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 2,1-8; 루카 9,57-62
+ 찬미 예수님
오늘 1독서는 느헤미야기의 말씀인데요, 바빌론 유배 이후 예루살렘 도성을 재건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최근 들은 에즈라기, 하까이 예언서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오늘 화답송은 유배 중에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는데요,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도성에 대한 열정을 통해 하느님께 충실하려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와 같은 열정으로 교회를 향한 열정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 분이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2013년 3월 13일, 현 교황님께서 교황님으로 선출되셨을 때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님은 교황님을 포옹하며 귓속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순간 교황님께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가톨릭교회 2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이름으로 삼는 교황님이 탄생하였습니다.
교황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만을 딴 것이 아니라, 그 영성을 본받으셔서 가난한 이들과 생태 보호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계신데요, 이처럼 1181년에 태어나신 프란치스코 성인은 8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 이 시대 가톨릭교회와 전 세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성인이 되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느 날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지어라. 나의 집이 거의 다 무너져 가고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성인은 쓰러져 가는 성당을 세 개나 고쳤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당 건물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철저히 본받는 삶을 통하여 13세기 가톨릭교회를 쇄신했을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회심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성인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난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장 본받는 길이 가난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렇게 사셨습니다.
성인은 첫 번째 제자인 베르나르도 형제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려 복음서를 세 번 펼쳤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이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은 프란치스코 성인은 철저한 가난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성인의 회칙이 인간에게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회칙을 인가하기를 주저하였습니다. 산타 사비나의 주교인 성 바울로의 요한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적 완덕에 따라 살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지키기에 너무 생소하고 비합리적이라거나 아니면 너무 어려워 지킬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복음의 저자인 그리스도에 대해 불경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교황은 회칙을 인가해 주었습니다.
어제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엘리야 예언자보다 위대하시다는 것이 강조되었는데, 오늘 복음도 그러합니다. 엘리야는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엘리사의 청을 허락합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같은 청을 하는 사람에게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엘리야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더 절박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첫째 사람은 거절당했습니다. 자기가 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둘째 사람은 "나를 따라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셋째 사람은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둘째와 셋째 사람이 하는 말의 공통점은 ‘먼저’(proton)라는 단어로 말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을 하게 해 주십시오.’ 이 ‘먼저’라는 단어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proton)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라는 말씀처럼, ‘먼저’여야 할 것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장 우선적인 일이어야 하고, 다른 것과 병행하면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철저한 가난을 살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장애 되는 것을 내려놓는 것,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다른 것도 따르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 예수님을 따라나서던 첫 마음을 기억하며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것은, 지금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