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카이세리2 - 카이세리 성채를 보며 몽고 침략에 맞선 셀주크 투르크를 회상하다!

5월 19일 카파도키아 의 괴레메 에서 버스로 윌귑 Urgup 을 거쳐 14시에 카이세리
오토가르 Kayseri Otogar 에 도착해 세르비스 를 바꾸어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는... 15분을 걸어서 줌후리예트 광장 Cumhuriyet Meydani 을 찾아 갑니다.


줌후리예트 광장 은 시계탑 과 바자르 와 카이세리 성채 Kayseri Citadel 가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카파도키아 왕국의 수도 로 마자카 로 불렸으며...
티베리우스 황제가“황제의 거리”를 의미하는 카이사레아(Caesarea) 라 명명했습니다.


카이세리 는 6세기에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에 의해 축조된후 룸 셀주크(터키)
술탄 술래이만 샤 는 1084년 카이사레아 를 정복하여 “카이세리”라고 개명
했으며 1,230년 셀주크 술탄 알라에딘 케이쿠바트 1세 가 몽고침략에 대비 재건합니다.


돌궐의 후예 투르크족 은 960년 셀주크의 영도 로 이란으로 남하해 손자 투그룰 베이
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로 침입한후 그 아들 알프 아르슬란 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에서 5만의 비잔틴군 을 격파하고 황제 로마누스를 포로 로 잡습니다.

이후 셀주크의 네 아들 중에 한명인 아르슬란 야브구의 손자 쉴레이만 샤 는 유프라테스
강과 우르파 일대를 장악한후 안티오크와 알레포 를 손에 넣고는 비잔틴제국
내분을 틈타 1078년 이즈니크(니케아) 를 함락시키고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 로 삼았습니다.


쉴레이만 샤 는 1084년에 이 도시 카이세리 를 점령하고는 남진해 아르메니아
공국 에 불만이 많던 기독교도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안티오크 를
장악했으나 1086년 6월 시리아의 에미르 투투스 와 전투를 벌이던 중에 숨집니다.


그러자 아들인 클르츠 아르슬란 이 1092년말 호라산에서 3천 병사 를 이끌고 이즈닉
(니케아) 으로 들아와 소아시아 셀주크의 술탄 이 된후 동부로 진공 중에
1097년 5월 1차 십자군 의 침입에 패해 수도가 점령 당하자 중부지방 코냐 로 후퇴합니다.


그는 1101년 롬바르드와 프랑스 십자군 을 격파하고 모술을 점령한후 시리아로 진격하다
가 1107년 7월에 하부르 강변에서 전사 하니 내란 끝에 차남 마수드 가 술탄에 올라
1144년에는 십자군의 마라쉬 를 점령하고 비잔틴 황제 마누엘 콤네누스 대군 을 격파합니다.


마수드 는 1147년 에스키쉐히르 에서 독일왕 콘라드 3세 가 이끄는 제 2차 십자군 을 물리
치고 1155년에 숨지니, 아들 킬리지 아르슬란 2세 가 술탄을 계승하고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 한후 1163년 다니슈멘드를 무력화 시켜 누레딘 젠기 에게 복속시킵니다.


이에 비잔틴 황제 마누엘 콤네누스 는 프랑크족과 헝가리, 세르비아 병사들을 모아 침략
하자 1176년 9월 미리오케팔론 계곡에서 격파 하고 아르메니아 공국을 정복 한후
남쪽으로 시리아 까지 영토를 확장한후에 1186년 영토를 11명의 아들들에게 분할해 줍니다.


1187년 살라딘 아이유브 가 예루살렘을 장악 하자 유럽은 3차 십자군 을 결성하는데
킬리지 아르슬란 2세 는 십자군과 협정을 맺으려 했지만 아들들은
반대하니.... 독일 십자군 은 수도 콘야로 쳐들어와 도시를 파괴 하니 1192년 숨집니다.

이후 기야세딘 케이후스레브 를 거쳐 손자 케이쿠바트 는 1226년 시노프에서 해군을
이끌고 러시아 공국들을 복속 시키고, 육군은 실리프케에 이르는 해안 지역을
장악하고 해군은 1223년 알란야 성을 함락시켜 “알라이예”라고 불렀으니 휴양지라!

몽골 이 침략하자 셀주크 투르크 와 동맹 호레즘 군주 셀라레딘 은 1225년 아제르바이잔
으로 피신해 셀주크의 아흐라트를 파괴 하자 충돌이 일어나 케이쿠바트 는 1230년 8월
에르진잔에서 호레즘을 격파 하고는 몽골군의 침략에 대비해 카이세리 성채 를 개축합니다.


이후 호레즘을 정복한 몽골군 이 소아시아를 침략해 오자 케이쿠바트 는 몽골의 침략에
대한 대비책으로 카이세리 등의 성채를 개보수 하는등 대비책을 마련하는
도중인 1,237년에 죽으니... 아들이 뒤를 잇지만 1,243년 쾨세다으에서 참패 를 당합니다.


호레즘 은 대셀주크의 술탄 말리크 샤 가 1,077년 호라산의 통치자로 임명한 아누스테긴
이 시조인데... 1157년 대셀주크의 정통 술탄인 산자르 가 카라키타이(서요)
와 위구르 연합에 의해 대패해 전사 하자 테키쉬 샤 의 지휘아래 호레즘 왕국을 세웁니다.

호레즘 은 룸셀주크(터키 셀주크) 와의 전투에도 승리해 이란 지역을 굳건히 하고
쿠트베딘 무하마드 가 뒤를 이으며 호라즘의 전성기가 열리는데 카라키타이 를
동쪽으로 쫓아버리고 카라한 잔존세력 을 일소하고 수도를 사마르 칸트 로 옮깁니다.

호레즘 은 인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의 구르왕조 까지 멸망시키고는 바그다드 압바스조 의
칼리프에게 칼리프직 양도 를 요구해 전 이슬람 세계의 분노를 사고는.... 1218년
오트라르 성주 는 첩자 라면서 몽골의 사신과 대상 500명 을 을 죽이고 상품을 탈취 합니다.

그후 칭기즈 칸 이 보낸 항의 사절 까지 죽여버리자 분노한 칭기즈 칸 은 1,219년
15만 대군을 동원해 침략해 오자 수성전을 주장하다가 결국.....
술탄 무하마드 는 카스피해 까지 도망쳐서 굶어죽고 호라즘은 몽골의 속령 이 됩니다.

무하마드 는 두 왕국은 천산산맥, 파미르고원과 사막으로 격리 되어 있고 몽골은 금 나라
와 전쟁 을 수행하는 중이며 요새화된 호레즘 성벽 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 기술과
인력이 부족할 것이고 적은 병사로 먼 거리를 달려와 요새를 공략하기 어렵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징기스칸 은 한겨울 에 천산 과 파미르 고원 을 넘고... 시르다리아
강과 아무다리아 강 을 건너 키질쿰 사막 을 통과해서는
혹한의 날씨 를 견디며 4개월을 강행군하여 봄에 호레즘 왕국 에 도달합니다.

징기스칸 은 호레즘 왕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포위 하기 위해 군대를 3갈래로 나누어
진군시켰으니 사막에 흩어진 오트라르,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에 분산 시켜
묶어 놓고는... 수도를 포위하기 위해 키질쿰 사막을 우회 하는 대담한 작전을 수행합니다.

호레즘을 정복 한 징기스칸 은 1,224년에 철수하다가 서하의 반란 을
징계하려다가 병으로 죽고...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칸 에 오릅니다.

셀주크 투르크의 케이쿠바트 가 1237년에 죽은후 아들인 기야세딘 케이후스레브 2세
는 통치능력과 군사적 재능이 결여돼 있었으니 1,239년 부하인 군사령관
사아데틴과 코펙 등을 제거 하는 실수를 저지르는데, 바바 이삭의 반란 이 일어납니다.

오고타이칸 치하 에서 아제르바이잔 에 원정 본부를 설치한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휘하의 몽골군 은... 바이주 노얀 의 지휘 아래 1242년
셀주크 투르크에 진입 해서는 에르주룸에서 70,000의 주민을 학살 합니다.

셀주크 투르크 는 바바의 반란으로 인한 내분 으로 어려웠지만 술탄 케이후스레브 2세
는 용병을 포함한 70,000의 군대를 시바스 로 보내니 몽골군 도 약탈을 자행하며
계속 진격해 왔기 때문에... 결국 1243년 시바스 동부의 쾨세다으 평원 에서 부딪힙니다.

술탄은 전통적인 척후- 유인- 매복- 기습 이라는 전략을 버리고 평원 전투를 시도 함으로써
막강한 전력에도 몽골군에 역습을 당해 참패 하고 쾨세다으를 철수 하자 몽골군은
파괴와 약탈, 학살로 시바스, 카이세리, 에르진잔을 초토화 하고 무간의 본부로 돌아갑니다.

술탄 케이후스라브 는 즉시 몽골과의 화해 를 위해 재상 알리를 무간에 사절
로 보내 강화를 요청하니 이 조약에서 셀주크조는 몽골의 통치권 을
인정하고 막대한 양의 연공 납부 를 보증함으로써 사실상 몽골에 복속 됩니다.

쾨세다으 전투 결과 몽골의 통치가 시작 됨으로써 아나톨리아에 새롭게
발아되었던 투르크 셀주크조의 문화 유산은 거의 폐허화 되고.....
투르크는 다시 수많은 공국으로 분열 되어 셀주크조의 멸망 이 가속화 됩니다.

쾨세다으 전투 후 셀주크조의 통치권 을 벗어난 공국들과 영주들의 반발 이 이어지자
술탄 케이후스라브 2세 는 1246년 아르메니아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여
킬리키야를 거쳐 타르수스를 점령할 즈음 그가 사망함으로써 셀주크조는 더욱 약해 집니다.

마침 그때, 몽골 제국 에서도 규육 한 이 등극을 앞두고는 쿠릴타이 를
소집했으므로.... 종속 관계에 있는 셀주크조 는 술탄 대신에
동생인 클르츠 아르슬란 4세 를 1246년에 몽고 카라코룸에 파견 하였습니다.

그런데 클르츠 아르슬란 은 1248년 귀국할때 몽골 한으로 부터 술탄 케이카부스 2세의
폐위 와 재상 샴수딘의 파면 을 명한 징표 를 가지고 있었으니 재상은 파면
했으나 술탄의 폐위에는 영주들과 관료들이 이의를 제기하였으므로 중재안 이 마련됩니다.

터키 셀주크조 역사상 처음으로 1249년부터 6년간 케이카부스 2세, 케이쿠바트 2세,
클르츠 아르슬란 4세 가 동시에 통치하는“합동 술탄제 시기”가 계속
되었는데 이후 내란을 거쳐 케이카부스 2세 가 다시 유일한 셀주크조 술탄이 됩니다.

이때 이란 지역에 일한국 이 수립되자 몽골 장군 바이주 노얀 은 무간
을 버리고 아나톨리아에 새로운 정복 본부를 구축 하려 했으니
셀주크 투르크군 은 불행하게도 1256년에 몽골군에 또 다시 패배 합니다.

이 사건후 1259년 부터 몽골 조정이 클르츠 아르슬란을 술탄으로 복귀 시키자 셀주크조는
크즐강을 경계로 또다시 두 술탄이 통치하다가 클르츠 아르슬란 이 몽골군의 도움으로
1261년 부터 셀주크 전역을 통치하지만 1,308년에 멸망 하고 오스만 투르크 가 일어섭니다.

1243년 쾨세다으 전투 에서 셀주크군이 몽골군에 패퇴했을때 400명의 병사 로 시작하여
큰 세력을 이루어 비잔틴을 공격 하던중인 투르크족 오스만 은 아나톨리아 북서부
비티니아 아미르로 부상해 자식들이 오스만 투르크 를 건국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 합니다.


오스만 은 아나톨리아 동부의 투르크멘 공국 게르미얀을 피해 보스포러스와 마르마라
해변으로 이주하여 비잔틴 영토를 잠식 하자 유목민을 비롯 도시 실업자들 이
생계와 이슬람의 전파 라는 종교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모여어 큰 세력을 이룹니다.

문란한 내정 으로 몰락의 길을 걷던 병든 비잔틴 의 상황이 오스만과 그를 이은 후계자들
인 오르한, 무라트 1세, 바예지트 1세 등에 의한 효과적인 비잔틴 공략 을 가능하게
했으니 오스만 투르크 는 이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 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