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의 현대적 의미
34: 21-24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찌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찌며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찌라
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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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3가지 절기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출 23:16), 초실절(출 34:22),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비극은 감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요즈음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독감의 종류도 많고, 한번 걸리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 불만의 바이러스입니다.
바로 이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에 걸리면 누구나 예외없이 다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각박해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보면서 요즈음 유행하는 불만 바이러스를 치유하기 위해서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불만 바이러스에서 치유함을 받아 날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다섯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왜 감사해야하는가?
(2) 감사란 무엇인가?
(3) 감사의 결과는 무엇인가?
(4)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5) 맥추절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1. 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출애굽 사건을 구원의 역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가장 큰 구원의 사건은 바로 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신약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요,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놀라운 것은 민수기 11장 4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에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이방인들의 일부도 함께 출애굽에 참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에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죄의 종이던 우리들을 의의 종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롬 6:17-18). 나 하나뿐 아니라 우리의 온 가족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이유는 감사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예 화)
미국에서 [홀리데이 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휴양지에 가면 어디나 홀리데이 인이 있습니다.
홀리데이 인의 주인인 월리스 존슨은 제재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나이 40이 되었을 때에 소장이 너는 해고라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낙담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불황기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존슨은 건축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5년 만에 수백만불의 재산을 가진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예 화)
저는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저는 좋은 교회, 목회자를 대접할 줄 알고, 순종을 잘하는 교회에서 목회하도록 하지 않고 항상 문제 있는 교회로 보내주십니까?
그런데 제게 주신 응답은 네 자신이 문제가 많은 목사가 아니냐? 그러니 너에게는 문제가 많은 교회가 맞느니라.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좋은 교회가 있지만 그러나 그런 교회에는 네가 자격미달이기 때문에 안 된다 라는 응답이었습니다.
혹 여러분들 교회가 마음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교회가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교인이 될 수 있고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오히려 저와 함께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와 이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죽음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세상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자신을 이기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셨고, 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양식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직업을 주시고, 심지어 병을 고쳐주셨고.....
2. 그러면 감사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감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를 영어로 thank라고 하는데 이 말은 think란 말과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란 생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서 받은 복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주실 것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의 사랑을 깨달아 보답할 마음이 생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최고의 미덕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베풀어준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 고마움을 표현할 때 이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표현이 없는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먼저 입으로 표현하고, 다음은 행동으로 표현하고, 물질로 표현하고, 섬김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한 추수감사 헌금은 바로 감사의 표현입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3. 감사의 결과는 무엇인가?
감사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감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감사는 생명을 충만케 해주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고, 축복을 받을 그릇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스펄존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달빛을 주실 것이요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햇빛을 주실 것이요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햇빛이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실 것이다”라고.
성경에 보면 감사함으로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이 있습니다.
(1) 요나의 경우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갔을 때에 감사하므로 고기 뱃속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2) 하박국의 경우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니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가 불평에서 변하여 감사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사슴 발과 같이 높은 곳에 다니는 귀한 축복과 사명을 감당케 했습니다.
(3) 옥중에 바울의 경우
두아디라에서 전도하여 귀신을 쫓아냈으나 점치는 여자로 돈벌던 주님이 고발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사하고 찬송할 때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착고는 풀리고, 쇠고랑은 끊어지고 간수는 회개하고 옥문은 열리고, 법관들은 빌립보 교회를 시작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4.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말로 말하면 감사하는 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
(1) 먼저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생활관은 철저한 긍정주의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니라...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예 화)
어떤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 내용은 이빨이 하나하나씩 다 빠져나가는 꿈이었습니다. 유명한 해몽자들을 불러서 해석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해몽자가 해석하기를 친척 하나하나씩 죽고 나중에는 임금하나만 남는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 해몽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 해몽자는 집안의 모든 사람보다 더 장수할 길조라고 해몽을 했습니다. 알고 보면 똑같은 내용이지만 그러나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해석을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 것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변합니다. 성경의 생활관은 철저한 긍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사랑은 항상 대화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무엇이 찬양입니까? 곡조 있는 기도가 바로 찬양입니다. 이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찬양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3) 남에게 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죄인인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표현으로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었을 때에 주님은 그녀에게 부활의 주님을 최초로 뵈올 수 있는 축복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베풀 줄을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돈처럼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예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1-12절에 보면 너그럽게 연보함은 저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돈을 번다는 것을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듭니까? 그러나 그런 수고를 통해서 번 돈을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바치는 것이 바로 감사의 참된 표현입니다.
5. 그러면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본래의 자리인 감사의 생활로 들어가게 하고, 참 기쁨과 행복을 회복하여 줍니다.
맺는 말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표징입니다.
반대로 불만과 불평은 불신자의 표징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은혜를 잊는 건망증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를 잊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맥추감사주일을 통해서 불평과 원망의 바이러스 병이 치유되고, 감사가 회복되어져서 참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