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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31(화)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3)/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1:14)/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1:18)/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사1:19)/
→ 혹시 제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무거운 짐을 지우는 사람일까 싶어 두려웠습니다. 헛된 제물과 분향을 드리며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지만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짐을 지우는 사람에 포함될까 싶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의 죄를, 주홍같은 죄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씻어 주겠다 하십니다. 즐겨 순종하는 아들이 되라 하십니다. 활동 자체, 모임 자체에 참석하는 것에 그치면 하나님께 짐을 지우는 사람이겠고 순종에 초점을 두고 힘써 행한다면, 즐거이 행한다면 그것은 짐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겠지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음을 통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아들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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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사5:12)/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사5:13)/
→ 형식은 잘 갖추었으나 마음은 갖추지 못했다는 말씀인 듯합니다. 결국, 율법적인 태도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음 없는 예물, 마음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마음 없이, 사랑 없이 흉내내기만 마지 못해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화가 나실만 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며 경탄하며 기뻐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 기뻐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딴 생각과 딴 일에 관심을 가지는 아들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무지함으로, 억지로, 무관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과 마음이 연합된 아들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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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사6:8)
→ 주님,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여기에 왔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잘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저 먹고 살고 있을 뿐인 듯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외치지도 못하고, 내가 전할지라도 그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듯합니다. 세월은 지나가는데 나는 주님께서 보내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며 있다가 돌아갈 때가 이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눈물이 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둔해져서 들어도,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처럼 그 마음이 둔해진 것입니까?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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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사10:15)/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사10:20)/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데 우리는 일이 잘되면 자신이 똑똑해서 그런 줄 압니다. 똑똑해서 그런 것이 맞기는 한데, 그 똑똑함이 자기에게서 난 것은 아니지요! 그것을 모르고 자랑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2022.6.3(금)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사17:7)/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사17:8)/
→ 내가 만든 것 말고, 나를 지은 분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내가 만든 것을 바라보곤 합니다. 내가 만들어서 내가 섬깁니다. 내가 만든 그것에게 나를 도우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든 기업, 내가 만든 돈, 내가 만든 지위나 명성, 내가 만든 인맥~, 이런 것들을 의지하긴 합니다. 그것이 나를 돕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소서~!
2022.6.9(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사30:15)/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사30:18)/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사30:20)/
→ 조용히,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지혜로 조급하게 움직이기에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기다리셔서 우리가 힘을 다 빼고 난 뒤에 일어나십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버둥댈 때는 내버려두다가 힘이 빠진 후에야 건져 주는 것과 같은 듯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만든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받아야 하지만, 스승을 주셔서 인도하십니다. 건져 주십니다. 믿음이란 힘을 빼는 것인가 봅니다. 수영을 하듯이, 버둥대지 말고 물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믿음인가 봅니다. 내가 힘을 쓰면 가라앉고, 맡기면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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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사33:5)/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사33:6)/
→ 참으로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대가 되고, 그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며, 그 백성들은 평안과 구원과 지혜와 지식으로 사는 시대! 참으로 아름답고 사모가 되는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는 그런 시대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에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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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38:1)/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사38:5)/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 (사38:21)/
→ 주님, 제가 형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1절의 선고와 같은 말을 듣습니다. 항암치료 중, 오히려 더 나빠져서 폐의 회복을 위한 치료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틀 간의 혼수상태, 구토, 길어지는 입원기간~, 부정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이 말씀을 만납니다! '15년을 더 하겠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형에게 해당되는 말씀인지요? 그러면 '한 뭉치 무화과'는 어떤 것입니까? 지금 2박 3일간 한다는 새로운 항암입니까? 주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착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렘29:11-13 말씀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어디선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도 또 본 기억이 납니다! 하필 오늘 이 모든 말씀들을 보여 주십니다. 잠잠히, 고요히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런 때는 눈물이 납니다. 주님~!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15년보다 더 많이 주세요! 건강한 세월을 주셔서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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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40:6)/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40:8)/
→ 모든 육체는 풀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풀의 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정말 풀과 같은 인생입니다. 곧 없어질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 동안에라도 꽃을 피워보겠다고 아웅다웅 다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어떤 사람은~, 각자 온갖 것들을 추구해 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허무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겠지요? 그냥 있다가 없어지는 풀로 살기에는 너무 허무해서 그러는 것이겠지요? 영원한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마르고 시들어서 죽지요! 주님, 저는 저렇게 살지 않게 하소서~!
2022.6.10(금)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사48:17)/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사48:18)/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사48:19)/
→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셔서 우리의 잘못에더 불구하고 우리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늘 우리의 유익을 위해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 명령에 주의해서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 가지 않고 딴 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가르치십니다. 다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익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거기에 가야 얻을 수 있는데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은 재앙입니다. 마땅히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발로 차버리는 행위입니다. 귀찮아서, 내키지 않아서, 다른 것이 더 좋아보여서, 내 생각과 달라서, 내가 경험한 것과 달라서, 다른 사람의 말이 더 맞는 듯해서, 저 사람이 누리는 것을 나도 누리고 싶어서~,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복을 차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주님, 아무쪼록 제가 올바르게 보게 하소서, 아무쪼록 제가 올바르게 선택하여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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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사49:4)/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사49:5)/
→ 때로 우리는 낙심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수고인 듯해서 힘이 빠집니다. 내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합니다. 바라던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 대한 판단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영화롭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족합니다. 다른 어떤 결과가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아주시는 것이 결과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에 충성하겠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는 사람 되기를 힘쓰겠습니다.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를 통해서~!
2022.6.13(월)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55:9)/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55:11)/
→ 당연히 하나님의 생각이 높으십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 이익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우리 자신의 이익에 더 관심이 많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춰주시기를 기대하고 기도하고 조릅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말씀을 수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때가 가장 선합니다. 가장 옳습니다. 가장 유익합니다. 가장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그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할지라도 그것이 선입니다. 하늘만큼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선한 것입니다. 내 생각에 좋은 것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내 판단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계획 하신대로 선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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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사57:1)/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사57:2)/
→ 때로는 일찍 죽는 것이 더 복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서 이런저런 흉한 일을 겪고, 또는 욕심 때문에 오명을 남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잘 마쳤다면 깨끗하게 일찍 죽어서 좋은 이름을 남기는 것이 더 낫겠지요! 도슨은 일찍 죽어서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기 말았습니다. 죽음은 안식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낙원에, 천국에 들어가니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잘 마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
2022.6.14(화)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62:6)/
→ 기도는 참으로 신비한 일인 듯합니다. 기도는 사람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물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우리에게 그것을 구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하는 것을 들어주십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항상 일방적이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상호작용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할 때, 하나님의 약속에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그것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경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