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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닥쳐도 품질은 양보없다. '161년 꿈의 명품' 까르띠에, 포나스 회장의 '위기 경영'
명품 까르띠에 포나스 회장 '불황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법'
글로벌 금융위기는 콧대 높은 명품 업체들에도 먹구름을 잔뜩 드리우고 있다.
161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高)의 명품 보석·시계 브랜드인 프랑스 '까르띠에(Cartier)'도 예외는 아니다. 까르띠에를 주력 계열사로 거느린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의 주가는 올 들어 40.9% 폭락했다. (10월22일까지)
그러나 최근 방한한 까르띠에의 버나드 포나스(Fornas·61) 회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는 Weekly BIZ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긴 항해를 하다 보면 거센 폭풍우가 닥치기도 하고, 험한 파도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면 다시 파란 하늘에 따뜻한 햇볕이 비칩니다. 사업도 똑같습니다. 미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 사업은 수년간 환상적인 실적을 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강합니다. 불경기가 와도 견딜 수 있습니다. 빗속에서도 항해할 수 있고, 버틸 수 있어요. 그러면 어느 날 곧 해가 나겠죠. 많은 전쟁, 혁명, 금융위기, 대공황, 대호황을 다 겪으면서 역사에서 우리가 그걸 증명해왔지 않습니까?"
158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도 파산한 마당에 너무 낙관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사업은 어제나 오늘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永遠)을 바라보며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까르띠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CEO로서 제 임무는 이 회사를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알이 커다란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내년에 나올 새 모델을 테스트하는 중이라고 했다. 수행한 직원은 정밀 부품과 보석으로 장식한 이 시계의 판매가격이 1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까르띠에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루이비통은 핸드백을, 에르메스는 핸드백과 스카프를 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들과 사업 분야가 다릅니다. 다른 회사는 패션 제품 위주지만, 우리는 보석과 시계 사업에 집중합니다. 양복 같은 경우는 1~2년이면 구형이 되지만, 까르띠에는 영원히 지속되는(everlasting) 제품을 만드는 것도 차이이지요."
―제품 라인을 패션의류 분야로 넓힐 의향은 없나요?
"(단호한 어조로) 없습니다. 까르띠에의 DNA는 '왕(王)의 보석상'입니다. 우리는 고급 목걸이와 시계, 핸드백을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양복 같은 패션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모릅니다. 왜 모르는 분야로 갑니까? 저는 모르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보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속도를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까르띠에는 보석과 시계, 액세서리에 집중하겠습니다. 그 길이 우리의 '고속도로(highway)'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길로 갈 것입니다."
―요즘 명품 회사들이 중국 같은 인건비가 싸고 손재주가 좋은 나라에 생산거점을 만들기도 합니다만.
"우리 제품의 99.99%는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만듭니다. 보석은 프랑스에서 만들고, 그 중에서도 최고급품은 파리 스튜디오에서만 작업합니다. 시계는 당연히 스위스죠. 핸드백 같은 가죽제품은 이탈리아에서 가죽을 구입, 현지와 프랑스에서 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현재로서는 다른 지역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품질(quality)이 나빠지면 즉시 고객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고객이 실망감을 느끼는 것은 브랜드에 최악의 일입니다. 그런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Never accept). 절대 품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게 까르띠에의 DNA입니다."
그는 "품질이나 가격을 조금 낮춰 수익성을 높이려는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며 " 하지만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Don't compromise)'는 원칙을 세워야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력 교육은 어떻게 하나요?
"보석 세공 분야의 장인(匠人)들은 모두 자체적으로 양성합니다.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나은 기술을 보유한 경쟁자가 없거든요. 우리는 자체 주얼리 스쿨을 운영합니다."
이 스쿨에선 매년 10~15명의 학생을 뽑아 2년간 교육한다. 그 뒤엔 견습직원으로 실무에 투입돼 간단한 작업을 맡게 된다. 점점 기술과 경험을 쌓아서 20년쯤 지나야 솜씨 좋은 장인이 된다. 360명의 장인은 이렇게 양성됐다. "우리는 이들을 '황금의 손(golden hands)'이라고 부릅니다."
포나스 회장은 요즘 직원들에게 "경기가 나빠지지만, 우리는 꿈을 다루는 회사다. 창조력, 장인정신, 멋진 제품을 만드는 데 계속 집중하자"고 강조한다. 지금 같은 '진짜 명품(true lux ury)' 노선을 계속 가자는 뜻이다. 위기가 있어도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있고,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온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유일한 전략입니다. 값싼 '인조 명품'이 되지 않겠습니다. 절대 타협하지 마세요."
포나스 회장은 "고객이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반드시 들어준다"고 말했다.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780개로 천장을 장식하거나, 몽골까지 제작진이 달려가 약혼반지를 제작한 적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때로는 동이 틀 때 작업을 시작해 해가 지기 전에 마쳐달라는 까다로운 주문도 들어온다. 물론 이같은 스페셜오더(special order·특별주문)는 그에 맞는 특별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상상력으로 고객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아무리 고객이라고 해도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상상력은 최고를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과제가 닥쳐도 우리의 장인(匠人)들은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어려운 일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최고가 되는 것이지요."
까르띠에의 베스트셀러인 트리니티 반지는 100만원대부터, 탱크 시계는 4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은 기본 가격이고 고급으로 올라갈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다.
―가격대를 낮춰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계획은 없나요?
"가격이 비싸냐, 안 비싸냐는 것은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돈의 진짜 가치(real value)를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까르띠에는 기존 제품의 가격을 내릴 계획이 없습니다."
―고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는 있지 않나요?
"까르띠에 브랜드는 누구나 탐내는 것이죠. 이것은 분명히 큰 자산입니다. 명품은 아름답고 탁월한 품질, 꿈과 창의성을 담아야 합니다. 장인의 노하우를 통해 고객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채워줘야 하죠. 우리는 고객들이 형편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100억원짜리 제품도, 100만원짜리 제품도 있지요. 다만 까르띠에 마크를 달고 있는 제품은 뛰어난 창의성과 품질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P&G에서 생활용품을 팔다가 고급 보석 분야로 전직한 경력이 특이합니다.
"오래 전 일이죠. 사실 P&G와 까르띠에는 많이 다릅니다. 보석을 팔아보면 다시 세제(洗劑)를 팔지는 못합니다. 세제 사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는 것이죠."
―결정적으로 뭐가 다른가요?
"생활용품 회사는 대중을 상대합니다. 내가 쓰는 물건은 이웃들도 다 쓰고 있죠. 하지만 까르띠에는 소수의 고객을 상대합니다. 만약 고객이 '이러저러하게 만들어달라'고 특별 주문한 제품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유니크(unique)한 것입니다. 그게 진정한 명품(true luxury)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모든 에너지와 창의력, 감정을 고객에게 헌신합니다."
―까르띠에 가문이 운영하던 회사가 대기업인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세계는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재편되는 중이고,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명품 브랜드도 가족 기업에서 급속히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계나 보석 산업에서 가족 단위의 독립기업은 별로 없어요. 까르띠에의 창업자 후손들은 리치몬트 그룹에 회사를 매각하고 모두 떠났죠. 하지만 우리는 최고의 보석을 만든다는 까르띠에의 유산(遺産)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다는 건지요?
"1847년 까르띠에가 설립된 이래 출시한 제품은 모두 자료실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환상적인 자료실을 갖추고 있죠. 여기에는 실물 제품도 있고, 제작 전(前)단계의 스케치 그림, 모형, 사진들도 있습니다. 100년 전에 만든 제품을 오늘날 다시 주문해도 얼마든지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제품 개발의 영감은 어떻게 얻나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창조의 대상입니다. 베스트셀러인 '탱크' 시계는 1차대전 중 군대의 탱크 바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습니다. 올해는 부드럽고 풍요로운 고대 인도의 이미지를 채용한 보석 컬렉션을 내놓았습니다. '마르첼로' 핸드백은 여성들이 매일 같이 지내고 싶은 남자친구처럼 편안하고 친밀한 동반자 느낌을 주도록 부드러운 곡선과 실용성 위주로 만들었죠. 회사 산하 문화재단을 통해 현대 예술을 후원하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의 창의성의 튼튼한 밑바탕이 되고 있지요."
―좋은 원재료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그렇습니다. 까르띠에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바이어입니다. 러시아, 캐나다, 남미, 아프리카 등 좋은 다이아몬드가 나오면 어디든지 달려가 구입합니다. 구매 담당자들은 좋은 보석을 구하기 위해 인도와 스리랑카 같은 나라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다만 전쟁이나 밀수 같은 어두운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는 절대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황금의 손'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까르띠에는 매주 한 차례씩 포나스 회장과 디자이너들이 참석하는 크리에이션 회의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시제품을 보며 실제로 출시할지 말지, 아니면 어떻게 수정할지를 결정한다. 사이즈, 모양, 색깔 등등을 정하기 위해 수백 가지의 디테일을 점검한다. 포나스 회장은 "스타일, 외관, 마무리 등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고객에게 내놓을 수 있다"고 했다.
―하나의 보석 작품이 탄생하려면 어떤 단계를 거치나요?
"무수한 스케치 작업과 반복 수정을 통해 1차로 레이아웃을 완성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물, 연마, 광택, 세공, 보석 세팅, 검사, 수정 등이 이어집니다. 보석 세공은 극도로 정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모든 작업은 자연 채광을 이용한 스튜디오에서 진행합니다. 하나를 만드는 데 1000시간, 1500시간이 걸리는 제품도 있어요. 일종의 예술 작업이라고 봐도 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2004년 출시한 팬더(panther·표범) 보석 컬렉션의 경우 팬더 눈을 깎아내는 각도가 조금만 달라도 표범이 아니라 개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건 완전 실패작이죠. 연필로 그림 그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이아몬드 제품 제작은 한 번 실패하면 손실이 엄청나죠. 그래서 '황금의 손(golden hands)'이 필요한 것입니다."
―까르띠에의 직원 구성은 어떻게 돼 있나요?
"전 직원 5000여명 가운데 60%가 여성입니다. 파리에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27명인데, 남녀가 반반 정도 됩니다. 프랑스, 중국, 인도,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12개국 출신이 모인 용광로(melting pot)입니다. 환상적인 조합이죠. 이들의 아이디어가 하나로 모여 창의력과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글로벌 트렌드를 선두에서 이끌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고 봅니다."
까르띠에는 어떤 회사?
-설립연도: 1847년
-본사: 프랑스 파리
-직원 수: 5000명
-연 매출: 26.6억 유로(약 4조7000억원·2008년 3월 결산기준), 전년 대비 9% 성장
-1904년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출시, 영국 왕실 전속 보석상으로 임명
-까르띠에 가문이 운영하다 1998년 리치몬트그룹에 인수
-몽블랑, 피아제, 던힐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트그룹 매출의 50% 차지
-전 세계 300개 직영점, 1만600개 공식 판매처
-1984년 한국 하얏트호텔에 첫 매장. 현재 8개 직영점, 8개 면세점 운영
-올 4~7월 덕수궁 미술관에서 까르띠에 소장품 전시회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