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24,15-24, 마태 19,16-22): 영원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가벼워져야 할 것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금 밝아온 새로운 오늘을 주님께 맡겨드리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은총의 선물을 값지게 사용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힌 다음, 다시금 그 모든 축복을 하느님께 돌려드릴 가난하면서도 부유한 참 지혜를 청합시다.
오늘 주님 말씀이 일깨워주듯, 주님께로부터 와서, 주님의 뜻에 맞갖게 쓰여지는 것만으로 충만한 목적이 되는 삶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움켜쥐듯 소유하는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의 의미를 규정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향해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고 모두가 그 기쁨을 공유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깊게 성숙시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더해지면서, 하느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친히 바라신 뜻이 얼마나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길 바라시는 것인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불러주시는 자비로움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에제키엘서 24장 24절에서,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지요. 예언자의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 당신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를 보여주시고, 그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호소하시는, 애타고 자비로운 부성, 모성과 같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과연 우리 삶 속에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사건과 관계 속에 만나는 사람, 삶에 찾아오는 변화의 계기들은, 우리가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서서 스스로 디뎌온 여정을 겸허히 돌아보게 이끕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뜻에 맞갖게 걸어가고 있는지, 그래서 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충만히 발현(發顯)하고 있는지를 묻는 현재적인 질문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예표’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오복음 19장 21절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찾아온 젊은이를 향해, 그에 요구되는 가장 요긴하면서도 아직 채워지지 못한 조건을 일러주셨지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이의 환경에 대비되는 요구를 하신 것은, 그가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면서 포기하지 못한 물질적인 재화에 대한 것만이 아니지요. 정작 잊어버린 채 잃어버리고 있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되짚어주시는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짐이 가벼워야 하듯, 영원을 꿈꾸면서도, 과거나 현재에 우리를 아직 묶어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라는 말씀이지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타협,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불안과 집착,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등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오는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면, 현재 매여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곧 미래에도 그리 다르지 않을 삶의 전형(典型)이 되고 말겠지요.
늘 우리는 길 떠나는 사람, 순례자의 운명을 살아갑니다. 머물러 있는 듯하여도, 매분 매초가 앞을 향해 달려가듯 우리 삶의 시계가 멈추어서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시원(始源)도, 현재의 방향도, 미래의 목적도 없이 살아가면서 허망(虛妄)한 방황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는 법이지요. 우리가 매순간 깨어 맺는 선행의 열매는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선(善)의 본성인 ‘베풂’이란 ‘나’를 벗어버릴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이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짚어주신 질문을 되새기면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각자가 벗어던져야 할 짐들을 돌아보고,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님을 좇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간청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