 가겠다고.
그 교회 목사하고 살라고.
그러니 남편을 두고 혼자와야 하고, 아내를 두고 혼자와야 한다.
그걸 또 '의로운 고난' '영광의 고난' 이라고 교육시킨다.
창조주신께서 새벽예배를 드리도록 깨주시면 가면 된다.
창조주신께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주시면 드리면 된다.
창조주신께서 울게 하시면 울면 된다.
창조주신께서 회개하도록 하시면 회개하면 된다.
창조주신께서 찬양하도록 하시면 찬양하면 된다.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막 교회가 가고 싶고, 예배가 드리고 싶어진다.
내 생각 같지만 내 마음 같지만 그것은 내 생각도 아니고
내 마음도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주시는 마음일 뿐이다.
내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주신을 상대로 하는 것은 창조주신께서 주시는
강력한 마음과 환경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누구든 창조주신을 그렇게 강력하게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은 교회의 전도와 교육으로 기도와
찬양과 예배와 봉사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잘해야 한다.
■신께서 명하신 종교생활(?)
창조주신께서 무슨 일을 하라고 명하시는 말씀을 육의세계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 같지만 창조주신께서는 마음을
만지시고 움직이시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 봉사가 하고 싶다고.
우리 가정은 신께서 기독교종교생활을 하도록 하셔서
그런지 봉사와 예배생활을 즐겁게 한 편이다.
물론 목회자와의 사이에 힘듬도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얻는 엔돌핀이라는 것이
지난 1주일 동안 물질적으로 어려웠던 마음도 치유되고
앞으로 1주일을 살아갈 엔돌핀까지 얻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성가대를 사랑했다. 나는 성가대나 서야 노래가
나오지 일반 노래방이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곳에서는
몸에 기운이 빠져버려가지고 잘 부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부부가 교회에서 지냈던 삶을 같은 마음으로
많이 즐거워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하므로서 나를 좀 드러내고 싶다든지,
좀 재고 싶고 잘난 척도 하고 싶다든지, 내가 안하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억지로 했다든지, 누가 시키는데 거절할 수가
없어서 억지로 한다든지 할 때는 시험에 빠질 수가 있다.
봉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거나, 교우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거나, 서로 사랑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닐 경우는
누구든 시험에 들게 된다. 역으로 누가 시험에 들었다고 하면
상대와 사랑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가정생활을 잘 하도록 하면서 교회에 즐거운
마음으로 오도록 하면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생활을
할텐데, 목회자가 어떤 재정이라든지, 교인 숫자라든지,
타 교회와 비교해서 열등감이라든지, 설교를 뽐낸다든지의
'사심'이 들어가게 되면 '교회팀웍'에 모래알이 끼게 되는
것이다.
■부부를 깨는 종교
교회 생활을 즐겁게 하라고 유도해 주면 성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그 즐거움을 이웃에게도 표출
시켜서 또 데리고 올 수 있는데, 그리고 그 즐거운 교회에
신께서 메추라기 보내듯이 교인들을 보내시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숫자 채우느라고 전도해서 부흥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모래알이 끼게 되는 수도 있다.
전도해서 숫자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전도도 해야겠지만 올바른 교회에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다. 교회가 올바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내보내신다. 사탄이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잘못사는 삶이 계산되기 위해 교회팀웍이 깨지기도
한다. '교회 팀웍'이 깨지기 위해 목사와 성도들과의 관계가
꺼칠꺼질하게 된다.
그러면 창조주신께 혼나는 일이 벌어져서 교회가 시끄러워진다.
교인이 시험들어 떠나고 말을 안 듣고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사탄이 공격하는 것이라고 떠들지 말자.
창조주신은 '부부팀웍'이 깨지는 것을 싫어하신다.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창조주신을
섬긴다고 남편을 팽개치고 자녀를 팽개치고 교회 일만
해댄다고 껍쩍대는 것을 싫어하신다.
부부가 깨지면 가족이 깨지고 종교도 깨지고
사회도 깨지고 나라도 깨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순종'
육의세계에서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라고 하셨다.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아멘.
기독교인일지라도 창조주신의 명령을 따르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전혀다. 완전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창조주신께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 하라
이것이 마땅하다" 하셨다.
이런 "해라" "하지마라" "마땅하다" "싫어 하신다"
하시는 말씀은 그래도 되고 안 해도 되고가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 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으로 계산되는데 그냥 '불법'
이라고 계산만 하시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불법'이 쌓여서 '징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여자들은 그런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것 저것 다 남편의 말을
들을 수가 있어!. 남편의 말이 다 옳다는거야 머야!"
"나도 얼마나 똑똑한대!. 내 주장이 맞을 때가 얼마나
많은데!" "나 덕분에 이렇게 집도 사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인데!" 한다.
그럴지라도 창조주신께서는 남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불법' 이라고 계산하신다.
이제 보니 창조주신께서 남편을 통해 아내에게 "해라"
"하지마라" 답을 알려주시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을 통해서 창조주신께서
알게 하셨다. 나도 내가 가정을 리드하는 편에 있었다.
하지만 창조주신께서 세우신 조직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였던 것이다.
나에게 무엇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해야 되고,
안해야 되고, 하는 지시를 남편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남편이 '머리'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창조주신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아담과 하와에게
동시에 같이 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먼저 하셨다.
아담이 하와에게 전달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남편에게
"오늘 우리가 교회 일을 하는 것인데 우리 차가 없으니까
교회 차를 쓰자!" 라고 했을 때 어느 날은 남편이 순순히
응한다. "기다려~ 내가 교회차 갖고 올께"
우린 교회일을 할때 꼭 교회것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거의 우리 것으로 했다. 우리 것을 투자했다.
하지만 똑 같은 상황에 어느 날은 남편이 안 된다고 한다.
교회차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단다.
모지? 변덕쟁이?
아니다.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 아내가 어거지를 부릴 때는 징계의 값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말다툼을 할 수가 있고 싸울 수도
있게 된다.
아내가 남편을 이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이다.
성경에 어긋나면 창조주신께 혼날 일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부부가 시끄럽고 가정이 시끄러워진다.
싸우고 시끄러워지는 것은 창조주신께 혼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몇 번 겪은 후로는 내가 남편에게 무엇을
요구했는데 남편이 싫다고 하면 "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남편이 좋다고 하면 "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고 남편의 그 말을 따르게 됐다.
커피를 타서 먹는 것도,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타주고,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이 타주고 한다.
니 커피 니가 타먹고 내 커피 내가 타먹고 하는 것과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기분이 좋다.
남편이 자는 방 모기약 내가 켜주고, 내가 자는 방
남편이 모기약 켜주고 한다. 니방 모기약 니가 켜고,
내방 모기약 내가 켜고 하는 것과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기분이 좋다.
부부가 마음이 하나이면 몸도 하나가 되고 평안해진다.
마음이 둘이면 몸도 둘로 나눠지고 시끄러워진다.
■아내가 귀하지 않을때
(베드로전서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귀히 여기라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는 도자기를 귀히 여긴다. 그것도 값이 비쌀수록
더 귀하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나 그런 것들은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귀한 자리에 모셔놓고
구경도 못하게 하면서 건들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몇 억짜리이려나... 하지만 갸네들이야 깨지면 그만이다.
물론 돈의 가치가 있고 문화적으로 보면 귀하니까
잘 보관해야 한다.
만약 돈의 가치로 안쳐준다고 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창조주신께서는 '아내'를 그 도자기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고 하신다. 집에 잘 모셔놓고, 귀한 안방에 앉으라
하고, 어느 놈이 건들지도 못하게 하고 깨뜨리지 못하게
하고 잘 보살펴야 한다.
도자기가 내 자식을 낳아줄 것이 아니다. 도자기가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하지 않는다. 도자기가 나를 보필하지
못한다. 도자기랑 연애하지 못한다.
물론 도자기 고가로 팔아서 돈으로 이것 저것 하면 되지 않나
하겠지만 그까짓 도자기 깨져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그 도자기 팔아서 어쩌구 저쩌구 해야지 하기 전에
창조주신께서 벌써 깨드려 버리신다.
(잠언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아멘.
"아내를 귀히 여기라" "그렇지 않으면 네 기도 줄이 막힌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독교적으로만 볼 때 기도가 안 되게 하시나?
기도 응답을 안 되게 하시나? 하겠지만 개나 소나 그냥 네 앞길이
막힌다는 것이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무언가 계획하고 사업도 하고 열심히
하려고 해도, 아내의 눈에서 서러움의 눈물이 흐르게 하거나,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안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네 길에 방해거리가 많이 등장한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녀석… "불법" 으로 계산된다.
"내게 아내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복을 얻고 은총을 받은 것"
인데 그것이 귀하지 않다? 아내가 귀하지 않은 녀석들은
"하나님의 복이 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이 귀하지 않다"로
계산된다. "불법"
"이까짓 아내가 내게 귀하다고?" "애물덩어리인데?"
네가 합당한 값으로 처리된 것이다. 그러니 니 운명이다.
■보내버려야 하는 것
창조주신께서 원하시는 '팀웍'은 모여야 하는 것도 있지만
보내버려야 하는 것도 있다.
단체를 향한 팀웍, 학교를 향한 팀원, 친구를 향한 팀웍,
직장을 향한 팀웍, 나라를 향한 팀웍 등 어떤 단체나
기관을 향한 팀웍은 잘 모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팀웍'을 성공시키려면 잘 보내버려야 한다.
사위에게 보내버리고 며느리에게 보내버리고.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해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 부부가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가 부모 밑에 있을 때는 부모에게 권한이 있다.
(민수기 30:4~5)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아멘.
하지만 자녀가 일단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아내는
남편에게 묶이고 남편은 아내에게 묶인다.
여자에 대한 권한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옮겨간다.
(민수기 30:7~8)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아멘.
자녀가 일단 '결혼' 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창조주신께서 가정적인 간섭을 하신다.
부모 밑에 있을 때는 넉넉하게 살다가도 결혼하고 나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도 생기고 남편이 아프고
아내가 아프고 아이가 아파서 괴로워 하기도 하지만
부부가 서로 도와가면서 알아서 잘 살아야 한다.
선배들의 멘토도 있지만 잘 못된 멘토로 부부가 괴로울
수가 있고 자녀가 괴로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 이라는 것을 성경의 법으로 따지자면
두 남녀가 '부모' 의 권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여자'는 남편의 권한 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남자는 '부모'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어기면 '불법'이 된다.
그냥 결혼했으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들들 볶아야 하고,
시댁 식구들이 들들 볶아야 하고, 친정식구들이 신경 쓰게
만들고, 남편이 바람을 펴야 하고, 아내가 바람을 펴야 하고,
부부싸움을 해야 하고, 자녀들이 속을 썩여야 하고,
그런게 인생이지 머…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정하신 가정법을 어기면 '불법'으로
계산 되서 그렇게들 시끄럽게 살고 있는 것이다.
■'주권' 행사를 잘못해도
성경에 자녀를 채찍으로 때리란다.
그렇게 때려도 자식이 죽지 않을 것이니까 잘못하면
채찍으로 때리란다.
성경을 오해하면 채찍으로 자녀를 마구 때려서
죽이기까지 한다.
'채찍'이라는 용도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자.
채찍은 말을 달리게 할 때 넙적다리 쪽을 상처나지 않게
살짝 때려서 달리게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신호!
더 달리게 하고 싶을 때는 조금 더 세게 때리지만
그래도 상처를 내면 안 된다.
그리고 나서 말이 잘 달릴 때는 더 이상 때리지 않는다.
나머지는 어거(馭車:수레를 메운 소나 말을 부리어 모는 일.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함)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채찍을 옛날 영주들이 노예를 다룰 때 채찍으로
때렸던 뜻으로 사용하면 부모가 자녀를 때려 죽일 수도 있다.
지금은 채찍이 시중에 없다고 자기 혁대 풀어서 두들겨 패는
집사나 장로아빠들도 있다.
많은 오해들로 가정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눈물 흘리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말이나 소가 아닌 사람은 '말씀'으로 잘 양육시켜야 한다.
양육이 잘 되고 안 되고는 정말 부모의 능력이다.
자녀가 부모의 기를 이겨버리면 부모가 자녀에게 절절 매고
고생할 것이다. 부모의 기가 너무 세도 자녀가 기를 못피고
주눅들어 살 것이다.
그러다 부모가 자녀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부모 자식간의 기는 비슷한 수준에서 부모의 기가
조금 더 센 것이 안정적인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의 뜻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자식은 부모의 뜻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보면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잘 못됐다고 호소하지만, 결과를 보면 100%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 문제였음을 알게 된다.
■'전과자' '범죄자'의 등장
성경에 자녀를 쓸데없이 노엽게 하지 말라신다.
그 자녀가 이 땅에서 볼 때는 내 뱃속으로 낳은 동물 새끼 같아
내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영의세계로 볼 때는 그 자녀나 부모나 할아버지나 그 윗대
조상들이나가 다 동일한 존재들이다. 누가 위냐 아래냐가 없다.
육의세계법은 수직이지면 영의세계법은 수평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서로 노엽게 하면 안 된다.
주권행사를 잘 못해도 부부팀웍이나 가정팀웍이 깨진다.
그런 것을 모르고 내 마누라 내 새끼 내 맘대로 술쳐먹고
들어와서 아내를 마구잡이로 때린다든지 자녀를 마구잡이로
때려서 노엽게 만들면 그 자녀나 아내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주권행사를 잘못하기 때문에 죽기까지 한다.
'아버지의 주권' '남편의 주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행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 해서 화목하게 만들고 즐거운 가정이 되게
만들고, 웃게 만들고, 쉼을 얻게 만들고, 사회에 나가서
지내다가 집에 꿀단지가 있어서 들어가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주권이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고 외치는 그런 사람들이 어디 화성에서 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 나온다.
범죄자는 '깨진팀웍'이나 '잘못된팀웍'에서 나오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창세기 3장 이후로 자녀를 낳게된 때부터
(그 이전에도 "충만하라"는 주님의 선포에 의해 새끼를
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자녀와 나쁜자녀가 나오게
됐다.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나쁜지는 1~100까지 이기 때문에
무한 다양하다. 이쁜 내새끼~애물단지~죽여야 할 새끼까지.
(신명기 21: 18~23)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
(교회 장로가 아니라 재판권이 있는 정치인, 사람을 사형시킬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작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찌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 하리라,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창조주 신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신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아멘.
그러나 그런 모든 종류의 새끼들이 다 부모의 값에서 나온다.
부모의 사랑이 풍족하게 자란 만큼 좋은 자녀가 나온다.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게 자란 만큼 나쁜 자녀가 나온다.
범죄자나 악인은 사랑이 없고, 행복하지 않은
잘못된 가정에서 나온다.
부부팀웍이 좋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목적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깨닫고 보니 남녀가 결혼 할 때는 정말 성경의
말씀대로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 정답인가보다.
우리나라는 '효행'을 강조하다보니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살고 있다.
우리나라 고부간도 빨리 서양화 되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부보다 부모가 우선이다.
물론 부모가 힘이 없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드려야 한다.
그 부모는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해가면서
그 수고 내 자녀에게 고스란히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 부모로서 잘못된 생각이다. 불법!
자녀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부모는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정말 자녀에게 사랑받을만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 아는 것이 문제다.
부모로서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부터 니들끼리
알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갚아라 하는 것이 문제다.
그 수고한 부모의 부모도 그런 수고를 했기 때문에
자기가 있었던 것이고, 자기는 또 자기의 자녀에게
그런 수고를 하는 것뿐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양육의 수고'는 계속 흘러갈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먼저 받은 것 자녀에게 갚는 것이고,
자녀는 나에게 받은 것 자기 자녀에게 또 갚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자녀에게 그 수고의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자녀에게 어떻게 했는데?"
…그 대가?
그것은 내가 아기 때 나의 부모에게서 벌써 받아버렸다.
'선불' 이었다. 그런데 또 달라고? 그래서 불법이다.
내 자녀는 자기 자녀를 낳고 또 '선불'로 그 수고를
해줄 것이다.
물길이 역류하면 안 된다.
'수고의 대가' 라는 생각이 들어 자녀에게 대가를 받을 생각으로
가득차면 성경의 법에 어긋났기 때문에 또 사단이 일어난다.
부부가 깨지기 위해 가정이 깨지기 위해.
모래 알갱이 하나가 부부의 마음에 이물질로 끼는 것이다.
부부의 마음을 꺼칠꺼칠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부부팀웍=가족팀웍
부모를 떠나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부부'라는 팀웍을 갖췄는데,
그 중에 여자든 남자든 자기 부모가 개입되면 팀웍이 깨질 조짐이
비춰지는 것이다. 이때 정신을 차리고 조심해야 한다.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든 부모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든 상황이
발생할텐데, 도와줄 때 도와주고 도움 받을 때 도움 받을지라도
빨리 되돌아와서 '부부' 팀웍을 잘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충동질 하는 사탄이 일어나 부부 틈새를
노릴 수도 있겠다. 이것이 부부를 갈라놓으려고 루시퍼사탄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아니다.
부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부팀웍’에 남자든 여자든
'자기 부모'를 더 생각하는, 더 사랑하는 마음이 강할 때는
창조주신께서 개입하시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창조주신께 혼나는 이유는
성경말씀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 부부 팀웍을 깨는 요인 중에 '자녀 사랑'도 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편 보다 크고 아내 보다
크면 부부 팀웍이 깨질 요인이 아주 높다.
'부부팀웍'이 깨지면 '가족팀웍'도 같이 깨진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결혼시켰으면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 자녀 싸고 앉아서 근심걱정하고 전화하고 간섭하고
개입하고자 하면 그 자녀 부부 팀웍이 깨질 확률이 아주 높다.
성경 말씀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친정부모가 딸을 간섭하게 되면 사위가 시끄러워지고,
시댁식구가 아들을 간섭하게 되면 며느리가 시끄러워진다.
이때 시끄럽게 가도록 내버려 두지말고 '부부'가 하나로 뭉쳐서
대응을 잘해야 한다. 간섭을 지혜롭게 잘 처리해 나가든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 한다. 부모가 삐지지 않도록.
지들끼리 실컷 알아가고, 지들끼리 실컷 즐기고 살다가
도움을 요청해 올 때 도와주면 된다.
그것을 서운해 하면 이제는 '불법'이 된다.
도와주고 나서는 마음이 바로 '자석처럼' 자기 자리로
와야 한다. 자녀에게 갔던 마음이 자녀에게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 부모의 삶의 자리로 마음이 다시 와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주는 '동역자' 라는
자리에 항상 있어야 마음에 서운함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도 힘들어지고 부모도 힘들어진다.
나같은 경우도 딸을 시집 보내놓고 마음놓고 만나러
가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적응이 안되고 그랬다.
그 집은 딸의 집이 아니라 사위집이었던 것이다.
남의 집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가면 안되고
특히 신혼이기 때문에 전화하고 허락을 받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부모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떠나보내지 못해 힘든 때도 있었다.
우리는 아빠가 손실력이 좋아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는데 딸은 그런 것이 너무 좋지만
부부가 많이 싸웠다고 한다.
어느날 딸이 "엄마 아빠가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너무 잘 알고, 고맙고 좋지만, 당분간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가, 우리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그때 도와달라"고 말했다.
아빠가 해주는 것은 하루아침에 다 되지만
남편에게 부탁하면 한달 이상 걸릴때가 많아
답답하고 계속 해결이 안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럴지라도 남편이 싫어하는 것같다면서.
주권(사위) : 주권(장인)이었다.
주권을 월권하려는 것이 아닌 해주고 싶은 강한
마음이었는데도 그랬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척 서운했다.
"아니! 부모가 도와주겠다는데!"
"그래 그럼 니네끼리 잘 살아봐라!
도와달라고 하지말구!"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많이 접었다.
그렇지만 내버려두면 안될 정도의 도와줘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틈틈히 도와주지만 마음까지 가는
것은 예방할 수 있었다.
■효도?
'마음' 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면
다시 오려고 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우리 부모님이 고생해" "우리 부모님이 힘들어"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하면서
남편 몰래 아내 몰래 돈을 모았다가 보내주고
하는 불상사를 만들지 말라.
이런 것이 효도 같지만 남편 사랑하는 것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클 경우는 사단이
일어난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부부의 마음에 이물질로 끼는 것이다.
부부의 마음을 꺼칠꺼칠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십계명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조주신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아멘.
'효도' 하면 창조주신께서 복을 주시고 땅도 주시고
내 생명이 길다고 하셨는데 왜 죽기도 하고 이혼도 할까?
즐거워 하면서 하지 않으면 사단이 일어난다.
부부가 모든 것을 같이 하라. 모든 것의 합의점을 찾으라.
서로 비밀이 없게 하라. 어떤 오해와 감정이 없는 합의점을
찾아 즐겁게 하는 효도는 복으로 온다.
둘의 사랑에는 변함 없이 둘이 같은 마음으로 같이 부모를
도와주고 사랑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부부의 사랑 보다 더 크게
작용하면 '부부 팀웍'이 깨질 확률이 아주 높다.
■그냥 사는 부부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는데?" 라고 할지 모르지만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이 없이, 그냥 법에 묶여 있으니까 살고,
그냥 정으로 살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살고, 그냥 남들 이목이
있어서, 그냥 나의 위치와 체면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겠어서
그냥 살고 하는 것들이 ‘부부팀웍'에 금이 간 것이다.
부부팀웍에 금이 간 채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금은 부부가 노력하는 여하에 따라 다시
조금씩 붙을 수도 있고 아예 찢어질 수도 있다.
금이 가 있는 상태로 버티고 있는 기울어진 집과 같다.
언제 두 동강이가 날지 모른다. 아슬아슬하다.
그러면 각자 자기의 즐거움을 대체할 것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친구로 술로 일로 취미생활로
도박으로 애인으로.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사랑으로 사냐?"
"어떻게 한 사람을 몇 십 평생 사랑하라고 하냐?"
"아무리 죽고 못 살아서 결혼했어도 사랑이 존재하는
시간은 길어야 2년이라던데?" 라는 생각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심하게 하는 것 같다.
요즘은 '부부' 사이를 '가족'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무언가 비틀어 말할때
사용하는 것 같다.
물론 가족이다.
아빠, 엄마, 자녀가 있을 때가 가족이다.
하지만 부부는 '이성' 사이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게 '부부' 사이다.
그대로 살면 '부부'이고,
헤어지면 '남'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헤어졌다고 해서 남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헤어지면 가족이 되지 않는다.
혼자였을 때를 생각해보라.
부르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고 짝이 없어 쓸쓸하게
지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애인이 없으면 일이라도 넘쳐야지
일도 없고 애인도 없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때도 그 때 뿐이겠지만.
■갸? …'최고'라고 고른 것
"애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데 가서 "이게 내건가?" "저게 내건가?" "아! 심심해"
하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말라고 평생을 '네 것'이라고
남편을 주시고 아내를 주셨다.
그렇게 간절히 찾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고, 보고 싶고,
헤어지기 싫고 해서 '부부팀웍'을 만들어 주셨다.
그 간절히 찾은 '부부팀웍'에 이물질이 끼지 않게 하라.
부모든 자녀든 친구든 술이든 일이든 도박이든 애인이든.
모래 알갱이 하나가 부부의 마음에 이물질로 끼는 것이다.
부부의 마음을 꺼칠꺼칠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갸는 이제 내 것"이라고 집에 처박아놓지 말고,
갸를 잘 데리고 놀아라. 갸는 네가 골라서 나랑 같이 살자고
찜 한 것이기 때문에 창피해 하지도 마라.
니가 '최고'라고 고른 것이다.
남의 것이랑 비교하지도 말라.
니가 '최고'라고 고른 것이다.
마트를 가도 갸량 같이 가라.
니가 '최고' 라고 고른 것이다.
어디를 가도 친구랑 가는 것보다 갸랑 같이 가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라. 니가 '최고' 라고 고른 것이다.
술을 먹어도 갸량 먹어라. 니가 '최고' 라고 고른 것이다.
갸랑 매일 죽을 때까지 만나는 것을 '부부이기 때문에'가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 하라. 니가 '최고' 라고 고른 것이다.
갸랑 죽을 때까지 같이 자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 하라.
니가 '최고'라고 고른 것이다.
갸를 죽을 때까지 진심으로 즐거워 하는 것이 죽을 때까지
연애를 하는 것이며 '부부팀웍'에 '가족팀웍'이 성공하는
것이다.
(시편 16: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아멘.
■갸? … 콩깍지 씌인 것
그런데 문제는 갸를 내가 고른 것 같지 않은 것이 문제다.
콩깍지가 씌여서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결혼했는데
얼마있다가 콩깍지가 벗겨질 때가 문제다.
그냥 어떻게 하다가 결혼하게 됐다든지, 나의 환경이 싫어서
도피처가 필요해서 서둘러서 결혼하게 됐다든지, 부모 때문에
어떻게 하다가 결혼하게 됐다든지,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멋 모르고 결혼하게 됐다든지, 중매로 결혼했는데 잘못 한것
같다든지, 나는 기도를 안 했는데 저 사람이 기도를 해서
결혼하게 됐다든지 하는 내가 고르지 않은 것 같은 것이
문제다.
창조주신께서 계산하셔서 콩깍지를 씌우고
결혼시키셨다.
가수 이선희씨의 노래 중 '인연' 이라고 있다.
가사 중 "이 생애 못한 사랑 이 생애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생에 어째 인연이 아니라
사랑이 이뤄지지 못했다.
목숨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
상대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고 하는 사랑,
헤어짐에 울고불고 식음을 전폐하는
사랑인데 인연이 아니란다. '이생망'이다.
그래서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
환생을 해서 다음 생에 만나는 날 -
나를 놓지 말라고 해서 만났다.
먼길 돌아 오느라고 얼굴도 변하고
이름도 달라지고 성품도 달라졌다.
과거시대에서 현재 시대로 바꼈다.
그래서 짝이라고 만났는데 내 짝이 아니란다.
그럴지라도 '결혼' 이라는 법으로 묶인 너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행복해지지,
내 짝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찾아 헤매면
'불륜' 이라고 하는 것 밖에 찾아 올 것이 없다.
이것 또한 '불법' 이다. 그래서 혼난다.
왜 내가 그렇게 결혼해야만 했는지 이 땅에서는 모르지만
어찌됐건 영의세계에서는 다 창조주신의 계산법에 의해서
결혼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우연이나 재수없는 것? 아니다.
'불륜' 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황홀하지만
나중에는 호되게 시끄러워진다.
죽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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