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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일 순천경찰서 박승주 서장은 전화금융사기피해를 예방한 순천농협 외서지점의 한훈아 주임에게 감사장을 전달하였다고 합니다. 왜 감사장을 받게 되었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8월 28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외서지점을 방문한 71세인 할머니가 아들을 죽이겠다며 돈을 보내라는 전화금융사기단의 말에 속아 1,150만원을 이체하려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신속하게 판단하여 막았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통장에서 850만원을 인출하고 만기도 되지 않은 적금 300만원을 다급하게 해지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보이스피싱의 협박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면담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과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들전화번호를 알아서 전화를 하였더니 아들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다시 알아보니 아침에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화의 내용은‘아들이 보증을 섰는데 채무자가 행방불명되어 아들을 잡아놨으니 돈을 송금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완전한 거짓말에 속고 1,150만원을 이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 사기전화를 통해 큰 피해를 보는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경찰도 아니고 국세청도 아니고 검찰청도 아닌데 그들을 사칭해서 우리들의 재산을 훔치려는 시도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명칭도 여러 종류가 생겼는데 사기방법에 따라 보이스피싱, 피싱, 스미싱, 파밍 등 여러 종류의 금융사기가 등장해서 우리의 재산을 노리고 있습니다.
사실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 우리를 현혹해서 우리의 재산과 우리의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런 사기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완전히 내어쫓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기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신앙이 과연 참된 신앙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신앙은 과연 참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거짓 모습을 보여주며 거짓말쟁이같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참된 신앙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거짓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짓된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신앙인의 기준을 충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짓말쟁이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요한복음 8장 54절, 55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면 참된 신앙인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고 참 사랑을 전하지 못하며 현실에 급급한 종교인의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에 덧붙여 자신도 만약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유대인들과 똑같은 거짓말쟁이 종교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7장 9절~10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 지를 분명히 알아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복들과 은혜를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의 명저 “탁상어록”에 등장하는 “고학생과 자선의 손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고학생이 길에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큼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고학생은 그 남자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나온 줄 알고 겁에 질렸습니다. 남자가 다가가자, 그 고학생은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도망쳤습니다. 남자가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흔들며 학생에게 소리쳤습니다. “멈춰라, 이것은 너를 위해 마련한 빵이란다.” 그러나, 그 고학생은 더 멀리 도망쳤습니다. 그 남자는 불쌍한 고학생을 위해 커다란 빵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을 몰랐던 고학생은 남자의 인자한 표정과 손에 들린 빵을 보지 못한 채 계속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며 손짓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소견과 이해가 부족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앞에 와서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자녀가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우리에게서 도망가기를 원합니까? 우리에게 찾아와서 잘못했던 것에 대해 빌고 우리와 그 문제에 대해 의논을 나누고 해결하기를 원합니까?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용서하기를 원하시고 이제는 다시 그 죄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서 6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젊은 자동차 정비사가 헌차를 한 대 싸게 샀습니다. 거의 굴러가지 않을 정도의 고물차를 열심히 수리해서 타고 달리니 기분도 좋았고 자기의 기술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그 차를 운전하여 약간의 장거리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엔진 이 털털 거리더니 딱 멎어 버렸습니다. 젊은이는 차에서 내려서 엔진의 뚜껑을 열고 고장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지나던 차 한대가 옆에 대고 정차하더니 노인 한 사람이 내려와 젊은 정비사의 곁에 와서 엔진을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청년 정비사는 그 노인을 바라보고 "문제없습니다. 그냥 가세요. 나는 정비사이니까요."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여기 저기를 찾아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장을 고치지 못하고 시동은 여전히 안 걸렸습니다. 그때까지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가 좀 도와주지."그러면서 손가락 한 개로 엔진의 한 부분을 톡, 친 후 "자, 시동을 걸어보시요."라고 했습니다. 의심쩍은 얼굴로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청년은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멈췄던 엔진이 붕, 붕하며 잘 돌아갑니다. 기가 막혀진 정비사 청년은 그 노인을 향하여 의아스러운 눈으로 물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네. 나는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입니다." 만든 사람은 그것을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질병을 능히 치료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앞에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짓말쟁이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5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지 않고 위선과 거짓의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55절의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신앙의 차이에 대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의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5절의 말씀에서는 그것에 덧붙여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 신앙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참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만큼 율법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들의 생각까지 덧붙여서 엄청난 율법을 만들어 자기들을 힘들게 만들면서까지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지키지 않는 거짓 신앙인들이라고 말씀했을까요? 그것은 말씀순종에 대한 참된 의미를 그들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수님과 신학생들의 강의 중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알고 계십니까?”그러자 교수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럼 잘 알고 있지.” 학생이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교수님의 아내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하루에 몇 번이나 결심하십니까?”교수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전혀 그런 결심을 하지 않는다네.” 학생이 재차 묻습니다. “그러면 아내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십니까?” 교수님이 대답합니다.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지.”그러자 학생이 마지막으로 말을 합니다. “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날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지하게 맹세하고 결심하고 노력하지만, 한결같이 결국에 가서는 죄를 범하게 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교수님의 아내에 대한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전혀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혀 어렵지도 않다고 대답하셨는데,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까?” 교수님이 대답을 합니다. “나는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일세.”
여러분, 이 대화를 통해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눈밖에 났던 유대인들과 율법이 아닌 사랑을 강조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죄인된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에 대한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참된 신앙인은 말씀을 온전히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지만 말씀을 말씀대로 이루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부부의 사랑을 의무로 강조할 수 있지만 의무속에서 항상 압박감이 느껴지고 결국에는 부부간의 괴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의 사랑이 진정 진심이 담긴 이해와 사랑으로 갈 때에는 노력이 필요없이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것같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으면 율법은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과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 그 사랑이 있으니 계명은 절대 무거운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법을 지켜 내 의를 나타내려는 의지가 강할 때 그것은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롭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과 내가 의롭게 살아야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들 수 있으니 내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신명기 5장 10절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킬 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엄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통해 참된 신앙인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의무가 되려고 할 때는 참 어렵습니다.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온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짓말쟁이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셋째, 그리스도의 때를 기대하며 살아야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참 신앙인의 대표자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았고 인생가운데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주시자 유대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5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유대인들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이 아직도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아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마음의 상태였는 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평가할 수 있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이 말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럼 우리가 역사교육을 통해 배우는 과거 선조들의 행적이나 이면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몰라야한다는 말입니까?
과거의 역사도 역사적인 기록이나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우리는 과거 선조들의 행위에 대해 우리가 따를 것이 있으면 따르고 버려야할 것이 있으면 버리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예수님께서는 창조때부터 성부하나님과 함께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중 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창조때의 사실을 모르실 리 없고 출애굽때의 일을 모르실 리가 없고 이스라엘왕조때의 일들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론은 예수님을 신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예수님의 말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고 예수님의 인성만을 인정하는 신앙적 가치관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한 부분만 인정하고 다른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이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단들중에 어떤 이단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인성을 부정합니다. 어떤 이단은 인성은 인정하지만 신성은 부정합니다. 정통적인 신앙은 예수님게서 완전하신 신성과 함께 완전하신 인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냥 그렇게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의 모범이 되고 신앙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이 되는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도 우리가 참된 신앙으로 살기 위해 본받아야할 많은 위인들의 신앙적인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본문이 바로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신앙인물들에 대해 기록하고 12장에 와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며 살았던 수많은 신앙인물들을 보면서 이제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생각해합니다. 재림 예수를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할까요?
미국의 대 전도자인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적은 “폭풍이 몰려온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 책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한 교훈의 말씀을 적은 책입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주가 오신다는 약속은 수세기에 걸쳐 신자의 커다란 소망이 되어 왔다. 에밀 브루너는 “폐에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찰스 웨슬리는 7,000개의 찬송가를 썼는데 그 중 5,000개의 찬송가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내용으로 담았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주관했던 켄터베리 대주교는 왕관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으며 이같이 말했다. “오, 여왕 전하, 제가 이 왕관을 드리오니 마땅히 쓸 권리를 가지신 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전하께서 쓰시옵소서.” 그러나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세상에 대하여, 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은 무질서하고 위험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누가 질서를 회복시킬 것인가? 누가 핵 위험을 막아줄 수 있겠는가? 누가 에이즈와 우리 시대의 다른 전염병을 박멸시킬 수 있는가? 누가 홀로 세상을 통치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약속하셨고 어느 날엔가 완전히 그의 통치 아래 둘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해방되고 그들의 억울함이 신원될 것이다. 그 때에 비그리스도인들은 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때를 기대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적인 어려움속에서 낙담하고 좌절하며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항상 체험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는 참 신앙인입니까? 거짓 신앙인입니까?
참 신앙인이라고 자처한다면 그럼 오늘 말씀을 근거로 어떤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 노력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계십니까? 의무가 아닌 사랑과 진실함으로 성경의 교훈을 지키는 것을 즐거워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리스도의 회복의 때를 고대하며 묵묵히 기쁨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모두 “아멘”이라고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거짓말쟁이 신앙인이 아닌 참된 신앙인으로 이 세상속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질문들을 고민하며 진정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