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는왜하는가
신명기 16; 9~17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시되 곡식을 주셔서 먹여 살리십니다.
여름에는 하곡, 보리와 밀을 주시고, 가을에는 추곡, 쌀과 콩과 좁쌀을 주셔서 먹여 살리십니다.
그런데 가을에 추수한 쌀이 거의 떨어져 가는 시기가 6~7월입니다.
이 시기가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던지, 이 힘든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양식은 떨어지고, 해는 길고 - 자식들은 배고프다고 칭얼거리고 ....
그래서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한다하여 초근목피연명(草根木皮延命)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실로 이렇게 힘들고 배고플 때 내려주시는 보리의 곡식은,
실로 광야에 내려주신 이스라엘백성들의 만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들의 경제적 생활이 윤택해졌습니다.
이제는 너무 잘 먹어서 비만이다. 당뇨다. 하는 문화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맥추절이란 말 자체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30~40년 전만 해도 꽁보리밥, 춘궁기라는 말이 익숙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생소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를 유리방황하면서
오매불망 바라던 소망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땅에다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짐승을 키우면서 사는 농경사회가 그들의 소박한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들의 소망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 농사를 지어서 거둬들인 보리나, 밀의 수확은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망이었겠는가?
그래서 출애굽기 34장 22절에 “칠칠절 곧 맥추절의 초실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은 “보리농사를 짓지 않는데 무슨 맥추절을 지키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맥추절에는 보리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2007년 맥추절을 지키면서 맥추절의 의미를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이 절기를 누가 지키는가?
구원받은 이스라엘백성이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맥추절의 의미는 죄에서 구원 받은 은혜를 기리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세상에 있는 많은 나라와 종족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고 구별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가나안으로 불러들이시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사 십계명을 주시고,
이 백성이 세상의 풍습과 세상의 법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법 따라 살도록 하나님나라의 헌법,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인 구원 받은 사람은, 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사람 가운데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를 택하여 구별하시고,
너는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받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절기 맥추절을 지켜야합니다.
둘째로; 왜 맥추절을 지켜야하는가?
신명기 8장 16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맥추절은 신앙생활의 시금석이며, 신앙생활의 성숙이며,
자급자족의 경제생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받아먹고,
하나님이 주시는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추라기를 먹고, 만나를 먹으면서 살았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미숙한 성도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제 요단을 건너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만나도 끊기고, 메추라기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야생과실을 거두고, 농사를 하는 수고하고 땀 흘리는 성숙한 생활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땀 흘리고 수고하여 밀도 거두고, 보리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면 이 수고의 열매와 축복이 어데서 왔는가? “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땅을 팟습니다.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러면 누가 키웠습니까?
하나님께서 키워 주셨습니다.
누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나의 수고의 열매가, 내 열심이나,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맥추의 진정한 의미는 나의 삶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요.
성숙한 신앙의 표시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열심으로 인정받고, 승진하고, 성공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삶의 배후에서 나를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나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본문 15절에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덴 모든 일에 복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를 말해야 한다면
나의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감사조건입니다.
내 자녀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내 재산과 소유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 감사 중의 감사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감사 -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업, 직장, 가정, 자녀 -
모든 것이 모두 감사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더욱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내가 지금 받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것에 복 주실 것을 인해
너는 온전히 기뻐하라” 하나님의 구원은 영육간의 구원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공로는 과거로부터 영원까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단을 쌓는 것은 구원 받아서 감사하고,
은혜 받아 감사하고, 축복 받아서 감사하는 것 위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영원토록 부어지는 전 생애적인 축복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본문 16장 2절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주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은 어디인가?
구약에서는 성전입니다.
신약에서는 교회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장소가 왜 중요한가?
경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고, 하나님 임재의 장소가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드리는가?
본문 16장 16절에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고후9:7).
힘을 헤아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드려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려야합니다.
본문 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시난날의 나의 비천했던 시절
오늘 내가 받고 누리는 풍성한 은혜
과거를 잊어버린다면 오늘 감사할 조건이 무엇이 있겠는가?
받은 은혜 감사하고, 받을 은혜 감사하여, 감사의 제단을 쌓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