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꽃밭과 북미의 잔디밭
2016.8.3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리던 시절부터 매년 가을이면
꽃씨를 받아 놓으셨다가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밭에
뿌려 꽃을 가꾸셨다.
채송화,
샐비어 같은 일년생
화초도 있었지만,
작약,
모란,
장미 같은 다년생도
심으셨다. 치자
같은 추위에 약한 꽃은 겨울이 오기 전에 화분에 옮겨
심어 집안에 들여놓으셨다.
□자 모양의 기와집
안뜰에 원형 화단을,
서쪽 뜰에 반원 모양의
화단을 꾸미시고 우물가에는 라일락을 심으셨다.
그뿐만 아니라
앞뜰에도 각가지 꽃을 심으시고 집 곳곳에 매화,
해당화,
개나리 등 꽃에 무지한
나는 이름도 모르는 많은 꽃과 나무를 심으셨다.
또,
집 뒤에는 아버지께서
돌보시는 대추, 앵두,
감 등의 유실수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정원이라면 이렇게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꽃들을
예쁘게 가꾸는 꽃밭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기에 집에 꽃을
심고 키우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 나였지만 캐나다에
살기 전까지는 영미 문화권에서 흔한 가정집의 잔디밭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화단과 나머지 부분이
흙이나 콘크리트가 깔린 마당이 내가 생각해온 보통
가정집 정원의 모습이었다면 나의 식견이 부족한
탓일까?
오늘날
우리가 북미에서 주택마다 당연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짧게 깎은 잔디밭은 사실 영국식 잔디밭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17, 18 세기 영국에서
산책로나 사교적 모임을 위해 잔디밭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830년대에
잔디 깎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잔디 관리는 아주 부유한 귀족과 신사 계급이
건물을 짓거나 농업 생산에 쓰지 않아도 되는 땅을
소유할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미국의 노동 시간이 주 40
시간으로 단축되고
2차
대전 이후 교외 지역의 주택 개발 붐이 일어난 덕분에
잔디를 가꾸는 유행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잔디밭이란 것이 내 생각에는 북미 정원의 핵심으로
보인다.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아는 사람들과 각종
모임을 하고, 또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보통 집에는 앞뜰과
뒤뜰 한가운데에 잔디밭을 조성하고 울타리를 따라
가장 자리에 꽃밭이 꾸며져 있다.
이런 잔디밭의 위치를
봐도 잔디는 정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잔디
가꾸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시간을 쓰는지를 보면
정말 잔디가 북미인들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좋은 잔디를 유지하려면
먼저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주 잔디를 깎고,
잔디밭 가장자리를
다듬고, 1년에
4 번
비료를 주어야 한다.
아울러 이끼와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하고 원활한 공기,
물,
영양의 공급을 위해
땅에 구멍도 뚫어 주어야 하고 여름에는 붉게 타지
않도록 자주 물도 주어야 한다.
이래도 일부 잔디는
잘 자라지 않아 갈퀴로 긁어내고 흙을 뿌리고 씨를
덧뿌려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골목에서
제일 돋보이는 잔디를 가지게 되면 덩달아 집이 좋아
보이고 집 관리 잘하는 훌륭한 주인처럼 생각된다.
물론 이렇게 잔디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주로 은퇴한
분들이 시간 여유가 많으니 집 관리도 열심히 하시고
더불어 잔디 관리도 잘하신다.
하지만 잔디는 조경이
중요한 산업의 하나인 캐나다에서도 보통 사람들도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일 중의 하나이다.
내가
캐나다와 처음 살던 집 바로 이웃집에 한국분이 사셨는데
잔디밭 전체가 늘 한국 골프장을 능가할 만큼 가지런하고
짙은 녹색으로 빽빽해 조금도 엉성한 부분이 보이지
않게 잔디를 관리하셨다.
그러려니 틈만 나면
잔디에 매달리셨다.
나도 이분을 따라
두 해를 이렇게 잔디 관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야말로
내 아들 말대로 잔디를 위해서 사는 것 같았다.
아직도
나는 잔디를 엉망으로 관리하면 집 전체의 인상을
망치는 것 같아 신경을 써서 잔디를 관리 한다.
하지만 분명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과시 목적이 이런 북미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잔디 관리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본다.
마치 과시 소비와도
같은 잔디를 위해 소중한 물,
에너지,
공간을 낭비하고
농약, 비료
등의 화학 약품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 방식이 아닐까?
이런
힘겨운 노동과 막대한 자원 소비를 통해 유지되는 넓은
풀밭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꽃들을
심고 가꾸며 거기서 나름의 뿌듯함,
평화로움,
기쁨을 느끼는 정원
관리가 바람직하지 아닐까?
나의 어머니께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당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던
시대를 사셨다. 그래서
교편을 그만두신 뒤부터 70대
후반까지 시골에 묻혀 사시면서 당신이 가꾸실 수 있는
만큼 좋아하시는 꽃들을 심어 손수 꽃밭을 가꾸셨다.
꽃밭을 돌보시면서
어머니는 별다른 문화 시설도 없는 시골에 사시는
당신의 마음을 다독이셨을 것이다.
시름과 잡념을 쫓으면서
당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셨던 것이다.
잔디 관리처럼 힘에
부치는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것처럼 스스로 즐거워 몰입할 수 있는 정원을 나도
꿈꾼다.
*https://en.wikipedia.org/wiki/Lawn
에서 발췌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