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셋째 날 햇살 찬란한 파도바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기도와 함께 순례가 시작되었다. 첫 일정은 ‘물의 도시’라 불리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베네치아 순례이다. 베네치아 본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 베네치아는 수상 도시라는 것이 실감나게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0분 정도 배를 타고 본 섬에 있는 성 마르코 대성당 근처에 있는 선착장에서 내렸다. 이때부터 베니스 섬 순례를 하고 나올 때까지 도보로 순례를 했다. 베니스 본섬 안에는 자동차가 없다. 섬 안이라 모든 교통수단이 배다. 우리가 들어간 성 마르코 대성당 주변에 있는 본섬이라고 부르는 곳은 크고 작은 118개의 섬이 약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 뱃길의 폭이 작아서 운하를 지날 때마다 다리를 건너는데, 건널 때마다 섬과 섬을 이동한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구조적으로 자동차 운행이 불가능한 섬이다.
베네치아는 유명한 관광지인데다 성수기여서인지 본 섬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안토니오 비발디가 살았다는 건물을 지나 먼저 베네치아에서 유명한 탄식의 다리를 돌아보았다.
왼쪽의 두칼레 궁전 법정과 오른쪽의 프리지오니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는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이어 주는 다리이다. 궁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이곳에서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탄식했다 하여 탄식의 다리로 불린다.
두칼레궁전
성 마르코 광장 옆으로 자리한 두칼레 궁전은 15세기에 재건축된 건물로 베네치아를 다스렸던 도제들이 살던 곳으로 정부청사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두칼레 궁전 2층 회랑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 중 왼쪽에서 9번째 기둥과 10번째 기둥의 색깔이 색다른 붉은색인데, 이곳에서 사형집행을 했다고 한다. 베네치아가 자유를 보장했지만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엄격하게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칼레 궁전 1층 회랑
성마르코 광장은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들로 풍경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성 마르코 광장
성 마르코 광장 안쪽에 위치한 성 마르코 성당은 9세기 초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모셔 와서 안장하고 기념하기 위해 지은 성당이다. 건축의 형태가 동방의 화려한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돔이 특징이며, 성당 내부와 외부에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우리는 성당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여유가 안 돼서 내부는 못 보았지만, 외부 입구에 모자이크가 5개나 있었다. 황금 장식과 어울려 화려한 모자이크에는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가져오는 것부터 성당의 역사들이 묘사되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성 마르코 광장을 벗어나 미로처럼 얽혀있는 좁은 골목길을 구경했다. 골목길에는 각종 기념품 상점과 카페,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리알토 다리’ 선착장이 나왔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아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 위에 늘어선 작은 상점들로 유명해졌다. 다리 위에는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나도 끼어서 사진 한 장 담았다.
리알토 다리
성 마르코광장으로 돌아와서 잠시 노천카페 플로리안에서 이탈리아 음악인들의 연주와 라이브 노래를 들으며 노래 값이 반영된 비싼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호사를 누린 뒤 베네치아 본섬을 나오기 위해 수상택시 정류장으로 갔다.
까페 플로리안
처음으로 타 보는 수상택시는 베네치아 본섬을 크게 S자로 가로지르는 주요 운하인 카날 그란데를 신나게 지나갔다. 수상택시를 타고 가면서 운하를 따라 세워진 다양한 양식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로마제국이 무너지자 몰려오는 훈족들을 피하기 위해 베네치아로 와서 수상도시를 세웠다. 이런 습지대에 그 옛날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한 베네치아 사람들이 놀라웠다.
베네치아를 떠나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성 안토니오 기념 대성당을 순례하기 위해 다시 파도바로 갔다. 파도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고, 파도바대학은 세계 최초로 해부학 강의를 개설해 의학으로 유명한 유럽의 명문대학이다. 파도바대학은 지동설을 외쳤던 코페르니쿠스가 학생으로 있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수로 재직했던 곳이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1195년 8월 15일 - 1231년 6월 13일)은 포르투갈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자 프란치스코회의 수사이다. 생전에 탁월한 설교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하였으며, 당대에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또 당시 사람들은 `이단자들을 깨부수는 쇠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불렀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다. 특히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 주는 수호성인으로 유명하다. 건강이 안 좋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성 안토니오 대성당은 첫인상이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이었다. 성 안토니오 대성당은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성지순례의 장소로서 신성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통로 쪽에 화려하게 장식된 안토니오 성인의 무덤이 있다. 전해오기로는 성인이 돌아가신 후 30년 뒤 무덤의 관을 열어보니 시신의 다른 부분은 다 자연으로 돌아갔는데, 혀만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성당 중앙 제대 뒤쪽에 보관해 두었는데, 1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 내부
우리는 먼저 성인의 무덤에서 더 들어가 성당 안쪽 깊숙이 자리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성유물 경당으로 갔다. 너무나 많은 순례객들로 줄을 지어 천천히 걸으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설교 능력이 뛰어났던 성인의 혀와 턱뼈가 경당 중앙 벽감에 보관되어 있다. 성인의 혀가 썩지 않는 것은 혀를 오로지 주님 말씀을 전하는 데만 썼기에 죽어서도 살아있을 수 있는 거라고들 한다.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유물경당
유물 경당 순례에 이어 고해소 옆에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2층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신부님 강론
예전에는 선교사 신부들이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예수님처럼 순교하는 것이 영광이었다. 그래서 선교사 신부들이 선교지에 가서 죽는 기쁨을 얻기 위해 선교 여행을 떠났다. 또 순교할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순교가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최양업 신부님은 잡혀서 붙들려 죽는 것만이 대수가 아님을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을 통해서 봤다.
안토니오 성인도 내 욕심으로 뭔가를 하지 않고 주어지는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찾았고, 그 찾은 삶에 투신하였다고 생각이 된다.
어떤 삶이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하느님이 주시고 맡기신 일이며,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섭리 안에 머물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머물면서 정말 부끄럽지 않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 안토니오 성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져 있는 오늘의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머무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을 우리 자신으로 보고 있다.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안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안 보고 인간적인 세상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있다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품에 있는 아이는 앞에 낭떠러지기가 있는데도 평온하다. 엄마 품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그렇게 엄마와 같이 우리의 삶에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의지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삶도 두려움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감사와 행복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안토니오 성인께 우리가 걱정하며 붙들고 있는 많은 것들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께서 해주시도록 간구해달라고 청하자. 우리가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느님의 영광뿐 아니라 우리 삶의 영광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기쁘게 주어질 것이다. 그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면 안토니오 성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적과 같은 힘을 가져다 주고 하느님의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한 믿음 안에서 우리의 일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청하면서 기도하자.
미사 후 자유 순례 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안토니오 성인의 무덤으로 갔다. 성인의 무덤에는 많은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사진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찾기 위해 안토니오 성인께 기도하는 분들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무덤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나도 무덤에 손을 대고 안토니오 성인께 소원을 빌었다.
안토니오 성인 무덤
안토니오 성인 무덤
성당 중간 왼쪽으로 ‘루카 벨루디’ 경당이 있다. 루카 벨루디는 안토니오 성인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안토니오 성인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된 이면에 루카 벨루디의 헌신적인 노력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루카 벨루디 경당
안토니오 성당 순례를 마치고 성녀 유스티나 대성당으로 갔다. 성녀 유스티나 성당은 로마시대 때 파도바에서 순교를 한 성녀 유스티나의 무덤이 있는 곳에 세워진 성당이다. 현재는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유스티나 대성당에는 여러 성인의 무덤이 있는데, 루카복음사가와 마티아 사도의 무덤 경당이 있다.
성녀 유스티나 대성당
성당은 내부의 길이가 122m에 달하도록 규모가 큰 성당이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성당이다.
성당으로 들어서면 일반적인 성당과는 다르게 대형 십자가가 성당 입구에 위치해 있다.
성녀 유스니타 대성당 내부
중앙 제대 아래에 성녀 유스티나의 무덤이 있고, 제대 위에는 성녀의 순교를 표현하는 그림이 있다. 유스티나 성녀께 성녀처럼 순결한 마음과 관대한 사랑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였다.
성당 왼쪽에는 루카 복음사가의 무덤 경당이 있다. 순례 둘째 날과 셋째 날 미사 독서로 사도행전을 들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내용이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루카인데, 루카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으로 순례를 온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었다.
루카복음사가의 무덤경당
성당 오른쪽에는 예수님을 배반한 이스카리옷 유다 대신 12사도 중 마지막으로 뽑힌 사도 마티아의 무덤 경당이 있다. 순례 일행 중의 정기환 마티아 형제님은 더 의미 있는 순례가 되었을 것 같다.
사도 마티아의 무덤경당
성당을 나오면서 대형 십자가 앞에서 성호를 정성스레 긋고 파도바로 행복한 순례를 인도해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성녀 유스티나 대성당
이렇게 셋째 날 순례 일정을 파도바에서 마치고 1시간 30분을 달려 볼로냐로 이동하였다. 숙소 호텔에서 이탈리아의 와인을 즐기며 풍요로운 저녁 식사를 기분 좋게 하고 휴식을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