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리가 양자산을 오르던 2004년만해도 그곳은 처녀지였다. 쉬임없이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계곡이 있었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길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과 풀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양자산 능선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그러한 자연 그대로의 순수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별 한번 쳐다볼 여유마저 상실한 우리들에게 그곳은 유토피아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고 노자가 주장했듯 우리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연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마을을 끼고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흘러가는 맑은 계곡물이 그 중 으뜸으로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만큼 맑고 자연 그대로였다. 아랫집 밭 하나를 지나서야 계곡물에 닿을 수 있는 우리 땅은 그것이 큰 단점으로 보였다. 계곡물 가까이에 집을 지은 교장 선생님 댁은 개천 쪽으로 돌계단을 만들었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하였다. 욕심이었지만 우리도 한때는 아랫집 밭 귀퉁이를 사서 개천과 바로 이어지도록 하면 어떨까 궁리한 적이 있었다
샤워실이 마련되지 못했던 초기에는 사람이 없는 어스름 저녁에 그 냇물에 풍덩 들어가 목욕겸 물놀이를 했다. 어린시절 이후로 해볼 수 없었던 물놀이였다.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풍덩거리며 물장구를 쳤다. 이십여 년이 지나가는 동안 서너 채였던 집들이 이십여 채로 늘어났다. 특히 계곡 주변으로 집들이 들어서면서 계곡물은 구정물이 되어갔고 바닥에 깔린 돌 위에는 이끼인지 물때인지가 덮여갔다. 저런 저런! 아까운 계곡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만 더해졌다. 그것뿐이랴. 울창하던 잣나무 숲이 사라졌으며 6월 한 달 동안 온 동네에 향기를 몰고 다니던 키 큰 아카시아 나무들이 잘려져 나갔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자연의 향기를 잘라내고 있었다.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고 있었다.
윗집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은 오직 너른 하늘과 초록빛 나무뿐인 한 폭의 그림이었으므로 아름다웠으며 그분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특히 저녁 서쪽 하늘은 경건하기까지 했는데 전기가 들어오면서 아랫집인 우리 집 전봇대가 그 풍경을 막아서는 일이 벌어졌다. 그분들은 전깃줄을 땅속으로 묻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비용은 본인들이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얼마나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는가. 우리는 기꺼이 인부 두사람과 함께 한나절 땅을 파고 전선을 묻었다. 비용과 노동을 적절히 분담하고 서로를 보듬으면서 풍경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과 윗집과 아랫집이 서로를 거스르지 않은 것이다.
십여 년 전일 것이다.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천둥 치는 소리만한 굉음이 계곡을 울렸다. 불어난 물살에 돌들이 굴러내리는 소리라고 했다.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분명 계곡 어딘가는 무너지고 범람하여서 길들이 끊겼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오른쪽 계곡으로 나서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꽤 넓고 평평했던 산길이 깊게 패여서 사라지고 다리는 무너지고 주변이 온통 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지형까지도 바꿔놓았다. 봄과 가을로 우리가 오르던 양자산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어가던 그 질퍽한 길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는 장면과 만났다.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다가 돌무더기 사이에 끼인 물봉선화였다. 꺾이고 젖고 뿌리가 드러난 채로 돌무더기 위에 걸쳐있었는데 그나마 상처가 적은 줄기 하나에 오오! 그날 아침에 피어난 싱그러운 꽃 한송이! 슬프지만 기쁨으로 소리를 지르게 했다. 피난 가던 길에 죽은 어미 품에서 해맑게 고개를 내밀던 영화 속의 아가였다. 생명의 존귀함과 눈부심에 이미 마음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돌아서려는데 무언가 움직이는게 또 눈에 띄었다. 다리가 세 개만 남아 기우뚱거리다가 흙탕물에 버둥거리다가 겨우겨우 물봉숭아 뿌리에 막 매달린 사슴벌레였다. 전쟁에 패배하고 전우도 잃고 홀로 방향도 모른 채 기진맥진하여 헤매는 처참한 몰골의 패잔병이었다. 도대체 이런 자연피해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 라는 질문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연을 거스르고 훼손한 우리에게 있음을 모르는 사람 있는가.
그날 뿐이랴. 2022년 8월 9일. 잊혀지지 않는다. 종자골에 가 있는 남편에게서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다. 텃밭 바로 옆쪽 길을 따라 돌과 나뭇가지들이 상상할수 없을만큼 어수선하게 수북하게 쌓여있고 도로 옆 계곡물은 도로 높이까지 차올라 출렁이며 흘러가는 사진이다. 차가 나올 수 있는 일차선 길이 막핸 것이다. 밤새 물 흐르는 소리와 돌들이 굴러가는 굉음 때문에 전쟁통 같았단다. 거기다가 전기마저 끊긴 칠흑 같은 어둠이어서 꼼짝할 수가 없더란다. 두려운 밤이었단다. 에어컨이며 선풍기며 냉장고며 수돗물까지 멈췄으니. 먹는 일도 씻는 일도 할 수 없는 막막한 무인도에 갇힌 상황이 아닌가
마침 딸아이가 집에 있어 딸과 함께 시간을 다투어 종자골로 향했다. 아빠 구출 작전이라 이름 붙였다. 우산을 받쳐 든 그가 텃밭으로부터 돌과 물과 흙으로 뒤범벅된 길을 이십여 분 간 걸어 내려와 큰길가에 서 있었다. 얼굴은 초췌했고 눈은 퀭했다.
삼일 뒤 막혔던 진입로가 임시방편으로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종자골에 갔다. 길 양쪽으로 치워진 돌무더기들이 산더미였다. 아랫집 안마당은 일부러 돌을 모아놓은 듯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더 아랫집은 바깥채 주변이 돌과 흙과 나무가지들로 뒤범벅이었다.
계곡 윗쪽으로 올라갈수록 피해는 컸다. 교장 선생님댁은 흙이 유입되어 연못이 흙으로 메워졌고 계곡물이 범람하여 집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뜰이 돌과 뻘로 뒤엉켰으며 높다란 축대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포크레인으로 치우는 작업중이었다. 치우고 정리하고 원상태로 복귀하는 일을 우리는 3년 계획했어요. 아내가 흙과 돌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공짜로 얻었네요 연못도 메우려는 중인데 저절로 해결되었네요. 말씀은 씩씩했으나 쓸쓸하고 공허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계곡 더 윗집 도자기집은 차 두 대가 떠내려가 아랫마을에서 발견되었단다. 교수님댁은 전기차가 물에 잠겨 폐차 수준이란다. 오른쪽 계곡은 옆길로 향하는 다리가 무너지고 계곡이 넓고 깊게 파여 복구되기 어려운 지형으로 바꿔졌다. 산사태로 집을 잃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며 시작되었으나 사람과 자연이 동시에 패배하는 전쟁이었다 . 나는 이렇게 썼다.
누구인가 화정
숨은 듯 나타났다 나타난 듯 숨었던 조붓한 오솔길
누가 잘라냈는가 저 아름다운 곡선을
뭇 생명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가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섞여들었건만
누가 훔쳐갔는가 저 순하디 순한 공간을
다리 아래로 굴러온 돌과 나무뿌리 뒤엉키고
물길을 잃은 물살은 산길을 공격했다
누가 시작했는가 저 아우성치는 전쟁을
돌무더기 길에
뿌리 뽑힌 물봉숭아꽃 한송이 피어있다
사슴벌레 홀로 절룩이며 기어간다
집 잃고 차 잃고 가족 잃은 사람들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 쓴다
누가 남겨놓았는가 저 슬픈 시간들을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는 일, 사람이 사람을 거스르는 일 거기에 용서나 화해가 있을 수 있을까.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경제적 거스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혹사당했으며 희생당했는지를 우리는 세계사나 국사를 통해서 배워왔다. 탄소 배출과 유해한 온실 가스의 배출 또한 공기층을 무차별적으로 거스름으로써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먹거리가 불안정하게 되었다.
우리를 드러내는 일보다 자연을 드러내주는 일, 상대방을 존중하고 거스르지 않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 공생하는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