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부문 대상]
대장간 변봉희
아버지의 화덕에는 매일 아침 해 같은 불이 뜬다
뜨거운 여름에도 눈 내리는 겨울에도
시뻘건 해를 모루*에 올려 두드리면 삽이 되고 호미가 되고 괭이가 되고
자루 하나 끼우면 내 학비가 되고 식구들 생활비가 되는
나이 들수록 그을린 얼굴이며 휘어진 어깨며 팔의 근육들이 연장을 닮아가는 아버지
어느새 아버진 삽이 되고 호미가 되고 괭이가 되고
*모루: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꿈나라 로켓>
침대는 꿈나라로 가는 로켓
잠이 들면 우주로 날아가요
달나라 계수나무에도 올라가고 토끼를 만나 방아도 찧어보고
명왕성 얼음나라에선 썰매도 마음껏 타지요
북극성,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가고 싶은 곳 많은데 앗차 발 헛디뎌서 지구로 떨어졌어요
깜짝 놀라 눈떠 보니 침대 밑이었어요
<꽃의 왈츠>
폴짝 폴짝짝 폴짜짜짝 폴짝짝
누나 손이 나비가 되어 건반 위를 날아다녀요 팔랑팔랑 날개를 흔들며
예쁜 나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산수유 재스민 팬지가 올망졸망 피어나요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서로 어울려 즐겁게 춤을 추는 꽃의 왈츠
꽃 향기가 방 안에 가득 번져요
[대상 수상소감 - 변봉희]
늦깎이로 시를 배운 지 5년이 지났습니다. 백지장 같은 모니터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정말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손주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1월에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고, 2월에는 먼 나라에서 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슬퍼서 우울해 있던 나에게 천강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현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을 쓸 수 있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이 영광을 돌립니다. 풀무 속에서 혹은 모루 위에서 혼자 수많은 연단으로 벼린 시를, 세상에 흔쾌히 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의령군청에 감사드립니다. 오래 함께한 글꽃나무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매달 동시집을 사서 보내주는 딸과 아들, 그리고 동시 같은 귀여운 손주들,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좋은 작품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봉희(女) 경북 포항 출생. 선린대 사회복지과 졸업. 2021년 <<월간문학>>아동문학 <유리새>로 등단. 1회 동아꿈나무아동문학상 입상(2022). 한국문인협회ㆍ포항문인협회 회원.
[아동문학부문 우수상]
새 떼의 사인 남정림
새 떼들이 바느질한다. 하늘 보자기 한 귀퉁이에
삐뚤삐뚤 줄무늬 시침질하다가 다 풀어버리고
제 옆 모습 촘촘히 박음질한다.
글씨를 몰라서 그림으로 사인하는 새 떼들
내 이름 네 이름 내세우지 않고 서로를 이어주는 한 글자 ‘새’만을 새긴다. 여럿이 힘을 합쳐서.
<이상한 미술관>
진흙 액자 속에 작품을 전시하는 썰물 때만 제 맘대로 문을 여는 이상한 미술관
아까는 낙지, 피뿔고둥, 밤게 지금은 주꾸미, 백합, 갯지렁이 자꾸자꾸 작품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미술관
한번 들어가면 재미가 끈적끈적 달라붙어 질퍽질퍽 빠져나오기 힘들어 아빠가 손잡고 끌어내 주는 갯벌 미술관
뽀르르 뽀르르 달려가고 싶어진다. 아빠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울 때면.
<암행어사 출두야!>
“여봐라, 물러서거라!”
아이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신나게 뛰노는 것을 방해하는 무리는 모조리 잡아들인다.
놀이터를 슬쩍 훔쳐 가는 미세먼지, 재채기 파도 타며 까부는 바이러스, 쿰쿰한 냄새로 쳐들어오는 곰팡이, 안 보인다고 안심마라.
공기 암행어사 몰래몰래 추적해서 모조리 잡아들인다.
걸려드는 족족 필터 감옥에 가두고 윙윙 윙윙 윙윙 밤새도록 소리 고문을 한다.
청정한 공기 보고서를 임금님께 올리는 그 날까지 공기청정기의 사명은 계속된다.
공기 암행어사 출두야!
[우수상 수상소감 – 남정림]
몇 번이나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400년 전 정암진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승리의 함성에 뼛속까지 통쾌했어요. 정암진 전투에서 홍의장군의 편을 들어준 하늘이 이번에는 제 손을 잡아 준 것 같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자원, 환경, 시간이 모자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가보라고 아이들과 함께 먼 길 가보라고.
남정림(女)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람. 미국 인디에나주립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여성학과 사회학 강사로 활동. <<푸른동시놀이터>>에 <볼펜이 품은 공>외 4편으로 추천완료. 제14회 천강문학상, 제12회 동서문학상, 제4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등 수상. 시집 <<사랑, 지구 너머의 계절>>. 동시집 <<쉬, 비밀이야>>(공저). 현재 <에디스 창의인재연구소> 대표. 네이버 블로그<에디스 에세이>를 운영하며 시와 동시를 게재.
[심사평 중 – 예심:김이삭, 본심:신현배]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은 동시 171명, 동화 82명 등 총 253명이 응모했다. …… 동시는 15명의 작품 105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수준이 높았지만 요즘 동시의 경향을 그대로 따르는 듯, 시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거나 산문화로 흐른 작품이 많았다. 시의 본령은 리듬 • 이미지 • 메시지다. 그런데 시의 본령에서 벗어나 시성을 살리지 못하고 산문적인 서술로 일관해 아쉬웠다. 동시는 당연히 동심이 담겨 있어야 하지만, ‘동시도 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의 기본 요건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동시가 갖춰야 할 점은 동심 • 시성 • 감동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선자의 관심을 끈 작품은 <대장간>과 <새 떼의 사인>이다. 이들 동시는 산문화로 흐르지 않고 함축과 절제가 생명인 시의 본령에 충실한 점이 신뢰가 갔다. <대장간>은 농경 문화 시대의 정서를 담아낸 우리 동시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다. 대장간이 현대 문명에 밀려 거의 사라져 버려 소재의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가장인 아버지가 땀 흘리는 노동의 공간으로서의 대장간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 동시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솜씨가 돋보였다. <새 떼의 사인>은 하늘을 뒤덮는 새 떼의 비상을 다루고 있다. 이 동시는 새 떼가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바느질로 표현한 것이 새롭고 신선하다. 하늘 보자기 한 귀퉁이를 새 떼들이 바느질하는데, 우리 고유의 전통 바느질법인 시침질, 박음질을 한다는 발상이 눈길을 끈다. 다만 이 작품은 마지막 연을 이미지가 아닌 설명조로 끝내 버려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린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최종 단계에서 <새 떼의 사인>을 우수상으로 뽑고, <대장간>을 대상 후보로 올렸다. <대장간>과 <새 떼의 사인>의 두 시인은 앞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하여 자연이나 사물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는 작품, 어린이들의 마음과 생활을 담아낸 동시 창작에 힘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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