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년의 집 개원식
1975년 2월18일 오후 2시에 서울 소년의 집 개원식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신문 기자와 청와대에서 파견한 정보원들이 근혜양의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탐색 및 주의 말씀을 들었다.
만국기를 달았고 체육관을 식장으로 차렸다.
개원식에는 박 근혜 양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오기로 되어있었다.
육 여사께서 개원식에 오겠다고 약속 하셨는데 육 여사는 애석하게도 1974년 8월15일 저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개원식에는 근혜양 외에도 서울 시장님, 교육감님, 외국 신부님, 경찰 국장님, 미국에서 자선회 책임자로 계시는 빌비타씨와 2분의 외국 손님께서 오셨으며 각처에서 축하객들이 많이 오셨다.
정각이 되자 근혜양이 차를 타고 들어왔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화사한 웃음을 웃고 내리는 근혜양은 육 여사를 많이 닮았다.
합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근혜양과 창설 신부님, 아동대표 영민 군과 3인이 테이프를 끓었다.
장엄하고도 참으로 따스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1층 복도를 지나 3층, 4층,을 둘러보시고 또 옥상에서 아동보호소 쪽을 바라보며 그 곳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다시 내려와 3층 체육관 식장으로 들어가 정각 2시에 식이 거행 되었다.
먼저 창설 신부님께서 감사 인사 말씀을 하셨는데, “이 어린이들에게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니 많은 관심을 주시고 가시기를 부탁드리며, 계속해서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 교육감과, 근혜양의 축사가 있었다.
근혜양의 축사에는 "오늘 어머님(육 여사)께서 계시면 이 자리에 오셨을 텐데 그러나 오늘 여러분을 하늘나라에서 굽어보시며 축복의 미소를 보낼 거예요.
여러분! 학교에서 숙제를 받으면 계속 열심히 풀어 보죠? 그와 같이 여러분에게 닥치는 어려운 문제들을 열심히 풀어 보면 끝으로 그 문제가 풀려질 거예요."
행사가 끝난 후 근혜양과 시장님, 교육감님을 원장 수녀님 사무실에 모시고 간단히 다과를 했다.
그 자리에서 시장님께서는 신부님께 아동 보호소에 남은 아동들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께서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 하셨다.
근혜양 나가시면서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께 어려운 일이 없느냐고 물으셨다. 원장 수녀님께서는 그 당시 신부님께 당하시는 큰 어려움을 이야기하시니 노력해 보겠다는 희망적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고 했다.
회원들은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곳에 부르심을 받았으니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생명과 시간, 재능과 힘, 온 정성 다하여 아이들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소년의 집은 연 건평 2천 7백50 여 평의 건물로서 1973년 12월에 시작하여 1974년 12월에 총 공사비 4억5천 만 원을 들여 완공을 보게 되었다.
1,2,3층은 정식 인준을 받은 소년의 집 국민 학교 15개의 교실과 4,5,6,7층은 소년들의 기숙사로 침실과 식당 겸 공부방 20개와 목욕탕, 화장실의 시설이 있으며 옥외에는 가로 10미터 세로 22미터의 풀장과 또 밖에는 대형 운동장이 마련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눈으로 본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는 아무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마련해 주신다는 복음 말씀을 우리에게 직접 이루게 해 주셨다.
근혜양이 떠난 후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이도 어린데 근혜양 너무 예의 바르고, 품위가 있고, 상냥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인데 근혜양보다 더 못하면 안 되겠지요?
첫댓글 우리창설신부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상냥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녔던
어린 근혜양이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대통령이 되신 걸 보시고 기뻐하시겠지요.
앞으로는 몰라도 그 당시는 우리집과 인연이 참 많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