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로 쓰는 시
해돋이詩돋이 202101023
기차가 지나간 영동선 최길하
반은 붉고 반은 푸른 뱀 한 마리가
등짝을 풀숲으로 숨기고 난 뒤
'파르르' 풀잎이 떨렸다고 할까?
마을마다 역이 된 영동선은
기차가 지나간 영동선은
찔레넝쿨에 뱀허물이 걸렸다고 할까?
바람에 걸린 비닐 같은 뱀허물이
'파르르' 문풍지처럼 떨고 있다고 할까.
하루에 두서너 번 기차가 마을을 흔들고 갈 뿐
산 넘어 뻐꾸기가 두서너 번 가슴을 흔들고 갈 뿐.
<詩賞錄>
영동선은 영주에서 동해까지 연결 된 철로다. 제천에서 동해까지 가는 태백선과
더불어 기차길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길이다. 눈물이 자작자작 고인 듯한
애처럽고 가냘푼 산골 사람들과 산골 풍경! 한국의 서정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묻어있는 그 길을 돌아왔다.
뾰족뾰족 새싹이 돋는 봄날 반은 붉고 반은 푸른 뱀 한 마리가 등짝을 풀숲으로
숨기고 난 뒤, 찔레가시넝쿨에 뱀허물이 걸렸다고 할까. 바람에 걸린 비닐 같은
뱀허물이 파르르파르르 문풍지처럼 떨고 있다고 할까. 기차가 지나간 산골마을은
그런 느낌이었다.
마을마다 역이 된 영동선은 하루에 두서너 번 느릿느릿 기차가 마을을 흔들고 갈 뿐,
산 넘어 뻐꾸기가 두서너 번 가슴을 흔들고 갈 뿐. 하늘도 세 평, 꽃 밭도 세 평이라
는 승부역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만든 오두막살이 양원역도 있다. 마을 사람이라먀
순이 할아버지 철수 할아버지 밖에 더 있을까 싶다.
세월 네월하며 기차는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간다. 영동선은 모두가 정지 된
풍경인데 마을공회당(마을회관)에 걸려있는 새마을기와 태극기만 펄럭인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기차만 정지된 풍경을 흔든다. 기차가 흔들고 간 풍경의 여운이 꼭
찔레덤불에 걸린 뱀허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