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정책이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19일 출고분부터 연말까지 종전 5%에서 3.5%로 낮아진다. 명분은 내수 활성화. 2015년 8월 말∼2016년 6월 이후 2년여 만에 재소환한 경기부양 전가보도다.
거의 똑같은 대책이 2000년 이후 여섯 번째다. 2001년과 2004년, 2008년, 2012년, 2015년에 이은 것이니 3년 주기 레퍼토리다. 직전 대책과 다른 점이라면 인하 대상에서 대형 가전제품이 빠지고 2015년 ‘30% 인하’가 이번엔 ‘5%에서 3.5%로 인하’로 바뀐 것이다. 발표문 표현만 다르지 인하폭은 같다.
통상 역대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연계해 7~8월에 발표하면서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가 6개월 더 연장하는 식이다. 아마 이번에도 도돌이표를 찍을 것이다. 경제여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내년 6월까지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 이후 6번째 개소세 인하
개소세 인하 카드가 경기부양책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자동차가 대표적 내구재로 소매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내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적 요인에다 올해는 수출 부진과 한국GM 사태 여파로 자동차업계에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특수 요인이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소비를 자극하고 자동차업계의 고용감축을 완화하기 위해 세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자동차 개소세 인하로 올해 민간 소비가 0.1~0.2%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 약발은 일시적 반짝 효과일 뿐 근본적인 내수 활성화 대책이 못 된다.
세금이 깎이는 몇 달 동안은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겠지만, 세금감면 기간이 지나면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다. 더구나 근래 자동차 구매 패턴이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국산차보다 외제차를 찾는다. 젊은 층일수록 더 그렇다. 배기량이 큰 비싼 차일수록 가격 인하폭이 크기 때문에 외제차 선호 경향을 부추길 소지도 있다. 내수(內需) 진작시키려다 외수(外需)를 자극할 수 있음이다.
세금감면을 통해 값을 낮춰 준다지만, 소득이 정체한 일반 가계 입장에서 자동차는 쉽사리 구매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큰맘 먹어야 가능할 뿐더러 상당수는 ‘내년(이후) 소비’를 ‘올해 소비’로 앞당기는 형태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개소세 인하 대상에 경차는 제외됐다. 자칫 수백 억원의 개소세 수입만 감소한 채, 내수 자극 효과는 과거보다 적고 수입차 메이커들이 재미를 볼 수 있음이다.
시장도, 산업도, 기술도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정부 정책은 느릴 뿐더러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내수를 활성화하겠다고, 경기를 진작시키겠다고 내놓는 대책들이 이런저런 세금감면과 재정지출 확대 등 과거에 동원했던 ‘이른바 경기부양책’ 일색이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을 감동시키지도, 시장에 별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 채 재정만 축내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고 만다.
재탕삼탕 말고 혁신정책 제시하라
김동연 경제팀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 성장률 전망을 3.0%에서 2.9%로 낮췄다. 더욱 심각한 것은 32만명에서 18만명으로 줄인 취업자 증가 폭이다. 경제성장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인데, 이를 거의 절반으로 낮추고도 제시한 정책에 위기의식도, 사명감도 없다. 경제팀의 매너리즘인가, 실력 부족인가, 소득 주도 성장을 고집하는 청와대 눈치 보기인가. 6월말 개최하려다 대통령에게 퇴짜 맞은 규제혁신점검회의도 8월에나 할 계획이라니 답답하다.
효과가 일시적이며 제한적인, 경제주체들이 능히 짐작할만한 재탕삼탕 말고 허약해진 경제체질을 강화시킬 ‘보약’ 정책을 치열하게 고민해 내놔야 할 것이다. 20년 전, 10년 전에 시행한 고만고만한 정책들을 나열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식이어선 국가채무만 불릴 따름이다.
재정지출 확대도 과거와는 다른, 경제 및 사회 변화 트렌드에 맞춰 몇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중국에도 뒤처진 4차 산업혁명의 길을 닦는 신산업 창업이나 성장동력 발굴, 한국 경제의 과제인 서비스산업 선진화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인구감소 시점이 불과 6년 뒤, 2024년으로 예고되는 등 한국 경제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득 주도 성장만으론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 혁신성장이 병행돼야 한다.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신산업이 태동할 여건을 조성하라. 여기서 벤처·신생 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터를 잡으며 유휴인력을 흡수해야 고용창출이 가능하고 가계소득이 늘면서 소비도 살아난다.
경제팀은 과거 써먹던 정책이나 꺼내드는 매너리즘에서 깨어나라. 시장 및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핵심 규제개혁 과제를 서둘러 선정해 정권의 명운을 걸어라. 달포를 허송한 후반기 국회에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법안만큼은 우선 심의해달라고 적극 설득하고. 출범 1년이 지난 김동연 경제팀, 이제 실력을 보여줄 때다.
※ 이 글은 2018년 7월 20일 발간된 석간 <내일신문> 23면 오피니언 페이지 '양재찬 칼럼'에 쓴 것입니다.
http://www.naeil.com/naeil_todaynews/?date=20180720&npage=23&new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