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960년 국민소득 80달라 이었습니다.
그러다 1967년도에는 겨우 254달라 그 때 기억하면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먼 훗날 중화학분야에 필요한 철을
생산해야 한다는 예측을 해서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한 박 회장 그 당시
예측을 잘 맞았습니다.
만약에 제철소건설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화학공업이
이렇게 발전했겠는가? 이때 태어난 박태준회장 물론 박정희와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만 일본청구권자금으로 건설했지만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이라고 자유당(신민당인가 긴가민가하네요)에서 대모가 엄청 심했습니다.
박 회장은 포철을 건설당시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만약에 제철소가 실패하면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겠다”는
우향우정신으로 포항제철소를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빠져죽겠다는 맴 이런 맘이면 안 될게 없습니다.’
태산산맥의 저자 ‘조정래’씨는
“포항제철이 생기면서 우리경제가 중화학공업으로 체질을 바꾸었다.
국산철강의 가격은 수입 철강에 비해 3분의 1이나 싸 산업경쟁력을 키웠다”
며 “한국의 경제발전사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인물 중 하나가 박태준이다”고합니다
그런 후 박 회장은 정계에 입문해 민정당 대표 자민련총재. 국무총리를 지냈고
김영삼정부에서 밑보여 결국은 정계를 떠나고 말았습니다만 만약에 그 당시
헌신적인 열정과 비전을 갖춘 기업가인 박 회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태준 회장은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진짜 거목입니다
한국경제의 태동기를 이끈 거목이 이제는 갔습니다.
이분은 갔지만 영원히 철의 사나이로 남을 것입니다
본인은 우리가 힘들다 힘들다고 하지만
이속에서도 신화를 만들어 낸 박 태준 같은 사람들이 있다니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끝으로 이분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늘 이렇게 우뚝 서게 만든 한국경제 디딤돌 역할을
한 거목 박태준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신문을 보고 나의 단견을 올립니다.
2011년 12월 14일 구윤회