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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지인께서 '자신의 동료가 식당을 오픈했다'고 해서 함께 그 곳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은 오래된 한옥을 개량한 퓨전 식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인근에 위치한 개성 없는 직육면제의 원룸 건물들과는 확실히 대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가게의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곤 구석구석을 살피다 매뉴판을 보았습니다. 라이스 페퍼롤과 스파게티, 제육볶음과 불고기 정식, 사모사와 라씨 등 여러 나라의 음식들이 한 데 어우러져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본디 퓨전의 사전적 의미답게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 혹은 다양한 문화의 경계가 파괴된 흔적이 역력하였습니다.
때마침 사장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음식을 통한 세계 여행'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메뉴판을 보고 있는 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앞으로도 다양한 세계 음식을 우리의 정서에 맞게 변형하여 제공하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한편 다소 입지가 좋지는 않다는 이견을 드렸습니다. 이내 그 부분 또한 수긍을 하시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인근에 대학 병원이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피스 상권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피력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한옥을 개량한 가게가 인기라면서 한옥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입소문을 내는 한편 향후 해당 상권이 발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시적인 견지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게 가게를 창업하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를 했노라며 자신감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후, 반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가게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인께 전화를 드려 가게는 잘되고 있는지를 여쭤보았습니다. 이내 가게가 잘되지 않아 문을 닫을 예정이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가게의 사장님께선 과한 식당 일로 몇 차례 병원 신세도 졌다고 하였습니다. 쉽사리 짐작할 순 없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가게가 생각 외로 잘 되지 않아 스트레스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전에 많은 공부를 했다는 말씀을 들은 터라 내심 기대 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의 깊이가 더해졌을 때 그의 공부는 마치 튼튼한 집을 짓듯 그가 원하는 모습을 지을 수 있었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공부가 왜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고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자신감이 되려 의식 없는 고집이 되어 발목을 붙잡게 된 것은 아닌 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회의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콘셉트에 대한 자신감으로 다른 것들은 보지 못한 것은 아닌 가 의심해 보았습니다.
그는 공부를 통해 지식을 넓히고 자신감을 표현시키는 방법에 대해선 깨달았지만 지식을 통한 지혜의 함양, 나아가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러니깐 확신의 함정, 즉 자신을 너무 믿은 나머지 타인들의 이야기는 배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부'는 일종의 '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이를 지도로 삼고 나아가는 것이지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취향에 따라 자기 변화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공부이자 스타일인 셈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창업을 하는 것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는 일종의 실천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창업은 치장과 가식 사이에서 기웃거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스타일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좋은 스타일을 지니고 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가령, 카페를 창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카페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 대한 공부는 차치하고 굿 커피와 굿 머신, 굿 인테리어 등만을 먼저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길 수 있는 장식품에만 급급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공부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값비싼 공부일 테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공부는 바로 자기 스스로의 스타일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스타일이 좋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까닭은 그가 결코 좋은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그의 독특한 특성이 스타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아오면서 해오던 공부의 필모그래피가 그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창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다양한 변수에 반응할 수 있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스타일이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스타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집을 짓듯 생각을 짓고 자신을 책임지는 자세로 항상 긴장을 유지하면서 창업에 임해야 합니다. 좋은 스타일만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한 곳으로 몰아넣으면 안 됩니다. 때론 고집스러움도 중요하지만 남의 생각을 듣고 항상 회의하면서 자신의 고집이나 단점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데 필요하지 않다면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고집과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합니다.
(브랜드 콘셉트 디렉터 김도환님의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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