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
자연 속에서 살아 숨쉬고, 넉넉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는 곳
그 자연과 물을 닮아서 맑은 사람들이 사는 곳,
화천은 스스로 그런 곳이라 한다.
계절은 겨울로 접어든 12월 초, 화천을 찾았다.
지구온난화다, 이상기후다, 하는 그런 세속의 걱정 따윈 모른다는 듯,
화천은 겨울답게 하얀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멀리 흰눈을 옴팡 뒤집어쓴 산은
그래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제 실루엣을 자랑하려는듯
산 모서리의 눈은 털어내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화천강은 청량한 기운을 내뿜으며 유유히 흐른다.
화천강 위로 다리 하나가 살포시 걸쳐 있다.
200여미터 길게 뻗어 있는 이 멋진 다리의 이름은
외적으로 풍기는 멋과는 달리 다소 촌스럽다.
"꺼먹다리"
아랫쪽은 철제로 되어있는데 다리 위는 나무로 되어 있다.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소련군이 들어와 교각을 놓았으며
휴전이 된 후에 화천군이 상판을 놓아 다리를 완성했다고...
어떻게 나무로 만든 다리가 60여년동안 건재할 수 있는지 경이롭다.
나무를 대각선으로 교차해놓은 것이 이 다리가 튼튼한 비결이라고 하는데,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뿐 아니라
목재부식도 최소화할 수 있다니
'멋'과 '실용'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듯 하다.
교량 상판이 검은색 콜타르목재이기 때문에
꺼먼상태를 나타내는 "꺼먹"이라는 이름이 붙어 꺼먹다리라 불린다는데
눈이 새하얗게 내려앉은 모습에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을 밟으며 꺼먹다리 위를 걸어본다.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가 시원하다
하얀 눈꽃이 활짝 피어 있는 산을 보니
차가운 물에 세수한듯, 눈이 시리다.
다리 난간에 쌓여 있는 눈을 한웅큼 뭉쳐 보려 했더니
내린 눈은 그대로 얼음이 된듯, 작은 얼음조각들이 똘똘 뭉쳐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을 쫓아서 제때 떠나지 못한 나뭇잎들이
하얀 설경속에서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꺼먹다리에서 조금 내려가니 자그마한 산 하나가 눈에 띈다.
큼지막한 주변 산들에 비하면 미니어쳐 같은 산.
홀로 따로 떨어져 있어서 "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채우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던중
일만이천봉이 모두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 눌러 앉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단다.
전설을 듣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제서야 딴산이 바위산임이 보인다.
딴산의 맞은 편에는 인공폭포가 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물이 얼어 작동을 안 한단다.
눈을 감고 폭포가 떨어지는 장관을 그려보았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폭포수...
내 상상속의 그것과 비교해보기 위해서라도,
따뜻한 봄날, 이곳을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
눈덮인 돌길도 참 예뻤다.
크기도 모양도 다른 돌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음에도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화천의 힘"일까...?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눈발이 굵어졌다.
내리자마자 금새 쌓이는 눈.
12월 초에 제대로 된 눈구경을 하니 마음은 신났다.
고개 하나를 넘어가던 중 보게 된 도로 표지판!
눈으로 하얗게 덮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사고의 위험이 있는 곳이니 조심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듯 하다.
표지판의 눈을 손으로 닦어 주려 했는데
역시나 꽁꽁 얼어버린 탓에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늘 향해 두팔 벌려 눈을 맞이하고 싶은 내 마음과 똑같은 것일까?
온몸으로 눈을 맞고 있는 동상 하나를 발견했다.
탑에 쓰여있는 글을 보니
<조국과 자유를 지킨 곳>....
6.25때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무명의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자유수호탑이라고 적혀 있다.
눈 맞으며 방방 떠 있던 마음이 돌연 숙연해진다.
근처에 있는 "파로호" 전망대에 올라가보기로 한다.
눈이 제법 쌓여 발끝에 잔뜩 힘을 주지 않으면 그대로 휘청할만큼 미끄럽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이 나무의 실루엣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앙상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흰눈이,
나무 입장에선 얄미울 것 같기도 하다.
눈으로 덮여 있는 돌비석.
눈을 닦아내고 보니, <파로호전망대>라고 적혀 있다.
6.25 전쟁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오랑캐를 격파한 호수] 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날씨만 좋다면 이곳 벤취에 앉아 여유롭게 파로호를 전망할 수 있겠지만,
눈방석을 깔아놓은 의자엔 그 누구도 앉을 생각을 못한다.
전망대에 올라가 호수를 내려다 봤지만
역시 눈 때문에 흐려진 날씨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호수위로 어렴풋이 커다란 물고기가 보이는데
뭔가 했더니, 양식장이란다.
물의 고장 화천은 양식장 하나도 참 멋스럽다.
1944년에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인공호수, 파로호!!
이 호수의 상류엔 <평화의 댐>이 있다.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해 온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었던 평화의 댐....
조금만 더 가면 그 평화의 댐을 내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만큼
내가 있는 이 곳은 최전방이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첫댓글 ^^ 사진이 신선한데요,, ^^ 다시금 그날의 여운이 밀려드는듯 하네요 ^^
파라호 다리 남들이 보지 않은 부분을 많이 보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