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머리,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
적막한 옥방 차가운 바닥에서도 오로지 임 생각
떠오르는 듯 사라지는 임의 잔영
오리정에서 이별한 후 아직 임의 편지 한 장 받지 못했으니
혹시 임이 부모님을 모시느라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러셨을까?
혹시 새로 결혼하여 금실 좋게 지내느라 나를 잊으셨을까?
달나라 궁전에 사는 항아처럼 가을 달로 높이 솟아 임 계신 곳 보았으면......
- '쑥대머리' 내용 풀이 가운데서
'쑥대머리'를 춘향이 이 도령에게 보내는 한 장의 편지라 생각하고 읽으니 가슴 뭉클하네요.
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을 목숨이 임 그리워 홀로 눈물짓는 그 모습.. 처량하고 안타까워요.
<춘향전>은 고전소설 가운데 독자로부터 많은 사람을 받았던 작품으로 이본만 해도 100개가 넘었다지요.
<열녀춘향수절가> 읽는 맛도 좋고요. 더 긴 내용으로 풀이된 <남원고사>도 재미있었답니다.
<춘향전>이 당대 사람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한 작품에 여러 가지 주제를 담고 있고 있으며(사랑, 열녀, 신분상승 혹은 신분타파, 양반비꼼 등),
서민과 양반의 모습을 고루 담고 있으면서 비극적인 요소도 풍부한 점,
무엇보다 사랑하는 임(이몽룡)의 마음이 변했든 안 변했든 성공했든 안 했든지 간에
춘향이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 매력적인 인물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한 뒤 모진 고초를 받고도 이겨낸 점이나
(과연 그 엄청난 매를 맞고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나)
이 도령이 장원급제 뒤 곧바로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 점은
(장원급제 뒤 곧바로 어사가 될 수 없었던 점은)
비현실적이긴 하나
춘향의 모진 고초를 지켜본 남원고을 사람은 춘향과 한마음이 되었을 테고
이 도령이 딴짓 안 하고 장원급제하여 춘향을 찾아와 탐관오리를 처결하고
죄 없는 백성을 구제한 점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지요.
이 도령이 어사 출두 뒤에 춘향을 앞에 놓고 또다시 수청을 거들먹 거린 점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 이 도령은
춘향을 시험해 보았다기 보다는 춘향을 지켜보는 백성에게 일부종사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보여준 것은 아닐까, 이런 장치가 임금에게 정렬부인으로
춘향을 신분상승하게 한 디딤돌로도 적용 되었겠지요.
한편 춘향이 수절하지 않았다면 이 도령을 다시 만난 백년가약을 맺을 일도
임금에게 정렬부인을 하사받을 일도 없었겠지요. 왠지 한 여인의 수절을 미덕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로써 야비함도 느껴지는 해요.
어쨌든 <춘향전>의 탄탄한 서사 구조와 개성있는 인물(월매, 방자, 이도령 아버지 등)이 있기에
현대에서도 오페라,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각색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참고로 작년에 개봉한 <방자전>을 보면 비주류였던 방자를 주류인물로 내세워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이끈 점도 매력적이었답니다. (굳이 그렇게 야할 필요는 없었을 듯..)
예나 지금이나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하며 동반 성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일테죠.
춘향이 선택한 사랑, 그 빛나는 자유의지는 결국 신분과 계급을 넘어선 사랑이 되었네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신분과 계급은 남아 있을 테지요. 날마다 우리가 맞서는 벽은 무엇일까요?
춘향이처럼 그 벽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이겨낼 용기도 한 자락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군요.
'옛신' 모임 덕분에 즐거운 책 읽기도 되었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첫댓글 미나리야 수고많았대이~~ 미나리가 춘향이 같았다는 ㅋㅋ 역시 참석하길 잘했다 싶었지 늘 배운다니까!!
춘향이 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동감이유, 미나리 덕분에 춘향전을 다시 재해석하게 되었다오, 역시 고전은 읽을수록 묘미가 있구려.ㅋㅋ
참, 저는 오랫동안 방자가 이도령 몸종인줄만 알았더랬어요. 방자가 공무원이어서 이도령 따라서 서울로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얼마나 허탈하던지. 내 맘대로 막 추측하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샘~ 찌찌뽕!! 저도 방자가 이몽룡의 몸종인 줄 알았아요...ㅋ
몸종이 아니었군요. 읽고도 몰랐네요. 새로운 걸 알았어요.
미나리 덕분에 춘향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어요. 재미있는 공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