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신년}새해를 어떻게 살까요?/창1:24-31, 마5:13-1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째가 되던 1948년 9월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로 달리는 특급열차 속에 “이누가이 미찌꼬”라는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몬로비아에 있는 폐결핵 요양소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폐병이 심해 축 늘어져 있는 그녀에게 승무원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몬로비아 병원에 간다고 대답하자 승무원은 난감해 하였습니다. 몬로비아 역은 이주 작아서 특급열차가 서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찌꼬”양 역시 그 사실을 알고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열차 안의 확성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승객 여러분, 이 열차 안에는 몬로비아 병원을 찾아가는 한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몬로비아 역에 서지 않지만, 몸이 아픈 그녀를 위해 철도청 본부로부터 임시 정차할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잠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놀라운 호의에 감동받은 일본인 여학생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몬로비아 역에는 역장과 구급차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여학생에게 승객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빨리 나아야 돼요.”
이 여학생은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그녀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런 따뜻한 친절과 사랑이 살아 있음을 보고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요,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새 해 첫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새해를 어떻게 살까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구약 본문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은 주님의 설계에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설계하신 분이십니다(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三位一體) 되신 분으로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란 말인데 이것은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엘로힘은 복수대명사인데 복수를 뜻하지 않습니다. 즉 셋이면서도 하나, 하나이면서도 셋이란 뜻이 있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엘로힘은 전능(全能)하시고 전지(全知)하신 분으로 그분의 설계는 완벽하십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시고 땅을 창조하시면서도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시고 창조하신 것마다 반복하여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은 선하게 창조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선한 것은 보기에 좋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하게 살아야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빛으로 살아야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주님은 세상에 참 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빛의 자녀입니다. 신약 본문 14절에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등대의 역할은 망망대해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어부들에게 항구로 돌아가는 뱃길을 알려주기 위해 등대 불이 비췸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등대 빛을 보고 뱃길을 바로 잡으며 원하고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 때 망망대해와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길 잃고 헤매는 자들에게 길을 인도 할 수 있는 안내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때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이 세상에서 길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빛을 발하는 성도로 살 때 다니엘서 12:3절의 말씀처럼 영광스럽게 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하며 살 때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미워하고 정죄하기보다 사랑으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기 보다는 허물을 덮어주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존 스타인백의 소설「진주」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진주를 무척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소원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진주를 수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멋진 진주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곳에 찾아가 진주를 감정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가장 크고 멋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그 진주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들고 요리조리 관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진주에 아주 조그만 흠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흠을 깎아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진주는 한 꺼풀씩 덮이면서 자란 것이기 때문에 그 흠을 없애려고 한다면 아깝지만 진주를 한 꺼풀 벗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흠 없는 진주를 만들기 위하여 진주를 벗겨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한 꺼풀을 벗겨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주를 자세히 보니 아직도 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벗겨내었습니다. 그러나 흠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 흠이 없어질 때까지 벗겨내고 벗겨내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흠이 다 없어짐과 동시에 그 진주도 다 닳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흠 있는 진주와도 같습니다. 인간이 완벽하기를 바란다면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흠을 없애기보다는 흠을 감싸주고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존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흠을 제거하시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흠을 아름답게 가리고 빛나는 곳을 더 빛나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비록 흠이 있을지라도 감싸고 덮어주며 빛나는 곳을 더 빛나게 만들어주며 존중하는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모실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지체들을 사용하여 그 사랑을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설계대로 선한 삶, 빛 된 삶, 사랑의 삶을 살아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선한 것 보다 악한 것이 더 많습니다.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추한 것들도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의로운 자들도 있지만 불의한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성한 것도 많지만 썩어 냄새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바른 것도 많지만 거짓 것이 더 많습니다.
구약 본문 창세기 1장에서 만물이 선하게 창조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뜻이기도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주님 말씀에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에덴동산을 버리는 행동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버리는 행동입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주님의 기쁨이 되고, 구원도, 은혜도, 복도 따르게 됩니다.
성도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 세상의 빛도 되고, 소금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본문 마5:13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은 맛 잃은 소금이 되어 버림받게 되지 않습니다.
소금은 예로부터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금에는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먼저 소금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순결의 모범이 되라는 것입니다. 순결한 것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따라서 순결한 것은 오래갑니다. 성도는 양심의 순결, 정조의 순결, 더 나아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이 순결이 인생도, 가정도, 사회도 아름답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번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음에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부패하고 썩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패의 마지막은 버림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멸시 천대와 멸망이 따르게 됩니다. 양심이 부패하면 인생이 망가지고, 정의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가지고, 신앙이 부패하면 그로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이 떠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나도 살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되어 부패를 방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소금은 음식의 맛을 냅니다. 아무리 맛깔스럽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도 간이 맞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설렁탕 국물이 아무리 진국이라 할지라도 소금을 넣지 아니하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행복을 모르고 허무와 허탈 속에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의미와 목적이 분명합니다. 기쁨과 웃음이 있고, 보람과 만족이 있고,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세상에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의 특징은 음식물에 넣으면 녹아서 형체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맛을 냅니다. 만일 소금이 녹지 아니한다면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녹아 없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맛이 나게 됩니다. 성 프랜시스가 어느 날 거리에 설교하러 나간다고 해서 여러 제자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몹시 실망을 했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그날 거리에서 한 일은 어떤 행인의 신세타령을 들어준 일, 과일을 수확하는 농부의 일손을 도와준 일, 퇴비를 싣고 가는 마차를 밀어 준 일 등이었습니다. 한 제자가 불평조로 말했습니다. “명 설교를 들을 것으로 믿고 기대하였는데 설교를 한 번도 안하시다니 실망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열 번 이상 설교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상생활에서 약한 자를 붙들어 주고, 힘든 자를 도와주고, 한숨 쉬는 자를 위로해 주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설교라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하는 설교, 듣고, 읽고 아는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는 이것이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끼치며 사는 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고, 소금된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순결한 신앙, 부패를 방지하는 신앙, 맛을 내는 신앙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매사에 주님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은 본문 마5: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부모님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자식이 고시에 합격을 한다거나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면 그 동네에서 잔치를 베풀고 부모님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충남 어느 산골마을에 온 동네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된 것은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부산 지방검찰청 검사인데 효성이 지극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지 계시는 곳에 와서 일도 거들어 드리고, 아버님의 친구들에게 점심도 대접하며 아버지를 극진히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 자녀 때문에 아버지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섬김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로 인해 아버지가 존경을 받는 것과 같이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도들의 착한 행실이 세상에서 빛으로 드러나고 그 빛으로 인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로 어두운 죄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며 악한 세상을 물리칠 때,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맛입니다. 재미교포벤처사업가 “폴 송”의 기사가 신문에 난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언론으로부터 1천 달러를 10년 만에 1억 달러로 만든 기적의 사나이, 한국이 낳은 사업가, 한국의 빌 케이츠, 시애틀의 억만장자로 불렸습니다.
폴송의 아버지는 목사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도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놓고 자신이 목사로 하나님께 봉사하여야 할지, 사업을 통해 물질로 봉사할 지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국 MIT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세계적 컴퓨터 회사인 오러클 사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오러클 사에서도 장미 빛 미래가 약속됐으나 한국계 소수민족으로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결심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게 했습니다. 그는 정보시스템 컨설팅과 훈련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정보서비스 회사인 애리스 사를 창업하였습니다. 현재 애리스 사는 9백 여 명의 직원에 연간매출액 1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폴송은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어 항상 기도로 모든 일을 시작했고 애리스 사 역시 돈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폴송의 아버지 교회도 송 목사 부부의 헌신과 폴 송의 영향으로 유수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폴송은 "믿음의 기초 위에 실력만 쌓는다면 세상은 성공으로 꽉 차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은혜로 충만한 역사를 이루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주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성도가 됩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한 해 새롭게 주언진 기회를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사는 성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 ♡.매사에 주님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
<2016. 1. 3.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