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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 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 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었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 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 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힐 때, 결김에 따귀를 하 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 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 어디서 줏어 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 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찟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 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 셀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쭝긋 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 선달이 얼 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 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 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 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 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 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 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 한다.
<중략>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 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허 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 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 생원은 시침을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01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허 생원’은 착실해 보이던 ‘동이’가 ‘충줏집’의 마음을 얻었다는 ‘조 선달’의 말에 ‘충줏집’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② ‘동이’는 ‘허 생원’이 ‘충줏집’에게 품고 있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허 생원’이 자신에게 화내는 것을 이해한다.
③ ‘동이’는 자신을 나무라는 ‘허 생원’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자리를 뜬다.
④ ‘충줏집’은 자신에 대한 ‘허 생원’의 마음을 알게 되어 ‘허 생원’이 ‘동이’에게 한 행동에 대한 화풀이를 ‘조 선달’에게 한다.
⑤ ‘조 선달’은 ‘허 생원’이 ‘동이’에게 한 행동이 ‘동이’에게 미칠 영향을 말하며 ‘충줏집’의 불만을 무마하려 한다.
02 ㉠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은 ‘허 생원’에 대한 ‘조 선달’의 부정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② ㉡은 ‘허 생원’과 ‘조 선달’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③ ㉢은 ‘나귀’를 괴롭히는 ‘각다귀’들에 대한 ‘허 생원’의 감정을 보여 주고 있다.
④ ㉣은 ‘허 생원’과 ‘나귀’가 오랫동안 동반자 관계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⑤ ㉤은 ‘허 생원’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인물임을 보여 주고 있다.
0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메밀꽃 필 무렵」은 허 생원, 조 선달, 동이 등 장돌뱅이들의 삶을 통해 떠돌이 삶의 애환과 육친의 정(情)을 묘사한 소설이다. 시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표현, 인간의 본능적인 애욕 등을 바탕으로 남녀 간의 사랑과 부성애 등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배경 묘사와 문체가 조화를 이 루어 자아내는 낭만적인 분위기, 토속적인 어휘 구사와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묘사는 이 소설이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 요인이다.
① ‘충줏집’을 두고 ‘허 생원’과 ‘동이’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인간의 본능적인 애욕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군.
② ‘허 생원’이 충줏집에서 ‘동이’를 야단친 장면은 ‘동이’에 대한 육친의 정으로서의 부성애가 드러난 부분으로 볼 수 있군.
③ ‘허 생원’과 ‘나귀’의 인연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 떠돌아다니는 존재로서의 장돌뱅이의 모습이 표현된 것을 볼 수 있군.
④ ‘나귀’를 묘사한 부분에서 비유법과 시각적인 표현 등의 감각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군.
⑤ ‘허 생원’, ‘조 선달’, ‘동이’가 함께 걷는 밤길을 묘사한 부분에서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군.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해제 이 작품은 일생을 길 위에서 살아가는 장돌뱅이들이 지닌 삶의 애환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애정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토속적인 어휘 구사와 서정적이고도 낭만적인 묘사로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백미로 평가되고 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의 산길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부자(父子) 상봉의 모티프를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묘사 속에서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 구조는 허 생원과 동이 사이의 갈등과 그 해소에 있다. 작가는 치밀하게 계산된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구조적으로 배치하고 적절한 공간적 배경과 향토적 어휘를 구사하면서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주제 : 떠돌이 삶의 애환과 육친의 정(情)
전체 줄거리 : 장돌뱅이인 허 생원은 봉평장에서 동이가 충줏집과 수작하는 것을 보고 동이에게 화를 내며 손찌검을 한다. 뛰쳐나갔던 동이가 허 생원의 나귀가 각다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허 생원에게 전하는 일을 계기로 동이와 허 생원이 다시 만나게 된다. 다음 장터로 가는 길에 허 생원, 조 선달, 동이는 동행을 하게 되고 허 생원은 오래전 추억인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 일을 이야기한다. 동이는 고향이 봉평인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 기를 듣던 허 생원은 동이의 어머니가 성 서방네 처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개울을 건 너다가 물에 빠진다. 허 생원은 동이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넌 후, 동이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참고 「메밀꽃 필 무렵」의 묘사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문체의 아름다움, 달빛처럼 작품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서정성 등을 그 근거로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널리 알려진, 허 생원이 ‘그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묘사된 부분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은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문장과 주관적 느낌을 전달하는 문장이 차례로 이어지며 조화롭게 어울리고,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이 적절히 배치되어 균형을 얻고 있으며, ‘짐승 같은’, ‘소금을 뿌린 듯이’, ‘향기같이’ 등 직유를 품은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이 또한 뒤섞이며 빈틈없는 풍경화를 구축한다. 그 상반되는 것들의 어울림은 다른 한편 출렁이는 생동감을 자아낸다. 이 풍경화의 출렁이는 문체는 풍경 속을 채우고 있는 것들의 움직임과 합쳐진다. 사람과 짐승과 식물들과 달 등 이 풍경을 채우고 있는 것들의 움직임은 달빛에 젖은 메밀꽃의 흰색과 메밀 대궁의 붉은색,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의 푸른색 그리고 나귀와 장돌뱅이들의 남루한 옷과 풍상에 시든 얼굴의 검붉은색 등 여러 색채의 뒤섞임을 품고 있어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현란한 생명의 약동을 펼쳐 보인다. 문체와 내용이 절묘하게 어울리어 창조된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비견할 수 있는 문체는 한국 문학 전체를 통해서도 찾기 어렵다.
- 김윤식·정호웅, 『한국 소설사』 -
01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유형 정답 ⑤
정답 풀이
⑤ 충줏집은 동이를 야단치고 따귀를 때린 허 생원의 행동에 불만을 느껴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 셀 것은 무어야, 원.’이라고 말하면서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다. 이에 조 선달은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즉 오히려 동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충줏집의 불만을 무마하려 하였다.(‘얼버무려 넘겼다.’)
오답 풀이
① 조 선달의 말에 허 생원은 동이에 대한 반응을 보일 뿐 충줏집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애숭이’, ‘착실한 녀석’은 모두 동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허 생원이 충줏집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려면, 허 생원과 충줏집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는 내용이나 충줏집이 허 생원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 등이 있어야 한다.
② 동이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자신의 따귀를 때리는 허 생원에게 화를 내며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동이가 허 생원이 충줏집에게 품고 있던 마음을 안다는 근거를 지문에서 찾을 수 없으며, 허 생원의 행동을 이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
③ 동이가 자신을 나무라는 허 생원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근거를 지문에서 찾을 수 없다. 소설 전체를 보면 동이가 자리를 뜨는 이유 중 하나로 부끄러움을 느낀 것도 포함될 수는 있다.
④ 충줏집은 허 생원의 행동에 대한 불만을 허 생원과 조 선달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과 행동으로 표시한다. 충줏집이 자신에 대한 허 생원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근거를 지문에서 찾을 수 없으며, 화풀이를 조 선달에게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조 선달은 허 생원의 행동에 불만을 토로하는 충줏집을 달래려고 할 뿐, 충줏집의 화풀이를 받는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02 구절의 의미를 묻는 유형 정답 ④
정답 풀이
④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은 허 생원과 나귀가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로, ㉣의 윗부분을 보면 그 기간이 이십 년 정도라고 되어 있다.
오답 풀이
① 작품에 나타난 조 선달과 허 생원의 관계로 보아 조 선달이 비죽이 웃는 것이 허 생원을 비웃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조 선달이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라고 한 것을 보아 허 생원에 대한 친근감을 바탕으로 한 장난스러운 웃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② 허 생원은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았으나 조 선달에게 이끌려 충줏집에 갔다. 마음이 당기지 않은 것은 허 생원이 충줏집을 마음에 두고 있으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동이가 충줏집과 가까워졌다는 점 등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 후에 허 생원과 동이 사이에 갈등이 생 길 것임을 암시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후의 사건을 보면 허 생원과 조 선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다.
③ 허 생원이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고 한 것은 자기 인생의 동반자인 나귀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따귀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귀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려 주러 온 동이의 마음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 문장을 볼 때 각다귀들에 대한 허 생원의 분노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⑤ 허 생원이 ‘그 이야기’를 반복하여 조 선달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으나 ‘싫증을 낼 수도 없었’다. 이는 허 생원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허 생원은 이러한 조 선달의 감정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시침을 떼고’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허 생원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03 <보기>의 내용과 연관 지어 감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 유형 정답 ②
정답 풀이
② 허 생원이 충줏집에서 동이를 야단친 것은 부성애 때문이 아니라 충줏집에 대한 허 생원의 애정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답 풀이
①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와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를 보면, 허 생원과 동이 사이의 갈등이 <보기>의 인간의 본능적인 애욕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허 생원과 나귀의 인연을 언급한 부분에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부분이 <보기>에 제시된 것처럼 떠돌아다니는 존재인 장돌뱅이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④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 닳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부분에 묘사가 드러난다. 비유법(직유법)과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감각적인 표현이 사용되어 있다.
⑤ 허 생원, 조 선달, 동이가 함께 걷는 밤길을 묘사한 대목은 제시된 지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의 구절이 묘사가 두드러지고 서정성이 강한 부분이다. 참고로, 이 소설이 서정적이고도 낭만적인 묘사로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백미(白眉)라고 평가받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