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_ AI 사용 안내
사회사업 글쓰기 개념
‘사회사업 글쓰기’는 기록(記錄, record)입니다.
사회사업가의 실천 행위를 글로 남기는 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문예 창작을 위한 ‘글짓기’와는 다릅니다.
업무 일지, 사업 과정 기록, 상담 일지, 평가 보고서와 같은
모든 현장 실무 기록을 사회사업가답게 가꾸어 쓰자는 제안입니다.
‘사회사업 기록은 당사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게 돕고,
둘레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게 도우려고 어떻게 했는지를
의도와 근거와 성찰로 밝혀 쓰는 일입니다.’
사회사업 글쓰기는 문제에서 강점으로, 개조식에서 서술식으로,
혼자 보기에서 함께 보기로 서술 관점을 명확히 하여 기록합니다.
이는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사회사업가가 자기 실천 철학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AI로 글쓰기, 빛과 그림자
'사회사업 글쓰기'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자기 실천을 점검하고 성철 하는 '도구'로 '글'을 택하였습니다.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 과제를 AI에게 맡기면,
당장 눈에 보이는 그럴 듯한 글을 얻을지 몰라도
성찰하지 않았으니 실천이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특히, 새내기 사회사업가일수록 더욱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자기를 성장하고 단련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잃게 됩니다.
사회사업 글쓰기 과정은 처음 얼마간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이런 일들을 처음부터 AI에게 맡겨버리면, 사회사업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AI에게 맡겼으니, 그 뒤 자기 글을 써야하는 때도 AI가 없으면 아예 한 글자도 적지 못할 겁니다.
사회사업 개념을 이해했고, 이를 이렇게 적용하여 실천하였다는 자기 훈련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점차 '개념 있는' 사회사업가로 성장합니다.
반복된 읽기와 쓰기를 통하여 나의 관성을 바꾸고, 실천의 흐름을 바꾸며, 결국 다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어린시절 조르바는
고치에서 나오는 나비의 성장을 빠르게 하려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나비는 조르바의 입김 덕에 예정보다 빨리 나와 결국 죽고 맙니다.
자기 노력 없는 '탈피'는 기회보다 위기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AI는 도구, 필요할 때만 사용합니다
AI는 되도록 자료를 찾거나, 진위를 확인하는 정도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전체 글을 완성한 뒤에 논리적으로 빠진 부분 정도만 찾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스스로 AI 사용을 통제하고 조절합니다.
아직 글과 실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기본을 다지기 위해서 AI 사용을 최소한으로 합니다.
스스로 실력자라 느낀다면 AI는 좋은 비서가 될 겁니다.
AI는 실력의 증폭 기능이 있습니다.
자기 글쓰기 능력(읽고 쓰는 능력 + 성찰 능력)이 10이라 가정합니다.
AI가 100배 나아지게 돕는다면, 자기 능력 10인 사람은 1000의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능력이 100인 사람은 100000의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격차는 처음과 달리 어머어마하게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자기 능력에 따라 AI는 훌륭한 비서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그 도구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력자일수록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안목이 있으니, 비서로 맡길 수 있습니다.
반면, 최악의 경우, 내 역량이 0이면, AI 도움으로 글쓰기 과정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실력은 0입니다.
AI를 사용하면 분명 글이 좋아지지만, 문제는 모두의 글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글의 평준화. 결국 궁극에 가서는 같거나 비슷한 글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이 사라진 글, 이제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스스로 어려운 길을 걸어갑니다.
기초 체력을 키우기 위해, 생각의 잔근육을 만들기 위해
서툴더라고 내 힘으로 써내기 위해 노력합니다.비틀거리며 내 두 다리로 생각이 나아간 데까지 나아갑니다.
AI 시대,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 진보가 가져오는 편리함이 있는데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동차가 있는데 자전거를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 다 알고 있다면, 어느 때는 자동차를, 어느 때는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기꺼이 걷기도 하고, 두 발로 걷는 가운데 도구를 사용해서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급할 때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완급을 조절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미래의 삶은 더욱 풍요롭습니다.
사회사업 글쓰기에 AI도 활용합니다.
어떤 때는 잘 사용하여 편리함을 누리면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일부러'라도 AI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글이 나아가지 않는 고통의 순간을 한 뼘 성장하는 탈피의 순간이라 여기며 자취합니다.
운동에 비유하면, AI는 코치 혹은 트레이너와 같습니다.
실제 운동은 내가 합니다. 운동을 통해 결국 내 몸이 건강해집니다.
운동 방향, 운동 방법, 운동 일정 따위를 개인 코치에게 묻습니다.
좋은 코치를 만나면 운동의 양과 질이 높아지고, 결국 내 몸도 좋아집니다.
그런데 코치에게 내 운동을 대신하게 하면, 코치만 건강해질 뿐입니다.
더하여, 운동은 몰아서 하지 않습니다.
꾸준한 운동이 몸을 전과 다르게 만들듯, 읽고 쓰기도 그와 같습니다.
글쓰기 모임을 앞두고 몰아 읽고 몰아 쓰면 생각과 관점이 나아지지 않고,
결국 실천의 결이 바뀌지 않습니다.
도구 사용에 앞서 글 쓰는 목적을 먼저 생각합니다
여기 AI를 탑재한 최신형 자율주행 자동차가 있습니다.
스마트한 내비게이션까지 달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차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와 그 밖의 최신 기기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쉽고 편안하고 빠르게 데려다주는 도구입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정하는 일'은 우리 몫입니다.
자기 삶을 살고, 둘레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삶.
이 같은 사회사업 이상을 우리가 정하고, 그 과정의 다양한 길 안내를 도구에게 부탁합니다.
이상을 살피고 점검하고 정하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사회사업 글쓰기'를 통해 '사회사업 목적지'를 정하고 점검하고 살피는 겁니다.
20년 전 미국 농부철학자 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에세이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 없다>를 읽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가운데 그때 독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웬델 베리가 컴퓨터를 거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단순한 '기계 혐오'가 아니었습니다.
'삶의 질과 생태적 책임'에 대한 확고한 철학 때문입니다.
웬델 베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 몇 가지 '기술 수용 원칙'을 적용합니다.
컴퓨터는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컴퓨터'란 새로운 기술이 생태계에 이로운지, 인간관계를 훼손하지는 않는지와 같은 기준들을 살폈습니다.
특히, 속도와 효율에 근본적 의문을 가졌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쓰는 게 반드시 더 좋은 글을 의미하는지 물었습니다.
저자는 글쓰기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리듬이 결합된 행위로 보았습니다.
컴퓨터가 이 리듬을 방해한다고 느꼈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리듬!
(당시에 저자는 손으로 글을 쓰고, 아내가 타자기로 이를 옮겼습니다.)
웬델 베리는 특히 '수리 가능성'과 '인간 기술 보존'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만약 사용하던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자신이 어찌할 수 없어 비용을 들여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그렇게 그 기술에 서서히 종속되어 간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의 뇌와 손이 가진 고유한 능력(기술)은 그런 새로운 기계에 종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즉, 인간성 상실을 우려한 겁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도우려는 사회사업가로서,
그를 도와가는 과정을 스스로 사유하여 작성하지 아니하고 AI에게 맡기는 순간,
그렇게 당사자를 돕는 과정의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게 되는 순간,
관심은 관리로, 지원은 지시로, 대화는 정보수집 따위로 뒤바뀔 겁니다.
AI는 답을, 사회사업가는 질문을
AI는 인간 지능을 대신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몇 사람이 만드는 흐름에 따라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혼란 속에서 더욱더 내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에서 나오는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하고 질문받는 과정에서 다시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누가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있습니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습니까?
질문이 사라진 현장에서 희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나의 '데미안'입니다. 데미안 또한 물어오는 싱클레어 덕에 성장했습니다.
질문하는 사회사업가들이 많아질 때, 사회사업 현장이 나아갈 길이 보일 거라 믿습니다.
서로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당사자에게 묻기 위해 나를 일깨우는 과정이 '사회사업 글쓰기'입니다.
구슬꿰는실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을 통해
AI의 노예가 아닌, 도구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갑시다.
잘 거들겠습니다.
첫댓글 나를 다듬고 성정하게 하려면 타인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은 ‘나’에 관해서만 관심있어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밖에 모를 위험이 있습니다.
점점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을 읽기 어려우질 수도 있습니다. 아찔합니다.
인간관계 감각이 점점 나 중심으로 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