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 있어라 : 기름 준비(마태 25:1-13)
김민규 베네딕트 신부 / 온양교회
오늘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 속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사용하십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라는 동수의 대비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동수의 대비는 마태오복음 24장에서도 나타납니다. 밭에 있던 두 사람, 맷돌 가는 두 여인, 이 중에서 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버려두신다는 비유가 그것입니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에서 정확히 대비를 이루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우리를 향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 어떤 쪽의 사람도 될 수 있는 열린 결말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속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삶 안에는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한 선한 마음, 선한 행실도 있지만,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악한 마음과 악한 행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 속성, 그것 중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반반씩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서글픈 사실은 육신을 가진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듯이, 결핍하면 가지려는 욕심이 자연스레 생겨납니다. 육신을 가진 채 살아가는 우리는 육신의 법에 지배당합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육신의 법, 죄의 법에 지배당할 뿐입니다. 바울로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는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이기에,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가능성에 언제나 노출되어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의식 없이, 그저 습관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어떠한 생활도 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살아내려는 의지적인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오실 신랑을 위해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한 손에 등잔을 들고, 또 한 손에 기름을 담은 그릇을 드는 것은 분명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 귀찮음과 번거로움 때문에 기름을 챙기지 않았겠지요. 말씀을 따라 사는 것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되기 쉽습니다. 항상 깨어 있어, 나 자신을 말씀에 맞추는 일은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즐기고 누릴 것이 많은 요즘 세상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분명히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기름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귀찮고 번거롭지만, 우리가 깨어 있어, 말씀을 따르려 애쓰는 한순간 한순간은 한 방울 한 방울의 기름이 되어, 예수님을 맞이할 등불을 밝혀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마무리의 때로 점점 다가가고 있습니다.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난다면, 서둘러 기름을 준비합시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더디 오심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나를 위한 하느님의 자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