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가쿠노다테4 - 무사들의 마을 가쿠노다테에 도착해 아오야기가 저택을 구경하다!
2022년 10월 29일 아키타현의 '뉴토온천향' 을 구경하고는 센보쿠시 다자와코역 田沢湖駅 에서 신칸센
기차를 타고 무사들의 옛 마을 가쿠노다테 (角館) 에 도착하는데 1620년 아시나 蘆名 가문이 세운
성곽으로 도호쿠의 작은 교토로 불리며 다마치 부케야시키 도리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 도리로 나뉩니다.
300년전 교토에서 옮긴 400그루 벚나무로 4월 하순에 벚꽃 축제 가 열린
다는데...... 일본에서는 옛날 무사들의 저택을 부케야시키
武家屋敦(무가옥돈) 라고 부르니 목조 기와집으로 대나무 못 을 썼습니다.
무사들의 집 주위에는 황토로 된 흙담 을 두른 것을 보며 예약한 농가주택 민슈쿠 로 찾아가는데
네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위쪽) 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도리 內町武家屋敷通り 입니다.
거리에서 아오야기 靑柳家(청류가) 저택을 보니 문득 몇년 전에 처음 왔을 때 500엔을 내고 이 집에
들어가 구경한 일이 떠오르는데.... 1587년 아오야기 靑柳家(청류가) 의 시조 이즈미(和泉) 는
주군인 사타케 시게모리 佐竹盛重(아시나씨의 가신) 를 따라 후쿠시마현 아이즈 로 이주했었습니다.
1603년 당주 도오에몬이 후쿠시마 아이즈에서 가쿠노다테 角館(각관) 에 파견되니... 연봉인 고쿠다카
는 쌀 60석 의 중급 사무라이 였다고 하는데... 1653년에 영주 아시나씨가 단절되면서 사타케씨
를 번주 로 모시게 되고 1794년에는 오슈 남부 변경 을 수비하면서 고쿠다카가 80석 으로 늘어납니다.
1851년 당주 정수 는 아시가루 지휘역을 겸하고 1858년 당주 정신은 에조지 경비를 위해 홋카이도 에
파견 되었으며 1868년에는 메이지 유신 무진전쟁 에 참전했다고 하는데, 이 저택의 대문인 정문
지붕에는 액막이 로 화화로운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어 동네의 다른 무가 가옥들을 압도했다고 합니다.
일본 중세 봉건시대에는 집의 대문이 주인의 사회적 지위 를 상징했다는데 가쿠노다테
의 영주가 1860년에 특별히 이 호화로운 대문의 건립 을 허락해 주었다고 하며
L 자형인 3천평 대저택 에는 출입구가 3개 있는데, 각각 집의 특정한 장소와 연결
되는 문으로....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이용할수 있는 문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현관 으로 들어가면 몸채로 대기실과 객실 이 나오는데..... 대단히 지위가
높은 사람들 만이 이용할 수가 있었다고 하며, 객실 주위로는 나무로 만들어진
툇마루 가 있어 손님은 편안하게 앉아 아름다운 정원 풍경 을 감상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간 부분에 있는 출입구 는 가족과 친척 들이 이용했는데.... 오른쪽에 가장의 방이 있고 왼쪽에
안방이 있다고 하며 출입구인 현관의 천장 부근 에는 외적의 침입을 감시 하기 위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 이 있으니.... 평소에도 무사들의 긴장된 생활 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정면 양쪽이나 출입문 양쪽에도 방문자들을 확인하기 위한 격자문 이 있으며 옆 출입구는 부엌으로 통하는
데....... 주로 하인들이 이용 하였다고 하는데, 여기 아오야기 저택 靑柳家(청류가) 에는 말을 묶어
두던 돌 이 남아있고 가문의 비밀창고등 소박물관 들이 있으며 천장에 화재예방 물결무늬 가 유명하답니다.
대문 을 들어서니 여긴 어마어마하게 넓은 3천평 대저택 인데 정면에 본가인 모옥 이
있고 왼쪽으로 무기고와 청류암 그 옆으로는 우물 과 소전야직무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 뒤쪽에는 향토관 이고 연못을 건너면 암자와 무가도구관 에 식채관과 영화전시관 및 골동품
하이칼라관 과 다방 그리고 토산품점과 마굿간 등 10채의 건물이 늘어선 큰 저택 입니다.
1987년에 개장했다는 이 저택에서는 17세기 부터 20세기 까지 도검류, 의상, 완구, 족자, 회화, 문헌 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박물관은 외부에서 수집해온 물건을 전시하지만 아오야기 저택에서는 일문
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살면서 쓰던 것 들로 몸채에는 후손들이 1985년까지 실제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오야기 저택 은 자유 관람 이라 무기창고 로 들어가니 기모노 입은 여인과 이어 열벌에 가까운
갑옷과 칼 및 조총 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도 3회전식 화승총 과 접었다 폈다 할수
있는 갑옷, 그리고 아오야기 일문의 보물로 전승되어온 다케다류의 흑칠 갑옷 이 인상적입니다.
이 갑옷 은 아오야기 靑柳家(청류가) 가문 의 원 뿌리가 현재 야마나시현 인 다케다 신겐 을 배출한
가이국에 뿌리 를 두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무사의 부인이 혼례식 에서만 입었다고
하는 식물로 염색한 기모노 도 보이며.... 그 외에 다케무라 분카이가 만들었다는 인형 등이 보입니다.
마침 큰 칼 이 전시대에 있어 방문객들이 들어볼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한손으로는 도저히
들 수 없을 정도로 길고 크며 무겁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큰 칼은 실전용은 아니고
무장의 위엄 을 나타내기 위해 시종 들이 받쳐들고 앞장서 나가는 일종의 의장용 이었으리라?
정원 에는 석상 이 하나 서 있는데 오다노 나오다케 小田野直武 로 아오야기가靑柳家
(청류가) 의 먼 친척인데 1774년에 출판된 해체신서의 삽화 를 그렸다고 합니다.
또한 나오다케 는 에도의 발명가 히라가 겐나이를 따라 상경해 일본에 없었던 원근법 이나
음양법 을 체득해 추전간화 라는 화법을 창안하는데 삽화 그림 도 이 무렵이라고 합니다.
"해체신서" 解體新書 라는 책은 에도 시대의 번역 의학서로 독일 의사 쿨무스의 “해부도보”
라는 책의 네덜란드어판인 “타펠 아나토미아” 를 일본어로 번역 한 것입니다.
번역자들이 네델란드어를 잘 모르다보니 그림을 보면서 번역 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뒤편 청류암 에서는 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족자와 회화
그리고 고서 및 우키요에 그림 들이 다수 전시되고 있습니다.
미인도와 원앙 그림을 지나 후지산 및 일본 고유의 풍경들이 그려진 그림을 보는데 이게
바로 14세기 무로마치 室町 시대 부터 19세기 에도 江戶 시대 말기에....
서민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풍속화 라고 하는 "우키요에" 浮世繪(부세에) 인 것일러나?
우키요에 浮世繪 그림의 “우키요” 는 덧없는 세상, 속세 를 뜻하는 말로 미인, 기녀, 광대
등 풍속을 중심 소재로 해서 대량 생산을 위해 목판화 로 그렸다고 합니다.
우키요에 는 삽화 에서 점차 목판화 로 발전했다는데 17세기 후반 히시카와
모로노부는 출판 문화의 흥행에 따라 소설 삽화에 판화 고유의 아름다움 을 표현했습니다.
우키요에 는 붉은색의 간결한 채색 과 검정색에 광채의 금속분을 첨가한 우루시에
그리고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는 목판 채색의 베니주리에 로 발전
합니다. 1765년 스즈키 하루노부 가 다색 목판화인 니시키에 의
기법을 개발한 뒤 우키요에의 판화 기법은 독특한 미적 형식을 개척했다고 합니다.
명나라가 청나라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워져 양자강의 도요 경덕진 이 위축되자 그 대타로 네델란드인에
의해 유럽에 일본 도자기 수출길이 트입니다. 17~ 18세기에 규슈 아리타 북부 이마리 (伊万里)
항구에서 무려 1,000만개 의 도자기 가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당대의 유럽인들을 매료 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자기를 포장한 종이가 바로 저 우키요에 그림 이니 이를 본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들이 정신을 잃고 매료 됩니다 . 고흐 는 자기 방을 우키요에 그림 으로 장식했으며 귀를
자른후 그린 “자화상” 에도 배경은 우키요에 그림 이 덮고 있는등 수백편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모네 는 부인 카미유 를 모델 로 “일본옷을 입은 여인” 을 그렸으며 또 우키요에
그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를 모방해 “ Bridge in the Rain" 을 그리는 등....
그 수가 수십편에 이르고 그외 마네, 고갱, 드가 등 수십명의 인상파 화가 들이 우키요에
그림에 열광 했던 것이니..... 유럽은 “자포니즘” 의 광풍 에 휩싸였던 것인데,
몇년 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 에 이어 한류 가 현재 유럽을 휩쓰는걸 연상 시킵니다!
그리고 다음 방에는 지구본 에다가 사람을 외과수술하는 장면 등 그림들로 보아 개화기에 난학 등
서양문물 이 밀려오는 장면인가 보네요? 그 외에도 서구 문물 그림이 나오더니 화재 가 발생한
장면이며 여러 시대상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밖으로 나와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조그만 건물로 들어갔는데 세공품 에 이어서 LP 음반 을
포함해 음악에 관한 기기와 사진 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구경합니다.
아오야기 저택 을 나와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보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들고 이 고풍스러운 저택들 을 찍느라 바쁜 모습을 봅니다.
무사거리를 구경하며 걸어서 큰 길을 만나서는 왼쪽으로 다시 걸으니 곧 오른쪽에 천리교
종교 건물 이 나오고 히노키나이강 에 놓인 붉은 요코마치바시 다리 를 건너갑니다.
강을 건너서 농촌 마을로 들어가서는 농민을 만나 물어서 다시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오래된 멋진 고풍스러운 저택이 보이는데, 이 집은 참 오래된 농가주택 으로
지붕이 풀과 나무를 입혀 만들어 특이하니 전래의 일본 주택 그대로라 고풍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