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호스피스대표 이학재)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를 평생 해 오고 있다. 그 사역의 규모가 커져서 봉사단체가 되고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게 된다. 비영리단체 ‘사랑하는 호스피스’ 이학재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어떻게 평생 환자들과 함께 하며 마지막 복음을 전하는 일까지 어떤 영리도 추구하지 않으며 할 수 있을까.
전도사이기도 한 이학재 대표는 “2009년 태평동에 위치한 ‘사랑하는 교회’의 한 사회사업으로 시작돼 ‘사랑하는 호스피스’ 봉사단체 사역이 시작됐다”며 “교회이름의 봉사단체로 움직이다가 2017년 독립단체로 비영리단체 등록을 했다. 복지 사각지대의 사회적 약자들, 필요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지경이 넓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호스피스’ 단체는 가정방문호스피스(상시돌봄, 영양식제공, 간병비지원, 영적돌봄), 병원호스피스(목욕봉사, 말벗, 마사지, 이미용봉사, 성남시의료원 호스피스센터 영적돌봄), 암네비게이터 역할(전인적 정보 제공, 호스피스 병동 안내 입원 연계 지원), 사전연명의료 의향서(작성 상담사 역할, 강의 및 죽음 준비 교육, 장례 돌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소외와 빈곤으로 고통받는 말기 환우, 치료 불가한 환우를 위한 전인적인 봉사를 한다”며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도록 일단 ‘영육으로 살려놓고 보자’라는 목표를 정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전인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는 영혼구원까지 온몸으로 찾아가서 온마음으로 기도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대표는 “호스피스 대상자는 우선 6개월 이상 못 산다고 하는, 치료가 불가하다가 판정을 받게 된 분들”이라며 “돈이 많은 분들은 어디 좋은 시설에 들어가면 되지만 돈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은 간병비 등 지원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병원동행서비스, 반찬, 간병비 등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마지막에는 영적인 케어도 함께 한다”고 설명했다.
사각지대의 환자들 중에는 알코올중독자 등 다양한 질병을 앓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무조건 기도로 시작한다”며 “종교를 떠나서 몸이 아프고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 외로우니 함께 기도해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너무 귀한 존재,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숨 쉬고 있는 귀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꼭 들려드린다”고 전했다.
전도사로도 사역하고 있는 이학재 대표는 젊은 시절 남들처럼 직장생활하고 결혼해 아이들을 낳으면서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10kg 정도의 살이 갑자기 빠지며 몸도 정신도 아프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10kg이 갑자기 빠져서 38kg까지 나가게 됐다”며 “몸이 갑자기 아파오니까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컸다. 병원에 가도 원인이 없었다. 그때 남편이 목사님을 모셔서 예배를 드려보자고 했고 목사님이 새벽기도 끝나고 집에 오셔서 일주일 동안 기도해주셨다. 마지막 날 주님이 인격적으로 다가오셨고 성령님이 불같이 임했다. 그때 엄청난 회개와 고백을 하고 주님만을 붙들고 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 몸도 정신도 회복되었고 그는 꼬박 7년여의 세월을 성경을 쓰면서 지냈다. 당시 다니던 담임목사와 성도들은 그에게 신학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권했고 남편은 그 고된 길을 어떻게 가냐며 만류하고 반대했지만 결국 용인에 위치한 칼빈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는 “그때 주님의 인도하심이 강력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40대에 입학했는데 주님께서 학비도 여러 통로를 통해 해결해주셨다. 제 능력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라고 설했다. 이후 총신대학교 총장 학위 과정인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게 된다. 크리스천 치유상담대학 목회상담 등을 배우고 죽음준비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역을 하다보니 상담 부분의 공부가 필요했다”며 “하나님이 계속 사역의 지경을 넓히시면서 저도 공부를 하게 하셨다. 영적 상담이 필요해서 공부를 계속 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교회 사역자로 여전도사로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며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과하게 사역을 하다가 과로로 탈진해서 쓰러졌다. 50대 초반에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병원 치료를 받으며 몸을 돌보고 있던 중에 언니가 대장암이 발병돼 며칠 안 있어 죽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그때 대형병원에서 갑자기 며칠 있다가 죽는다고 여기서는 더 이상 치료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스피스로 가라고 했다. 당시 용인 샘물호스피스와 연이 닿아서 그쪽에 언니를 모셨다. 그곳에서 언니도 돌보면서 샘물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도 받고 리더교육도 받으면서 다른 환자들도 돌봤다. 그곳에서 영혼 구원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봤다. 복음을 전하면 몸은 죽어가는데 영혼이 소생되고 돌아가실 때 얼굴이 천국같이 빛났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임종의 순간에 깨달았고 너무 귀한 사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가족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여전히 낯설고 힘들다. 그는 “죽음도 삶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며 “인생은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큰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죽게 되는데 애써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삶과 죽음은 인생에서 정해진 순리다. 죽음까지도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죽음은 반드시 오는데, 죽음 앞에서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고 전했다. 54년생인 그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 법 하지만 호스피스 사역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불꽃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일대일 방문 환우 돌봄 봉사는 주님의 사랑을 베풀기에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며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AI가 사람을 대신하고 물질 만능 시대가 된다 해도 사람은 사람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세상의 유용한 것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승리하기를 환우들과 봉사자들이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삶의 현장이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THE N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