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인원 : 고창조, 윤종혁, 김정복, 진항교, 이순명, 신현관, 김태욱:대장, 최동경(최건우), 김해수:부대장, 길기현 (총 11명)
산행일자 : 10월 6일 ~ 10월 7일(1박 2일)
산행코스 : 지리산 성삼재 ~ 세석산장(1박) ~ 장터목-천왕봉 ~ 백무동
10월 5일 금요일
퇴근하고 짐 꾸리면서 창조형과 통화. 종혁이형과 동경이(아들 건우 동행)가 온다고 한다. 자정 넘어 첫기차(무궁화호)를 타느라 일단 대전에서 합류하느라 동경이승합차가 움직이는데 일단 창조형 댁에서 기다리기로 했단다.
마누라 퇴근하고 밑반찬 챙겨준다고 하여 기다렸다가 패킹 완료.
저녁식사 후 얼굴 보러 창조형 댁으로 마실감. 종혁이형 안존이 여전하시고 동경이도 여전한데 왠 청년이 인사를 한다.
건우란다. 은석이보다 한살 아래일 것인데 요즘애들 장난이 아니게 성장속도가 빠르다.
눈을 붙이고 싶어도 반가와서 노닥거리다가 해수차가 기다리는 청구상가 앞으로 짐 챙겨 출발.
서대전역 앞에 회장님(삼중이)이 마중 나와있다. 공동식량을 해수가 준비하여 짐을 나누는데, 태욱이의 새 배낭이 75리터짜리 대형이다.
해수도 덩치가 만만치 않고.... 암튼 돌덩이처럼 야무진 스마트한 패커들의 배낭 공간이 비좁아 하중분배가 공평치는 않았다.
대합실로 이동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기차시간을 기다림.
10월 6일 토요일
12시 넘어 첫 기차 무궁화호를 참으로 오랜만에 타본다. 지리산 가는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우리나라 산악인이 엄청나게 많다. 좁은 국토에 교통의 편의 및 등산관련 각종 시스템의 발달 덕일까?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이 신시스템에 편승된 우리들을 돌아본다. 강남스타일에 익숙해지면 우리 스타일이 새로 탄생될 터이지...
구례구까지 두어시간(?) 좀 넘게 탄다. 3시 넘어 도착하기까지 잠을 청한다.
역전 앞에 택시들 그리고 버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1000원이라서 벌었다는 기분인데 구례구 시외버스터미날까지의 요금일 뿐 거기서 첫 차 출발시각을 기다린다. 성삼재까지는 별도로 4000원이었다.
택시는 합승하여 한 4만원 정도? 인당 1만원 정도이며 버스편은 인당 5000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화엄사를 들렀다가 천은사의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힘들게 오르는 버스안에서 비몽사몽 흔들린 끝에 성삼재 도착.
새벽 4시 반경 행색을 갖추어 코재를 오른다. 새벽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길이 예전보다 가파르게 느껴지면서 지루하게 걸음을 뗀다. 노고단 산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여장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 태욱이가 앞장을 서서 길을 인도하고 진도를 나간다. 돼지령 지나 피아골 삼거리까지 서서히 몸이 풀린다.
여명이 밝고 기온이 매우 차서 얇은 스판 바지에 몸이 살짝 시려 고된 걸음 끝에 등에 땀이 차도 오버복을 벗을 수는 없었다.
두어시간 남짓 발품을 팔아 드디어 임걸령.
아침으로 태욱이가 매고 온 배낭에서 김밥을 먹는다. 국물이 그리워서 라면 몇봉을 잽싸게 끓여 차고 빈 속을 속을 데운다.
30여분 남짓 조식을 마치고 출발. 반야봉이 코 앞에 보인다.
노루목을 거쳐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스레 떨어져서 화개재이다. 뱀사골의 갖가지 추억이 잠시 스치고, 토끼봉을 향한 지루한 오름길.
태욱이 걸음이 눈에 띠게 느려져 앞으로 나서 토끼봉에 도착. 템포가 빠르다고 말을 듣는다.
전체적으로 너덜이 태반인 능선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작업으로 거의 돌을 다듬어 바닥을 깔고 계단을 만들고 이리저리 정리한 분위기이다.
흙길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꼭끼는 등산화 탓이라 그런지 나이 탓이라 그런지 암튼 발바닥이 제법 아프다.
명선봉 너머 가슴이 설레는 연하천에 도착 중식준비. 이 곳도 산장을 정비해서 일부 사라지기도 하고 일부 증축도 했다.
라면을 끓이는데 옆에서 햇반을 들던 한 등산객이 염치불구하고 국물만 조금 나누어달라고 한다.
현관이가 국수발도 건져서 선심을 베풀고 따뜻하고 군침이 도는 나트륨국물에 굶주린 걸인(?)은 식욕을 해결한다.
라면이 최고야!
오전 내내 기온도 만만챦게 떨어지고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여 슬쩍슬쩍 빗방울 날리고 하여 밤을 지낼 일에 불안에 떨게했는데,
오후가 되니 거짓말처럼 맑아 기분을 풀어준다.
멀리 능선을 살피니 형제봉 저 너머로 벽소령 산장의 송신탑인지 무언지 가설물이 삐쭉 보인다.
등산로 옆에 목책이 둘러져 길 밖은 출입이 없어 그런지 옛날과 달라 산림이 무성하다.
벽소령에서 휴식. 이제부터 슬슬 몸도 무거워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간식을 먹고 기현이가 물병을 몇개 모아 샘터까지 물심부름을 한다. 다시 출발.
스카이라인 능선을 좌측에 끼고 평탄한 임도를 걷는데, 창조형이 뒤에서 예전에 차도 다닐만큼 넓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사실 그랬는데 길이 무척 좁아졌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헬리포트가 나타나고 북쪽 심정리로 이어지는 임도언저리는 통제구역 팻말과 함께 목책이 둘러져 있다.
그 다음 포인트는 연하천이다. 노고단서부터 마추치던 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차에 우리 팀의 걸음이 점점 처져 다들 추월하여 보이지 않는다.
태욱이와 해수 등 부하가 과한 리더진의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자연스레 두 팀으로 나뉘어 운행이 이루어진다.
기현이와 현관이가 앞서 나가고 창조형이 뒤를 따른다. 명선봉의 선비샘을 목전에 두고 말이 두팀이지 리더진 앞의 팀은 각자 찢어져 달린다.
창조형이 바람처럼 꽁무니가 사라지고 중간쯤에 홀로남은 나는 아주 외롭고 지치고....
계단쯤은 하나둘을 세면서 나아갈 수 있었지만, 무릎 이상 차오른 바위 너덜을 넘는 행위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진도가 조금 빨랐던 동경이는 건우가 지치는 바람에 중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은석이 생각이 났는데, 그 놈은 아무리 꼬셔도 애비 따라 산에 올 생각은 아예 없는 놈이라 건우가 더욱 기특하게 보인다.
건우가 "얼마나 더 갑니까? 어디쯤이면 잘 수 있습니까?"
조망이 있는 지점에서 저기 너머에 있다니까 코 앞의 펑퍼짐한 봉우리를 가르키면서 "저기요?"한다.
"아니 그 너머" 그럼 "그 너머 저기요?" 칠성봉을 가르킨다.
그래서 당당히 뻗어있는 영신봉을 가르키면서 "아니 그너머 높은 데 너머"
그 말에 이정표에 표기된 거리를 혼잣말처럼 뱉어내면서 "얼마 안되다면서 저렇게나 멀어요? 에효!" 한다.
그래도 이쁘다.
드디어 영신봉 아래 마지막 오름길을 오른다. 능선상의 암봉 좌측으로 철계단을 가설해 암봉 옆구리를 끼고 오르는데 지친 끝이라 이 계단길이 정상으로 향한다기보다 아주 천국으로 보낸다.
철계단 중간에 짐을 풀고 간식을 꺼내 파티를 한다. 동경이랑 건우랑 합류하여 같이 한참을 쉬고 둘을 앞서 보낸다.
어린 건우가 많이 지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내리막길을 터덜 터덜 발품을 던지다가 드디어 짠하고 세석산장의 지붕이 나타난다.
현관이가 환한 웃음으로 반겨준 산장주변은 정취보다는 하품이 좀 난다.
등산객이 많아 자리를 잡아 여장을 풀기가 영 마뜩챦다.
그나마 식탁을 하나 잡아 놓고 지붕있는 취사터의 반쪽짜리 식탁터는 창조형이 지키고 계셨다.
서둘러 배낭을 풀어 불을 지피고 식사 준비를 시작하는데 창조형님이 늦은 대원들 마중을 나가신다고...
기현이가 건우를 산장에 들여보내 쉬게 하고 동경이와 2조의 마중을 나간다.
형님은 우리랑 식탁 파수 임무를 수행하시고 옆팀은 금새 자리를 비운다면서 삼겹살에 양주에 뜰 생각이 없다.
저쪽에서 밥하는 현관이도 거들다가 돌아와 보니 지들이 먹다먹다 배가 차 더 들어가기가 곤란해지니까 선심아닌 선심을 쓴답시고 강제로 버린 삼겹살구이가 몇조각 기름을 질질 흘리면서 찬통뚜껑에 놓여있다. 이걸 고마와 해야 해. 승질을 내야 해.
암튼 쓰레기 치우듯 두어조각 입에 물고 삼키고 기분이 영 잡친다. 그 삼겹살은 끝내 그 더럽게 고마운 양반들이 떠난 한참 뒤에도 남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굳어가다가 끝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드디어 정복이형을 비롯 차례차례 뒤처진 대원들이 도착.
정말 고생이 많았다. 꽁치통조림을 털어넣은 김치찌게에 밥을 먹는다. 허기가 많이 져 있었지만 워낙 기력들이 쇠하여 입맛이 착착 붙지는 않은 듯.
몸져누운 건우도 깨워 불러내어 속을 채우게 하고 예약팀 8명 외 노숙팀 3명을 산장에서 재운다고 순번을 기다린 끝에 입실권 획득.
소주 한병 정도를 비우고 다들 자리를 뜬다.
태욱이는 밖에서 자야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듯 했으나, 모두 입실.
산장 안은 이외로 난방이 잘되고 사람들이 많아 여벌옷을 겹쳐 입으니 담요도 불필요하다.
무슨 꿈인지에 시달리다가 새벽일까 기상하여 시계를 확인해보니 고작 1시반경.
10월 7일 일요일
소변이나 보자고 밖으로 나왔는데, 잠이 다 달아난다.
오밤중에도 취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등산객들이 쉬지않고 들락거린다.
일부는 벌써 일출 본다고 출발하는 팀들도 보였다. 참 징하고 장한 민족이다 싶다.
맡아둔 식탁에 콕헬이니 찬통이니 전시되어 있고 그 옆에 누군가 침낭을 뒤집어 쓴채 누워있다.
다른 빈데가 없어 자리를 놓쳤나부다 한다.
빈지붕의 바깥쪽의 식탁이라도 맡아둘 요량으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현관이가 따라나온다.
둘이서 가만히 보니까 자는 사람이 기현이다.
식탁위의 물건들이 왠지 낯이 익어 살펴보니 우리팀의 것이고. 해서 기왕지사 잠도 달아났는데 자리나 피자구 배낭을 들고 산장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눈부시게 맑아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동쪽 하늘에 오리온도 보이고 카시오페아도 보이고...
현관이는 다시 잔다고 들어가고 홀로남아 취사구를 꺼내 조립하고 궁상을 떨다 보니까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
매트리스 깔고 침낭을 펴고 몸을 눕힌다.
창조형이 나오시고, 누군가가 또 나와 커피를 끌히고 하는 걸 꿈처럼 흘리면서 눈을 붙힌다.
가끔 깨어 보면 창조형이 홀로 자리를 지키신다.
해수가 함께 나와 부스럭대어 시각을 여쭈니 4시 정도란다. 조식 준비를 하고 깨워 속만 채우면 출발하겠구나 하고 일어나 함께 식사준비를 한다. 메뉴는 누룽지에 인스턴트 우거지국.
식사준비가 다 되어 기상시간 4시반에 산장안에 들어가 깨우니 피곤한 얼굴로 몸들을 일으킨다.
어제는 콘디숀 걱정이 많았는데, 아침에 꼼지락거리니 몸이 많이 풀린다.
오늘의 일정을 상의하다 보니까 태욱이가 두 팀으로 나누어 운행하자 한다.
해수랑 본인의 몸 상태가 영 아니어서 천왕봉은 포기하고 그냥 내려간단다. 라면을 두팀분으로 나누고 출발
아침에는 물만 처바르고 마사지하듯 고양이세수라도 하는 게 많이 도움이 된다.
이미 날이 밝은 촛대봉 정상에서 일출을 본다. 아랫도리가 개스에 가려 지평선에 떠오르는 붉은 공 같은 일출을 맞이하지는 못했을 듯.
개스구름 위로 이미 주변이 밝아진 붉은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사진들을 찍고 다시 출발.
세석서 장터목까지의 길은 언제나처럼 참 아름다운 길이다.
굴곡은 많으나 표고차 크지않게 적당하고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촛대봉서 얼마 안가 도상으로 삼신봉이라 표기된 암봉은 일출봉이라고도 한다.
천왕봉 일출보다 예서의 일출 조망이 더 좋다는 풍문이다.
그를 지나치면 붕긋한 연하봉부터 고사목이 드문드문 모습을 보인다.
장터목의 너른 터가 저 아래 보이고 천왕봉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솟아있다.
예서 배낭을 데포하고 빈몸으로 천왕봉을 다녀올 작정이다.
뒤늦은 정복이형이 몸상태가 안 좋다고 남아 뒷팀과 합류하여 운행을 하신다고 한다.
물병과 간식을 챙겨 동경이 어택에 담아 나머지 인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발.
제석봉 오름길 초입은 언제나처럼 엄청 가파르다. 예전엔 이 길이 가팔라도 천왕봉이 코 앞이라 늘상 달리곤 하여 그러려니 했는데.... 배낭 멘 등산객들의 숨소리가 탄식처럼 흐른다.
제석봉의 부드러운 정상부근엔 목책으로 전망터를 근사하게 꾸며놓았다.
단풍도 군데 군데 보이고 가을이 익어간다.
제석봉과 천왕봉 안부에서 마지막 오름길은 천왕봉의 위엄으로 큰 너덜이지만 시각이 즐거워서인지 이외로 지루하지 않다.
천왕문을 지나 정상. 천왕봉 표지석에는 언제나처럼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해 비지가 않는다.
그 비석은 연중 삼백육십오일 외롭지는 않겠단 생각. 아니 그보담은 좀 외로워져야 평안할 것 같은 안스러운 마음이다.
그런 정물의 기대를 배신 때리고 우리들도 스마트폰 증명사진을 찍는다.
돌아오는 길도 발걸음이 사뿐하다. 당연히 배낭이 없으니 그렇겠지.
누군가 하산길 중에 술 한잔을 거론했는데 진항교 박사가 소지했던 딱 한병 남은 명품 매실주가 떠올라 그거 좋지 했더니
앞조가 가져갔단다. 배낭 무게를 더는 게 더 좋을텐데 그걸 가져갔어? 그런 소감이 든다.
정복이형을 비롯한 태욱이 해수 일행은 이미 백무동을 향하고 우리들 배낭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여장을 챙기고 백무동을 향해 출발.
약 8 9부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길이 이어져 조급한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뒤따르던 종혁이형이 "언제 내려가는겨?"
내리막길은 보다 확실한 경사를 보여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참 한없이 내려간다. 한시간을 넘게 달렸는데 앞 조의 꽁무니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매실주 생각이 나서이겠지만...
따라잡을 생각을 고쳐먹고 너른 공터에 매트리스 깔고 휴식을 취한다.
5분여 남짓 현관이랑 우르르 닥친다. 하산길 힘들이 남았는지 매실주가 땡겼는지 쉬지도 않고 현관이가 "형은 쉬다가 천천히 와"
하고는 모두들 슝 하고 내려간다.
혼자 남았는데 식식 오르던 사람들이 그닥 뒤가 없으려니 했는데 진박사가 뒤에 있는줄은 다 내려와서 알았다.폼도 나지 않는 예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서 내 매트리스를 발로 밟는 둥 성가시게 굴기도 하고 하는 가운데 동경이랑 건우가 합류한다.
간식거리를 꺼내 나누고 물도 마시고 충분히 쉰다. 다시 일어나 하산.
암튼 한참을 꽂은 끝에 뒤뚱뒤뚱 해수랑 태욱이 일행의 꽁무니가 잡힌다.
같이 뒤둥뒤뚱 노니며 내려가다가 앞으로 내뺀다.
올라오는 단체팀들이 매우 많다. 암튼 전국민의 산악인화를 실감케 하는 현상이다. 스마트한 문화가 이루어내는 업적?!
아니면 유행에 민감하고 깊이가 없이 표면적의 감각에 치중하는 한류문화의 특징?! 그 역동성의 현장이지 싶다.
으음~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구나 싶다.
백무동공원은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다.
자연스런 옛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각종 시설과 평평한 공터들로 조성되어 있다.
마을은 팬션과 신식 여관들로 채워져 있고 순박한 산촌의 외관을 벗었다. 한편으론 그 스마트한 문화가 편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용도에도 나름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순박하고 불편했던 비문명의 품이 그리웠다.
돌아가라 하면 돌아갈 수 있을까? 정답은 그걸 삶의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자 몫이 아닐까 한다.
나는 그저 바람같은 외부인일 따름이다.
그래 그냥 바람....바람같은 거다.
아웃사이더의 그리움은 원시를 지향하지만 원시 그 인사이더는 문명을 지향한다고나 할까?
그래 그게 바로 책임일 것이다.
그 책임은 침묵과 관찰을 의무화한다. 개입과 주장을 차단하기도 한다.
성숙한자의 몫이 책임이다. 쓸쓸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깊은 관심이 없는듯 외관으로 나타나지 않게 은밀하게 보듬고 안아 타인과 스스로를 치유한다.
맑고 찬 계곡물에 몸을 씻고 주막에 앉아 간절한 술을 마시고 마음을 씻는다.
동경이랑 건우가 도착하고,
그 뒤을 이어 정복이형 등 2조 도착.
그러고보니 앞 조의 진박사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진항교 대원도 합류 종주를 축하 악수하고 귀가.
함양까지 시외버스.
대전까지 직행버스(고속도로 경유)
대전 전민동서 뒤풀이 회장님(삼중이)과 헌범이가 합류하여 술을 나누었다. <보고자: 이순명>
회계보고 : 김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