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9 (금) 文대통령 불만족… 여야 5黨대표 회동
7월 18일 청와대 회동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與野) 5당 대표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초당적 대응'을 강조했다. 청와대와 여야 대변인들은 회동 후 "일본은 경제 보복을 즉각 철회하라"는 공동 발표문을 냈다. 범국가 차원의 비상 협력기구 설치도 합의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경(追更) 추가 편성, 소재·부품 국산화를 거론한 반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한·일 정상회담과 대일 특사 파견을 주장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경제·산업 차원의 장기 대책'을 거론한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외교 협상을 통한 빠른 해결'을 주문한 것이다. 양측이 공동 발표문은 냈지만 한·일 갈등 문제 해법에서는 입장 차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 文 대통령 "반일 감정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문 대통령은 이날 보복 철회를 위한 '외교적 협상'보다는 소재 국산화 등 장기 대책에 강조점을 뒀다. 문 대통령은 대일 특사 파견 같은 외교적 카드를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추경을 최대한 빠르고 원만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추경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협력하고 소재·부품 예산도 국회에서 처리해주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이 경제 전쟁은 쉽게 안 끝난다. 어차피 한 번 건너야 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며 "추경안을 빨리 통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금 정부가 별다른 대책 없이 말로 국민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며 "말과 감정만으로는 문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저 자신이 한·일 회담 반대 투쟁을 시작했던 사람"이라며 "이번 사태는 일본 정부의 잘못이지만 우리도 반일(反日) 감정에 호소하거나 민족주의로 대응하지 말고, 일본이 방향을 전환할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반일 감정은 스스로도 갖고 있지 않다. 또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부품 경쟁력 강화, 수입선 다변화 등 중·장기적 해결 노력을 하지만 당장의 외교적 해결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황 대표와 손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조속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대일 특사 파견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황 대표는 "조속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해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일 특사를 서두르고 대미 고위급 특사도 파견해 한·미·일 공조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해법이 된다면 언제나 가능하지만 무조건 보낸다고 되는 게 아닐 것"이라며 "협상 끝에 해결 방안으로 논해져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5당 회동에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일 특사 파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같이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제안했지만 일본 측 호응이 없어 아직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 때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면서 "양 정부 간 합의만으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국민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함을 교훈으로 얻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외교안보 라인을 엄중히 문책하고 경질해 국민을 안심시켜 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야당의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7월 31일 또는 8월 1일에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발표를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고 정동영 대표가 전했다.
◇ 與野 이견에 문 대통령 "만족 안 해"
문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손학규 대표는 회동 후 브리핑에서 "내가 문 대통령에게 만족하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오늘 공동발표문에 추경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일 그런 얘기가 나왔으면 추경 때문일 것 같다. (대통령이) 추경 때문에 좀 많이 아쉬워한 건 맞는다"고 말했다.
7월 18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정당대표 초청대화’에 앞서 진행된 차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의 이 같은 뼈 있는 말들이 오갔다. 오후 4시에 시작해 2시간 동안 하기로 했던 회동은 예정 시간을 1시간 넘겨 오후 7시에야 끝났다. 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황 대표는 회동이 끝난 직후 1분30초 동안 단둘이 창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야 당대표들은 이날 회동 시작 시간인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청와대 본관 충무전실에 속속 도착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푸른색 줄무늬 타이를 맸고, 자유한국당 황 대표와 민주평화당 정 대표는 각각 당의 상징 색깔과 가까운 붉은 색, 초록색 타이를 맸다.
박근혜정부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 대표가 청와대에 익숙한 듯 이날 차담회 분위기를 주도했고, 나머지 대표들도 개성이 뚜렷한 발언으로 맞받았다. 황 대표는 다른 당 대표에게 돌아가며 말을 건네거나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험을 꺼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통령과 당 대표 회동의 성사에 본인이 기여한 바가 많았음을 보이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황 대표는 이날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정 대표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전화통화가 가능한가 보죠. 전에는 안 됐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대통령 주변엔 통신차단 조치를 해 전화통화가 안 되던 것을 기억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충무전실의 열린 문 밖을 가리키며 “국무회의를 저 끝에서 했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최근 정의당 대표에 당선된 심상정 대표에 대한 덕담이 오가면서도 보수·진보 야당 간 미묘한 신경전이 일기도 했다. 황 대표가 정 대표에게 “생신이시라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정의당 심 대표가 황 대표에게 “생일까지 기억하시고, 민주평화당만 챙기시나요”라고 농담을 걸었다. 그러자 황 대표가 심 대표에게 “세번째 대표 축하드립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심 대표는 “두번째입니다”라고 정정했다. 심 대표가 이에 “생신이 언제냐”고 묻자 정 대표는 “정전협정일”이라고 답했다. 정 대표 생일은 오는 7월 27일이다. 정 대표는 “엄마 뱃 속에 있다가 전쟁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고 익살스럽게 부연했다.
황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간 대화를 심 대표가 중개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황 대표가 다른 참석자들을 향해 “오랜만”이라고 인사하자 심 대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 분도 오랜만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어제 봤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황 대표가 이 대표에게 “(청와대에) 가끔 들어오시나요”라고 묻자 이 대표가 “네, 당정 회의할 때”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회동이 길어지자 “저녁 시간을 비워놨으니, 같이 저녁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5당 대표들에게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황 대표가 “일정이 있어서 함께 못하겠다. 다음에 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과 당 대표들의 회동 자리엔 메밀차와 우엉차가 차례로 나왔고 막바지에 과일이 나왔다고 한다. 오후 6시59분쯤 회동이 끝난 뒤 다른 당 대표들이 나가며 정리 분위기에서 문 대통령과 황 대표는 인왕실 창가에서 1분30초간 얘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이 제 1야당 대표를 배려한 의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정치권 호사가들의 관심거리였던 전·현직 청와대 대변인들의 ‘불편한’ 만남은 불발됐다. 한국당에선 민경욱 대변인 대신 전희경 대변인이 황 대표와 함께 회동에 임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 대변인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과 거듭 충돌하며 “TV 생방송에서 한 판 시원하게 붙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한편, 문 대통령 취임 후 이뤄진 여야 대표와의 회동 중 가장 긴 시간 진행됐던 회동임에도 청와대 내부와 야권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시간이 부족했다”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추경 문제의 ‘꼭지’도 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회동 뒤 국회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내가 문 대통령한테 ‘만족하십니까’하니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동발표문)에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안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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