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역잡아함경_195. 독자 범지. 일체 중생이 나가 있는 것인가, 12연기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축산(靈鷲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당시 독자 범지가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일체 중생이 나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그가 또 여쭈었다.
“나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역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독자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언제나 사문 구담에게 이런 뜻을 묻기만 하면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시는구나.’
그때 아난이 여래를 모시고 곁에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독자의 말을 듣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독자가 묻는 것에 대하여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대답하지 않으시면 독자는 분명히
‘내가 여래에게 물었지만 전혀 대답을 않는다.’고 하면서 삿된 소견만 더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적에 그가 ‘일체 모든 법에 나가 있는 것 같다’고 물었는데,
내가 저 독자의 물음에 대해서 예전에도 어찌 ‘일체 경에서 나가 없음을 말했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나가 없기 때문에 그의 물음에 대답해 주면 곧 도리를 어기는 것이니, 그 이유는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나가 없기 때문이니, 어찌 나를 가지고 그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하면, 장차 그의 예전부터 어리석고 미혹된 것을 더욱 늘려 줄 뿐이다.
또 아난이여! 만약 나가 있다고 말하면, 즉시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만약 나가 없다고 말하면 즉시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여래의 설법은 두 쪽에 치우치는 것을 여의고서 중도에 합하는 것이다.
즉, 이 모든 법은 무너지기 때문에 항상함이 아니요, 지속되기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 항상함도 아니고 끊어짐도 아닌 것이다.
원인[因]이 있고 이 원인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게 된다. 만약 원인이 생기지 않으면 저것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곧 행(行)이 있고,
행으로 인하여 식(識)이 있고,
식으로 인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으로 인하여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으로 인하여 촉(觸)이 있고,
촉으로 인하여 수(受)가 있고,
수로 인하여 애(愛)가 있고,
애로 인하여 취(取)가 있고,
취로 인하여 유(有)가 있고,
유로 인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으로 인하여 늙고 죽음[老死]과 근심과 슬픔과 온갖 괴로움 등 온갖 고통의 쌓임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果)의 소멸도 있는 것이니,
무명이 소멸하면 행도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육입이 소멸하고,
육입이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면 수가 소멸하고,
수가 소멸하면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면 취가 소멸하고,
취가 소멸하면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어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 등 온갖 고통의 쌓임이 소멸하며, 이 소멸마저 다하면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