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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1월 30일 토요일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베드로 사도의 동생이다. 갈릴래아의 벳사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형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다(마태 4,18 참조). 안드레아 사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고 그리스도를 따랐으며 자신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이끌었다(요한 1,40-42 참조). 그는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며,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며 부르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복음).
제1독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이며, 베드로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가장 먼저 받은 제자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요한 복음서에서는 베드로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따랐다고 소개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예수님을 따라 하루를 함께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복음을 전한 사도입니다(요한 1,41 참조). 안드레아 사도가 보인 행적의 특징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경우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 때에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이끌었으며(6,8-9 참조), 예루살렘 입성 뒤 몇몇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뵙기를 바라자 그 말씀을 예수님께 전하였습니다(12,20-22 참조). 이처럼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사람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안드레아는 주님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지만, 주님을 차지하려 하거나, 적어도 가장 먼저 부름받은 지위를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을 드러내었으며,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끌었습니다. 교회는 안드레아 사도처럼 세상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 스스로 주님보다 더 중요해져서는 안 되고, 세상에서 교회의 지위와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주님 말씀의 날카로움을 누그러뜨리거나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가 아니라,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으로 교회는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용기 있고 사내답고 쿨한 성격의 안드레아 사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구 구조 안에는 참사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구장님과 보좌주교님들, 그리고 신부님들 가운데 이런저런 분야에 전문성과 능력과 경험치를 지닌 분들이 몇 분 참여합니다. 그래서 교구 내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합니다.
저희 수도회 안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습니다. 관구평의회입니다. 관구장님을 중심으로 그분에게 여러 측면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 구성된 모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단 안에서도 그런 구조가 있었습니다. 일흔 두 제자단이 있었고, 열 두 제자단이 있었습니다. 열 두 제자단 안에서도 핵심 제자단이 있었으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가 거기에 포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들만 따로 모아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타볼산에 오르실 때도 그 세 사람만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사항이 생깁니다. 최초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안드레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핵심 제자단에서 제외됩니다.
제가 안드레아였다면 끝도 없이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어떻게 그러실수 있지? 그래도 내가 명색이 첫 제자인데, 나를 쏙 빼놓고 야고보와 요한을 참사회에 넣는 법이 어디 있냐고?
그러나 안드레아는 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신 예수님 마음이지. 나는 그저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지, 하고 크게 넘겼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 안드레아의 의미는 ‘사내다움’ 혹은 ‘용기’입니다. 용기 있게 세례자 요한을 스승으로 모셨던 안드레아, 사내답게 예수님을 따라나선 안드레아는 형 시몬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단순하고, 과격하고, 급하고, 다혈질적이었던 형 시몬에 비해 안드레아는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그리스 북부 지방의 에피루스에서 선교하였습니다. 안드레아는 70년경 로마 황제 네로의 대대적인 박해 때 아카이아에서 체포되어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로 X자형 십자가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어로 X는 그리스도의 첫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안드레아에 관해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한 가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드레아는 십자가에 매달린 이후 꽤 오랫동안 죽지 않고 매달려있었습니다.
이틀간 매달려있었는데, 그 순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안드레아는 십자가 위에서도 복음 선포 활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십자가 주변에 둘러서있는 군중들을 향해 설교를 계속했답니다.
이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적대자들은 안드레아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이 안드레아를 오랫동안 감쌌답니다. 그 강렬한 빛 한 가운데 안드레아는 숨을 거두었다는군요.
임종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람 낚는 어부로 살고자 노력했던 안드레아, 그리스도의 향기였던 안드레아 사도의 삶과 신앙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신앙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동창 신부와 공항엘 가는 길이었습니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려고 트렁크 문을 열었는데 안 열렸습니다. 열쇠로 트렁크 문을 열어 보려 해도 안 열렸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원인을 알았습니다. 자동차의 기어가 주행 상태에서는 트렁크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기어를 주차로 해야만 트렁크는 열렸습니다.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서 주행 중에는 트렁크가 열리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은행의 계좌도 그렇습니다. 본인이 입금했어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찾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가야 할 하느님 나라도 그럴 겁니다. 나의 경험, 나의 능력, 나의 직책, 나의 외모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나누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은 11월 30일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너희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걸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함께 해 주었다. 너희 중에 가장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베드로 사도의 동생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름이 ‘반석’이라면 안드레아 사도의 이름은 ‘남자다움, 용기’입니다.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안드레아 축일을 지내면서 제가 아는 안드레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 분은 평신도로서 복음화 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을 신앙의 뜨거움으로 인도하였던 정 치우 안드레아 선생님입니다. 저는 1991년에 복음화 학교와 인연을 맺었으니 33년이 되었습니다. 2002년에서 2005년 그리고 2011년에서 2018년까지 10년 동안 담당 신부로 함께 하였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1단계부터 5단계의 과정이 있습니다. 매월 기도회 미사와 후원회 미사가 있습니다. 단계를 마치면 피정과 미사가 있습니다. 저는 미사에 함께 하였고, 성지순례를 같이 다녀왔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각 단계는 모두 평신도 강사들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졸업생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사람은 강사로서의 교육을 다시 받습니다. 자신이 들었던 복음의 기쁨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강사가 됩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강사들은 세상을 향해 던졌던 그물을 버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 평생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정 치우 안드레아 선생님께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른 한 분은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입니다. 저는 2002년부터 2005년 그리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교구청에 근무하면서 추기경님을 모셨습니다. 안드레아 추기경님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제가 곁에서 본 추기경님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추기경님은 소탈하십니다. 격식과 절차를 굳이 따지지 않으십니다. 마치 동네에 사시는 인자하신 어르신 같습니다. 소탈하신 만큼 함께 있는 신부들에게도 많은 걸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사제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지지해 주십니다. 추기경님은 조금 느리신 것 같지만 꾸준히 일을 하십니다. 산행을 하실 때도 천천히 오르시지만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함 때문이었듯이, 한국교회의 어르신이 되신 것도 추기경님의 꾸준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은 기록의 달인이십니다. 저는 잊고 있었던 일들도 추기경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저와 면담하셨을 때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적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앞선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묵상한다면 11월의 마지막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 보셨다.”(마태 4,18)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믿음 희망 사랑을
곱게 담아 건네는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스쳐 지나도
늘 머무는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겉만 핥지 않고
속 깊이 스미는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눈길 받는 이의
눈길이 간절한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모두를 온전히 품되
올곧이 하나에 깃든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하나하나에 깃들어
모두에게로 향하는
그분의 눈길 말이에요
그분의 눈길을
지니셨나요
오늘의 성인
성 안드레아(Andrew)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어부 요한의 아들인 시몬 베드로(Simon Petrus, 6월 29일)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Andreas)는 공관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 출신이고(마르 1,21-310, 요한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베싸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그 역시 어부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가 되었다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주님을 만났고, 이때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첫 제자 된 후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하였다(요한 1,35-42).
얼마동안 그들은 간헐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주님이 갈릴래아로 되돌아 오셨을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시면서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Scythia)와 그리스 지방으로 전교 여행을 갔고,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임명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 아카이아(Achaia)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도가 러시아의 수호성인인데, 이것은 그가 러시아에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에 그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것은 안드레아 사도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의 꿈에서 지시된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는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주여 ,
지존하신 당신께
간절히 청하오니,
일찍이 성 안드레아 사도가
당신의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렸음같이,
이제는 당신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전구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성녀 마우라 (Maur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같은 이름 :
성녀 마우라는 소아시아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순교하였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오니아해(Ionian Sea)의 한 섬이 성녀의 이름으로 불릴 만큼 동방교회에서 성녀에 대한 공경은 널리 퍼져 있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는 성녀 마우라에 대한 공경을 억압하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