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전 전설의시대(약170만년전~기원전2070년)
하 나라(기원전2070년~기원전1600년)
상나라(후기부터 은나라:기원전1600년~기원전1046년)
은(殷)의 수도는 발굴되었듯이 은허(기원전1300년 반경의 천도: 하남성 안양)입니다.
이는 최초로 실존이 증명된 중국 고대 왕조입니다.
주(周)나라는 섬서성 위수(웨이허)에서 일어나
수도는 원래 호경(지금의 시안:서주시대:기원전1046년~기원전770년))이었으나
12대 유왕이 죽은 후 13대 평왕때인 기원전 770년 낙읍(지금의 낙양)으로 천도하여
이 때부터를 동주시대 라고 합니다. 동주시대 부터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 할 때까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진(秦:기원전226년~기원전206년)의 수도는
함양이라는 곳으로 현재의 서안(西安)근교 함양시입니다. 진나라 말 항우와 유방이 봉기한 시대이며 소설 초한전의 배경이 됩니다.
한(漢)의 수도는 장안(지금의 시안)이었습니다. 초패왕 항우와 해하의 싸움에서 유방이 대승합니다. 이 때에 대패한 항우의 부대 근처에서 "사면초가"를 흘려보내 밤새 군졸들이 모두 도망가버린 고사가 전해집니다.
고조(=유방)이 세운 전한(서한:기원전206년~서기25년)이 전성기인 전한 무제시기를 거쳐 한동안 평화롭게 지탱하다가 200여 년후 외척 왕망에게 망합니다.왕망의 신나라 (서기 8년~25년) 전한 시기 위대한 역사학자 사마천이 무제에게 궁형을 당하지만 중국 최초의 기전체 통사인 사기를 완성합니다.
AD 25년 후한(동한:서기25년~220년)이 들어서자 수도를 낙양으로 옮깁니다.
후한 또한 200년가량 지속되다가 정치가 어지럽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후한 말기 천하가 삼국으로 나뉩니다. 이 때부터 황제는 허수아비로 남아있고 십상시라는 환관들이 정국을 좌우하자 천하정세를 걱정한 조조,유비,손권같은 영웅들의 등장으로 우리들이 즐겨 읽는 삼국지의 배경이 된 난세가 시작됩니다. 그렇지만 전,후한 왕조시대 400여 년동안 중국은 유학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확립하였으며 군주 전제 집권제도의 확립으로 후세 몇 천년간 기본적인 정치제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한 왕조는 중국역사상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 때부터 중국문화를 漢文化, 중원지역의 중국인을 漢人, 문자역시 漢字라고 하니 漢왕조의 흔적을 지금까지 찾아 볼 수있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위(魏)의 수도는 낙양입니다.
태조(=조조)가 즉위 전 한나라 국도로 삼았던 곳은 허창(낙양의 남쪽)이었으나 세조(=조비) 즉위후 낙양으로 옮깁니다.
삼국 중 양자강 남쪽에 있는 오(吳)의 수도는 강소성 남경입니다.
중국의 서쪽에 있던 촉(蜀)의 수도는 사천성 성도입니다.
위나라는 부하장수이던 사마염이 가로채 진을 건립 , 진(晉:서진)의 수도는 원래는 낙양이었습니다.
하지만 흉노족의 침입으로 서진(서기265년~316년)이 망하고 난 뒤
중종(=사마예)이 남쪽으로 천도, 남경이 수도가 되었습니다.(동진)
동진과 5호16국시대(서기371년~420년)
강남에 있던 동진이 말하고 들어선 송(宋 = 유송))의 수도 역시 남경입니다.
남제(南齊)의 수도 역시 남경이 됩니다.
양(梁)의 수도 역시 남경입니다.
진(陳)의 수도 역시 남경입니다. 그래서 남쪽은 동진->송->제->양->진 으로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그동안 북쪽은 선비족이 북위(北魏 = 후위)를 세웁니다. 북위의 수도는 원래 대동입니다.그 당시에는 평성이라고 불렸습니다.
현조( = 척발굉)때 낙양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 동위와 서위로 갈라지는데요,.
동위의 수도는 업군(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업군)입니다. 서위의 수도는 서안입니다.
북제(北齊)의 수도는 업군입니다.이 나라는 동위의 후신입니다.
북주(北周)의 수도는 서안입니다.이 나라는 서위의 후신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혼란기인 5호16국시대를 수나라 문제가 통일합니다.
수(隋)의 수도는 서안입니다. 수도에 버금가는 제 2의 도시로써 강도(江都)라는 곳이
있는데 수 양제는 이곳에서 죽었습니다.강도는 지금의 양저우[楊州]입니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2차례나 침공하다가 국력이 고갈되어 30년만에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됩니다.
당(唐)의 수도는 서안입니다. 당나라 때는 장안 이라 불렀습니다. 시안(西安) 이란 이름은 명나라 주원장이 전국을 통일하고 서쪽 지방의 안녕을 기원하여 개칭한 이후로 지금까지 시안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남조(南詔)의 수도는 태화성(太和城)이라 부르던 곳이었다가
나중에 다리[大里]로 바뀝니다.
후량(後梁)의 수도는 개봉입니다.
개봉은 바로 카이펑이라 부르는 도시입니다.
후당(後唐)의 수도는 낙양입니다.
후진(後晉)의 수도도 개봉입니다.
후한(後漢)의 수도도 개봉입니다.
후주(後周)의 수도역시 개봉입니다.
요(遼)의 수도는 원래는 상경(上京)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태종(=야율덕광)때 중원 땅을 전부 점령하고 한 때 개봉이 수도였던 적도 있었으나 곧 북경 근처만 남기고 중원 땅을 모두 잃습니다. 요나라는 북경으로 마지막에 수도를 옮깁니다.
요나라 때부터 현재 수도인 북경이 중국에서 손꼽는 중요한 도시가 됩니다.
서요(西遼)의 수도는 발라사군[輩羅將軍]이라 부르던 곳입니다.
서하(西夏)의 수도는 올로하이[興京]이라 부르던 곳입니다.
북송(北宋)의 수도는 개봉입니다.우리가 흔히 아는 포청천이 근무한 개봉부입니다.
대리(大里)의 수도는 다리[大里]입니다. 현재의 운남성에 있습니다.
금(金)의 수도는 북경입니다. 이 때의 이름은 중도였습니다.
남송(南宋)의 수도는 항주(杭州)입니다.
이 때의 이름은 임안부라고 불렀습니다.
원(元)의 수도는 북경입니다. 이 때는 대도(大都)라 불렸습니다.
명(明)의 수도는 원래 1대 홍무제와 2대 건문제시절에는 남경이었습니다. 그러나 3대 영락제가 자신의 거성이었던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버립니다. 명나라 초기 2대 건문제때 까지
북경은 순천부,남경은 응천부로 각각 불리거나,혹은 북직례,남직례라 불렸습니다.
청(淸)의 수도는 당연히 북경입니다. 하지만 원래 청나라가 발호한 지역은' 헤투알라 ' 라고 하는 곳이며, 입관하여 정식 중국왕조가 되기 전에는 심양(요녕성 셴양)이 수도였습니다. |
첫댓글 중국 역사에서 시안과 낙양은 역대 왕조가 수도 없이 도읍을 정한 중요한 도시입니다.
뤄양(낙양)은 몇 세기 동안 낙읍(洛邑), 낙주(洛州)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또한 당나라 때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 불렸고 송나라 때는 서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서경(西京) 혹은 경락(京洛)으로도 불리었습니다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으로 화하문명의 요람이자 중국고대문명 최초 발원지 중 한곳입니다.
3,100여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시안은 중국고대국가 주, 진, 한, 당 등의 수도로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의 수도였으며, 또한 가장 오랜기간 동안 수도로 정해져 중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도시입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시안을 보지 못했다면 중국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결코 과장이나 허세가 아니라 시안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며, 시안의 문화는 바로 중국의 문화입니다.
정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때 역사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어 중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언제 쓴 적이 있는 글을 다시 한 번쯤 정리 해 두고 싶었는 데 이번 중국여행가는 코스가 시안도 포함이라 ~~ 댓글 감사드립니다^^
역대 수도 멋진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