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34).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슈아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튿날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리새인이 보낸 자들이 방문 후 이틀이 지났음을 말한다. 그때 예슈아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심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흠정역은 세상 죄를 제거taketh away)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쳤다.“어린양”은 역사(유월절 양, 출12:13)와 대언(메시야, 사53:7)적 은유에서 연결된다. 세상 죄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죄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라”는 단어는 중요한 단어이다, 구약성경에 1000회 이상 나타나며 신약에도 100이상 나타난다,“보라”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을 정리하면, 단지 응시하는 단계에서 보이는 그대로 보고 판단해 버리는 단계로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보아 경험과 마음으로 아는 단계를 통하여 비로써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사물을 지시할 경우보다 사람을 지적할 때 더 많이 쓰인다.(수24:27, 삼상9:17), 본서에는 20회 사용되었다. 1장에서만(29,36,39,46,47)5회 사용되었다. 성경은 원래부터 항상 하나님을 본(호라오) 사람이 없다(요1:18)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이 청결한자만이 하나님을 볼(호라오)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마5:8). 청결하고 흠 없는 자는 그리스도 예슈아 주님 밖에 없다. 그리고 예슈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으로만 청결하고 흠 없게 될 수 있다(요15:3)선악의 주체가 된“나”바로“자신”의 생각과 말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가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호라오)있는 것이다.예슈아 주님은 제자들에게 와서“보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다(요1:39).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단지 기계적이고 수동적이거나 우연한 응시를 표현하는 겉을 보고 깨닫다, 지식을 갖다, 확신하다, 발견하다, 보다, 알다, 확신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본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이성으로 관찰하고 마음으로 판단하고 깨달아 아는 것이 진정으로 보는 것이다. 본문에서“보라”는 헬라어로“이데ide”인데“보다, 인식하다, 경험하다”을 뜻하는“에이도eido”의 미 완료형 능동태 단수 2인칭으로“보라!”을 말한다.
① 말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주의를 끌려고 할 때 그것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② 기대하지 않던 것을 소개 할 때 사용한다.
③ 자!, 여기 있다. 여기 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다.
④ 원래의 뜻이 상실된 경우 자 이제 너희가 들었다,
⑤ 단순히 여기를 보라 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보는 단계
① 응시하다--->② 관찰 한다--->③ 판단 한다--->④ 깨달아 안다
예슈아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사람들)의 죄를 제거하러 어린양으로 오셨다. 어린양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죄들을 속죄함 받기 위하여 제사로 드리는 짐승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그 짐승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렸다. 그러나 그 피가 사람의 죄를 속하지는 못했다. 이 양들은 장래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우리 죄를 없이할 양을 준비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그림이나 모형이다(히10:1)
“세상(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는”
세상 죄를“지고 가는”헬라어로“아이로airo”인데 "taketh away(타케스어웨이)는“들어 올리다, 높이다, 집어 올리다, 데리고 올라가다”을 의미한다. 상징적으로는 기도할 때 눈을 들어 우러러 보다, 소리를 높이다, 어떤 것을 가지고 가다, 메고 가다, 들어 올려서 가져가 버리다, 옮기다, 치우다, 들어 올리지 않고 치우다 제거하다, 을 뜻한다.taketh away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① ~ 을 제거하다, 없이 하다(요1:29, 15:2, 1915, 눅23:17. 히10:9).② ~ 소리를 높이다(눅17:13,행4:24)③ ~ 빼앗아 가다(눅6:29,30,8:12,11:22, 16:3)
④ ~ 들고 가다(요5:9,10,11,12, 8:59, 계10:5,18:21).
⑤ ~ 들려가다(마21:21, 막11:23)
⑥ ~ 지고가다(마16:24)“십자가를 지고”영문 "taketh away"와 이 단어의 헬라어 단어는 모두 "제거하다, 없애다, 폐기하다, 빼앗다" 라는 뜻으로 사용 되었다. 존 다비 역시도“제거하다, 빼앗다”의 뜻을 가진“takes away”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가 제거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오직 예슈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 된다(요3:36).
오늘날 어느 이단은 주님이 요한에게 안수 받을 때 세상 죄가 예슈아 주님에게 전가 되였 다고 말하며 이것을 안수 복음이라고 하는 교단도 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요한은 대제사장도 아니고 예슈아 주님보다 큰 자도 아니다. 어떻게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죄를 전가 시킬 수 있는가? 예슈아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죄가 되셨다(고후5:21). 주님은 그 때에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6)
30절.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세상 죄를“지고 가는”헬라어로“아이로airo”인데 "taketh away(타케스어웨이)는“들어 올리다, 높이다, 집어 올리다, 데리고 올라가다”을 의미한다. 상징적으로는 기도할 때 눈을 들어 우러러 보다, 소리를 높이다, 어떤 것을 가지고 가다, 메고 가다, 들어 올려서 가져가 버리다, 옮기다, 치우다, 들어 올리지 않고 치우다 제거하다, 을 뜻한다.taketh away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① ~ 을 제거하다, 없이 하다(요1:29, 15:2, 1915, 눅23:17. 히10:9).② ~ 소리를 높이다(눅17:13,행4:24)③ ~ 빼앗아 가다(눅6:29,30,8:12,11:22, 16:3)
④ ~ 들고 가다(요5:9,10,11,12, 8:59, 계10:5,18:21).
⑤ ~ 들려가다(마21:21, 막11:23)
⑥ ~ 지고가다(마16:24)“십자가를 지고”영문 "taketh away"와 이 단어의 헬라어 단어는 모두 "제거하다, 없애다, 폐기하다, 빼앗다" 라는 뜻으로 사용 되었다. 존 다비 역시도“제거하다, 빼앗다”의 뜻을 가진“takes away”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가 제거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 된다(요3:36).
오늘날 어느 이단은 주님이 요한에게 안수 받을 때 세상 죄가 예슈아 주님에게 전가 되였 다고 말하며 이것을 안수 복음이라고 하는 교단도 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요한은 대제사장도 아니고 예슈아 주님보다 큰 자도 아니다. 어떻게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죄를 전가 시킬 수 있는가? 예슈아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죄가 되셨다(고후5:21). 주님은 그 때에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6)
30절.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한은 주님에 대하여 전에 말했다고 한다, 요한은 바리새인들이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분명하게 말했다.(요1:27),
주님은 자신보다 육 개월 후에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보다 앞선다. 이 말은 주님은 영원 전부터 계심을 말한다고 15절에서 설명한바 있다.
31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전에는 예슈아 주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는 말은 그가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예슈아 주님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예슈아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촌관계이다(눅1:36).그러므로 그들은 둘이 잘 아는 사이다.
그러나 그가 예슈아 주님이 나타나 침례를 받을 때까지“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줄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요한은 9~10절에서 참 빛/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어찌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고 지적한바 있다. 본문은 자신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을 증언한다. 심지어 요한은 예슈아 주님의 형제들도 그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요7:5), 이사야는 그는/ 예슈아 그리스도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형편이 가난하여 고생스러움)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약하여 병에 걸리는 고통)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다고 대언 했다(사53:3)
요한이 물로 예슈아 주님에게 물로 침례를 준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였다.“이스라엘”은 히브리어로“다투는 자, 하나님의 군병”에서 유래한 것으로 족장 야곱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다.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한 후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다(창32:28). 야곱은 12아들을 나았는데 성경을 그들을 집단적으로 부를 때는 다음과 같이 호칭했다.
야곱의 집(출19:3 시114:1).
이스라엘의 집(렘2:4, 룻4:11).
이스라엘 자손(창36:31,출1:7),
이스라엘(왕국, 또는 나라(행1:6),
이스라엘 백성(행4:10).
회중(출12:3).
군대(출12:7).
무리(출12:51).
32절.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또 증언 하였는데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이 말씀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백성들에게 줄 때 본 것을 말한다.“성령님”은 두려운 것에서 유래한 헬라어로“거룩함”을 뜻하는“하이오스hagios”와“영”을 뜻하는“프-뉴마pneuma”의 합성어로서“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런데 요한은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마3:16)이것은 성령의 움직이심을 비둘기로 표현한 것이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8~19)
예슈아 주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 임재 한 성령은 그 모습이 비둘기와 같았다.
주님은 침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다는 표현은 주님이 침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야단스럽고 법석하게 소란스럽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성령님의 온유한 속성을 말한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그리스도의 속성을 상징한다. 우리가 성령 가운데 행하면 온유해진다.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가 온유함이다. 또한 아가서를 보면 비둘기는 사랑을 상징한다.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말하며 그 눈이 비둘기처럼 아름답다고 말한다. 순결한 눈을 지닌 비둘기는 아가서에서 사랑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비둘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임을 표현한 것이다.
33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은 거듭 자신이 그 때까지“하나님의 아들”이 예슈아 주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분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고 하셨는데 자신이 보니 예슈아 주님께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성령의 침례는 오순절 날 일어났다(행1:5, 2:4), 그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그때 본 성령의 모습은 불의 혀 같았다.
“성령”은 두려운 것에서 유래한 헬라어로“거룩함”을 뜻하는“하이오스”와“영”을 뜻하는“프-뉴마”의 합성어로서“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성령은 비인격적인 하나님 영, 또는 그 영향력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요 주 예슈아 그리스도의 것으로 일하며 증거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시나 만유에 편재하시며 그리스도(여호와=품안의 말씀 logis)와 함께 만물의 창조 사역근원이 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