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도의 하나님(합3:17-19)
- 나에게 없는 것, 있는 것, 필요한 것-
2018.7.15 김상수목사(안흥교회)
한국교회 성도들이 애창하는 복음성가 중에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라고 찬양이 있다. 그 찬송 가사의 배경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선지자 하박국의 신앙고백이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 말씀을 보면 온통 없고 없는 것들 투성이다. 선지자 하박국이 이 고백을 할 당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기 약 20여 년 전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온갖 것들이 없다는 말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의 고백이 오늘도 여전히 푸른 상록수처럼 살아 움직이는 말씀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믿음의 고백이 지금 우리 모두가 신앙고백이기(또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보면, 결국 하박국의 고백의 강조점이 “없고”, “없으며”에 있지 않고, “없을지라도”라도 말씀에 있다. "~지라도" 라는 말은 뒤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없는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는 것들’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에 해답이 있다. 만약 하박국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다면, 만약 그가 회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이런 고백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남 고흥반도 끝에 소록도라는 섬이 있다. 소록도가 어떤 곳인지는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소록도를 “찌라도”라고 소개한다. 처음 듣는 분은 우리나라에 ’찌라도‘라는 섬도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찌라도는 실제 있는 섬이 아니고, “비록 한센병자일 찌라도”, “비록 손이 없고, 발이 없고, 눈이 없을 찌라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이 세상의 것에서 큰 소리칠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할지라도 하늘의 태양이 변함없이 존재하듯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시다. 태양을 등지면 긴 그림자만 보이듯이 나에게 없는 것들에만 집중하면,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다.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에게 따뜻한 햇볕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향해 믿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와 말씀묵상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며, 진실한 기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때 그곳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나의 찌라도’가 된다.
선지자 하박국은 자신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 자신에게 없는 것 : 무성하지 못한 것, 열매 없는 것, 소출이 없는 것,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는 것 등
- 자신에게 있는 것 : 전능하신 하나님
- 자신에게 필요한 것(=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오직 믿음
그래서 그는 기독교 신앙에 정수와 같은 그래서 신약의 사도 바울이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한 마디를 했다. 하박국 2장 4절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다함께 읽어보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그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깨닫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편 62편에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시62:1-4)
정확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빨이 빠지기 직전에 간신히 잇몸에 걸쳐서 흔들리는 상황을 경험해 보신 분이라면, 다윗이 말한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라는 표현이 얼마나 긴박한 위기상황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향해 오직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박국처럼 자신의 상황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라”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몰입하라’는 말이다.
중국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1832-1905)가 범선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갈 때 있었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바람이 멈춰서 배가 바다 물결이 흐르는 대로 밀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쯤 밀려갔을 때, 선장은 배가 식인종이 사는 섬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수무책인 가운데 선장은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하고, 허드슨 테일러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곧 불 것이니 돛을 먼저 올리십시오"
이 말을 들은 선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그것은 다른 선원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테일러는 "당신이 돛을 준비하지 않는 한 나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선장은 허드슨 테일러의 말을 듣기로 결심하고, 돛을 올리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에 몰입했다.
허드슨 테일러가 얼마동안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테일러가 기도하고 있는 방의 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선장이었다.
"선교사님 아직도 바람이 불도록 기도하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 그렇다면 이제 기도를 멈추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교사님이 기도를 시작한 이후로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지금은 오히려 바람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불고 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비록 바람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기도했다. 그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없는 것과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에게도 하박국을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나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해서 반드시 태풍이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때로 계획한 일이 생각만큼 성과가 안 나올 때도 있고,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위기상황에 몰릴 때도 있다. 때로는 어떤 원인 때문에 몸에 엄청난 열이 나고, 혈압이 올라가고, 자녀들도 다 떠나고, 재산이나 건강이 없어질 때도 있다. “큰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는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다리가 풀어지면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어려움은 현실이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공허한 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말씀 안에서 나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불신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이 대 혼란 속에 빠질 수 있다. 이 틈을 마귀사단이 각종 방법들(의심, 이단, 점쟁이 등)을 동원해서 치고 들어오려고 한다. 그러나 이때야 말로 정말 필요한 것이 선지자 하박국이나 다윗처럼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힘과 요새와 참된 해결사가 되신다”는 굳센 믿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주민 여러분이여, 그러므로 나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과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자. 오직 믿음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집중하자. 그래서 내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나의 찌라도’가 되게 하자. 주님이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